소설리스트

〈 70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70/90)



〈 70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30대 아줌마라는 말에, 무가희는 진심으로 화가 났는지 말없이 속을 삭이고 있었다.
사실, 세월이 흐를수록 차오르는 나이가 매우 원망스러운 그녀였다.
역린을 건드렸으니, 그녀는 약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 너무 심했나? 가만히 있으면 계속 추근댈 것 같아서, 좀 세게 말했더니-'

태수가 무가희에게 사과할까, 고민하던 중 위원회의 장이 들어왔다.
긴급대책위원회장은 다름 아닌, 무림맹주 위지운이었다.

"자리에 다들 앉아있는  같으니, 바로 회의를 시작하지."

탕- 탕- 탕-


위지운은 망치를 두드리며, 회의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그 형식적인 의례에 시끌벅적했던 회의장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태수는 이 순간, 무림맹주 위지운의 위상이 무림맹에서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사아아-

위지운이 등장한 이후, 회의장에는 적막  자체.
고요함만이 남았으니까.

'엄청 잘생겼네-'

위지운은 대표적인 미남상이었다.
이제 50대 중반이었지만 아주 곱게 늙은 미중년이었다.
젊었을 때는 여자들을 많이 울릴 법한 외모였다.

"첫 주제는 역시, 새롭게 등장한 청사파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지. 다들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도록 하는 걸로-"


위지운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화산파의 대표인 이태백이 치고 들어왔다.


"저는 청사파의 속뜻이 궁금하더군요. 우문가와 황산파, 점창파, 공동파를 흡수하여 만든 게 청사파잖습니까? 그런데, 사실 광서의 실질적인 지배세력은 정천맹의 우문가였습니다. 원래 구파일방으로서 무림맹의 대표 의석 하나를 맡고 있었던 점창파는 광서의 외곽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죠."

그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마치, 청문회를 하는 듯한 태도에 태수의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

예상치 못한 태수의 반격에 회의장이 분위기가 오묘해졌다.
태수가 그렇게 반격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수는 이번에 처음 회의에 참석한 것치고는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너무나 자연스레 선을 조금 넘는 상대의 공격을 잘 받아내고 있었다.


'흐음-'

이태백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그의 나이가 40대 중반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정파무림에 공도 쌓으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었다.
그런데, 이제 갓 20대 중반이  어린놈한테 따끔한 말을 듣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지만,

"뭐, 태수 대협의 본뜻을 곡해하려는 생각은 없었네. 다만, 정천맹이 아니라 굳이 무림맹으로 들어온 이유가 궁금하군"


상대는 나이는 비록 어릴지라도, 무려 등봉조극의 고수.
사실상, 정사무림에서 천마와 맞서 1대1로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고수였다.
자신은 이제야 화경의 고수였기에, 태수 앞에서 고자세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정천맹이 아니라, 굳이 무림맹이라- 저는 반드시 무림맹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천맹은 독재 세습 정권이잖습니까?"
"독, 독재라-"


다소 과격한 태수의 발언에, 의석에 앉은 이들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독재 세습 정권'이라는 말은 무림맹이 정천맹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비하할 때, 쓰는 말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에 무림맹으로 처음 들어온 작자가 하는 말이, 저런 말이었으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정천맹은 텃세가 심할 것 같으니-'

순혈주의가 강조되는 정천맹으로 가봤자, 문파의 성장세가 느려질  같았다.
그나마, 능력주의인 무림맹이 괜찮았다.

"확실히, 정천맹보다는 무림맹에 오는 게 낫겠지. 혹여, 정천맹에서 개입이 들어오지 않았나? 그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뭐, 오긴 했었지만, 그닥 의미는 없었습니다"
"호오-"


이태백은 너무나 당연한  물었고, 태수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이후로, 위지운은 분위기가 소강된  느꼈고, 청사파에 대한 내용을 정리했다.

