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드디어 나왔다.
'밤꽃무림 - 이계편'
전작, '창천무림'으로 세계적으로 초대박쳤던 디아블로 사의 신작이다.
창천무림은 가상현실에 기반을 둔 온라인 육성 게임이었다면 밤꽃무림 - 이계편은 패키지 게임으로 온라인도 가능하지만 싱글로도 즐기는 것이 가능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밤꽃무림은 한국 서비스 기준, 19금 게임이었다.
한마디로 가상현실 안에서 섹스를 하는 것도 가능했다.
남자들은 디아블로 사의 고급진 가상현실 세상 속에서 현실과 다름없는 아름다운 여자들과 떡칠 생각에 그곳이 불끈불끈했다.
25세 남자 백수, 김태수도 그 남자들 중 한 명이었다.
태수는 세월아 네월아 오매불망 '밤꽃무림 - 이계편'을 기다려왔다.
전작인 창천무림을 하며, 태수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이렇게 현실과 다름없는 곳에서 왜 도대체 섹스를 못하게 막는 걸까? 왜 19금을 할 수 없도록 한 걸까?
태수처럼 생각한 남자들의 의견을 고려했는지, 디아블로 사는 창천무림 출시 2년 만에 한국버전명 '밤꽃무림 - 이계편'을 출시했다.
이때 전국 여성단체, 여성계가 거세게 반발했지만 방구석 조선딸잡이의 여력은 대단했다.
(고) 성재O 씨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밤꽃의 천국에서 흐뭇한 얼굴로 지상을 바라봤을 것이다.
왜 남자들의 성욕을 이 나라는 억제하려고 하는가? 남자들에게 성욕의 자유를 보장하라!
일부 좀 정신나간 남자는 길거리에서 다 벗고서, 커텐 같은 걸로 밑만 가린 채 자위를 하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주었다.
지금껏 억압받는 남성인권에 대해 별다른 큰 시위도 없이 잠자코 방구석에서 딸만 잡고 있었던 남자들은 각성했다. 이날, 이들은 남자의 성욕에 족쇄를 채울려고 하는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주었다.
사전예약 기간에 태수는 가상현실 기기를 주문해 받았고 사전캐릭터 생성기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꽃무림 공식사이트에서는 사전캐릭터 생성 기간 전까지 절대로 기기에 접속하지 말라는 공지사항을 올려두었다.
"흐음-"
할 것도 없었던 태수는 밤꽃무림으로 접속할 수 있는 가상현실 기기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방금 받아, 포장을 다 뜯던 참이었다.
참 고급스럽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들어가면, 꿀과 젖이 흐르는 낙원의 세계가 펼쳐지겠지.
상상만 해도 절로 행복한 표정이 지어졌다.
들어가면 뭐부터 할까?
흐음, 일단 능력치를 키워야겠지.
19금 게임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법.
게임 내에는 스토리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했고, 그 안에서 힘을 키워나가며 히로인들을 정복해나가야 했다.
"이곳이 전원 버튼이고, 이게 동기화 버튼이었지?"
태수는 할 것도 없었던 지라 메뉴얼을 보며 미리 외부 인터페이스를 숙지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그 맛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작동이 되는 지 확인하기 위해 전원 버튼을 누르자, 기기에서 '위잉-' 소리가 나오며 기기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탈 소재로 깔끔하게 만든 외형에 RGB스킨을 입혀 빛나고 있었다.
마치, 노래방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호오- 대박인데?"
여러모로 디아블로 사가 신경을 써준 듯 했다.
"이렇게 안으로 들어가서, 각 센서에 팔과 다리를 집어넣고 동기화 버튼을 누르면 게임 속으로 접속할 수 있다.."
메뉴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태수는 그대로 이행했다.
기기는 키와 무게에 따라 타입이 다르게 나왔는데, 살이 너무 비대하게 붙은 사람은 주문제작을 해야했고 비용도 더 나갔다.
태수는 다행히 그리 살이 붙지도, 마르지도 않은 타입이라 아주 넉넉하게 기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센서에 팔과 다리를 넣고, 'OK'확인이 뜨자 태수는 동기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누르는 순간 태수는 공식 사이트에서 절대로 기기에 접속하지 말라는 공지사항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너무 급했다-! 샹, 뭐 그래도 크게 별 일은 없겠지'
밤꽃무림 - 이계편.
