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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함락]
김 이혁이 찾아 왔다고 서 민영한테서 연락이 왔다.
심지어 서 민영에게서 연락이 온 건, 그녀가 김 이혁에게 이별통보를 한 바로 다음 날인 이른 아침이었다.
그 남자, 이른 아침서부터 민영을 찾아간 걸 보니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그만큼 그 여자에게 푹 빠져있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덕분에 나는 이른 아침서부터 꽤나 바쁘게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긴가.”
민영이 알려준 장소로 가보니, 후미진 골목길 안쪽에서 서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명의 남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본 나는 재빨리 몸을 숨긴 뒤에 서 민영과 김 이혁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둘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말했잖아! 더 이상 당신하고 만나고 싶지 않다고!”
“난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어! 널 위해서 이렇게……. 이혼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헤어지자니! 지금 와서 이러면 내가 뭐가 되냐고!”
“그래서 지금 당신이 이혼한 게 내 탓이란 거야? 애당초 당신이 제멋대로 한 일이잖아! 누가 당신보고 이혼해 달라고 했어?”
“뭐, 뭐! 지금 말 다했어?”
바락 바락 대드는 민영의 태도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모양인지, 김 이혁이 버럭 화를 내며 제 손을 어깨 높이까지 치켜들었다.
“왜 치게? 쳐! 쳐 봐!”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위축 될 법도 하건만 서 민영은 되레 크게 소리치며 자신의 뺨을 내밀어보이기까지 했다. 이에 김 이혁은 잠시 몸을 멈칫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 개같은 년이!’라고 소리치며 세차게 민영의 뺨을 때렸다.
“꺅!”
어찌나 세게 친 건지, 민영의 몸이 단숨에 허물어지며 옆으로 쓰러졌다.
“너 같은 걸레년이 날 무시해? 네가 날……? 어떻게 날 무시할 수가 있어!”
대뜸 소리쳐 말한 그는 자신의 바지춤을 끌어내렸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여기서 민영을 강간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다소 어처구니없는 행동이긴 했지만, 다소 이른 시간이라는 점과 인적이 드문 후미진 골목길 안쪽이란 점이 그를 과감하게 만들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조금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증거로 김 이혁은 지금 흥분감에 사로잡힌 채로 입가를 이죽거리고 있었다.
“뭐, 뭐 하려는 거야?”
이처럼 바지를 벗고 있는 김 이혁의 태도에 민영이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소리치자, 그가 질 나쁘게 히죽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뭐하기는? 너 같이 음란한 년들한테는 이게 약이지!”
크게 소리쳐 말한 그는 지금 당장에라도 민영을 범할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인간말종인 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눈살을 와락 찌푸린 나는 서둘러 경찰서에 신고한 뒤에 민영의 옷을 거의 찢다시피 해서 벗기고 있는 김 이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쯤 하시죠?”
이런 내 말에 그는 반쯤 정신 나간 눈초리로 나를 돌아보았다.
“엉? 넌 또 뭐……. 유, 유 세현? 당신이 도대체 여기는 왜……!”
“제가 어디에 있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보다…….”
잠시 말끝을 흐린 나는 김 이혁과 서 민영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그리곤 짐짓 성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여자를 강간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그러고도 당신이 사람입니까?”
“자, 잠깐 이건 말이야.”
당황한 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려고 했다.
“이보세요!”
이리 소리친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김 이혁의 손목을 꺾었다.
“악! 놔, 놔! 난 아무런 잘 못도 없어!”
“이미 다 봤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증거가 버젓이 있는데, 발뺌할 셈입니까?”
“윽! 아니야, 저 년이 먼저 날 유혹해서……! 놓으라고!”
이렇듯 내가 김 이혁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이곳에 도착한 모양인지 저 멀리서 뛰어오고 있는 경찰관 두 명이 보였다.
“도와주세요! 저 남자가 절 강간하려고 했어요! 저 남자에요!”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경찰관을 발견한 서 민영이 찢어진 자기 옷을 두 손으로 꽉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말에 경찰관들은 곧바로 나를 도와서 김 이혁의 몸을 붙잡았다.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도록 말이다.
“으아아! 놔! 놓으라고! 난 아니라고! 이건 전부 다 저 걸레 같은 년이 날 유혹해서……!”