"사제가 이에 대해 캐묻는 것은 청사파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궁금했던 것이겠지. 태수 대협은 신경쓸 것 없네. 우리 무림맹의 입장에서 봤을 때, 등봉조극의 고수가 무림맹에 와줬다는 건 엄청난 덕이라 할 수 있지"


술렁-


맹주의 입에서 '등봉조극의 고수'라는 말이 나오자, 회의장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소문과 사설수기로 듣던 걸, 공인 인증이나 다름없는 무림맹주의 입으로 재확인 받는 건 느낌이 새삼 달랐다.


"맞아요, 태수 대협이 무림맹에 들어온 건, 정말 잘 된 일이라   있죠. 그 속뜻을 캐묻는 건,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봐요"

천산파의 대표.
유해령.

비교적 나이가 어린 광야가 개방 대표로 나왔듯, 유해령 그녀 역시 나이가 비교적 어린 축에 속했다.

유해령은 태수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같은 또래 남자임에 불구하고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외모도 잘난 것 없는 얼굴과 체형에서 환골탈태를 4번 겪은 탓에, 나름 봐줄 만도 했다.

자신을 옹호해주는 그녀의 말에 태수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고, 그녀와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초면임에도 유해령은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사이, 태수는 유해령의 견적 조사를 마치고 있는 중이었다.
유독, 두드러지는 그녀의 가슴 크기에 태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저건, 무조건 G컵이다'


밤꽃무림 세계관에서는 여성들이 조신하고 노출을 자제해야 한다는 등, 그런 관례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자신이 있으면 노출하는 건 너무나 지극히 정상적인 일.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슴부심이 있었는지, 가슴 부위의 노출이 두드러지는 옷을 입고 있었다.
젖꼭지가 자칫 보일 것 같은 노출에 태수의 시선이 절로 그녀의 가슴 부근으로 향했다.


그 이후, 시선이 얼굴로 향했고 태수는 청순과 섹시가 공존하는 그녀의 외모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천산파 출신이라 그런지, 피부도 굉장히 백옥 같았다.
입술은 앵두색 계열의 틴트를 바른 듯했고, 아이라인도 과함이 없어 청순미가 살아있었다.


태수가 그렇게 한동안 유해령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이,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어느 정도 태수에 관심이 있었지만, 태수가 자신의 외모에 혹해 정신이 팔려있는 걸 보고는 다른 남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걸 느꼈다.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이후로, 청사파의 전투력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보고된 바로는 등봉조극의 고수 한 명, 화경의 고수 5명, 초절정고수가 수십여 명에 달했으니 무력 단체 중에서도 천마신교를 제외하면 1순위를 앞다툴 정도였다.


무림맹주 위지운은 솔직한 심정으로 화산파보다 청사파가 무조건 더 강할 것이라 보았다.

듣기로, 등봉조극의 고수는 현경 초입의 고수 세 명과도 싸울 수 있다고 한다.
허나, 화산파에는 현경 초입의 고수는 자신 한  밖에 없었다.
그러니, 상대가 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힘의 논리대로라면, 태수가 맹주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었으나 반드시 가장 강한 문파의 수장이 맹주가 되는 건 아니었다.
무림맹에는 공적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힘과 비례하여 그 공적을 많이 쌓을수록 문파의 의석수를 확보하게 된다.


그렇기에, 무림맹주라는 것은 힘도 중요했지만 문파의 활동력도 굉장히 중요했다.
힘은 맹주가 될  있는 필요조건 중 하나였고, 활발한 활동으로 공적을 쌓고 의석수를 확보하여 표결로 맹주직을 선출하는  가능했다.

