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23/90)



〈 23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소혜와 달자가 위험하다-'

취이이익-


마을 안에 오코가 있는지 오코 특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잠시 갔다 오겠습니다. 일단, 이곳이 안전하니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태수는 마을 입구 근처의 오코들을 모두 처리했다.

그 후, 말에서 내린 태수는 거미실을 출수해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도약했다.

'아직, 살아있어-'


모녀의 두 호흡을 기억하고 있는 초감각은 그녀들이 살아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제서야 태수는  차례 마음을 내려놓을  있었다.

"이상한데?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집들은 많이 피해를 봤는데, 외진 구석에 있는 우리 집은 그닥 피해를 입은 것 같지 않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태수는 두 모녀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크게 안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았다.


'내가 둘을 많이 아끼고 있나보군-'

피식-


돌아가면  둘을 많이 사랑해줘야 할 것 같았다.

태수는 마을의 중앙, 하늘 위에 비행실을 출사했다.


그리고,  비행실 위에 올라탔다.


당장이라도 중력에 의해 고꾸라지는 게 정상이었지만, 태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양탄자(실탄자)를 타듯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주사만침蛛絲萬針'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하늘 위에서, 태수의  속에서 거미실 가시가 쏟아져 내렸다.

태수는 가시의 독성을 제어해, 수분을 갈취하는 독성을 없앴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암기와도 같은 거미실 가시는 한 치의 오차없이 정확히 마을 안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는 오코들의 미간을 단번에 꿰뚫었다.

사아아-


순간, 오코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 절규로 가득했던 하운 마을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후로, 하운 마을에서 오코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반대로 오코의 침공 속에 살아남은 마을사람들의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는 다양한 감정이 섞여있었다.

슬픔, 비참함, 행복, 절규, 고통, 비탄-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소리에 담긴 대부분의 감정은 '행복'이었다.


태수는 조금 늦긴 했어도, 자신이 완전히 늦게 오지는 않았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악하악-"


선하는 가파오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족보형 돼지 괴물을 상대했다.

두세 마리 정도라면 절정고수인 자신은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겠지만, 괴물의 가짓수가 문제였다.


"언, 언니-"

"소혜야, 넌 아직 실전에 나갈  없어. 언니는 괜찮으니까 어머니를 지켜드리고 있어"


"미안해, 언니"


소혜는 처음보는 사뭇 진지한 선하의 모습에 미안한 감정이 폐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솓구쳤다.

자신이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신을 밉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게, 선하 언니한테 도움이 되는 길일 거야'


소혜는 마음을  잡고, 겁 먹은 달자의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가가, 어서오세요-'

언제나 든든한 태수가 떠올랐다.

태수를 떠올리자마자, 소혜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늘 그렇듯, 탄탄한 몸으로 자신을 껴안아주었으면 했다.


눈 앞의 괴물을 모두 처리한 선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남은 내공이 이제 절반조차 남지 않았어-'


 수 있는 곳에 가서 운기조식이라도 해, 내공을 회복해야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운기조식은 기본적으로 옆에 호법, 한두 명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운기조식의 주천을 진행하는 동안, 누군가 건드리면 집중이 흐트러지고 구결대로 흘러가고 있던 내공이 역행해 주화입마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선하가 익히고 있는 월녀심법月女心法 특성상, 자연적으로 회복할  있는 내공은 일반적인 무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적기에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남은 내공으로 내가 펼칠  있는 초식은 일곱 번 정도-'

한 번의 기본 초식으로 운이 좋으면 돼지 괴물을 한 번에 여러 마리까지 처리하는 것도 가능했다.

'월녀검법月女劍法, 제 1초식 월광검月光劍'

 속에서, 사부한테 온갖 쓴소리를 들어가며 배웠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인 초식이었다.

내공 소모도 가장 적으면서, 나름 파괴력도 높은 효율적인 초식이었다.

선하의 검劍사위는 기본적으로 우아했다.


전설상의 월녀가 춤을 추듯, 달빛을 흩뿌려놓는 듯했다.


돼지 괴물들은 그 달빛에 취해, 하나둘 쓰러져갔다.

취이이익-


한 차례 우아하게 검무를 춘 선하는 어느 정도  모녀의 집이 안전해지자, 마을사람들이 대거 있는 마을중심부로 갔다.