발악하듯 크게 소리치던 김 이혁은 돌연 나와 서 민영을 한 번씩 돌아보더니, 곧 무언가 크게 깨달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소리쳤다.
“……당신이지! 유 세현, 당신이 전부 다 꾸민 일이지? 그렇지!”
보아하니 나와 서 민영의 관계를 눈치 챈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 상황은 그 누가 보아도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워서, 이상하게 여겨질 법도 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술집에서 김 이혁이 서 민영을 만났던 건, 나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나와 서 민영이 무언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쯤은 눈치 챌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김 이혁은 젊은 나이에 대기업에 취직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나는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가 앞뒤 정황을 파악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었다.
“개소리마! 이거 전부 다 당신이 꾸민 일이잖아! 저 여자도 그렇고……. 내가, 내가 이대로만 당하고 있을 거 같아? 두고 봐! 두고 보라고!”
김 이혁은 경찰차에 오를 때까지 그렇게 소리쳤고, 나와 서 민영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뒤따라 온 경찰차에 올라 동행해서 서까지 갔다.
그 뒤는 순조로웠다.
운이 좋게도 그 골목길에 CCTV가 있었고, 그 CCTV를 통해 폭행 사실과 강간하려는 협의가 드러난 까닭이었다.
내가 촬영한 동영상까지 쓸 필요도 없었다.
‘끝났군.’
모르긴 몰라도 김 이혁, 그 남자의 인생은 이걸로 완전히 끝난 셈이었다.
“이거 봐봐, 벌써 인터넷 기사까지 떴어.”
그렇게 경찰서를 나와 서 민영과 함께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돌연 그녀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말대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 인터넷 기사로 올라와있었다.
기사를 빠르게 읽어 내려간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인간 인생, 완전히 쫑 났네?”
이 사실에 민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기지개를 폈다.
한 남자의 인생을 파탄 낸 여자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만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오소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가볍게 몸서리친 나는 혹시 다른 인터넷 기사들도 있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때, 민영의 스마트폰이 벨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그녀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었고, 그렇게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그녀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네, 네? 그게 정말인가요?”
“무슨 내용이기에 그래?”
놀란 목소리로 연신 소리치는 민영의 태도에 내가 물음을 던지자, 그녀가 제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몇 번 헛숨을 들이켜더니 곧 다급히 내게 말했다.
“그 남자가 경찰서를 도망쳐나갔대!”
“뭐?”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도망친 모양이야. 어떡해?”
“경찰서에서는 뭐래?”
“일단 그 남자가 잡힐 때까진 조심하라고 하는데……. 아니면 경찰서에 있던가.”
그 말에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민영보고 경찰서에 가있으라 했다.
경찰서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가 김 이혁, 그 남자에게 걸리면 무슨 심한 꼴을 당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 대해선 민영도 어느 정도 동감하는 모양인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곤 나와 함께 경찰서로 갔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이처럼 민영을 경찰서에 두고 나온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게 다 내가 꾸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김 이혁이라면 틀림없이 내게도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같은 체급의 남성에게 물리적인 복수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복수라면…….
‘예나인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부인에게도 알리려 들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이 생각이 머릿속에 든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부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김 이혁이 부인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부 다 이야기한다면 분명 적잖게 충격을 받을 게 틀림없었다.
설혹 부인이 충격을 먹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김 이혁은 내게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부인을 강제로 범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엔……. 정말로 최악 중에 최악의 경우라면 김 이혁이 부인을 죽이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와 함께 계획을 짠 것이 아니냐면서 말이다.
“제길!”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서둘러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이 때,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벌써 무슨 일이 일어난 거 아냐?’
나는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던지고는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이윽고 아파트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차를 주차한 뒤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 후, 집 앞에 도착한 순간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미 누군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이런!”
이를 으득 갈은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어,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거실 부근에서 김 이혁이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까지 다 속은 거라고! 그 자식한테……. 당신도, 나도! 완전히 속아 넘어간 거라고! 유 세현, 그 자식이 그 여자랑 짜고서 날……. 날 범죄자로 만들어서 합의금을 뜯어먹을 생각이었다니까!”
버럭버럭 성을 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짜고짜 덮치진 않았나보네.’
최소한의 선이 지켜지고 있단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그래서……. 그래서 당신은 제게 뭘 바라는 건데요?”
돌연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인지, 목소리가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우리도 똑같이 복수해주자는 거야! 내가 그 놈한테 당했던 것처럼 똑같이 그대로 돌려주자니까?”