도대체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렇게 조바심이 나서 정신나간 행동을 하다니.
태수는 걱정스러움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가운데, 괜찮을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렸다.
[이름을 지어주세요]
[한 번 지은 이름은 원칙상 변경할 수 없습니다]
'어?'
태수는 눈에 보이는 홀로그램 메시지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보이는 메시지는 창천무림 사전캐릭터 생성할 때, 보았던 것이었다.
지금은 사전캐릭터 생성 기간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기가 구동은 되도 동기화 접속까지는 되지 않아야 했다.
'버그인가? 지금 나만 이렇게 사전캐릭터 창을 보고 있는 건가, 버그로?'
태수는 뭔가 기기에 오류가 있다는 걸 인지했다.
'이렇게 된 김에 구경이라도 할까?'
태수는 당연히 마음만 먹으면 기기에서 로그아웃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기화 해제 명령어 혹은, 긴급 탈출 기능으로 동기화 해제 버튼을 직접 누를 수 있게끔 기기가 설계되어 있었으니까.
"이름은 '태수'로 짓겠어"
[이름 '태수' 확인되었습니다]
[초기 지역은 무작위로 설정됩니다]
[그러면 즐거운 '밤꽃무림 - 이계편'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어어?
이게 아닌데? 태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원래대로라면 무슨 오류가 일어나, 서버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라던가, 그런 오류성 문구가 떠야만 했다.
왜냐고? 지금 서버가 열리지 않았으니까!
사전예약 기간에 동기화를 하고, 캐릭터를 생성하고, 접속까지 해버린다?
스르르-
아바타를 만드는 캐릭터 생성 공간에서 벗어나, 풀냄새가 가볍게 밀려왔다.
정말 밤꽃무림 세계로 들어왔다.
현실과 다름없는 감각이다.
살가운 공기가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끼며, 태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인가?"
보통 초기 지역은 번화가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외진 풀숲이라니.
아니, 일단 로그아웃부터 해야겠지.
'로그아웃-!'
[현재 사용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아까부터 뭔가 기시감을 느낀 태수는 불안감에 로그아웃을 속으로 외쳤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용할 수 없다고-?'
태수의 등에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혹시, 본인이 생각한 게 맞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 긴급탈출 명령어를 속으로 외쳤다.
'긴급탈출-!'
[현재 사용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아니, 긴급탈출도 사용할 수 없다고?"
긴급탈출 기능은 기기의 전원이 off인 상태에도 발동되는 기능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지금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정말 이대로라면 기기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태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목이 타들어 말라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로그아웃을 계속 시도해보았지만, 먹히질 않았고 접속해제하는 걸 체념한 태수는 일단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밤꽃무림은 아바타를 만들면 무작위로 특성 1개가 주어진다고 했지'
밤꽃무림에 특성은 굉장히 중요한 지표였다.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성장력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
그렇기에, 밸런스가 중요한 온라인 모드에서는 사기적인 특성이 아니라, 제한된 특성 중에 하나를 무작위로 얻게 된다.
물론, 싱글 모드에서는 모든 특성 중에 하나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접속한 모드가 싱글이었나?'
'아니, 애초에 모드를 딱히 설정하지는 않았잖아'
태수는 아까의 기억을 더듬으며, 상태창을 켰다.
[이름] - 태수
[레벨] - 1
[특성▼]
[특성 포인트] - 0
[무공▼]
[무공 포인트] - 0
▼버튼을 눌러 보유하고 있는 특성과 무공을 확인했다.
▼특성
악의 심판자(S랭크)
[악의 심판자(S랭크)]
-본인이 규정한 악을 상대로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악을 처치할 시, 상대의 능력치를 일정 수치 얻을 수 있습니다
"호오-?"
S랭크라니.
S랭크 정도면 매우 희귀한 축에 속했다.
커뮤니티에서 C랭크만 나와도 감지덕지한다는 한 유저의 글이 떠올랐다.
능력도 괜찮았다.
본인이 규정한 악을 상대로 모든 능력치가 50%이라니. 이건 정말 사기적인 능력이지 않은가.
[당신의 악은 무엇입니까?]
[한 번 규정한 악은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거, 부딪히는 적들이 최대한 '나의 악'에 들어오도록 설정해야겠지?'
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름대로 꼼수를 부렸다.
"나와 맞서는 적"
[너무나 방대합니다.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아.."
