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무백산 일당은 갑자기 사라진 둘의 모습을 보고는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태수와 송유린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 없는데?"
"화경의 고수는 저렇게 갑자기 누군가를 데리고 사라질 수도 있는 건가"
"무공은 우리한테는 신비의 영역이니-"
"아무튼 녀석을 제거하더라도, 앞에 보이는 데서 너무 심하게 자극하면 안돼"
그 이후로, 1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태수와 송유린이 조교의 방에서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나타난 둘의 등장에 주위 시선이 끌렸지만 태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이 나간 듯한 송유린을 이끌고 사람이 없는 방으로 데리고 왔다.
"사업 계획 정말 마음에 들었고요. 뭐, 서명까지 했으니 이후로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합시다"
"말, 말도 안돼애애-"
"왜, 그러시죠?"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내가 도대체 왜, 왜!"
본래, 송유린이 준비해온 사업계획서에는 중앙상단과 태수가 반반으로 갖는 걸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후로 아무리 협상을 당하더라도 최대 6대4의 비율은 반드시 지키도록 사전교육을 받았었다.
중앙상단주, 송인수는 신생 상단이었던 중앙상단을 이렇게나 올라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유능한 자신의 딸을 믿었고 전적으로 이번 협상에 대해 맡겨둔 참이었다.
그런데 태수가 수정한 사업계획서에는 9대1의 비율로 설정이 되어있었고 어이없게도 송유린은 거기에 서명을 했다.
순간, 저 남자한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사랑에 눈이 먼 미친년 행세를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조교의 방에 나오니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고 그녀는 자신이 한 미친 짓에 대해 부정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이건 잘못됐어. 당신 가지마세요, 이번 계약은 무효라고!"
"여기에 적혀있는 서명, 당신히 직접 한 서명인데 이걸 무효로 돌리겠다고?"
"그, 그건- 아니, 그러니까 아니 흐흐흑-"
첫 인상은 분명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스타일의 여자였던 그녀는 이제는 태수 앞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봐, 봐주세요, 제발 흐엉엉- 저희 중앙상단 많이 힘들단 말이에요"
"사업 계약이 장난으로 보여요?"
"이렇게 빌게요"
송유린은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고 태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저기요, 안 통해요. 저는 바로 유통 가능하니까, 사업 착수되는 대로 연락주세요"
"흐흐흑- 망했어, 난 망했다고오오-!"
송유린은 그대로 철푸덕 앉아 훌쩍였다.
사실, 중앙상단은 큰 규모의 상단이 아니었다.
신생상단이었기에 굴리는 돈의 규모가 작았다.
이미, 대형상단은 세력가에 연락해 괴물 유통 계약을 맺었고, 나머지는 작은 소문파와 부속 가문이 고작이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상위 문파와 세력가에 불공정 계약을 맺고 있어, 괴물 침공 이후, 얻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중앙상단 입장으로서는 제약이 없는 개인과 계약을 맺는 것이 제일 좋았는데, 제약이 없는 개인이면서도 화경의 고수라 불리우는 사람은 태수, 이 남자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앙상단의 도약을 알릴 태수와의 계약이 이렇게 망했으니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푸흡-"
"왜 웃어요, 제가 그렇게 우스워보여요!?"
"아뇨, 푸흡-"
"사람 감정 가지고 놀리지마세요. 제가 왜 당신 같은 남자한테 갑자기 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는 말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벌인 짓이 감당이 안되었던지 송유린은 고개를 숙인 채, 훌쩍였다.
"일로, 와봐요"
"왜요, 무슨 사기를 또 치려고. 이제는 안 당해요"
"계약서 비율 수정해준다고 해도요?"
"정, 정말요?"
"안 당한다고 해놓고, 또 당할 것 같은데?"
"당신은 정말 쓰레기에요, 흥-"
송유린은 이제 안속겠다고 다짐하며, 수첩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 수첩에는 태수 외에 계약을 맺어야 할 대상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호오, 그래도 저 말고 많네요? 여기서 이득 보시면 되겠네"
"뭘 보세요옷!"
대상의 이름 옆에는 초절정인지 절정인지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 중, 화경의 고수는 오직 태수만이 유일했다.
단체 이름도 적혀있었지만, 대부분 의미가 없는 것이고 개인 계약 형태로 절정부터 수첩에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거 정보단체한테 정보 구하는 것도 의뢰비용이 꽤 나갔을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은 곳이라, 저렴하게 했네요"
"그런가? 내가 봤을 때는 엉터리 같은데-"
태수는 자신의 이름 옆에 적혀있는 화경化境을 가리켰다.