“똑같이……?”
“그래! 이제까지 그 놈한테 강간당했다고 하는 거야! 그럼 그 놈도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리지 않겠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거라고? 당신도 사실은 나랑 이혼하기 싫지? 안 그래?”
“…….”
그 말에 부인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부인에게만큼은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기만을 바랬는데……. 하다못해 내 입으로 직접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김 이혁이 경찰서에서 도망쳐 나올 줄이야.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부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부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싫어요.”
“싫다니!”
“말 그대로에요.”
차디찬 목소리로 대답한 부인은 똑바로 김 이혁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 당신하고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이제 김 이혁의 아내가 아닌 유 세현의 아내니까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의 뜻을 밝힌 부인은 연분홍빛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리며 떨려왔다. 이 정도로 부인이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돌아가 주세요.”
“뭐? 지, 지금 나보고 돌아가라고 한 거야? 이 여편네가 정말로 미쳤나!”
……부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운명, 그야말로 운명이었을 것이다.
내가 부인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건 말이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부인을 향해 손찌검을 하려는 김 이혁의 행동에 나는 재빨리 앞으로 나서서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아니, 제지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랐기에,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아 행동을 제지하는 동시에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쳤다.
퍽!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거실 바닥에 나뒹굴어진 그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두 팔과 두 다리를 움직여 도망치려고 했다. 이에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
“놔, 놔! 놓으라고! 내, 내가 누군지나 알아?”
버럭 버럭 소리치며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김 이혁의 태도에 나는 더더욱 손아귀에 힘을 주어 그의 목덜미를 꽉 하고 붙잡았다. 그러나 그 순간 부인이 내 팔을 부여잡으며 나와 그 사이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예나 씨?”
“놓아주세요.”
“하지만…….”
“부탁이에요!”
부인답지 않게 크게 소리치며 강하게 내 팔을 붙잡는 부인의 행동에 나는 그만 김 이혁을 놓치고 말았다. 덕분에 그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 집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그 광경에 잠시 넋 놓고 바라보던 나는 이내 부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음을 던졌다.
“어째서 그런 겁니까?”
이러한 내 추궁에 부인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은 제 남편이었으니까요. 미안해서……. 사실 그 동안, 제가 그 사람을 배신했었던 거니까요.”
“배신이라니요?”
“저 전부 다 알고 있었어요. 제가……. 제가 세현 씨와 했던 일들이 사실은 그 이를 배신하는 행동이었다는 걸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너무, 너무 좋았는걸요. 세현 씨하고 있으면 너무 행복해서…….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게 되어버려서……. 그러니까 모른 척 한 거예요! 전부 다 세현 씨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서……. 그러니까 저는 그 이를 탓할 자격이 없어요.”
“예나 씨…….”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부인의 작은 손이 내 팔을 꽉 하고 붙잡았다.
그 손짓, 몸짓, 표정들이 너무나도 가엾어 보여서 더 이상 김 이혁을 쫓아갈 기운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부인을 다독여주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부인은 내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었다.
“알았어요.”
“세현 씨…….”
이러한 내 말에 부인은 사뭇 감동받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품 안으로 안겨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부인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나는 살포시 그녀를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사실 그 동안 제가 예나 씨에게 숨긴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숨긴 거요?”
“네, 그렇습니다. 되도록이면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린 나는 살며시 부인의 안색을 살피곤 이내 차분히 입을 열어 고백했다.
“……말해야 될 것 같더군요. 이 이상 예나 씨를 속이고 싶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거짓 없이 예나 씨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세현 씨…….”
한 차례 크게 심호흡을 한 나는 각오를 한껏 굳힌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김 이혁 씨와 사귀고 있었던 여자……. 그 여자를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 여자와…….”
잤습니다. 라는 말을 하려는데, 돌연 부인이 내 손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그만 말해도 돼요. 저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니요?”
“저번에……. 우연히 들었어요. 정말로 세현 씨, 말대로……. 다 들리더라고요. 옆집의 소리가…….”
“아…….”
“솔직히 말해서 충격이었어요. 세현 씨가 저 말고 다른 여자하고…….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사실에 불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어요. 그 이가 저에게 했었던 것처럼 세현 씨도 저를 버릴까봐…….”
