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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62/90)



〈 62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반드시 초식명을 외쳐야 할 규칙은 없잖아요"
"뭣-?"

이런 참신한 대답을 봤나.
그야말로, 후안무치였다.


주홍희는 한술  떠서, 태수를 조금 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았다.


"오히려, 이렇게 비무 중에 난입한 지부장께 더 귀책사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
"기습적인 초식을 사용했음에도, 초식명을 외치지 않아 상대가 위중한 부상을 입어도 상관없다?"
"이기기 위한 비무인데, 초식 본연의 성격을 살리지 못하는 게 어리석은 거겠죠"


하하.
뭔, 이런 년이 있지.
막말로 느낌은 과거의 혜수보다 더한 년이었다.

"가가, 전 괜찮아요. 제 패배에요.."

선하는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그녀는 실력적으로 자신이 패배했음을 인정하는 듯했다.


선하의 기 죽은 표정을 보니, 화가 들끓기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광서지부 비무대회 우승자는 천마신교의 공주, 주홍희다!"


와아-
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비무장 위에 적막함이 흐르는 가운데, 주홍희의 승리를 외치는 태수의 외침에 관중들은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선하와 주홍희의 비무는 결승인 만큼, 지루하지도 않았고 긴장감이 가득했었다.
마지막에  유명한 태수의 난입까지. 아쉬운 부분이 거의 없었다.


이후, 3위 결정전에서는 우문휘가 맹우연을 상대로 승리해,  지부장의 체면을 살릴 수 있었다.


수여식  폐막식.
주홍희, 선하, 우문휘가 단상 위에 올라섰고 태수는 그들에게 순서대로 금장패, 은장패, 동장패를 수여해주었다.
예정대로, 주홍희는 70금화. 선하는 20금. 우문휘는 10금을 받을 것이다.

'아, 배 아프네'


현재, 중앙상단이 잘 풀리면서 돈이 거의 부족한 걸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천마신교의 공주는 바로 자신의 사람이 될 여자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돈이 아까운 건 당연할 수밖에.

"광서지부 비무대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진무가 폐막식 선언을 하고, 관중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중.
주홍희는 지부 안으로 들어가려는 태수의 등을 붙잡았다.


"1등에게는 지부장과의 개인 면담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아-"

인재 발굴을 위해 적어놓은 말이었지만, 천마신교 공주 상대로 인재 영업질을 하기엔 아직 입지가 좁았다.
그렇기에, 태수는  기대없이 주홍희를 자신의 집무실 안으로 불러들였다.

"무슨 일로 면담 요청을 했소?"

주홍희의 뇌쇄적인 분위기는 여전했다.
눈과 눈동자는 상당히 컸는데, 상당히 특이했다.
칠흑의 색이라   있을 정도로, 심연의 눈빛이었다.

머리색은 검은 색을 제외한 나머지 색채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칠흑의 흑발이었고 긴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닿았다.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고, 입술은 레드 립글로즈를 잔뜩 발랐는지 새빨갛다.
전체적으로 섹시하다면 섹시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사실상 광녀 분위기에 가까웠다.

물론, 외모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기가 센 듯한 외모라 취향에 한참 벗어나있었다.
실제로 하는 짓들도 다 마음에 안들고.


"당신과 일대일로 붙어보고 싶군요"
"나랑?"
"네"
"이유는?"

예상치 못한 주홍희의 말에 태수는 이 여자의 속내를 알기 위해, 머리를 굴렸으나 그럴 듯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막말로, 자신과 상대해서 이 여자가 얻을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당신의 강함이 궁금해요"
"그게 의미가 있나?"
"저한테는 중요한 일이거든요"


주홍희의 말하는 문장 자체는 밤꽃무림의 여인들이 쓸 법한 '요'체였지만, 들리는 목소리는 매우 무뚝뚝해 전혀 여자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태수는 아까부터 그것이 신경쓰였는지, 아니꼬운 표정이 절로 지어졌다.

"뭐, 상관은 없지. 지금 곧 바로 가능하나?"
"사람을 물려주었으면 해요. 저와 당신이 싸우는 장소에는 오직 저희 둘만이 있어야 해요"
"그래?"


