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태수는 무림맹으로 출발하기 전, 마지막으로 중앙상단에 들릴 생각이었다.
천마신교의 공주, 주홍희는 옆에서 구경 좀 시켜달라며 따라붙었다.
"귀찮게-"
"아, 왜"
"봐서 뭐하려고 그럽니까?"
"내 상황 알면서 그러기에요?"
천마신교로 돌아가기 꺼려하는 걸까.
그런데, 저렇게 마음대로 기간을 무작정 늘려도 되는 거야?
옆에서 뇌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주홍희는 중앙상단의 풍경이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와, 근데 여기 정말 예쁘게 건물 지었다. 엄청, 신경 쓴 것 같은데요?"
"그런가. 잘 느끼지 못하겠는데"
"그건, 당신이 남자라서 그렇고요"
"소저도 정상적인 여자라 보기는 힘들지 않소?"
"...!"
꼬집-
태수의 뼈 있는 말에 주홍희가 뾰족한 눈빛으로 태수를 노려보며 팔을 꼬집었다.
웃긴 건, 세게 꼬집었는데도 태수는 아무렇지 않았다.
청마지주 특성으로 얻은 외공 효과 덕분이었다.
"정말 얄미워"
아무렇지도 않은 태수의 모습에, 더욱 얄미운 주홍희였다.
"절이 마음에 안들면, 중이 떠날 수밖에-"
"어후-"
주홍희는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태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자님-!"
"린"
태수는 중앙상단에 들릴 것이라, 미리 언질을 준 적이 있었다.
마중을 나온 송유린이 태수를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달려와 안겨왔다.
이내, 태수의 옆에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는 조금 신경쓰는 듯한 눈치를 보였다.
"공자님, 그런데 이 분은 누구에요?"
"아, 천마신교의 공주야."
"아아-"
송유린은 천마신교의 공주라는 말에 조금 기겁하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듣기로 천마신교 사람들은 굉장히 성격적으로 포악하다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마공을 익힌 탓에 정서적으로 불안한 면이 있었다.
"저는 중앙상단의 부단주, 송유린이라고 해요"
"아, 천마신교의 주홍희에요"
송유린의 눈빛이 토끼 혹은 여우 같다면, 주홍희의 눈빛은 마치 구미호 같았다.
'큐티 섹시와 뇌쇄적인 섹시인가-'
"무슨 생각해요?"
"별 것 아냐. 갑시다"
멍 때리고 있는 듯한 태수의 모습에, 주홍희가 부추겼다.
그녀는 자연스레 태수의 옆에 밀착하여 걸었다.
'...'
나름 잘 어울리는 둘의 모습에, 송유린은 질투가 났지만 직접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자연스레 질투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 표정을 태수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맛-!"
그렇게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걷던 도중, 태수의 손길에 의해 자연스레 태수의 품 안으로 이끌려왔다.
딱 봐도, 불편해하는 듯한 모습에 태수가 그녀의 허리춤을 껴안아왔던 것이다.
송유린은 자신의 허리춤에 닿은 태수의 손길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공자님도 참-'
이유는 모르겠지만, 태수의 손길이 자신의 몸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온몸이 감전된 듯한 쾌감을 얻었다.
이미, 그녀의 음부는 젖어가기 시작했다.
'헤에-'
주홍희는 뜨거운 둘의 모습에 흥미로운 표정을 보였다.
특히, 송유린에게로.
"회장님, 오셨습니까?"
"아, 중앙상단주"
송인수는 태수의 옆에 붙은 송유린을 힐끗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후, 마찬가지로 주홍희한테도 시선이 갔으나, 그러려니 했다.
영웅호색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차와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회장님"
"뭐, 그럼 천천히 마시고 하지"
"알겠습니다"
이제, 송인수의 입에서 자연스레 '회장님'이라는 말이 나왔다.
송유린은 여전히 그 호칭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당신이 저 사람한테 왜 회장님이라 불리죠?"
주홍희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중앙상단주가 지부장을 두고 회장님이라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혹여 중앙상단이 청사파의 밑으로 들어가기라도 한 걸까.
"회장님이니까, 회장님으로 불리겠지"
"그냥 가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봐요-"
"주 소저는 아직 알 것 없소"
태수는 그렇게 대답하며, 상단주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주홍희는 그런 태수를 힐끗 노려보더니, 피식- 웃었다.
참,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님, 중앙상단은-"
차와 다과와 함께, 송인수는 중앙상단이 지금껏 해왔던 사업에 대해 태수에게 일일이 보고했다.
딱히, 큰 변화는 없었지만 진전은 있었다.
사업체가 늘어났으며, 기술적인 진화와 대량 유통을 이루어냈다.
수입구조는 이루 말할 것도 없이 윤택해지고 발전되었다.
사실, 중앙상단이 이룩해낸 것의 뒷배경에는 파천회가 있었다.
