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주사강막蛛絲强幕'
콰콰콰쾅-
강기를 머금은 암기는 태수가 방패형으로 펼친 거미실에 의해 막혔고, 그 충돌에 주변을 울리는 굉음이 일어났다.
주위에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들마저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길 정도의 폭발력이었다.
"크흣-"
그 후폭풍에 근처에 있던 비류와 당가려는 감히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는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당천휘, 그 역시 뒤로 몇 걸음 물러났지만 태수는 그 자세 그대로 아무렇지 않은 듯 서있었다.
그런 태수를 보는 당천휘의 눈빛이 오묘하게 변했다.
"그야말로 잠룡岑龍이로구나. 넌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
저 나이에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능력이었다.
당천휘, 그가 86년 무림에서 살아오며 본 천재들 중에서도 단연코 압도적이었다.
'내가 저 시절에는 겨우 화경 초입을 보고 있었거늘-'
녀석은 저렇게 어린 나이에 현경 초입도 아니라, 현경에서도 이미 수준급에 오른 듯했다.
"그러는 노인네는 누구요? 나는 딱히 출신 같은 게 없소"
"출신이 없다고? 오히려 좋구나. 나는 당문의 당천휘다. 내 이름은 들어봤겠지?"
천하십대고수의 이름을 모른다면, 그건 필히 거짓말일 것이다.
태수는 밤꽃무림을 오래 전부터 기다려왔기에 밤꽃무림 공식 홈페이지에서 설정 상의 천하십대고수의 이름을 몇 번 스치듯 본 적이 있었다.
'역시, 당문의 고수였나-'
"뭐 듣기는 했었다만-"
"크흐흐- 이 지긋지긋한 나이에 너처럼 새파랗게 어린 녀석한테 가르침을 얻으려니, 이거 쑥쓰럽구만"
당천휘가 콧잔등을 어루만지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태수는 그의 몸 속에서 주천이 이루어지고 있는 맹렬한 내공의 흐름이 느껴졌다.
"호오, 준비도 안하는 걸 보니 자신있다는 말이냐?"
본래 강기라 하는 것은 초식에 따라 기세를 끌어올리는 등 준비시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소주천만이 아니라 몸 속에서 2주천, 3주천.. 대주천까지 이루어내야 강기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강기류의 초식에 쉽게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리 몸 속에서 주천을 돌리며 기세를 끌어올려야만 했다.
하지만, 저 새파랗게 어린 괴물은 그 어떠한 준비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내공을 끌어올리는 척도 하지 않았으니, 당천휘의 입장으로서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저런 태도는 현경의 고수인 자신을 매우 무시하는 처사이지 않겠는가.
"오만하구나! 멸화접滅禍接"
멸화접은 만천화우를 완전히 숙련한 이후로, 당천휘가 새롭게 창안한 암기술로 당문에서 오직 그만이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손 끝에서 펼쳐진 암기 세례는 당문의 멸독滅毒과 염독炎毒이 발라져 있었고, 암기들이 뒤섞이며 모든 것을 멸살해버릴 것 같은 멸겁의 구체를 만들어냈다.
태수는 자신을 삼켜버릴 것처럼 다가오는 멸겁의 구체에도, 그닥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전이된 태수는 강기를 사용함에 있어 주천의 운행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즉발 형태로 강기를 만들어 대처하는 것이 가능했다.
"주사강막蛛絲强幕"
태수의 손 끝에 거미실이 펼쳐져 방대한 강막을 만들어냈고, 껴안듯이 멸화접을 되려 삼켜버렸다.
그 어이없는 광경에 당천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내 멸화접이 저렇게 막혀버린다고? 저렇게 쉽게?'
분명, 녀석은 주천을 운행하는 시간마저 갖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소, 강기가 아닌 기氣로 이루어진 막으로 내공의 소모가 극심한 멸화접을 막아냈다는 말이 된다.
