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49/90)



〈 49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결국, 이렇게 끝이구나'


선택권이 없는 문파의 고수들은 이 모든 걸, 혼자서 만들어버린 태수라는 남자에게 경외심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우문휘, 너는 항복하지 않나?"
"나는- 내 딸을 강간한 놈한테 항복할 수 없다!"

수분이 거의 갈취당하고 있어, 이제는 피부가 푸석푸석해질 정도로 미라가 되어가고 있는 우문휘는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좋군. 주인이 이토록 지조와 결기를 보이니, 밑의 것들은 주인을 따라 모두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우문가는 무림의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


우문휘의 눈이 부릅 떠졌다.

단순히, 3대 문파처럼 영원히 봉문에 들어가, 태수의 세력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우문가의 일원 모두를 죽인다는 건 너무 지나친 처사였다.


"아버지, 저는 괜찮으니까  남자에게 항복하세요! 흐흐흑"
"희, 희아야!"


우문휘가 심히 고민하던 도중, 뒤에서 우문희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은 괜찮다며, 우문가를 위해 어서 항복하라는 딸의 말에 우문휘는 속이 들끓었고, 질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칠흑의 어둠 속에서 우문가에서 자랐고, 가주가 되어 우문가를 총괄하던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문휘의 눈시울이 자연스레 뜨거워졌다. 이제 자신이 크고 자라왔던 우문가는 기억속의 추억으로만 남게 되고, 무림의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우문가의 가주, 우문휘는 태수 대협을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문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 선언을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푸흐흡! 으하하하하하하-!"

태수는 부녀의 애틋한 관계를 보고 있자니,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것만 같았다.


무려, 이 아버지는 딸을 강간한 남자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시각 이후로, 우문가 역시 영원히 봉문에 들어간다. 3대 문파와 마찬가지로 우문가는 내가 새롭게 만드는 세력에 편입될 것이며,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알도록"
"알, 알겠습니다"


우문휘는 마치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태수를 보며 우문가의 부활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대 문파와 우문가, 이 4강 결집의 구심점은 오로지 태수라는 남자 단 한 명에게 달려있었다.

태수가 흔들리면 곧 그 밑의 조직들의 충성도가 흔들리며, 우문휘는 우문가의 부활을 다시 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태수에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정말 단단한 바위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흔들어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뚝심있게 버틸  같은 분위기. 오히려, 빈틈을 노려 상대를 삼켜먹을 것 같은 맹수의 분위기마저도 느껴졌다.


"추가적으로 이 시각 이후로 우문가 및 3대 문파에 협력한 진표상단 역시 영원히 봉문에 들어간다. 갈 곳이 없어진 진표상단의 인력들은 사정을 보아, 중앙상단에 편입시킬 것이다"


진표상단 건은 그야말로 예정된 수순이었다.


3대 문파와 우문가가 검이라면, 진표상단은 이들이 편히 움직일  있도록 돈을 지원해준 단체이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진표상단주가  소식을 들으면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져 내릴 것이었다.


"저, 이런 상황에 말하기 좀 그렇지만, 태수 대협? 중앙상단은 진표상단의 인력들을 받아줄 준비가-"


송인수는 사실 이런 태수의 발언이  불편했다.


자신이 중앙상단주도 아니면서, 자기 마음대로 진표상단의 인력을 사정을 보아 중앙상단의 인력으로 편입시킨다니. 자신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 제 말에 불만이 있으신 겁니까?"
"아, 아니. 그것은 아닐세! 내가 왜 자네 의견에 불만을 가지나, 허허"


하지만,  이어질 태수의 뾰족한 목소리에 송인수는 곧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제는 광서지부에서 상인짓을 하려면, 태수라는 남자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굳이, 이곳에서 태수에게 밉보일 이유는 없었다.

"하하, 농담입니다. 중앙상단주께서는 좋으실대로 하시지요. 저는 단지 그렇게 하는  좋을 것 같아,  의견을 드린 겁니다"
"아아, 그런 것이었나? 미안하네. 난 그런 태수 대협의 속도 모르고, 속 좁게 나서고 말았네. 허허-"

송인수는 상단주답게 한 번 태수의 속마음을 알고 난 이후로는 요령껏 눈치있게 태수에게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흐음"

태수의 시선이 장문인 뒤로 거미실에 묶여있는 문파의 고수들에게로 향했다.


