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대단해요! 그것도 현경의 능력인가요"
"뭐, 그렇게 생각하세요"
"대답을 왜 그렇게 하세요!"
"별달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현경의 고수의 능력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현경의 고수부터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시점이기 때문에, 각자 갖고 있는 무공의 특징들이 다 달랐기 때문이었다.
다만, 비슷한 게 있다면 강기를 멀리 발출할 수 있는 격장의 능력이었다.
"아무튼, 정말 대단해요. 계속 이렇게 가죽을 옮길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그러면 엄청 효율적이겠네요"
송유린은 창고에 가득 찬 오코의 가죽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앞으로 저걸 가공해서 튼튼한 강도의 기능성 옷을 제작하면, 성능과 기능을 중요시하는 무인들이 잔뜩 사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옷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 세력가나 문파에서도 주문제작 요청이 들어올 것이고,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는 것도 순식간일 것이다.
"뭘, 그렇게 헤벌쭉- 웃고 계세요"
"쓰읍, 아니에요. 헤헷"
"돈방석에 앉는 생각했구나?"
"아, 아니거든요!"
태수는 고블인의 가죽까지 창고에 털어넣은 후, 인벤토리가 가벼워지니 기분탓인지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혼자 이렇게 많은 양을 어떻게 모으셨어요?"
송유린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이 정도 양은 세력가나, 거대 문파에서도 유통하기 힘든 양이었다.
그런데 홀로 이렇게 많은 양을 모으고, 한 번에 그 많은 양을 유통까지 할 수 있다니.
그녀의 상식으로는 능력 밖의 일이었다.
"제 타고난 능력 덕분이죠. 어때요, 이런 능력있는 남자"
"자, 자꾸 이러지 마세요오오-"
갑자기, 태수가 송유린의 허리를 껴안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송유린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두 손으로 태수의 몸을 밀었으나, 사실 그 손에는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계약도 맺었는데, 뭐 차라도 대접안합니까?"
"아! 해드려야죠. 워낙 공자님 덕분에, 정신이 없어서-"
"이걸 내 책임으로 돌리시겠다?"
"그, 그건 아니고요. 아무튼 따라오세요"
태수는 그녀를 뒷따라갔고, 중앙상단 주변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돈을 많이 모아서 그런가.
주변에 건물짓는 공사들이 한창이었다.
"돈, 많이 벌었나봐요? 공사도 계속 진행 중이고-"
"뭐, 그렇죠. 이번에 잘 성공되면 저희 중앙상단도 황금상단처럼 확 도약하는 것도 가능할 거에요"
"황금상단이라-"
황금상단은 무림맹, 정천맹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상단으로 세력가나 문파에게 명품 도검류를 판매하는 것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다양한 제품들을 취급하기 시작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명실상부 무림의 최고 상단이었다.
"아버지"
"오, 린아야"
태수는 송유린의 집으로 들어왔고, 그녀의 아버지인 송인수를 볼 수 있었다.
두 부녀는 사이가 좋은지, 만나자마자 가볍게 포옹했다.
"이번에 계약을 같이 하기로 하신 분이세요"
"호오, 반갑네. 중앙상단주, 송인수라고 하네"
"태수라고 합니다"
송유린은 송인수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아버지, 이분 현경의 고수에요"
"그, 그게 정말이냐?"
"엄청 특별한 능력도 가지고 계신 걸 보면, 확실해요"
"알겠다"
'저기, 다 들리는데-'
태수는 대놓고 남이야기하는 부녀의 모습에 그러려니 했다.
태수의 경지를 알게 된 이후, 송인수는 손님을 대하는 눈빛에서 조금 오묘한 눈빛으로 변했다.
"자, 손님도 왔으니 대접을 해야겠지. 계약 건에 대해서는 천천히 이야기하고"
송인수는 그렇게 말하며,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방으로 태수를 데리고 갔다.
이후로, 계약 건에 관한 내용이 오고 갔고.
8대2의 비율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송인수의 표정이 굳어졌고 송유린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
하지만, 현경의 고수인 태수가 중앙상단를 보호하겠다는 계약 조항에, 송인수의 표정이 풀리다 못해, 웃음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자네가 우리 중앙상단을 많이 배려해주었다는 건, 알고 있네. 혹시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나?"