인육을 탐하는 돼지 괴물의 특성 덕분인지, 마을중심부에는 돼지 괴물들이  몰려있었다.


"광서에  지원이 올 거야. 조금만  버티자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우리라도, 녀석들의 약점만 노리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약점이 도대체 어디인데?"

"눈, 코!"

"돌보습이나 괭이로 눈, 코를 노리면 쓰러트릴 수 있다!"

취이이익-

마을사람들은 제 나름대로 돼지 괴물들을 잘 상대하고 있었다.

 모습에 힘을 얻은 선하가 합세했다.

'월녀검법月女劍法, 제 2초식 월광난무月光亂舞'

1초식 월광검보다는 내공 소모가 비교적 높긴 해도, 초식의 공격 범위가 상당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괴물들이 많이 몰려있을 때 사용하는 것이 적기였다.


월녀검법의 대표적인 특징은 단타短打로 끊어서 치기보다는, 검무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는 검격이었다.

돼지 괴물과 고군분투하는 마을사람들 사이에 갑자기 등장한 선하의 월광난무의 검劍사위에 사람들은 시선을 감히 뗄 수 없었다.


달빛을 흩뿌리는 듯한 검무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아, 아름답다 그리고 우아하다'


그 초식의 시전자마저도 웬만해서 예쁘다고 인정해주지 않는 밤꽃무림 사람들마저 예쁘다고 인정해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돼지 괴물들은 달빛에 녹아내리는 듯, 하나둘 쓰러져갔고 초식이 끝날 때에는 달빛에 취한 모든 돼지 괴물들이 달의 여신에게 경배하듯 고개를 땅에 처박은  쓰러져버렸다.


"와아아아-!"

이에 마을사람들이 환호했지만, 그 환호성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취이이익-

돼지 괴물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하악하악-"

하물며, 달의 여신은 지친듯 무릎을 꿇은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힘내세요!"

"저희 좀 살려주세요, 무림인님!"

선하는 마을사람들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며, 기꺼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도 보였고, 동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의 모습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들의 고된 모습이 보였다.


사부에게 습관처럼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무공은 언제나 이타적인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네가 무공을 배우는 근본적인 이유다.


가난하고 가족이 없던 자신에게 사부는 자신에게 가족이 되어주고, 가난을 물리쳐주었다.


이후에는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길러주셨다.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제야 알  있을 것만 같아'


선하는 가슴 깊이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저, 힘낼게요 사부님-'


선하는 갑작스레 건강 문제로 세상과 작별한 사부를 떠올리며, 다시금 월광의 검무를 추었다.


그녀의 검劍사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고, 돼지 괴물들은 월광에 취한  사르르- 녹듯이 쓰러져갔다.


'이제 마지막이야'

선하의 몸에 남은 내공이 단 한줌조차 없었다.

 말은, 현재 그녀는 체력이 조금 더 좋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무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신체의 피곤함이 누적되어있으니 그녀는 제대로  육체능력조차 발휘할 수 없었다.

'아아- 역시, 중은 제 머리를 깎지는 못하나봐-'

언제나  그랬다.

미래시로는 자신의 미래를 볼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사부님의 뜻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고 가는 것 같아 이렇게 죽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없-

'아니, 아쉬워. 태수라는 그 남자 만나고 싶었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궁금했다.


미래시에 나온 그 남자는 정말 대단했으니까.


무려, 무림의 종말을 막을 남자이지 않은가?

'그리고, 여자로서 이것저것 부끄러운 것도 많이 해, 해보고 싶었는데-'


며칠 전에 읽었던 야설이 떠올랐다.


부끄러우면서도 재밌어서 계속 읽었다.

이후, 소혜의 야박을 듣고서야 늦은 밤에 잤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독해 완독할 정도였다.


그렇게 선하가 몸에 내공이 전혀 없는 채로 고군분투하는 사이, 갑자기 하늘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

선하는 고개를 들어올렸고, 마을의 중앙 하늘 위를 날고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에 폭포에서 보았던 바로 그 남자, 태수였다.

더불어, 미래시에서 보였던 무림의 종말을 막을 남자이기도 했다.

태수의 몸 속에서 순간,  같은 것이 보였고 이후 주변의 모든 돼지 괴물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신이 강림한 것만 같은 이 기적적인 결과에 죽다 살아난 마을사람들은 목청 터질 듯이 환호했다.