파천회가 없었으면, 결코 이렇게 사업을 크게 벌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앙상단주, 송인수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새로, 계약을 하는 건 일도 아니었지-'
파천회라고 말만 하면, 광서의 모든 가문과 문파들이 중앙상단의 제품을 쓰겠다고 한다.
파천회가 보호해주니, 계약의 안전은 물론이고 파천회의 입김에 그들은 강제로 중앙상단의 제품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제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일이 잘 풀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이 순전히 중앙상단의 것이 아니라, 파천회의 것이지만. 이게 어디야.'
송인수는 중앙상단이 파천회와 함께 하면, 무림 전역을 다루는 대大상단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뭐, 그건 결재했던 내용들이니 딱히 말할 필요없어. 굳이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하, 물론입니다."
주인된 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보고된 내용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은 아랫것들을 믿는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송인수는 얼굴에 미소를 띄울 수 있었다.
"조만간 표국과 계약을 할 수도 있을 거야"
"표국 말입니까?"
"그래, 이제 무림 전역으로 장사해야지. 언제까지 광서에서 직접 배달을 하고 있을 거야. 돈 크게 벌어야하지 않겠어?"
"물론입니다. 하지만, 광서에서는 닿는 데가 없어서-"
송인수의 말대로 광서를 다루는 표국이 흔치 않았다.
예전, 황금상단은 가능했으나 중앙상단은 아직 연이 닿질 않고 있었다.
일단, 중앙상단 내부를 다스리기도 한창이었기 때문에 그럴 틈조차 없었다.
"너희들이 한창 열심인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대신 수주를 해오겠다는 말이야"
"어디 가십니까?"
"내가 무림맹으로 간다는 것도 잊었나?"
"아아- 죄송합니다. 하하. 사실 그쪽으로는 제가 소식통이-"
송인수가 송구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랫것이라고 해서, 윗것들의 소식통을 다 꿰뚫고 있으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하는 일은 완전히 달랐으니.
"무림맹에 가면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족속들이 참 많을거야. 뭐, 그런 애들은 그렇다치고, 광서와 친해지고 싶은 표국과 대화를 해봐야겠지. 우리 사정을 들으면, 매력적이라 생각하고 바로 물을거야. 여기 내용 확인해보고-"
태수가 내민 종이는 일종의 계약서였다.
배달 대행 업체, 표국과의 계약서로 비율은 8대2였다.
"호오, 괜찮네요. 그런데, 표국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일까요?"
"말했잖아. 우리 사정을 알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흐음-"
"뭣하면 너희들이 표국일까지 맡아볼래?"
"그, 그건-"
송인수는 지극히 사양하는 표정으로 손사래쳤다.
지금도 광서 전역으로 직접 배달을 나가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던 중앙상단이었다.
여기서 전역으로 나가라고?
물론, 사업체의 규모가 커지면 충분히 가능하겠으나 아직까지는 표국일에 관심이 없는 송인수였다.
그런데, 옆에 잠자코 듣고 있던 송유린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버지, 표국 일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니?"
"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어차피, 돈은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미 많은 상단들이 전속으로 계약한 표국들이 있을텐데, 그 구조가 무너지지 않은 이상 우리가 끼어들 틈은-"
확실히, 그렇다.
이미 전국의 상단과 표국들은 전속 계약으로 맺어진 형태로 묶여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정천맹, 무림맹 같은 무력단체가 확실히 틀어쥐고 있는 형태였고, 그 삼각도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새로운 표국이 등장한다고 한들 쉽게 성장하기가 힘들었다.
"자자. 린아의 말도 맞고, 상단주의 말도 맞아. 표국을 하자는 말은 농담이었어. 아직 시기가 이르지. 파천회가 곧 무림 전역에 영향을 끼치기 전까지는-"
부녀의 대화를 중재한 태수가 그렇게 말하자, 송인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파천회의 영향이 무림 전역에 퍼지다니, 실로 광오한 말이었다.
태수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주홍희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한 가지 괘씸한 점이 있었다.
그녀는 드디어 회장님이라는 말의 출처가 어디에서 나온 건지 알 수 있었다.
'파천회라. 뭐야, 이렇게 대놓고 알려줄 것이었으면서, 나한테는 왜 안 알려준거야'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툴툴거리는 사이, 태수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표국 건을 수주해올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알겠습니다. 회장님께서 그렇게 직접 수주해오신다면, 저희야 감사드릴 일이죠"
"후우, 그건 그렇고. 저번에 린아에게 말해줬던 게 있는데-"
"아, 그 야식 배달 음식이요!"
"맞아"
태수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조리법을 건넸다.
조리법은 아주 간단했다. 우선, 이계 괴물의 맛있는 부위를 기름에 튀긴 이후에 맛있는 양념으로 범벅해서 잘 포장한 후 경공이 신속한 직원을 고용해 직접 배달을 하는 것이었다.
주문과 배달에 관한 상세한 내용도 밑에 첨부되어 있었다.