송인수는 상인 출신이었기에, 세상에 이유없는 배려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태수 같은 현경의 고수가 이유없이 배려를 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송 소저가 예쁘기 때문입니다"
"그, 그런가?"
"공자님!"
태수의 고백과도 같은 말에, 송인수는 의외의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송유린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 딸이 저 사내에게 마음이 있지 않다면, 저런 반응이 나올 수가 없지'
송인수가 지금껏 봐왔던 자신의 딸은 남자 앞에서 저런 수줍은 태도를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현경의 고수라는데 그 이상의 어떤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흠흠, 한창일 때구만. 좋지. 나는 둘의 관계가 적극 찬성이네. 하하, 자네 잘해보게나"
"아버지!"
"응원 감사합니다"
태수는 능청맞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송유린은 두 남자를 번갈아보더니 한숨을 가득 쉬었다.
이후로, 계약 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태수는 선계약금으로 30금화를 두둑하게 받을 수 있었다.
밤꽃무림의 화폐 단위는 창천무림 설정과 똑같았다.
1금화는 10은화이고, 1은화는 10동화였다.
객잔에서 한끼 식사를 하려면 메뉴에 따라 가격이 대략 2동화~1은화로 나뉘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태수는 천만원 정도를 선계약금으로 받은 셈이었다.
"나중에 사업이 더 성공하게 되면 자네 몫도 당연히 커지니, 노력해주게나"
"물론입니다"
'이 돈으로 정보단체에 의뢰를 넣어야겠다'
태수는 밤꽃무림 세계에 들어온 첫날, 만났던 복면인 남자들과 여자가 떠올랐다.
남자들은 복면을 쓰고 있었기에 당연히,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물론, 여자는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난 나머지, 기억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희미해졌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정보단체가 어떻게 정보를 제공하는 지, 모르기에 일단 가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중앙상단의 계약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태수는 인벤토리에 30금화를 넣은 후, 중앙상단을 떠나 광서 지부로 가려던 참이었다.
"저어, 공자님. 떡 드세요!"
송유린은 저 멀리서 달려와 태수에게 뜨끈뜨끈한 떡이 담긴 작은 포대를 주었다.
"가는 길에 시장하실까봐-"
"절 위해 주는 건가요?"
"딱, 딱히 당신을 위해 주는 건 아니고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아니거든요!"
태수는 손으로 송유린의 허리를 껴안으며 얼굴을 가까이 댔다.
덕분에, 자연스레 둘의 입은 가까워졌다.
"저는 정말 송 소저가 마음에 드는데요"
"하으으-"
송유린은 그런 태수의 분위기에 가슴이 심히 두근거림을 느꼈다.
가까워지는 태수의 입에 송유린은 자연스레 두 눈을 감고서, 입술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뭘 기대하고, 그렇게 두 눈을 감는 거에요. 이 오리처럼 앞으로 내민 입술은 뭐고?"
태수는 능청스런 표정을 지으며, 중지와 검지를 모은 두 손가락을 앵두 같은 송유린의 입술에 갖다 대자, 송유린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해갔다.
"이, 이제 당신한테 절대 안 속아요! 정말 미워요, 정말! 이 떡도 내놔요!"
"떡은 잘 먹겠습니다, 하하"
"으으-"
송유린은 분하다는 듯, 떡이 담긴 자루를 들고 유유히 멀리 도망가는 태수를 바라보았다.
순간, 자신이 마음에 든다는 말도 순전히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몰라, 이제 신경 안 써. 절대로!"
하지만, 그 말과는 반대로 이후로 다른 이들과 계속 협상을 하면서도, 그녀는 잊을 만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태수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태수는 송유린의 도움으로 그녀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정보단체와 연줄이 닿았다.
그 정보단체가 그래도 쓸만한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정보단체의 정보력은 상당히 제한되는 부분이 있었다.
얼굴을 보이지 않는 망토 같은 걸 입고 있는 남자는,
-저희가 취급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라는 말만 반복하고는 여자를 찾아달라는 태수의 요구에 거절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묘사를 들으며 사람 얼굴을 그릴 수 있는 화가를 데려다놓고.
실시간으로 의뢰자의 묘사에 최대한 적합한 얼굴을 그려내 해당 인물의 정보를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태수가 묘사한대로 화가가 여자의 얼굴을 그리자, 망토를 입은 남자는 취급할 수 없는 정보라며 요구에 거절했다.