이들의 장문인이 항복 선언을 한 것이지, 이들 개인이 항복 선언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 몇몇의 눈빛에는 태수를 향한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너희들의 장문인이나 가주가 항복하였다고 해서, 너희들이 항복한 것은 아니지. 똑같다. 항복하고 충성을 바치면 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미라가 되어 죽을 것이다"

'청마흡인靑魔吸引'


장문인이 먼저 굴복한 이후, 청마흡인으로 이들의 수분을 갈취하며 충성을 요구하자 이미 마음먹은 문파 고수들이 대거 항복하기 시작했다.

아직, 항복을 하지 않은 이들은 재빠르게 항복한 이들을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이 이렇게 고민도 없이 항복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수분갈취 고문에 버틸려는 제 자신이 우스워지기 시작하며, 그들 역시 하나둘 항복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이 이성적 판단을 지배한 별종이 몇몇 있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수분갈취 고문에도 끝까지 굴종하지 않았고, 결국 호흡 곤란 증세와 함께 미라가 되어 죽어버렸다.

수분 가득한 탱글탱글한 피부가 아닌, 모래처럼 푸석푸석해진 피부로 몸에 수분이 없어 성대 접지가 잘 되지 않아 비명사도 못지르고 참담하게 죽어가는  보며 재빠르게 항복한 이들은 자신들이 항복하길 잘했다며 스스로 안도했다.

'해제'


태수는 중앙상단 일대를 뒤덮은 청마대미궁을 해제했다.

푸른색으로 뒤덮인 실은 매개체인 내공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뿌려졌고 그 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청마대미궁이 사라지자, 청마대미궁의 환경에 익숙해진 이들이 어색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지의 제약이 풀리고, 이제 막 새로운 주군을 모시게 되던 차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이후로, 세부적인 이야기는 다음 날 광서지부 본 회의장에서  것이다"

태수는 어색한 분위기 속의 무인들에게 방향을 제시했고, 이제는 자신들의 소속마저 애매해졌기에 그들은 태수의 말에 따라 하나둘 중앙상단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맹우연이라고 합니다"
"점창파의 장문인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뭐, 그렇게 딱딱하게 굴 필요없어"
"알겠습니다"


태수는 맹우연이 굉장히 사무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되, 실리적인 판단을 좋아하는 부류일  분명했다.

'그에 반해, 사인철은 진무처럼 쉽게 분노에 차올라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부류고, 위배극은 제 주관은 크게 없지만 눈치를 잘 보는 타입이군'


"저 역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위배극이라고 합니다"
".. 사인철이라고 합니다. 주군,  부탁드리겠습니다"


맹우연이 그렇게 제대로 인사를 드린다는 핑계로 태수에게 말을 걸어오자, 사인철과 위배극이 맹우연을 노려보고는 질세라 태수에게 다가와 똑같이 인사를 건넸다.

'얘네 지금 설마  총애를 받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는 건가?'


히죽-

그야말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한 마디로 이들의 입자가 좁혀질 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기에. 어떻게든 태수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 반해 우문휘는 많이 진중한 편이군. 뭐, 애초에 우문택 일만 아니었으면 여전히 쭉 손색없이 광서지부의 지부장을 맡으며, 4강 체제를 유지했겠지'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우문휘라고 합니다. 주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후훗"

과연,  얼굴 속에 감춰진 이면에 얼마나 분노로 가득찬 악귀가 숨어있을까.

딸을 강제로 아비가 보는 앞에서 강간해버렸으니, 후훗.


우문휘는 다시 제대로 인사하며, 충성을 보였지만 자신의 앞에서 히죽- 웃는 태수를 보며 순간 살인 충동이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곧 가까스로 그런 감정을 추스리며 태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언젠가, 복수를 반드시'

지금은 이렇게 비참하게 충성을 보이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지만 언젠가 이 수치스러움을 꼭 되갚아주겠다!


"참고로, 우문희는 내 부인으로 받아들일 거야"
"희, 희아를 말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생각지도 못한 말이 태수의 입에서 나왔다.


자신의 딸은 그저 비참하게 강간당하며, 아무렇게나 버려질 줄 알았는데 나름 신경써주는 모습이었다.