그 내용은 사실상, 사업계획서나 다름없었고 끝까지 다 읽은 송인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거 괜찮겠습니다"
"아버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대박일 것 같은데요"
"그러니?"
태수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배달 음식에 이해도가 부족했음에도 송유린이 거들어주었다.
그녀는 태수에게 손가락으로 V자를 날리며, 칭찬해달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귀엽네-'
태수는 누구 보는 것 신경쓰지 않고, 대놓고 송유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그녀는 기분좋은 듯 '헤헷'거리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지체할 것없이, 오늘 바로 시행해봐. 이미 광서는 파천회의 힘이 안 닿는 곳이 없다. 그 말은 중앙상단의 힘이 안 닿는 곳이 없다는 뜻이지. 여기에 적혀있는 대로, 광서 전역으로 홍보를 한 후, 마을사람 혹은 광서 본토의 사람들이 관 대리인 혹은 관에 대리 주문을 하면 우리는 음식을 만들어서 배달하면 돼"
"오, 오늘 바로 말입니까?"
"그래. 무작정 만들지 말고, 사업계획서에 나와있는 단위로 30개 정도만 팔아봐. 그 이후로 잘 되면 확실히 체계를 갖추고, 요리 공장도 더 늘리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준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난 이제 무림맹으로 가야 해. 신경쓰지 말고 바로 준비에 착수해"
"알, 알겠습니다!"
이후로, 태수는 중앙상단을 떠날 준비를 마쳤고, 입구로 송 부녀가 마중을 나왔다.
송인수는 앞으로의 할 일에 대해 고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림맹에 갔다 온 이후, 음식 배달 사업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해본다?"
"알겠습니다"
태수는 재차, 송인수에게 야식 배달 사업에 대해 언급한 후, 주홍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송인수는 울상을 지으며, 송유린에게 신세한탄을 하듯 말했다.
"후우, 린아. 어떻게 하니. 아버지는 이제 네 손, 네 발이라도 일이 벅찰 것 같단다."
"아버지,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죠!"
"그러니? 에휴-"
송인수는 주소를 잘못 찾았다는 생각에 힘 없이 등을 돌렸다.
생각해보니, 자신의 딸도 일이라면 아주 환장해하며 좋아하는 일벌레였다.
"아버지, 저한테 맡겨만주세요. 공, 아니 회장님이 맡겨주신 야식 배달 사업 제가 성공시켜볼게요"
"그래, 이 못난 아비가 부탁한다. 힘든 거 있으면 말해주고"
"네, 아버지"
'공자님, 기대해주세요-'
사실, 송유린은 일도 좋지만 태수가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야식 배달 사업을 성공시켰을 때, 태수가 자신을 얼마나 칭찬해줄 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 일에 대해 착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돈되는 것은 널리고 널려있었으니까.
섬서.
무림맹 본부.
입구에 몰려드는 마차에, 섬서의 사람들은 무림맹에 누가 오는지 궁금해 구경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연예인 구경이나 다름없었다.
본부 입구에 마차가 줄 지어,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 마차 열에는 태수 일행도 있었다.
"네, 청성파 패, 확인되었습니다"
"네, 진해표국 패, 확인되었습니다"
...
...
입구에는 신원을 확인하는 문지기들이 서있었다.
그들은 무림맹에서 발급하는 '패'를 통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위조가 불가능한 기술 수법으로 패를 만들어, 최대한 안 좋은 뜻을 품은 자들을 거르고 있었다.
마침, 태수의 차례가 왔고 문지기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지금 이 시기에 무림맹 본부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굵직굵직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청사파에서 왔습니다. 패는 없고요"
"청사파, 아 알겠습니다"
비록, 패는 없었지만 청사파에 대해 사전교육을 받은 문지기는 태수가 건넨 무림맹 회의 참석요청서를 받아들었다.
문지기의 눈에는 참석요청서에 어떠한 위조 흔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네, 청사파, 확인되었습니다"
문지기의 통과 이후, 무림맹 본부로 들어선 태수는 멀리서부터 봐왔던 무림맹 본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떴다.
대한민국의 정부세종청사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각종 업무를 보는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현대식이라기보다는 고풍스러운 느낌에 절로 눈이 갔다.
그렇게 태수가 무림맹 본부를 구경하고 있을 때, 광야가 인사를 걸어왔다.
"하하, 이거 무림의 화제를 모으는 폭풍의 중심 그 자체, 태수 형 아니시오!"
그는 비무대회 이후, 곧 바로 개방으로 복귀했었고 무림맹 대표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태수는 과장되게 표현하며, 말을 걸어오는 광야를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주변에 모르는 사람 태반이라 조금 신경이 쓰이고 있던 차였다.
"자, 여기서 시골 촌놈인 것 티내지 마시고, 따라오시오. 내가 사람들을 소개시켜줄테니-"
"어어-"
무림맹의 마당발이나 다름 없는 광야는 태수의 손을 잡고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이끌고 갔다.
태수는 조금 당혹스러워했지만,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에 광야와 어울려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