내용은 로맨스 영화 한 편이라도 촬영해야 하나 싶었지만, 말투는 심히 사무적이고 무뚝뚝해 그런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주홍희는 태수를 따라 교태롭게 걸었고, 곧 태수는 그녀와 둘만이 있는 장소로 도착했다.


"이곳이면 적당하겠소?"
"흐음, 괜찮겠네요"

태수가 주홍희를 데려온 곳은 지부장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연무장이었다.
상당히 공간이 크기에, 비무장으로 사용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방식은 어떻게 하겠소"
"저는 그저 당신이 얼마나 강한지 느끼고 싶은 게 전부입니다. 제가 먼저 공격할게요"

탁-!
타타타타탁-


순간, 주홍희의 흑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이 지면을 강하게 뜀박질을 해, 보법으로 태수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반응을 안해?'

창을 휘두르면 태수는 그 자리 그대로 서있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태수를 보며 주홍희는 분명,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속력을 얻기 위해, 주홍희의 허리가 크게 돌아갔다.
이후, 다시 허리가 원래 방향으로 돌아감과 함께 창을 휘둘렀다.


붕-

'공간참'


쩌저저저적-!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고, 유리에 금이 가듯 대기가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기괴한 광경에도, 태수는 무심히 바라보았다.

'알면 피하는 것은 쉬우나, 어떻게 이런 식으로 공격할 수 있는 거지. 고작 초절정이면서. 이것은 광야가 뇌공으로 상단전을 활성화한 것과 비슷해-'

사아아악-

검은색의 창기는 공간을 도약하여 태수의 몸 속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태수는 초감각으로  기운의 공간도약을 선명하게 느꼈고, 아주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심검心劍의 경지와 다를 바 없어. 원하는 위치에 창기의 생성이라니'


지금껏 비무대회에서 주홍희가 쓰러트려왔던 고수들은 전부 이 심창心槍에 의해 대처도 하지못했다.
물론, 하단전 - 중단전 - 상단전을 순서대로 제대로 활성화 한 고수들의 심검은 주홍희가 사용하는 심검과 비교할  없을 정도로 강하겠지만, 그럼에도 위력적인  확실했다.
한순간에 몸 속에 나타난 창기로 인해, 내상을 입을 수 있으니 기감이 부족한 이들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주극미세사"


츠츠츠측-
푸시시시식-!

주홍희는 예상대로 자신의 공격이 태수에게 먹히질 않았고,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후 태수의 공격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건 도대체-'

난생, 처음보는 무공이었다.
그야말로, 몸이 푸른색으로 빛나더니 이내, 안공을 극한으로 키워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강기를 머금은 초미세한 실들이 그녀를 향해 날라오고 있었다.


"공간참-"

하지만, 곧 자세를 다 잡은 그녀는 날라오는 주극미세사를 향해, 창을 휘둘렀고 곧 허공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허공에 생긴 균열은 곧, 날라오는 주극미세사의 실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발출 형태의 강기를 기의 초식으로 막아내는 모습은 역시나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지만, 전과는 달리 주홍희의 전신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공간을 도약하여, 상대에게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상대의 초식을 도약하여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라- 그야말로 사기적인 능력이군'

공수攻戍가 완벽했다.
공격할 때는 자신의 초식을 도약해, 상대가 대처할 수 없게끔 만들고.
수비할 때는 상대의 초식을 도약해, 완벽히 흘려보내고.
뭐, 이런 무공이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주극미세사는 끊이지 않았다.


푸시시시식-!

끊임없이 이어지는 초미세한 실에, 주홍희는 공간참을 사용하느라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간참의 능력은 가히 사기적이었지만, 내공의 소모는 극심했다.

...!


주홍희는  정도면 태수도 지쳤을 것이라 생각하고, 태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태수의 몸은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았다.
비무 시작 전이나, 후나 다를 게 없어보였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그야말로 무한한 내공이었다.
강기공을 저렇게 많이 사용했으면, 최소한 힘들어 하는 게 상식적인 일이었으나 그야말로 괴물인지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천라지망-"

스아아아아악!
푸시시시시시식-!