"왜, 예상하지 못했나?"
"아, 아닙니다"
"예상 못한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무림 역사 속의 '우문가'는 사라졌지만, 가정으로서의 '우문가'는 여전히 있지 않겠나. 그래도, 이제는 장인어른이나 다름없는데 혜택을 좀 줘야하지 않겠어?"
".. 괜찮습니다"

'날 갖고 노는 건가? 이제는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이군'

장인어른이라는 말에 기가 찼다.


우문휘는 자신의 충성을 자신의 딸과의 혼인을 통해 채우려고 하는 것 같아, 뭔가 치욕스러웠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한결 나았다. 강간 당한 이후, 자신의 딸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뭐, 내가 알아서 챙겨주긴 하겠지만. 다들 이제 가봐. 내일은 오늘만큼이나 아주 혼란스러울텐데, 체력을 보충해야 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주군"

그렇게 태수를 새롭게 주군으로 모시기로 한,  4강 체제의 패권자들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중앙상단 밖으로 나갔다.


"가가, 고생하셨어요"
"선하야, 수고했다. 우리 귀여운 선하"
"하으읏! 부끄러워요, 여기서는"
"그래서, 하지마?"
"아뇨오오-"


진무나 비류 등이 보고 있는 가운데, 보란듯이 태수는 선하의 꽃잎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선하는 태수에게 껴안긴 채, 자신의 꽃잎을 쓰다듬어주는 태수의 손길을 느꼈다.


'아아, 언제나 가가와 함께이고 싶어'

선하는 차오르는 행복감을 느끼며,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태수는 손가락에 진득하게 묻은 선하의 애액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선하의 애액은 향기마저도 향긋했다.

태수는 애액이 묻은 손가락을 선하의 입에 물려주고는, 조금 새침해진 당가려를 불렀다.


"려아야, 왜 그래"
"몰라요옷"
"알겠어, 일로 와봐"
"아아아앙-!"


입을 조금 삐죽인 당가려였지만, 태수가 웃는 얼굴로 자신의 허리를 껴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으며 태수에게 안겨왔다.

이후, 태수의 손길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행복해요, 가가"
"나도 려아랑 함께여서 행복해"
"아아-"


태수가 그렇게 말해주며 입맞춤해주자, 당가려는 너무 좋아서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저, 저렇게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송유린은 갑자기 뜨거워진 분위기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무나 비류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그러려니 했다. 아니, 사실은 태수가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다만, 너무나 익숙해졌기에 초연해진 것이었다.

'나는 언제, 저렇게 아름다운 소저들과 함께'

아름다운 것도 아름다운 건데,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원하는대로 만질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부러웠다.

송유린은 당가려와 선하에게만 신경써주고,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는 태수를 보며 뭔가 가슴이 답답했다.


가슴이 아릿해오는 감각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도,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그저  번 본 게 전부인데"

태수한테 홀리기라도  걸까.


'사실, 나는 공자님이랑은 아무런 관계도 아닌데, 혼자 부풀어 오르는 마음에 말도 안되는 생각을 잔뜩 해버렸어'

"송 소저"
"네, 네네?"

송유린은 눈에 눈물이 핑- 돌려고 했을 때, 어느덧 태수가 자신의 앞에 와있는 걸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터질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태수가 들을까, 부끄러울 정도였다.


"떡, 잘 먹었어요. 송 소저가   맞죠?"
"아, 맞아요. 제가 했어요, 맛있어서 다행이다. 헤헷"
"저는 송 소저가 당연히 요리를 못할 줄 알고, 주변 만두 잘하는 식당에서 해온 건 줄 알았는데, 아니였나 보네요?"
"아, 아니거든요! 놀리지 마세요오오-"

송유린은 일부러 분위기를 진지하게 하지 않고, 장난기 있게 하려는 태수의 태도가 야속하기만 했다.

'린 언니나, 가려한테는 그토록 달콤하게 대하면서'

송유린이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툴툴거릴 때 태수는 그녀의 허리를 껴안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푸흡, 농담이에요. 송 소저. 이제  놀릴게요"
"우으-"


갑작스레 허리를 안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미는 태수에 송유린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몸은 그대로 굳었고, 시선을 마주치지 못해 고개를 푹 숙였다.

가까이서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선하와 당가려는 '그러면 그렇지' 라는 눈빛으로 여자한테 작업치는 중인 태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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