"엄청나군. 무림맹에 적을 두자마자, 전투력 순위가 갑甲이나 다름없잖소?"
"하기사, 이계 괴물 침공도 다른 세력가의 도움없이 막아내었다고 들었어요. 거의 피해도 입지 않았잖아요"


무당파의 청명도사가 청사파의 전투력에 혀를 내둘렀다.
무림맹에 이 정도의 무력 단체가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이에 곤륜파의 무가희도 거들었다.
자신을 아줌마라 부른 건 아주 괘씸했지만, 청사파의 무력과 실제 그 공이 대단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무림맹의 대표들은 청사파가 광서의 세력가를 흡수하며, 주력 고수들을 거의 죽이지 않고 모두 부하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다소 충격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무인이라는 것은 수준히 높아질수록 자존심이 굉장히 강해지기 마련이었다.
평생을 한 조직의 수장으로 살아왔다가, 누군가에게 충성으로 모신다?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청사파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습니까, 맹주님-"

이태백은 청명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청사파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화산파는 명실상부 무림맹의 대표격인 무력 단체라 할  있었으나 이제  명함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위지운은 그런 사제의 기분을 느꼈는지, 피식- 웃었다.
그는 강호의 새로운 물결이, 옛 물결을 밀어내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그렇지 않은 사제의 모습에 옛 생각이 떠올라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뭐, 애시당초 이 자리의 목적은 청사파가 무림맹에 합류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으니,  정도로 하지-"

이후로는 앞으로의 정세에 대한 주제로 회의를 이어나갔다.

청사파가 합류한 무림맹의 전력은 그 전과 비교도 할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이에 해남파의 대표, 거구의 체격을 가진 하진이 입을 열었다.


"과거에는 우리 무림맹이 정천맹에 비해 어느 정도 유리했으나,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청사파가 무림맹에 합류했으니 정천맹과 싸워도 압승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이에 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흐음-"


하진의 말에 대표들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정천맹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경쟁 관계이자 상호보완 관계이기도 했다.
몇몇 충돌 때문에 정사 대전이 일어난 적도 있었으며,  사이를 틈타 침략을 온 새외무림과 천마신교에 맞서 다시 힘을 합춘 적도 있었다.

그러한 역사를 비춰보면, 하진의 말은 너무 내부의 일만 치중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태수는 이런 하진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닥 정천맹과 싸우고 싶지 않군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후우, 귀찮게 하는군'

태수는 무림 전체적으로 전력 손실을 보는 걸 굉장히 꺼려했다.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여,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데 집중해야 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정천맹과의 전쟁이라니. 사실, 천마신교의 동향도 심상치 않았기에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무림맹의 대표들은 회의 내내, 가만히 있던 태수가 처음으로 의견을 내비쳐 관심을 보냈다.
과연, 정천맹과의 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천마신교의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섣부른 판단으로 천마신교와의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소리다, 해남파 대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어리석은 행위라   있지"


태수의 말에 맹주 위지운까지 가세하자, 하진은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천마신교라는 존재가 있었던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마교와의 전쟁은 아주 오래 전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하진을 본 태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전 앞으로의 정세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무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계 괴물 침공은 무림의 멸절을 가지고 올 정도로, 계속해서 강해질 것이기에 이해관계는 잠시 내려놓고 다들 한 곳으로 힘을 모아야합니다"
"..."

태수의 말에 회의장 안에 고요한 적막이 지나갔다.

이계 괴물 침공에 의한 무림의 멸절?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관계를 잠시 내려놓고 진심으로 힘을 합할 생각은 그들 마음 속에 없었다.


애초에, 이해관계를 포기하고 자신들이 피해를 보는 걸 감수할 준비는 이들에게 되어있지 않았다.

"물론일세, 힘을 모아야지. 모아야 할 때지, 후훗-"

형식 상으로, 맹주 위지운이 거들었으나  문파의 대표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나마, 위로차 옆에 앉아있던 광야가 책상 밑으로 태수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흐릿한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태수 형.  형의 생각과 계획, 그리고 그 힘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이들은  모르오. 애초에, 이들은 지금껏 남을 위해 공으로 도와준 적은 단 한번도 없었소. 형이 기대하는 그림은 잘 나오지 않을 것이오.


태수는 위로하는 듯한 광야의 전음에,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자신의 의견은 무언가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사르르- 사라졌고, 자연스레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무림맹 회의를 보며 태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군-'


애초에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힘을 한군데로 모으기 위해서는, 무림일통이 필수불가결적인 요소라는  재확인했다.
그리고,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해 그 다음 시나리오를 구축해둔 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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