선하는 몸의 긴장이 풀리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

마을사람들의 환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몸이 극도로 지친 그녀는 곧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침공이 있었던 날부터 다음 날까지 하운 마을은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태수와 혜수는 광서 관청으로부터 자신들이 관의 대리인으로 임명받았음을 공식적으로 마을사람들에게 알렸다.

마을사람들은 오코들을 단번에 물리친 사람이 태수란 걸 알고 있었다.

덕분에 공식적으로도, 민심으로도 발언에 힘을 얻은 태수는 마을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노역을 부과하며 마을 일정을 가속화했다.

우선, 하운 마을에 오코의 시체가 가득 널려있었는데 이것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지저분하게 널려있던 오코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한가운데에 모아 쌓았고, 도축업자들은 가축과 고기를 분리해 깔끔하게 정리해놓았다.


"이 고기들은 곧 있을 마을 축제에 쓰일 겁니다. 다들 기대해주세요"


"와아아아-! 새롭게 온 대리인 만세!"

"만만세다"

마을 축제를 예고하는 태수의 말에 마을사람들은 들떴다.

진사 대신에 대리인을 맡은 태수라는 남자는 진심으로 믿음직스러웠다.


오코의 시체로 인해 혼잡해진 마을 상태가 어느 정도 깨끗해지자, 태수는 그제서야 마을지원금으로  식량과 옷가지들을 마을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다.

"나, 이런  받아보는 거 처음인데-"


"진사, 그 새끼는 지금껏 당연히 줬어야 할 것도 주지 않았다는 소리잖아"

"에끼- 그저, 지금은 새롭게 부임한 대리인이 정말 착한 사람이란 것만 알아두라고!"


"그래, 이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돼. 그저 대리인님이 우리를 엄청 신경쓰고 계신거지"


마을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태수의 행동에 대해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조치였음에도 이들은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진사가 얼마나 마을 운영을 개판으로 했는지 알  있는 부분이었다.

그 다음 일정은 무너진 진사의 집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코에 의해 집이 심각하게 파괴된 바람에 진사의 사무실에 있는 여러 증거물마저 많이 훼손되었다.


'이래서는 관에 공식 증거물로 내미기도 힘들 것 같은데-'

문서에는 뭐라 쓰여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문서가 공식 증거물로 채택받으면 그것대로 문제였다.


'진사의 사무실 근처에 불만 나지 않았어도-'


결정적으로 오코가 난동을 부리는 와중에, 불이 붙었는지 진사의 사무실이 대부분 타버렸다는  문제였다.

'뭐, 여기서 증거물이 발견되었으면 그 녀석들을 한 번에 날릴 수 있었겠지만, 그건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태수는 이제서야 두 모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주, 주인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뭘, 어떻게 해. 너도 따라와야지"

"헤헷-"


진사의 집이  자신의 집이었던 혜수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두 모녀의 집으로 가야만 했다.

혜수는 태수에게 두 모녀의 이야기를 최근에 들을 수 있었다.

 두 모녀의 존재가 껄끄럽지 않다면, 그건 필히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잘 지내라는 주인님의 분부가 있었기에 혜수는 최대한 마찰없이 지낼 생각이었다.

"여, 여기가 주인님의 집?"

생각보다 허름해 혜수가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일이 전부  끝났나요?"

"응, 다 끝났어. 소혜야"

몸이 지친 선하를 돌보고 있었던 소혜가 한걸음에 달려와 다 끝났다는 말에 태수를 껴안아왔다.


"정말 보고 싶었어요, 가가-"

'가가?'

태수의 뒤에 있던 혜수가 '가가'라는 단어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아주 사랑하고 애정깊은 연인 관계 사이에 쓰이는 말이 아니던가?

그런 단어를 감히 주인님에게 사용한다고?

불만에 찬 혜수가 소혜를 힐끗 노려보고 있는 사이, 소혜는 태수의 품 속 안에서 나왔다.


소혜는 태수와 뒤에 있는 혜수를 힐끗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런데,  여자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생각보다 더 차갑게 느껴지는 소혜의 서리폭풍 같은 분위기에 얼굴에 철판을 깐 태수도 이 상황이 심히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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