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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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함락]

“날씨가 좋네.”

복도에 나있는 창문을 통해 바깥 날씨를 확인한 나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리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 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나는 거기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타고 곧장 부모님이 사시는 집으로 향했다.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기도 하니, 다들 집에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점심 이후에 일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이른 아침이라면 분명 다들 집에 있을 게 틀림없었다. 이러한 생각에 나는 한층 더 속도를 내어 주택가로 들어섰다. 그리고 거기서 낯익은 저택을 발견한 나는 천천히 속도를 줄여 그 앞에 주차했다.

“일 년만인가…….”

이제와 생각해보니 집을 나온 지도 어느덧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형은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회사를 이어받을 준비도 착실히 한 것에 비해, 나는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며 고작 작은 회사 하나를 꾸렸을 뿐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회사도 순수하게 내 힘만으로 세운 것이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아버지가 도와주셨기에 이 정도로 성장한 거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진작 파산했거나 입에 간신히 풀칠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젠 뭐 상관없지만.’

이러한 생각에 차에서 내린 나는 곧장 차임벨을 눌렀다. 그러자 인터폰 너머로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누군지를 묻는 여성의 목소리에 내 이름을 대자, 그녀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깜짝 놀란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도련님?”

이리 말하는 것을 보니, 지금 인터폰을 잡고 있는 여성이 내 형의 아내……. 즉, 형수 되는 사람인가보다. 이러한 생각에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문을 열어 달라하려는데, 별안간 툭 하고 인터폰이 끊어졌다.

“……?”

이 당혹스런 상황에 할 말을 잃는데, 돌연 집 문이 열리더니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죄송해요. 반년 만에 보게 되는 도련님이라……. 이왕이면 직접 마중 나오고 싶었거든요.”

형의 결혼식 이후로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던 형수를 이렇게 반 년 만에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된 나는 짐짓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형수님. 이렇게 직접 나와서 맞이해주시는데 죄송은요.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죠.”

“감사라니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튼 어서 들어오세요. 다들 도련님을 보시면 기뻐해하실 거예요.”

그러면서 문을 열어준 형수는 무척이나 해맑게 웃어보였다. 동시에 크게 위아래로 출렁이는 가슴이 내 눈에 들어왔는데, 결혼식 당일에는 그것이 단순히 가슴 패드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가슴 성형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형수는 부인과 같은 자연산이었다.

“도련님?”

가만 서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긴 형수가 나를 부르자, 나는 서둘러 고개를 들어 올리며 답했다.

“아, 네. 가죠.”

이리 말한 나는 슬쩍 형수의 얼굴을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보기 드물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어디 모 기업의 사장 딸이라고 얼핏 들었었는데, 확실히 그 말이 확연하게 와 닿을 정도로 부잣집 아가씨의 모양새가 났다.

‘안 그런 줄 알았는데, 형도 여자 얼굴을 보는 건가.’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형수를 따라 집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다정히 차를 마시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습을 보아하니 아침 식사는 일찍이 마친 모양이었다.

“세현아!”

내가 집 안으로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나를 부르더니, 한걸음을 달려와 내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마치 몇 년 만에 해후한 것 마냥 어머니는 감격에 겨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얼굴을 더듬더듬 거리며 피부가 이게 다 뭐니? 부터 시작해서 밥은 잘 먹고 다닌 거야? 라는 말까지 줄줄 내뱉으셨다.

“녀석아, 전화 한 통도 없이 아침부터 뭘 대뜸 찾아온 거냐?”

이런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는 다짜고짜 내게 호통부터 치셨다.

“여보! 오랜만에 온 아들한테 무슨 소리에요? 세현아, 소식 없이 와도 좋으니까 집에 좀 자주 들어와.”

이에 버럭 소리치신 어머니는 나를 끌고 소파에 앉혀주셨다. 이렇게 소파에 앉게 된 나는 오랜만에 마주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한 차례 번갈아 보곤 오랜만에 가족과 만난 해후를 느낄 새도 없이 서둘러 이야기를 꺼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워낙에 급한 일이다보니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못 했습니다.”

“급한 일?”

“네, 사실……. 저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까지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만에 불숙 찾아온 아들이 한다는 말이 결혼 이야기다. 놀랄 만도 한 이야기였다. 이에 나는 어느새 형수가 가져다 준 차를 한 모금을 마시곤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형을 도와 회사를 이끌어 가고자 합니다. 물론 제가 운영하는 회사는 정리하고요.”

“그게 정말이냐?”

아버지는 내가 앞서 말한 결혼 이야기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음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집을 나온 것도 다 아버지가 나보고 형을 도와 회사를 이끌라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네. 저도 이제 한 여자의 남편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렇게만 살 수는 없겠더라고요.”

이 말에 아버지는 무척이나 흡족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지만 이에 반해 어머니는 그다지 탐탁지 않아 해하는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형의 신붓감도 어머니가 찾으셨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내 신붓감도 어머니가 진작 물색하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산되어버렸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실 거다.

