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34 / 0052 (34/52)

0034 / 0052 ----------------------------------------------

[부인함락]

“…….”

한순간 부인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이에 나는 다급히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예나 씨.”

“흐윽……. 흑…….”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 사실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인지, 부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아니, 질리기만 했을까? 부인은 옥구슬과도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흐느껴 울기만 했다.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서, 부인을 다그쳤다.

“예나 씨,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당장 밖으로 나가서 따져야지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면서요.”

“뭐, 뭐를요? 뭘 더 따져보란 거예요? 저렇게……. 저렇게 다른 여자랑 모텔에서…….”

그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부인의 태도에 나는 재빨리 그녀의 몸을 일으켜 말했다.

“그럼 이대로 그냥 보낼 생각입니까?”

“그, 그럼 제가……. 제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 건데요?”

“뭘 해야 하긴요! 지금 당장 남편 분에게 가서 따지셔야죠. 그게 안 된다면 저 여자의 머리끄덩이라도 잡아당기던가요.”

이처럼 내가 크게 소리쳐 말하자, 그제야 부인도 자신이 뭘 해야 될지 깨달았다는 듯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차 밖으로 나갔다. 

그 후, 남편의 앞에 선 부인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보.”

“너, 너가 여길 어떻게……!”

“그 여자는 대체 누구예요? 당신……. 분명히 저한테는 회사에 일이 생겨서 출장이라고……. 꺅!”

그러나 부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의 손이 날아와, 그녀의 뺨을 때렸다. 

이건 전혀 예상지도 못 한 일이었기에 나는 그만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갑자기 다짜고짜 손찌검이라니? 그것도 외도를 한 당사자가 말이다. 

설마 부인과 나 사이를 눈치 챈 건가? 이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고 있는데, 돌연 김 이혁이 잔뜩 성난 말투로 언성을 높였다.

“너가 여길 어디라고 온 거야? 마누라가 말이야, 집에서 살림이나 할 것이지 남편의 뒤를 밟아? 아니지, 너 설마 딴 놈이랑 눈이 맞아서 여기 온 거 아냐? 그래놓고 괜히 나한테……. 하, 참 그 놈 얼굴이나 한번 보자!”

라며 내가 타고 있는 차 쪽으로 걸어오는 남편의 태도에 나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지고 말았다. 

뭐 저런 인간말종이 있다는 말인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차 밖으로 나가서 따지려는데, 돌연 부인이 남편의 앞을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상관없어요!”

“뭐? 그 사람? 지금 이게 뭐 하잔 짓이야!”

이처럼 부인이 앞을 가로막자, 그는 마치 부인의 약점이라도 잡은 사람처럼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재차 손을 올렸다. 또다시 부인에게 손찌검을 할 생각인 듯이 싶었다. 이에 나는 다급히 차 밖으로 나가, 그의 손이 부인의 뺨을 때리기 전에 붙잡아 막았다.

“그쯤에서 그만 두시죠, 김 이혁 씨.”

“오호라, 네 놈이 내 마누라랑 바람 난……. 어라, 이거 유 세현 씨 아닙니까?”

나를 알아본 그는 적잖게 당황한 모양인지, 말을 더듬더듬 거렸다.

“제가 예나 씨를 데리고 왔습니다. 어젯밤에 우연치 않게 저 여자가 김 이혁 씨의 차에 타는 걸 보게 되어서 말이죠.”

“어, 어떻게 당신이…….”

“정도가 지나치셨습니다. 저는 이런 걸 원해서 김 이혁 씨를 두둔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리 말한 나는 그의 손목을 거의 내팽개치듯이 던지며 말을 이었다.

“……이럴 거면 아예 이혼 하십시오. 그게 두 분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 같네요.”

이러한 내 말에 일순 김 이혁 씨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곧 무언가 음험한 생각을 한 모양인지 환하게 웃어 보이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툭툭 건드리는 게 마치 더러운 쓰레기가 쓸고 지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혼? 이혼 좋지! 그럼 유 세현 씨가 알아서 하십시오. 안 그래도 저도 이 지긋지긋한 결혼 생활을 끝내고 싶었으니까요!”

보란 듯이 크게 소리쳐 말한 그는 서 민영을 데리고서 자신의 차에 오르더니, 그대로 쌩 하니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버렸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쓰레기잖아.’

김 이혁의 말을 가만 들어보니, 그는 애초부터 부인과 이혼할 생각뿐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식으로 뻔뻔하게 나갈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내가 이혼이란 단어를 꺼내기가 무섭게 화색을 띄우기까지 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이혼이라니요……. 저는 못 해요. 세현 씨, 저는 못 한다고요…….”

그 때, 옆에서 부인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충격을 많이 받은 모습이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부인은 근래에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가정에 충실했으며, 남편을 위해 헌신할 줄도 알았다. 심지어 결혼 전까지 순결을 간직하고 있었을 만큼 정숙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이혼이라니? 어떤 의미에선 남편의 외도보다도 더 심각하게 다가왔을 게 틀림없었다.

“진정하세요, 예나 씨. 일단 진정하시고…….”

“어, 어떻게 진정해요? 그 이가 저보고 이혼을 하자고……. 아아, 그런…….”

그러면서 바닥에 주저앉으려는 부인의 태도에 나는 다급히 그녀를 두 팔로 받쳐주었다.

그 후, 어찌 해야 되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왕지사 이렇게 된 김에……. 라는 생각으로 부인의 허리와 다리에 각각 팔을 끼워 넣어 몸을 들어올렸다.

“세, 세현 씨?”

그리고 이처럼 갑작스레 내 품에 안긴 채 들어올려진 부인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한 채, 그대로 부인과 함께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간단히 방 값을 계산한 나는 여전히 부인을 품에 안은 채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대, 대체 여기에는 왜 들어온 거예요!”