부인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저……. 믿기로 했는걸요. 세현 씨를…….”
그러면서 환하게 웃어 보이는 부인의 태도에 일순 자욱하게 꼈던 먹구름이 걷히는 것처럼 주변이 환해졌다. 너무 밝아서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였다. 아, 어쩌면 부인은 신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절로 떠오를 지경이었다.
“고마워요, 예나 씨.”
“아니에요. 저야말로 고마워요. 사실대로 이야기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기뻐해하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부인의 태도에 환하게 웃어 보인 나는 그대로 그녀의 몸을 재차 끌어안아주었다. 이로서 더 이상 거릴 낄 것이 없어졌다. 속이 후련하다고 해야 하나. 이 기쁨을 끌어안고서 당장에 부인과 결혼식을 치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인의 등을 부드럽게 다독이며 끌어안는데…….
-끼이익!
돌연 열린 현관문 밖으로 타이어 긁히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서둘러 부인과 함께 현관 밖으로 나가 복도에 나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차에 치인 듯이 차도에 너부러져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리고 그 남성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순간, 부인이 자지러지는 듯한 탄성을 내뱉으며 자신의 입을 양 손으로 가로막았다.
‘경찰을 피해 도망치다가 그만 차에 치인 건가.’
쓰게 혀를 찬 나는 말없이 부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끌어안아주었다.
그에겐 다소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게 다 인과응보인 것 같다.
이러한 생각에 나는 다시금 고개를 가로젓고는 부인이 더 이상으로 김 이혁의 모습을 보지 못 하도록 꽉 안아주었다.
“들어가 계세요.”
“하, 하지만……!”
“별 일 아닐 겁니다.”
이리 말하며 부인을 다독여 집 안으로 들여보낸 나는 서둘러 아파트를 나와 구급차에 오르고 있는 김 이혁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더불어 그 주변에는 요번 경찰서에서 보았던 경찰 분도 계셨는데, 이에 나는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겨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에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경찰차를 보고 피하려다가 사고가 난 거지요.”
“크게 다친 겁니까?”
“글쎄요. 경과를 지켜봐야겠죠. 하지만 그리 심하게 사고가 난 게 아니라서 목숨까진 잃지 않을 거라 하더군요.”
이 말에 나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 ∵ ∴ ∵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날, 나는 김 이혁, 그 남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너, 너……!!”
내가 병실로 들어서자, 김 이혁이 뒷목을 잡으며 날 향해 삿대질 했다. 심지어 게거품까지 물었다.
어지간히도 분했던 모양이었다.
그 광경에 살짝 비웃음을 흘린 나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그의 주변에 앉았다.
“수술이 잘 끝났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잘 끝난 것 같군요.”
나는 그의 팔이며 다리, 그리고 목에 감겨있는 붕대를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꼼짝하지 못 할 것이다. 그저 그는 씩씩대며 분해할 뿐이겠지.
이 생각에 재차 비웃음을 흘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나 열을 내는 걸 보니까요.”
“유, 유 세현……! 너 이 자식!”
“벌써부터 그렇게 열 내지 마세요.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으니까요.”
보란 듯이 크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손등으로 문을 두드려서 밖의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곧장 문이 열리며 부인과 민영, 두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김 이혁, 그 남자도 그 둘이 같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 한 듯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뭐, 뭐야? 너희 둘이 왜……. 어째서 같이?”
그러면서 두 여인을 번갈아보는 그의 태도에 여유롭게 미소를 띠워 보인 나는 어느덧 내 곁으로 다가온 두 여성을 한 번에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소개하겠습니다. 제 아내인 이 예나와…….”
이리 말한 나는 부인의 입술에 입을 맞춘 뒤에 말을 이었다.
“……서 민영입니다.”
라고 말한 뒤에 곧장 민영의 입술에도 입을 맞췄다. 그러자 김 이혁은 완전히 넋이 빠진 표정을 하고서 한동안 허허허 하고 웃어대더니 급기야 실성한 사람마냥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서 사랑스런 두 부인에게 입맞춤 하며 애정을 과시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모습을 한동안 멍청하니 바라보던 김 이혁이 돌연 입을 열어 물음을 던졌다.
“왜? 어째서……? 어째서 내가 아닌 저 녀석이야!”
그가 버럭 성을 내며 물음을 던지자, 부인과 민영.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당신은 형편없고, 이 사람은 굉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