그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모르는 무공의 경지가 있다는 말인가-'
으하하하-
실로 인생 오래 살고 봐야 할 일이구나.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놈에게 무공의 새로운 경지를 맛볼 줄은!
갑자기 호탕하게 웃는 당천휘를 보며 태수는 그가 악의적으로 시비를 걸고 있는게 아니라, 순수한 무공의 탐구 자세로 자신에게 접근해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조금 멀리서 자신과 당천휘의 전투를 몰래 힐끗 보고 있는 한 여인이 시선에 들어왔다.
태수는 그 여인과 시선이 마주쳤고, 태수와 시선이 마주친 당가려는 급히 고개를 돌리며 몸을 숙였다.
'엄청 예쁜데?'
"좋다, 만약에 네 녀석이 날 이기면 네 손녀에게 장가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너도 직접 보면 엄청 예쁠걸?"
"푸훕- 속이 시커먼 노인네구먼. 손녀가 나에게 시집오는 게 아니라면, 그닥 내가 이길 이유가 없는데?"
"네 녀석은 출신도 없는 주제에, 당문의 뒷배경이 필요하지 않나"
"뒷배경 같은 건 필요치 않소"
"나도 너처럼 혈기왕성한 나이에, 그 정도 무력을 갖고있었다면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무림은 단순히 개인 무력 싸움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뭇 진지하게 접근해오는 당천휘에 태수는 피식- 하고 웃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고, 심지어 몸을 담그고 있던 출신 성분도 없다?
명문가의 데릴사위로 데리고 오기에 이만큼이나 좋은 조건이 어디있겠는가.
당문 노괴의 입장으로서는 내가 너무나 탐나서 입가에 침이 질질 새고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이 천하제일인?'
고개를 돌려 당가려는 태수를 바라보았다.
저 나이에 할아버지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할아버지는 자신보다 더 강함을 인정하기까지 했으니 천하제일인이 저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천하제일인이겠는가.
"노인네, 됐고. 먼저 이렇게 시비걸었으니, 당연히 맞을 준비도 되어있던 것이겠지?"
"뭐, 뭐-?"
당천휘는 심히 당황했다.
아까도 그랬지만 녀석은 기세를 끌어올리는 과정없이 강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괴물이었다.
"주극미세사蛛劇微細絲"
태수의 몸 속에서 강기를 머금고 있는 초미세한 거미실이 출수되어, 당천휘를 향해 발출되었다.
현경의 고수인 당천휘는 당연히 초미세한 실이라 해도 내공의 기운으로 읽어낼 수는 있었지만, 막아내는 건 감히 할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단전 속에는 이제 막 10주천 정도까지를 내공을 운행하고 있던 참이었다.
당천휘는 결국, 주천 운행을 방어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신법으로 돌려 사용해야만 했다.
콰콰콰쾅-
당천휘가 도망간 자리는 초토화되어 원래 있던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녀석의 내공 전도율은 너무나 비상식적이구나-'
당천휘는 시스템으로 봤을 때, 이제 대략 70% 정도의 내공전도율 상승 수치를 갖고 있었다.
하물며, 태수의 내공 전도율은 160%로 단전이 중단전으로 전이되어 즉발 형태로 강기가 발출되었으니 제대로 된 전투가 성사될 리가 없었다.
격투기 선수가 한 번 잽을 날리고 있을 때, 상대는 피하고 나서도 여유가 있어 두세 번의 잽을 날리고 있는 격이었다.
'그나마 전투경험이 부족한 덕분에 이렇게 버티는 게 가능했지. 녀석이 노련했었다면 난 지금쯤-'
당천휘는 주극미세사에 의해 초토화된 곳을 힐끗 바라보았다.
저것대로 몸이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을지도 몰랐다.
콰콰콰쾅-
문제는 '주극미세사'라는 초식은 아직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네, 네 녀석은 내공이 그리도 많더냐?"