“계속 지하 주차장에 있을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여기에 앉으세요.”

이리 답한 나는 부인을 침대 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낸 나는 그녀의 손에 쥐어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제 멋대로 이혼 이야기를 꺼내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내가 고개 숙여 사과하자, 부인이 다급히 내 고개를 들어 올려주며 입을 열었다.

“아, 아니에요! 세현 씨 잘 못이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바보 같이 행동하는 바람에…….”

부인은 잠시 말끝을 늘리며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물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곧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제 탓이에요. 그 이가 저보고 이혼하자고 한 건…….”

“아무리 그래도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낸 건, 제가 아닙니까? 그러니 제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세현 씨가 아니었으면, 전……. 계속 그 이한테 당하고만 있었을 거예요. 제가 왜 당하는 지도 모른 채……. 게다가 그 이가 바람을 피운 건, 제가 그 이의 마음을 잡지 못 해서니까……. 다 제 잘 못이에요.”

그러면서 모든 탓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외도를 한 남편에게 잘 못을 떠넘길 수도, 이혼 이야기를 꺼낸 내게 잘 못을 떠넘길 수도 있었건만 부인은 바보같이 자기 자신의 무능함만을 탓했다. 

지독할 정도로 자기희생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예나 씨 탓이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안 남편 분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 이가 바람을 피운 걸 보면, 전부 다 제가 모자라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라고 말한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나는 서둘러 그녀의 몸을 끌어안아주며 다독여주었다.

“울지 마세요, 예나 씨.”

내 품 안에 안긴 부인은 여전히 흐느껴 우는 듯이 몸을 간헐적으로 떨었다. 그러다 고개를 살짝 든 그녀는 눈물로 범벅이 된 검은색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벌렸다.

“그 이가 이혼하자고 하면……. 저 어떻게 해야 되는 건가요? 세현 씨, 제가 그 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요?”

이러한 부인의 질문을 받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내밀어 부인의 입술을 덮쳤다. 그리곤 몇 번이고 그녀의 숨을 들이켠 나는 뺨에 얼룩져 있는 눈물 자국을 손으로 조심스레 닦아내주며 입을 열었다.

“돌리지 마세요.”

“세, 세현 씨…….”

“붙잡지도 마시고요.”

“하지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책임이라니요? 세현 씨가 왜…….”

“예나 씨의 남편과는 다르게 저는 예나 씨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이리 말한 나는 부인을 침대 위로 쓰러트리며 말을 이었다.

“……만약에 제가 싫다면 싫다고 말해주세요.”

“…….”

부인은 이런 내 행동에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김 이혁, 그 남자가 이렇게까지 상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대답하지 못 하고 있었다.

이런 부인이 너무나도 바보 같으면서도 가엾었다. 또한 사랑스러웠다. 지금 당장에 내 품 안에 가둔 뒤에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었다. 그 남자 따위보다 내가 훨씬 더 좋다는 걸, 몸과 마음에 새겨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혼하세요, 예나 씨.”

“…….”

“그리고 저와 결혼합시다.”

이 말과 동시에 부인의 입술에 한 차례 입을 맞춰주자, 부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부인에게 나는 조용히 말을 건네주었다.

“……대답은요?”

“하, 하지만 전…….”

“쉿, 다른 말은 필요 없습니다. 그냥 대답만 해주세요.”

라고 말하며 또다시 입맞춤을 해주자, 드디어 내가 원하는 대답이 부인의 자그마한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네…….”

부인은 이 상황이 당혹스러우면서도 부끄러운 모양인지, 양 볼을 붉게 물들이며 조신하게 답했다.

불안과 기대가 한데 뒤섞여 있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이다.

“그럼 오늘부터 예나 씨는 제 아내가 되는 겁니다. 아시겠죠?”

내 물음에 부인은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나는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부인의 뺨과 어깨 그리고 좀 더 손을 아래로 내려 가슴과 허리, 엉덩이를 차례대로 어루만졌다.

“하아…….”

이런 내 손길에 부인은 뜨겁게 데워진 숨결을 토해내며 어깨를 살짝 떨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은색 눈동자가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굳이 내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지금부터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지 어렴풋이 눈치 챈 모양이었다.

“……세현 씨.”

부인의 입술 사이로 애달픈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안에는 자신의 불안함을 달래고픈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렇다. 부인은 지금 내게 애원하고 있었다.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버린 남편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게, 자신의 불안함을 달래달라면서 말이다.

나는 이런 부인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고자 입을 열었다.

“오늘은 콘돔을 쓰지 않을 겁니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네?”

부인은 무척이나 놀란 모양인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모양인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콘돔 없이 섹스를 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 남자는 애초부터 부인과 이혼하려고 했었다. 아이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겠지.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부인을 부드럽게 다독여주었다.

“제 아이를 가지더라도 괜찮죠?”

“제, 제가 세현 씨의 아이를…….”

부인은 말끝을 흐리며 몽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가 정말로……. 낳아도 되는 걸까요?”

“낳기만 하겠습니까? 예나 씨를 최고로 행복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부인은 기대와 흥분감을 버티지 못 하고 숨을 핫 하고 터트렸다.

“고마워요, 세현 씨.”

수줍은 목소리로 말한 부인은 그대로 내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주저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나도 행복하단 듯이 웃어 보이는 부인의 모습에선 더 이상 김 이혁, 그 남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완전히 넘어온 건가.’

나는 부인의 몸을 마주 안으며 만족감에 취했다.

“하아……. 세현 씨…….”

가쁜 숨소리와 함께 내 이름을 부르는 부인의 태도에 나는 옅게 웃으며 그대로 키스해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꽉 눌린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에 맞닿는 동시에 내 등을 감사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단연컨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