“잘 생각했다. 그래, 며느리는 어느 집안사람이냐?”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별 다른 집안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여자입니다.”

“그래?”

이러한 내 말에 아버지는 살짝 난색해하셨지만 차후 별다른 말은 하시지 않았다.

“아들! 그럼 이름하고 나이는 어떻게 되니? 학력은 어디고?”

“어머니, 지금 취조하시는 건 아니죠?”

내 물음에 어머니는 표정을 와락 찌푸리시더니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바른대로 말해.”

그러면서 나를 보채는 어머니의 태도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부인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아들, 그렇게 안 봤는데 눈이 참 낮네.”

어머니는 여전히 이 결혼이 탐탁지 않은 모양인지 연신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이 결혼에 반대하려는 듯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딱히 걸고 넘어갈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어느 정도 숨긴 것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이혼 여부라던가.

“어머니도 예나 씨를 보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말로만? 마음에 들려면 일단 얼굴부터 봐야하지 않겠어? 그래야지 마음에 들던가, 말던가 하지.”

이러한 어머니의 말에 허허 웃어 보인 나는 그대로 짐짓 일어날 채비를 했다.

“그럼 다음번에 데려오겠습니다.”

“벌써 가게?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려고?”

“아직 회사에 업무가 남아서요. 얼른 가봐야죠.”

“잠깐만! 엄마가 반찬거리 좀 싸줄게. 들고 가.”

이리 말한 어머니는 다급히 형수와 함께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로서 거실에는 아버지와 나, 단 둘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 사실에 만족한 나는 몸을 아버지 쪽으로 돌려 다소 진지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또 있는 거냐?”

그러면서 은근히 호기심을 내비쳐 보이시는 아버지의 반응에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곤 다음 말을 이었다.

“이번에 저와 결혼할 예나 씨,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사실……. 이혼녀입니다.”

“허참.”

이 말에 아버지는 의외로 놀란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저 담담하게 헛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인석아! 네가 일부러 내게 따로 말하는 이유로 그런 것 말고 또 뭐가 있겠냐?”

이러한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어머니 몰래 이야기 할 만한 거라면……. 역시 상대가 이혼녀라는 것 정도 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머니께는 비밀로 해주세요.”

“그걸 왜 내게 부탁하는 거냐? 네가 직접 말해서 잘 설득해야지.”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어머니 성격.”

“그걸 아는 녀석이 고집을 부리는 거냐?”

“그래서 아버지께 이렇게 부탁드리는 거잖아요. 이 일만 제 뜻대로 해주시면 앞으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를 게요.”

이런 내 통사정에 아버지는 그제야 벙긋 웃어 보이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근엄한 표정을 지어보이시며 이리 말씀하셨다.

“한 번 노력은 해보마.”

이걸로 충분하다. 아버지라면 충분히 어머니의 귀에 부인이 이혼녀라는 사실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실 것이다. 설혹 어머니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간다 해도 그건 결혼식 당일이거나 결혼 이후일 것이다. 그때 가서 아신다 해도 어머니가 따로 어찌 하실 건 없었다. 

“아버지만 믿겠습니다.”

충분히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낸 나는 고개를 깊이 숙여 아버지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자, 형수와 함께 여러 반찬통을 들고 걸어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 몰래 무슨 얘기를 그렇게들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면서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와 아버지를 훑어보는 어머니의 시선에 나는 한 차례 헛기침을 한 뒤에 답했다.

“잠시 회사 일 좀 의논했습니다.”

“무슨 벌써부터 회사 얘기니……. 하여간 남자들이란.”

이리 말씀하신 어머니는 연신 툴툴 거리며 내게 반찬통을 건네주셨다.

“……가서 먹어. 그리고 집에는 언제 들어올 거니?”

“식을 올리는 대로 집에 들어오겠습니다. 그런데……. 형은 방에 있나요? 오랜만에 형 얼굴 좀 보고 싶은데…….”

이러한 내 말에 어머니는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네 형은 아침 일찍부터 출근했다. 무슨 일을 주말에까지 나가서 하는지……. 네 형만 보면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아. 그러니까 아들, 어서 집에 들어와서 네 형 좀 도와. 이러다가 골병들겠어.”

“네, 네. 그럴게요.”

이리 답하며 반찬통을 건네받은 나는 쓰게 웃어보였다.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 정도로 일중독일 줄은 생각도 못 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일이 좋다고는 하지만 주말에는 좀 쉬어도 될 텐데……. 참으로 고지식한 양반이다. 심지어 이런 미인인 형수까지 두고서 말이다.

“……아무튼 가볼게요.”

이 말과 함께 뒤돌아서려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아쉬운 모양인지, 꼭 붙잡고 있는 내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아들, 일이 그렇게나 바쁜 거야? 점심이라도 들고 가지.”

“저도 그러고 싶은데 어서 빨리 집에 들어오려면 어쩔 수 없어요. 이해해주세요.”

“하아……. 알았어.”

그제야 손을 떼어놓으신 어머니는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집 밖까지 마중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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