'그 여자에게 아주 큰 뒷배경이 있는 건 확실하군-'
정보단체조차 섣불리 건드리기 껄끄러운 존재라는 뜻 아니겠는가.
그 여자 자체만으로 대단한 존재라기보다는, 그 여자의 뒷배경이 엄청난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보단체도 겨우 이것만으로 의뢰비를 받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고있는지 딱히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모임이 끝나고, 그 다음 날 아침.
본격적으로 광서지부에 마을의 상태를 보고하는 시간이 왔다.
하운 마을은 장부를 위조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부분에서 다른 마을의수치를 압도했다.
뭔가 잡을 것이 없나 꼬투리를 찾으려던 무백산 일행은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하운 마을은 가장 높은 마을지원금에 추가 보상금액까지 받을 수 있었다.
"장부를 위조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마을에 감사가 올텐데 한계가 있겠지"
"후, 체면이 살지 않는군"
무백산 일행은 불평하며 정기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태수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마찬가지로 뒷따라 밖으로 나왔다.
"주군"
"진무, 오랜만이다"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해볼 만한 곳을 찾아보지"
회의실 밖으로 나오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있는 진무가 태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만이 있는 곳에서, 진무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태수에게 들려주었다.
"무백산은 네가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자, 네 현무대주직을 부정한 방법으로 박탈하려 했다고?"
"그렇습니다. 지금껏 사신단의 평가가 많이 이루어진 가운데, 어떻게든 제 현무대의 성과를 방해하고 점수를 조작했습니다"
"의혹만이 있는 건가? 증거는 없어?"
"너무 억울해 증거를 찾으려, 녀석들이 주로 사용하는 집무실에 몰래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호오-"
태수는 진무의 용기에 감탄했다.
범을 잡기 위해 범의 아가리 속으로 직접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현무대에 관한 정보는 없었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가 담긴 문서를 발견했었습니다"
진무는 품 속에 문서를 꺼내며 태수에게 보여주었다.
문서의 내용은 태수가 예전부터 거의 예상했던 대로였다.
무백산 일행을 비롯해 진사는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각자 요구하는 걸 받아낼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하운 마을의 두 부자가 희생되며, 진사는 덤으로 마을의 두 모녀를 노릴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이 문서에 무림맹 혹은 정천맹의 공인 서명이 없다는 것이지-'
애초에 공인 서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겠지만, 없었기에 이걸 증거물로 제출하기에도 애매했다.
하지만,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이 거래를 중개한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어제도, 각종 단체와의 모임을 주최했던 자, 우문가의 우문택이 이 빌어먹을 거래의 중개자였다.
'중립적인 척하면서, 뒤로는 구릿구릿한 짓은 다 해먹은 건가-'
"진무, 저번에는 내가 무력행사를 안한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맹이 관여하는 일이니, 최대한 법적으로 해결하신다고 했습니다"
"하하, 뭐 그 당시에는 그랬었지. 무림에 아직 발을 들일 때도 아니었고-"
"그 말씀은-"
"원래 무림은 말로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피로 대화를 나누어야 더 잘 통하는 법이겠지"
"본격적으로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그리고 진무"
태수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주군, 말씀하십시오"
"무백산의 집무실에서 현무대에 관한 정보가 안나온 것은, 걔네들이 잘 숨겨서가 아니라 사실은 원래 조작할 필요가 없었을 만큼, 현무대의 능력이 보잘 것 없었던 것 아닌가?"
"아, 아닙니다!"
"하하, 알겠다. 조만간 네 역할이 중요해질 거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주군"
진무를 한번 놀려먹은 태수는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우문택의 위치를 가늠헀다.
거미의 초감각으로 2km 반경 내에 있는 인물들의 위치가 뇌에 읽혀오기 시작헀다.
'찾았다-'
관의 대리인이자 계파없이 중립적인 위치로 대부분의 모임의 주최를 맡고 있는 우문가의 우문택.
그는 정기보고가 끝나고 근처 객잔에서 누군가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밤꽃무림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겠군-'
최대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려 했으나, 역시 무림은 피로 해결하는 방법이 제격이었다.
창천무림처럼 게임 세계가 아닌 현실인 밤꽃무림에서 일을 처리하다보니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다.
피로 해결볼 수 있으면 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을.
때는, 오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