"아직 십분지 일도 달지 않았으니, 제 내공 걱정은 안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 뭣-!?"
어린 주제에 어떻게 그토록 심후한 내공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당천휘는 경악했다.
새파랗게 어린 고수가 자신의 힘에 심취해,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면 역공을 노려볼까 했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십분지 일이 소모되었다니.
자신은 이미 신법 만으로 내공의 절반을 소모해버렸다.
저게 허세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실이라면 신법만으로 내공이 바닥이 날 게 분명했고 이대로 피하기만 하다 질 게 분명했다.
"말은 번지르르 하게 하더니, 도망치기만 할 생각입니까?"
"네, 네 녀석이 날 잡을려면 10년, 아니 1년은 이르다 이 놈아!"
"그렇다면, 이것도 피해보시지요. 천라지망天羅地網"
당천휘는 천라지망이라는 초식명을 듣고서는 '포획'의 목적을 띠고 있음을 눈치챘다.
녀석의 몸 속에서 발출되고 있는 거미실은 이미 이 일대를 뒤덮을 정도였고, 여기서 자신이 아무리 신법으로 용하게 피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저 초식의 허점은 그대로 앞으로 돌진하는 것-'
초식마다 반드시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느 무공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음양오행의 이치였다.
불은 물에 약하고, 물은 나무에 약하듯이 녀석의 천라지망은 포획에는 매우 탁월했을지는 몰라도 본인 주변은 매우 무방비했다.
"네 녀석은 음양오행의 이치도 모르더냐! 전투경험만 많았다면 내가 질 수도 있었거늘- 경험의 부족함을 탓해라"
당천휘는 천라지망이 펼쳐지고 있는 태수의 중심부로 파고들어, 기습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태수는 손을 말아쥐는 것으로 천라지망을 제어해 그대로 당천휘를 묶어버렸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알아서 범의 입 속으로 들어오다니 참 편하군요-"
"네, 네 녀석의 무공에는 초식의 상성조차 없단 말이냐-!"
"내 무공은 음양오행의 이치를 벗어난 인외의 것이라 그런가 봅니다"
졸지에 거미실에 묶인 당천휘는 거미실이 내공의 운행을 막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몸도, 내공도 속박된 탓에 부끄럽게도 현경의 고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놔, 놔라-! 무림의 어른에게 못하는 짓이 없구나"
"무림의 어른은 산책하고 있는 후배에게 기습해도 되나 봅니다?"
"날, 날 놔주면 내 손녀에게 장가를 가게 해주겠다니까?"
"흐음- 살면서 혹시 진 적이 별로 없었습니까? 지금 엄청 당황한 것 같군요. 아직도 그런 헛소리나 입 밖에 내놓으시고-"
태수의 말대로 당천휘는 86년 동안 이렇게 져본 적이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밀린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부끄럽게 진 적은 없었다.
상대에게 생채기 한 번을 내지 못했고, 패배하는 과정도 이렇게 부끄럽게 속박되어 버리다니-
죽이지 않고, 포로로 묶어가는 건 한 차원 높은 고수의 특권이나 다름없었다.
"음?"
"저어-"
아까 보았던 여자가 태수와 거미실에 묶여있는 당천휘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 둘의 전투를 숨까지 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비류도 태수의 뒤에 나타났다.
'역시, 주군-'
그 유명한 당천휘를 이렇게 쉽게 제압한 사실이 무림에 알려지면, 그야말로 무림은 발칵 뒤집힐 게 분명했다.
'아직까지는 주군이 그런 걸 원하시지 않는 것 같지만-'
"뭐지?"
"이 분은 제 할아버지세요. 송구하지만, 할아버지의 호기로 대협의 심기를 거스른 것 같아요. 원래 착하신 분인데- 분명 죽을 죄를 저지른 것은 맞지만 저희 할아버지 목숨만 살려주세요. 꼭 은혜를 갚을게요"
당가려는 차분히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태수는 유심히 그녀의 외모와 몸매를 지켜보았다.