태수는 주극미세사를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천라지망을 펼쳤다.
태수의 몸 속에서 천라지망의 거미실들이 순식간에 비무장을 뒤덮었다.
기존의 주극미세사와 함께 천라지망으로 인해, 비무장은 푸른 색의 실로 뒤덮여 주홍희가  디딜 곳조차 없게 되었다.


공간참으로 상대의 초식을 흘려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내공도 문제였지만, 너무나 광범위하게 들어오는 공격이 문제였다.
출수되는 거미실의 속도도 문제였다.
공간참으로 흘려낼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감이 아니었다.


'보법으로-!'

스아아악-
치치치치칙-!


자전신보紫電神步.
주홍희의 발에 보랏빛의 전기가 튀며, 천라지망을 피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녀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천라지망은 말그대로 천라지망이었다.
그녀가 피할  있는 모든 곳을 점해버렸다.
도망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당천휘는 오랜 연륜과 경험으로 그나마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천라지망의 중심을 찾아 비록 실패했지만, 꿰뚫는 시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홍희는 감히 그런 초식의 상성을 파악해, 깨트리려는 발상은 하지 못했다.

"꺄아아악-!"

천라지망에 의해 그녀의 몸이 묶이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주홍희는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자신의 몸을 묶은 거미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거미실에는 내공의 흐름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었고,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그녀는 그저 체력이 조금 더 좋은 여성에 불과했다.

스으윽-

'...!'


심지어, 거미실 안에서 수분이 갈취당하는 걸 느끼며, 그녀는 극도의 불안함을 느꼈다.
이대로 가면 수분이 모두 갈취되어, 미라가 될  분명했다.


"계속 하겠소? 이대로 가면 미라가 되어 죽을텐데"
"..항복할게요"

주홍희는 착잡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그녀는 폐부 속에 오랫동안 잠들어있었던 희망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태수, 그는 지금 매우 오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마치, 벌레를 보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홍희는 이 지옥 속에서 자신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정도의 자세와 강인한 힘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남자를 죽일  없기에.

"그래서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비무를 신청한 것이오?"
"..죽여주세요"


주홍희는 자신을 구원해줄 진정한 천마신天魔神을 만났다는 감각에,  몸을 주체할  없었다.
그 감각 속에서,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뚝뚝했던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갸냘펐다.


주홍희는 대답과 함께 광서지부로 오기 전, 천마신교에 있었던 일들을 되새김질했다.

"사랑하는 내 딸아. 광서지부로 갔다 와라"
"..."

아버지는 결국, 고문 속에 린을 죽이고야 말았다.
주홍희는 핏발이  눈빛으로 주진악을 노려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끊임없는 학대와 고문의 연속이었다.
매일 죽고 싶은 나날 속에, 주홍희는 하루하루 복수를 위해 버텨왔다.


이후, 어느 날 아버지는 자신을 광서지부로 보내게끔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 남자의 무공이 진실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회가 되면 미인계로 그 남자를 죽이는 것까지 주문했다.


"갔다 올게요"
"후후,  사랑스러운 딸아. 그래, 그렇게 말을 잘 들어야지"

주진악은 주홍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주홍희는 그때, 벌레가 자신의 두피 안 속을 기어다니는 듯한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가 애인을 죽인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주홍희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최악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주진악은 주홍희의 애인을 딸이 보는 앞에서 무참히 강간했고, 주홍희의 애인이 거칠게 반항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버렸다.

'전마戰魔'

주홍희 애인의 천마신교 내, 직책이었다.
천마를 바로 아래에서 보필하는 칠마七魔 중 한 명.
천마는 주홍희의 애인이자, 천마신교의 전마를 무참히 강간했고 반항하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 것이었다.

이제  이상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명확히 벗어난 듯했다.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주진악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녀를 광서지부로 보냈다.
하지만, 주홍희는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자세히 말해보시오"


주홍희는 피로 얼룩진 상념 속에서 태수의 목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그녀를 깨우는 태수의 목소리는 가슴 깊이 잠들어있는 자신의 억울함을 깨우는 천마신의 울림이나 다름없었다.

"제 아버지를.. 죽여주세요"

그리고, 주홍희는 그 천마신의 울림에 자신의 진심으로 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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