아쉽게도 시스템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그렇다면..'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
[너무나 방대합니다.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것도 안된다고?'
그렇다면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태수는 왜 자신이 여기로 왔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랬더니, 너무나 답이 간단히 도출되었다. 그에 따른 답도.
"나의 성생활을 방해하는 적"
[악이 규정되었습니다]
[성생활을 방해하는 악을 만났을 때,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하고, 악을 처치할 시 상대의 능력치 일정 수치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이게 되네?
자신의 대답이 먹히자, 태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공
-보유한 무공이 없습니다
나머지, 무공은 처음 접속했으니 당연히 없었다.
"흐음-"
특성과 무공을 확인했으니 기본적인 건 다 확인한 셈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 신경쓸 게 많았다.
과연, 이곳에서 수면을 취할 필요가 있는가?
혹은 배고프면 밥도 먹어야 하는가?
'분명, 둘 다 해야 되겠지. 졸리면 잠도 자야하고, 배고프면 밥도 먹어야 할 거야'
하지만, 상황의 여의치 않았다.
일단, 외진 숲이 초기 지역이라는 게 제일 큰 문제였고, 번화가에 간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었다.
돈이 없으니, 먹는 게 해결이 되지 않는 게 당연했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을 것이다.
"돈부터 먼저 벌어야 하나"
태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밤꽃무림이라는 므훗한 세계지만, 이곳도 엄연히 무림이었다.
은원에 따라 움직이는 잔혹한 세계이며 강자생존, 약자멸시가 당연한 세계였다.
원래대로였다면 주어진 게임 스토리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며, 강해지고 그 안에서 미녀들을 따먹으며 다녔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내 생존부터 제대로 찾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강제 탈출 기능도 안되는 마당에, 죽는다고 해서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었다.
만약에 죽는다면 정말 그것으로 끝일지도 모르는 마당이고, 일단 죽는다는 것 자체가 당연히 싫었다.
"이 감각들, 이건 정말 현실이야"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의 감각은 아무리 가상현실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구현하기 힘들다는 것을.
확실히 자신은 이곳에서 뜨거운 숨을 내쉬며 살아있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 시스템은 내 몸에 적용되고 있어"
그것이 강점이라고 하면 강점일 수 있겠다.
"인벤토리-"
속으로 외치든, 입으로 외치든 인벤토리를 원하면 허공에 아공간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수납이 가능했다.
레벨이 늘어날수록 인벤토리의 기능이 더 향상된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미니맵이란 것이 존재해, 자신의 눈으로 한번 확인한 지역들은 미니맵에 기억이 남아 원격으로 그곳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야말로 게임 시스템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일단,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부터 찾아야겠다"
게임 시스템을 확인한 태수는 일단 살기 위해 사람들이 있는 마을을 찾기 시작했다.
무슨 일감이라도 찾아야, 그 삯으로 먹을 걸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은 일 시켜줄 곳도 없고, 돈이 있더라도 식당이 없어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조차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뭐 지리를 모르니까 대책이 없네"
한 20분 정도 걸었을까, 체력도 체력인데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이 마을이라는 확신이 없으니 기분탓에 더욱 힘이 들었다.
울창한 숲, 태수가 거대한 나무 그늘 밑에 잠시 앉아 쉬려던 그때.
사사삭-
동물의 날랜 발걸음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태수의 귀에 들어왔다.
원래 산에 살던 자연인이 아닌 이상, 이 울창한 숲에 사람이 들어올 일이 있을까?
'흐음-'
태수는 어떻든 간에, 저 발걸음 소리에 걸어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간에, 일단 길 좀 제발 묻고 싶었다.
현대인들마저도 여행을 갈 때, 인터넷을 통해 사전정보를 구하고 그럼에도 여행지에서 길을 잃어 주변 현지인들에게 길을 묻곤 하는데 자신은 아예 정보 자체가 없지 않은가.
"흐읍-!"
'..!?'
일단, 먼저 나서기는 그렇고 운좋게 자신과 눈이 맞닿는 걸 바랬던 태수였다.
그런데, 나무 밑 그늘에 잠시 앉아 쉬고 있던 태수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18~20세 정도로 보이는 한 여인이 신법을 사용했는지, 태수 앞 10미터의 거리도 안되는 곳에 갑자기 나타나 지친듯 축 늘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