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흐음-'
싸늘한 소혜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태수는 진심으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혜수가 마을에서 광녀로 소문난 건, 마을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일이고 소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랑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걸 상책이라 생각한 태수는 말없이 자리를 피했다.
"어디가세요오-!"
소혜는 그런 태수를 쫓아갔지만, 이미 태수는 거미실로 집 밖으로 멀리 나간 이후였다.
"여자가 한 명 더 늘어났어, 그것도 하필-"
태수를 놓친 소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소혜의 시선이 여전히 '이런 집에 사람이 살 수 있어?' 라는 표정으로 집을 둘러보고 있는 혜수에 닿았다.
"하아-"
태수가 엄마랑 그렇고 그런 관계임을 알았을 때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닥 놀랍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제 이런 상황이 그닥 놀랍지도 않은 자신을 보며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한숨을 쉬었다.
Monster Wave.
갑작스레 하늘에서 날벼락처럼 떨어진 괴물 군단에 의해, 정사마 가릴 것 없이 무림은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무림맹 지부가 근처에 있어 무림인이 다수 포진된 번화가는 피해가 크지는 않았으나, 시골 마을 같은 경우에는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에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신의 계시인 걸까?
몇몇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무림이 힘을 합춰, 인류의 존속을 위해 이 대재앙과도 같은 일에 맞서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중요 무림단체는 그 말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직, 지켜보는 듯한 움직임이었고 사람들은 대책이 나오질 않아 불안에 떨었다.
윗동네 분들은 알아서 잘 살아남겠지만, 아랫동네인 자신들은 정말 억울하게 개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작금의 무림은 정사마正邪魔, 세 곳으로 삼분되어 있었다.
이 중, 힘이 가장 강력한 곳은 정正, 무림맹이었고 제일 약한 곳은 사邪, 정천맹이었다.
사邪는 특이하게도, 사에 어울리지 않는 정의로운 하늘을 뜻하는 정천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자신들이 정의임을 말하고 있었다.
-힘이 약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邪인 것이지, 우리가 강했다면 무림 역사에 우리는 정正으로 알려져 있을 것이다.
사파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이러했고, 그래서인지 사파들은 자신들이 사邪라 불리우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그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정正이라 지칭하곤 했다.
정正, 무림맹은 구파일방九派一幇으로 구성되어 무림맹의 맹주는 이 구파일방이 참가한 의회의 의결로서 선출되고 있었다.
현재는 세력이 가장 강한 화산파의 전前 장문인, 위지운이 무림맹의 맹주직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사邪, 정천맹은 무림맹과 달리 문파의 의미가 그닥 없는 대신, 신분과 가문이 매우 중요했다.
힘이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오대세가五大世家가 정천맹의 주요 지배 세력이었고, 그 중에서도 힘이 가장 강한 남궁세가 사람들이 세습하듯 정천맹의 맹주를 맡아왔다.
즉, 역대 정천맹의 맹주는 모두 남궁세가 사람이었다.
덕분에, 이에 관해 부패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고, 사람들은 정천맹이 무림맹에게 밀린 것은 이런 퇴보된 체제 때문이라 말하기도 했다.
세력 구도의 중간에 속한 마魔, 천마신교는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정사正邪 무림 간에는 1국가 2정치체제의 연방제를 띠고 있어 사람들 간에 여행이나 이동은 자유로웠다.
물론, 서로 간의 인재를 노골적으로 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이것 때문에 여러 번 심한 마찰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천마신교는 완전히 다른 국가이자 집단이었다.
당연히, 거주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었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사람들은 그들이 언젠가 정사 무림을 두고, 침략해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에 늘 견제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다.
"저- 천마신교에서 사신을 보내왔습니다"
"천마신교? 십만대산의 그 천마신교?"
"그렇습니다. 천마신교의 공주가 사신대표로 약 20명의 일행을 이끌고 왔습니다"
이계의 침공이 있고난 며칠 후, 천마신교는 무림맹에 사신을 보냈다.
무림맹은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이해가 갔다.
지금 이 사태에 대해 수십년간 왕래가 없었던 두 국가 사이에 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무림맹은 곧 이 건에 대해 맹주가 직접 나서서 회의를 열었다.
"다들 천마신교가 무얼 위해 무림맹에 사신을 보냈다고 생각하오?"
맹주, 위지운이 회의장에 참석한 구파일방의 대표들을 둘러보며 첫 입을 뗐다.