"누가 내 무공의 경지가 화경이라고 소문낸지는 모르겠지만, 난 화경이 아니라 현경인데 흐음-"
"현, 현경이라고요, 당신이?"
"내가 송 소저한테 거짓말을 해봤자, 남는 게 뭐 있겠습니까?"
"그래도 당신 말은 믿지 못하겠어요. 전 이미 한 번 속았잖아요"
송유린은 자신이 현경이라고 말하는 태수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못했다.
현경은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경지였다.
눈 앞에 있는 남자가 그 고귀한 현경의 고수라고?
그렇다면, 9대1의 계약도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기도.
'아니, 그래도 아닌 것 같아-'
아무리 현경이라고 해도 가죽을 가공했을 때 드는 총비용보다 완제품의 매출액이 적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최소 8대2의 비율로 해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볼 수 있을 때 현경의 실력으로 대량 유통이 가능하다면 모를까.
일단,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정말 저 남자가 현경의 고수인 점에서 시작이 될 것이다.
"무공의 경지는 볼 줄 아세요?"
"대충, 볼 줄은 알아요"
"그럼, 이건 뭐예요?"
"기氣, 아니에요?"
태수는 소주천의 내공을 끌어올려 기氣를 보여주었다.
그 이후, 곧 바로 대주천으로 직행했고 강기를 손바닥 위에 둥둥- 올려두었다.
"그럼 이건 뭐예요"
"강, 강기-"
사실, 강기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몰랐다.
상인 출신인 그녀는 이렇게 가까이서 강기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에이, 뭔지 모르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알아요!"
"그렇게 우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데,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거라"
"아무튼, 강기는 맞잖아요"
"뭐, 그렇긴 한데- 이걸 멀리 발출하면 현경이란 건 알고 있죠?"
"그, 그렇죠-"
여전히 자신감없는 그녀의 말투와 표정에 태수는 피식- 웃었다.
나름 한 상단의 존망을 걸고 이 자리에 왔을텐데.
하는 행동은 그저 평범한 또래 여자가 할 법한 행동들을 그대로 하고 있다.
"원래, 이렇게 헤펐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름, 상단에서 위치가 있으니까, 이렇게 협상도 하고 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헤프게 하고 다녔냐고요"
"그, 그건!"
상인으로서의 자신의 능력이 부정당하자, 송유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솔직히 자신이 생각해도, 이번 협상은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원래 협상 내내, 차갑고 냉정하게 협상을 처리했었고, 협상의 대상에 대해서도 감정없이 상단이 이득보는 방향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한 번 그렇게 홀려서 헬렐레, 하고는 말도 안되는 비율에 서명을 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지금도 저 남자의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자꾸 홀려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대로였으면 침착하게 저 남자에게서 무림맹, 정천맹 공인 계약서를 훔쳐내 계약은 애초에 없었다는 식으로 둘렀으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건데- 나 자꾸 이 남자한테 휘둘리고 있어'
정말, 이 남자한테 반했나? 라는 생각이 들 무렵.
태수는 송유린의 허리를 껴안아 자신의 옆에 앉혔다.
그 과정은 물 흐르듯 너무나 자연스러웠지만 송유린은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은 그대로 굳어버린 채 입만 움직였다.
"뭐, 뭐하는 짓이에요!"
"계약서 내용 좀 수정하려고요. 이제는 말 안들을 것 같아서, 그냥 앉혔지. 불만있어요?"
"아, 아뇨"
계약서의 내용을 수정한다는 태수의 말에 그녀의 마음 속에서 설마, 하는 감정이 싹텄다.
실제로, 태수는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무림맹, 정천맹의 공인 계약서 그리고 개인 보관용 계약서 각각 한 장을 꺼내, 총 4장의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송 소저 것도 꺼내세요"
"아, 네넷-!"
정말, 계약서를 수정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올라, 송유린은 품 속에 계약서 4장을 꺼내들었다.
마찬가지로 공인 계약서와 개인보관용 계약서로 분류되어 있었다.
"8대2"
"8대2요?"
송유린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8대2면 마진이 매우 조금 남을 게 분명했다.
현경의 고수라 해도 과연 얼마나 재료를 유통을 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중앙상단, 힘 별로 없죠?"
"아니, 아니에요!"
"거짓말하면 표정에 다 드러난다니까"
"왜 공자님 앞에서는 표정관리가 안될까요?"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대답이나 하세요, 힘 별로 없죠?"
"...네"
중앙상단은 원래 식료품과 기능성 옷을 만드는 상단이었다.