최소 D컵의 가슴을 가진 모델처럼 굴곡진 몸매에, 얼굴은 마이유처럼 귀엽게 생겼다.
그야말로, 섹시큐티였다.
마음 속으로는 이미 '합격'.
이 두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떻게 된게 아주 오래 사신 것 같은데, 하는 짓은 자신의 손녀만도 못합니까?"
"끄응-"
당천휘는 당가려가 이렇게 직접 나서서 저런 말을 하고 있자, 체면이 살지 않았는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소저는 뭘로 은혜를 갚을 생각이오? 말이라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소?"
"필요하실 때, 대협에게 당문의 힘을 빌려드릴게요-"
"소저가 보기에 내가 당문의 힘이 필요하기나 할 것 같소?"
"...!"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당천휘는 당문을 무시하는 태수의 발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을 부릅- 떴으나 잘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수긍은 되어 노기를 가라앉혔다.
'건방진 놈-'
"당문의 힘 같은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오"
"그, 그렇다면-"
차분했던 당가려의 모습에 처음으로 당황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소저는 나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아줄 수 있소?"
"아아-"
태수는 당황스러워 하는 당가려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당가려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자연스레 탄식음을 냈다.
"이, 이 놈아! 내가 잘못했다. 풀어주면 내가 다 사죄할테니까 일단 나를 풀어라. 이 노망난 노인네가 잘못했다. 제발 부탁한다, 제발-!"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당천휘가 발작적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이제는 무림의 존장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치운 듯했다.
"그 말, 진심입니까? 참고로 전 당신 때문에 이번에 엄청 손해봤다는 건 아시는지요? 당문이 가진 전력으로도 메꾸기 힘들 정도입니다"
실제로 태수는 당천휘의 공격 때문에 주사만침으로 몬스터를 사냥하여 한 번 더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손해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하리라.
"그, 그럴 수가"
당가려는 자신의 가문이 천하제일가는 아니더라도, 나름 정천맹과 무림에 크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 당문임에도 저 남자가 지금 이 시간 동안 본 손해를 전력으로도 메꿀 수 없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를 일반적인 무림의 상식으로 재단하려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태수는 천라지망에 묶인 당천휘의 몸을 풀었다.
드디어, 사지가 자유로워진 당천휘는 태수를 힐끗 노려봤으나, 이내 마음에 안든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괴물 같은 녀석'
"약속 이행 안합니까? 사죄한다고 분명 들었던 것 같은데. 이 자리에서 바로 하시지요-"
"끄응-"
당천휘는 차마 새파랗게 어린 고수에게 무릎은 못 꿇겠다는 듯, 머뭇머뭇거렸다.
"그렇게 하실 거면 됐습니다. 저도 노인네 절이나 받자고 지금 이러는 건 아니잖습니까?"
자존심이 도대체 뭔지-
태수는 한낱 자존심 때문에 좋게 갈 것도, 어렵게 가게 만드는 당천휘가 우습기만 했다.
"그럼, 소저가 말해줄 수 있겠소? 소저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소"
"저, 저는-"
태수가 손녀를 걸고 넘어지자, 당천휘가 못참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나, 나에게 말해라. 네 녀석은 도대체 원하는 게 무엇이냐?"
"흐음-"
당천휘의 말에 태수는 한 차례 당가려의 몸을 위아래로 느릿하게 노골적으로 물건 품평하듯 바라보았다.
일부러 자신이 이렇게 대놓고 여자를 품평하듯 쳐다보고 있다는 걸, 그녀가 인식하라는 듯 태수의 행동은 느릿느릿했다.
그런 태수의 음흉한 시선에 당가려는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며 수치스러움에 눈시울이 붉어졌고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는 당가려도, 당천휘도 태수의 입에서 자신들이 최악으로 예상했던 말이 나오지 않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상한 말이 나오질 않길 기대했던 태수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