그는 천마신교의 의도가 무엇인지 사전에 확실히 파악해둘 생각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질 괴물 군단에 맞서, 힘을 합치자는 것 아니겠소? 솔직히 말해서 난 그들과 손을 잡는 게 그닥 마음에 들지 않소. 무슨 꿍꿍이인지도 모르겠고-"
화산파의 대표이자, 위지운의 사제인 이태백이 자신의 생각을 시원하게 말했다.
"저도 태백의 말에 동의합니다. 천마신교는 오래 전, 정사 무림에 야망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상황이 이렇다고 하여, 천마신교를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괴물 군단은 저희 힘으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합니다"
청성파의 대표, 운임이 이태백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나머지 대표들은 딱히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 의견에 동조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결국, 회의는 천마신교가 어떠한 이유로 무림맹에 사신을 보냈든, 그들과 교류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으로 의견이 통일되었다.
회의가 끝난 후, 맹주 위지운은 맹주실에 홀로 앉아 천마신교의 움직임을 이해하려 했다.
"왜, 정천맹에는 사신을 보내지 않고 무림맹에만 사신을 보냈을까-"
과연, 그 의미는 무엇일까?
1국가 2체제의 연방제인데, 그 중 힘이 강한 무림맹이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순간,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표정이 일순 바뀌었지만, 이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인가"
위지운의 미간 주름이 깊어졌다.
정파 무림 전체를 위한 대의적 명분도 챙겨야 했으며, 뒤로는 화산파의 사사로운 이득도 챙겨주어야 했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는 천마신교의 정확한 의도도 파악해야 했으니 무림맹의 맹주로서 느끼고 있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인벤토리]
-오코(鼻)의 사냥정수 342EA
잠시 밖에 나온 태수는 어제 얻었던 오코의 사냥정수를 확인했다.
[오코(鼻)의 사냥정수]
-사용하면 일정량의 경험치와 CP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계의 침공 이후부터는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만으로 CP와 경험치를 쌓는 게 가능했다.
'모두 사용'
[경험치 342000 획득 CP 171 획득]
-레벨이 23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름] - 태수
[레벨] - 23
[특성▼]
[특성 포인트] - 3
[무공▼]
[무공 포인트] - 3
[보유 CP] - 173
[스탯]
힘 - 94(+40%)
체력 - 88(+40%)
내공 - 112(+40%)
외공 - 78(+40%)
"역시, 청독각마공이야. 내공 스탯이 알아서 잘 오르고 있어"
며칠 전에 100대에 머물러있던 내공 스탯이 어느덧 110을 돌파했다.
[이계 상점] - 2단계
[환골탈태 물약] - 2단계
-깨달음으로 얻는 환골탈태보다 효과가 조금 적습니다. 하지만, 이걸 마신다면 더 강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내공 전도율 30% 상승, 모든 능력치 20% 상승, 소소한 미용 효과
-2단계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최대 갯수는 1개입니다
-필요 CP 150
CP를 사용하기 위해 이계 상점 2단계 들어간 태수는 환골탈태 2단계 물약에 시선이 꽂혔다.
내공 전도율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과하지 않았다.
'그 외에 모든 능력치 상승도 아주 좋아'
큰 고민없이 환골탈태 물약 2단계를 구매한 태수는 계곡 근처로 가, 물약을 마셨다.
[2단계 물약에 의한 환골탈태를 진행합니다]
1단계 물약을 마셨을 때처럼, 어마어마한 복통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몸 속에서 정화 작업을 하고 있는지 굉장히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태수의 몸 주위에 증기가 일기 시작했고,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났을까-
태수는 자신의 몸 주위로 진득한 노폐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공 전도율 30%, 모든 능력치 20%가 상승합니다
-소소한 미용 효과를 얻습니다
전에는 땟국물 같았던 검은색 노폐물들이 이제는 옅은 갈색이었다.
"몸에 노폐물들도 이제 나올 게 없다는 거지-"
이제는 이 짓거리도 익숙해졌다.
몸에 있는 수분을 이용해, 수분을 증기화해 모공으로 보내버리면 모공에 막혀있던 노폐물들이 깨끗이 청소되었다.
사실, 이런 작업은 내공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가능했다.
감히 어설프게 하다간, 주화입마 상태에 놓이기 쉽상이었다.
태수는 계곡에 들어가, 몸을 씻은 후 다시 상태를 확인했다.