중앙상단은 나름 수완있는 송유린의 능력으로 꾸준히 상승해왔고 상단의 상승세를 한층 도약하기 위해 이번 이계 침공 괴물들의 부산물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앞으로 괴물의 부산물로 장사를 하면 상단 규모가 많이 커질텐데, 그러면 그만큼 상단을 보호하는 무인들도 필요할 거 아니에요"
"맞아요!"
상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상단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상단을 음해하려는 경쟁 세력들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이를 보호할 힘이 없으면 약육강식의 무림 세계에서는,
아주 잘 나가고 있는 상단마저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렇기에, 규모가 큰 상단일수록 강한 무인을 영입하려 애쓴다.
대부분 규모가 큰 상단들은 무림의 세력가나 혹은 문파와 계약하여 매우 많은 돈을 주고 그들에게 보호를 받고 있는 형편이었다.
"내가 중앙상단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할게요"
"정말요!?"
"널리 홍보하세요. 현경의 고수가 중앙상단을 보호하고 있다고. 뭐 처음에는 믿지도 않겠지만"
태수는 슬슬 무림에 발을 들일 생각이었다.
괴물 부산물 장사가 그 기점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자신의 이름, 태수가 무림에 널리 퍼져도 될 시기였다.
"와아-"
"이 정도면 괜찮죠?"
"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왜 바뀌신 거예요?"
송유린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경의 고수의 몸값은 그야말로 백지수표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보면 현경의 고수의 보호세가 이번 계약으로 얻는 매출액보다 더 이득일 수도 있었다.
'애초에, 계약 내용을 수정하지 않았다면 보호도 없이 1대9의 비율로-'
생각만 해도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계약이었다.
"궁금해요?"
"네, 정말 궁금해요"
"이유는 간단해요. 송 소저가 예쁘니까 그렇죠"
"네, 네? 하으-"
태수가 얼굴을 가까이 대며 그렇게 말하자,
송유린은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푸흡- 방금 설렜죠?"
"아니거든요!"
"표정에서 다 드러난다니까"
"자, 자꾸 그런 식으로 놀리지마세요. 저희 둘의 관계는 동업자에 불과해요!"
"동업자에서 애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애인?
순간, 송유린의 머릿속에 애인, 두 글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저 남자가 내 애인?
아, 솔직히 좋을 것 같았다.
저 정도면 외모도 준수했고 무공 수준은 현경의 고수라니.
솔직히 말해서 분수에 맞지 않는 남자였다.
"엄청, 망상하시네요? 푸흡-"
"이제 당신이랑 말 안할래요. 광서 지부에 계약서 제출이나 하러가요 얼른"
"부끄러워하긴-"
"부끄러워 안했거든요"
태수와 송유린은 그렇게 꽁냥대며 지부에 계약서를 제출하러 갔고, 계약서를 제출하는 그 둘을 유심히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무백산 일행들이었다.
태수는 초감각으로 무백산 일행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고, 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 대충 예상이 갔다.
광서 지부에 제출된 계약서는 총 4장이었다.
무림맹, 정천맹 공인 계약서 각각 2장으로 태수와 송유린 둘 다 제출했다.
그렇게 양 측에서 동시에 공인 계약서를 제출하면 제출된 그 즉시, 계약의 효력이 발동된다.
예외로 일방에서만 공인 계약서를 제출하면 한 달 동안 유예기간이 주어지며, 유예기간 동안 상대방이 이 계약의 무효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계약은 유효하게 된다.
이후로는 한 측이 개인 보관용 계약서를 갖고 있으면, 얼마든지 무림맹, 정천맹의 공인 효력을 앞세워 계약의 유효함을 내세울 수 있었다.
"유통은 언제부터 가능해요?"
"사실, 지금부터라도 가능해요. 그런데, 하운 마을이면 그래도 최소 하루나 이틀은 걸리잖아요"
"아니, 전혀- 지금부터 가능해요"
"네?"
송유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운 마을과 광서의 거리는 거의 하루는 반드시 필요했고 짐이 있으면 이틀 이상이 걸릴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부터라니.
설마, 미리 갖고 온 걸까?
"일단, 날 중앙상단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요. 가서 보여줘도 늦지 않으니까"
"아, 넵"
중앙상단의 위치는 광서 지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확실히, 상단은 번화가 근처에 있는 게 더 안전하고 좋았다.
"여기가 옷을 만드는 방직소인가?"
"네, 옆에는 창고에요. 이곳에서 가죽을 보관할 생각이에요"
"호오, 그럴 듯하네-"
태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에 쌓아두면 되는 것 맞죠?"
"네, 그런데 왜- 허어어억!"
송유린은 태수가 보여주는 기묘한 광경에 입을 떠억- 벌린 채 감히 다물지 못했다.
검은색 아공간이 나타나 거대한 오코의 가죽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