[이름] - 태수
[레벨] - 23
[특성▼]
[특성 포인트] - 3
[무공▼]
[무공 포인트] - 1
[보유 CP] - 23
[스탯]
힘 - 94(+60%)
체력 - 88(+60%)
내공 - 112(+60%)
외공 - 78(+60%)
내공 스탯에 붙은 보너스 수치가 무려 60%.
태수는 청독각마공을 대성의 성취를 이룬 후,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의 환골탈태 덕분에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감이 잘 나질 않았다.
태수는 청독각마공을 발기發氣의 목적으로 대주천을 운용했다.
사아아-
내공 전도 속도가 빨라졌다는 게 실감이 되었다.
하단전에 꽈리를 틀고 있던 청독각마공의 내공이 순식간에 구결대로 혈도를 지나 소주천, 2주천.. 대주천을 이루어 강기强氣를 형성했다.
그 과정은 단 0.1초도 되지 않아 이루어졌다.
순간, 태수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빠른데, 굳이 소주천의 개념이 필요한가? 바로, 막힘없이 대주천을 진행하면 되지 않나?
그것은 일반적인 내공 상식으로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었다.
소주천, 2주천, 3주천을 하는 이유는 내공 흐름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래야만,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이 관장하는 대주천을 수월하게 이루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주천 없이 바로 대주천으로 직행한다?
내공의 추진력이 부족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으며, 괜히 내공이 역행하면 내상을 입거나 심하게는 주화입마에 들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태라면 소주천 없이 바로 대주천으로 직행하는 게 가능하다!'
현재, 태수가 가지고 있는 내공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태수는 추진력이 쌓이지 않은 채, 청독각마공의 내공으로 하여금 그대로 임맥과 독맥이 관장하는 대주천을 시도했다.
콰아아-
놀랍게도 소주천 운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내공의 추진력이 없음에도 그 본래 내공만으로 대주천에 성공했다.
순간, 태수는 호흡 곤란 증세를 느꼈다.
동공이 심히 흔들리며, 어지럼증을 느꼈다.
몸 속의 무언가가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단전下丹田에서 중단전中丹田으로 전이됩니다]
"크흐읍-!"
태수는 구역질을 하며, 위 속에 든 모든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몸을 지배했던 기존의 섭리가 완전히 뒤바뀌고 있었다.
[깨달음으로 인한 환골탈태를 진행합니다]
'연, 연속으로 환골탈태라고!?'
태수는 속으로 환호의 비명소리를 질렀다.
입으로는 죽을 것만 같은 비명소리를 냈다.
"끄아아아아-! 씨바아아아알-!"
2단계 물약으로 진행했던 환골탈태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태수의 몸을 엄습했다.
심해도 너무 심했다.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단 말인가?
태수는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 몸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마치 분근착골分筋錯骨의 수법으로 근육과 뼈가 분리되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의 고통이었다.
"끄허어어-"
영겁 같았던 고통이 끝나고, 태수의 입에서 풍선 꺼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공 전도율 70%, 모든 능력치 40%가 상승합니다
-소소한 미용 효과를 얻습니다
"70%!?"
내공 전도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태수는 곧 바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름] - 태수
[레벨] - 23
[특성▼]
[특성 포인트] - 3
[무공▼]
[무공 포인트] - 1
[보유 CP] - 23
[스탯]
힘 - 94(+100%)
체력 - 88(+100%)
내공 - 112(+100%)
외공 - 78(+100%)
[내공 전도율]
-160% 상승
"호오-"
태수는 자신의 몸에 냄새가 심한 노폐물이 묻어있는 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바로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험했다.
청독각마공을 운용했고, 운용하자마자 그 전과 달라진 차이를 알 수 있었다.
"허어?"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전이가 되었다는 건, 바로 이걸 뜻한 것이었나?'
중단전에서는 시작부터가 강기强氣였다.
애초에 소주천을 할 필요도 없었고, 바로 즉발 형태로 강기를 머금은 초식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괴물이 된 것일까?
강기라는 고귀한 내공의 정수를 이렇게 즉발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중단전에서 소주천을 진행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태수는 곧 바로 중단전에서의 소주천 진행을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내공의 흐름이 끊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깨달음도 부족하지만, 내공도 부족하다'
첫날부터 배부를 수는 없으리라.
하단전은 소주천 없이 대주천 진행을 할 수 있었지만, 중단전에서는 모든 게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처음 시작하는 이 기분 너무 좋은데?'
태수는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이런 시작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