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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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함락]

‘어서 빨리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런 간절한 바람과 함께 나는 이틀 동안 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민영과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가 원하던 대로 김 이혁, 그 남자는 동창회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은 듯이 민영과 함께 주말을 보내기로 덜컥 약속까지 해버렸다.

덕분에 동창회 바로 전날인 금요일 밤에 이들 부부는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되었다. 

물론 언성을 높여 싸운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편 쪽의 대응이었고, 부인은 거의 울먹이며 호소하는 편이었다. 

‘일이 바쁜 걸 어쩌라는 거야? 그럼 나보고 일을 나가지 말란 거야?’

‘하지만 여보……. 이건 며칠 전부터 약속했던 건데, 갑자기 이렇게 바꾸면…….’

‘시끄러워! 그 놈의 동창회, 동창회! 그렇게나 좋으면 당신 혼자서나 나가!’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여보.’

‘그 놈의 여보 소리! 에잇, 이놈의 지긋지긋한 집구석!’

이리 소리친 부인의 남편은 쿵 소리와 문을 박차고 대뜸 집을 나가버렸다.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결국 집 안에 홀로 남겨져 버린 부인은 서러움에 울음을 크게 터트렸다. 참으로 안타깝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부인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나는 부인의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고픈 마음을 애써 꾹 억누르며 벽에서 귀를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내 계획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고자 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시간에 자기가 웬일이야? 전화도 다 하고.]

“김 이혁, 그 남자가 방금 집을 나갔어.”

[그래서?]

“지금 바로 전화해서, 그 남자 좀 붙잡고 있어봐.”

[지금 바로?]

“그래, 지금 바로. 값은 제대로 치러 줄 테니까.”

[알았어.]

민영은 이런 내 부탁을 군말 없이 받아주었다.

‘됐군.’

이로서 부인의 남편이 다시 집으로 되돌아갈 일은 전혀 없었다.

그 말은 즉, 이 시간부로 부인은 쭉 혼자라는 소리였다. 물론 내일 있을 동창회에 나가기 위해서 집을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부인이 동창회에 나가던, 나가지 않던 간에 내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될 테니 말이다.

∴ ∵ ∴ ∵ ∴

이튿날 아침, 나는 계획대로 외출 준비를 마친 뒤에 벽에 귀를 바짝 대고서 부인의 댁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연신 분주한 발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부인 혼자서라도 동창회에 나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 생각에 나는 다시 한 번 더 옷차림을 살펴보곤 부인이 현관문을 열고 나갈 시점에 맞춰서 나 또한 문을 열고 나갔다.

“아, 세현 씨?”

그렇게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부인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불렀다. 

삼일 만에 다시 보게 된 부인의 안색은 무척이나 어두워보였다. 어젯밤 내내 흐느껴 울었던 모양인지 눈가는 빨갛게 부어있었고, 뒤로 한데 묶어서 내린 검은색 머리카락에선 윤기가 흐르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피부도 창백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미색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런 부인의 피폐한 모습이 퇴폐적인 매력으로 변모해있었다. 놀랄만큼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삼일 전에 내가 사준 옷이었다. 그 날 보았을 때도 잘 어울렸지만, 이렇게 정성껏 치장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설렜다.

만약에 이대로 부인이 혼자서 동창회에 나간다면 분명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 틀림없었다.

“안녕하세요. 그나저나 남편 분은 아직 나오지 않으신 겁니까?”

이런 내 물음에 부인은 침울하게 가라앉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뇨, 동창회는……. 저 혼자서 가게 됐어요.”

“아니, 왜요?”

“그 이가 다니는 회사에 갑자기 일이 생겼거든요.”

라면서 애써 미소를 지어보려는 부인이었지만 여간 실망한 게 아닌 모양인지, 그 모습이 너무나도 가련해보였다.

“그럼 집에서 좀 쉬시지, 뭐 하러 동창회에 가시겠다는 겁니까?”

“저도 그러곤 싶지만……. 나가겠다고 약속까지 했는 걸요.”

“그런가요? 뭐, 그렇다면 제가 차로 동창회 모임 장소까지 태워다드리겠습니다.”

“네? 그러면 세현 씨한테 너무 실례가 되지 않나요?”

“실례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내 다정한 속삭임에 부인은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말없이 다가가 부인의 몸을 끌어안아주었다.

그 후, 천천히 등을 쓸어내려준 나는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손을 잡아주었다.

“……울지 마세요, 예나 씨.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우는 예나 씨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죄, 죄송해요..”

그러면서 눈물을 훌쩍이는 부인의 태도에 소리 없이 웃어 보인 나는 그대로 그녀를 데리고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 후, 내 차에 부인을 태운 나는 부인에게 동창회 장소를 물은 뒤에 차를 출발시켰다.

“그나저나 예나 씨.”

“네?”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예나 씨만 괜찮다면요.”

“어떤 거요……?”

살짝 말끝을 흐린 부인은 다소 궁금증을 표했다.

“지금, 남편 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냐니요?”

“좋은가, 아니면 싫은가……. 그걸 묻는 겁니다.”

이러한 내 말에 부인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예전 같았다면 곧바로 좋다고 대답했겠지만, 어제의 일과 나하고 있었던 일 때문에 갈등하고만 것이다. 이 기색을 눈치 챈 나는 곁눈질로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인 채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명백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에선 남편이 좋지도, 싫지도 않다. 그것이 바로 부인의 입장이었다. 더불어 내게 있어선 두 번 다신 없을 호재였다.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저울대를 완전히 내 쪽으로 기울여버리기에 말이다.

“이런 말을 제가 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어젯밤에 제가 예나 씨의 남편 분이 다른 여자와 만나는 걸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네?”

당연하게도 부인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내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어 번 눈을 깜빡여 보인 부인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그럴 리가 없어요. 세현 씨가 분명히 잘 못 보신 걸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제가 잘 못 본 건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남편 분이었습니다.”

“저, 정말인가요?”

“네, 정말입니다. 게다가……. 이래선 안 되는 걸 알지만, 도저히 그냥 두고 넘어갈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남편 분의 뒤를 쫓아가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거기서 남편 분이 다른 여자와 함께 모텔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봤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 일찍 집을 나온 것도, 예나 씨의 남편 분이 정말로 다른 여자를 만났던 건지 확인해보려고 그 모텔로 다시 가보려고 했던 겁니다.”

이리 말한 나는 차를 잠시 멈춰 세운 뒤에 부인에게 물었다.

“……예나 씨, 저하고 같이 확인해보러 가지 않겠습니까?”

“…….”

부인은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인은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있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입을 열었다.

“네……. 제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요.”

비록 목소리가 떨리고 있긴 했지만, 부인의 의사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져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인이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한 눈에 보아도, 무척이나 힘겨워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말이다. 이에 나는 부인을 다독여주고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예나 씨. 분명 별 것 아닐 겁니다.”

“세현 씨, 저…….”

“제가 잘 못 본 것이길 바래야겠지요.”

라고 말한 나는 부인을 데리고서 무인 모텔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에도 몇 번 와보았기에 그다지 거리낌은 없었지만, 부인은 이런 나와는 다르게 모텔이 처음인 모양인지 무척이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낯선 건물의 지하 주차장이다. 심지어 자신의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모텔의 지하 주차장……. 부인의 입장에선 다소 꺼려질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다 왔습니다.”

이리 말하며 차 시동을 끄는데, 돌연 부인이 내 손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세, 세현 씨……. 정말로 여기가, 여기가 맞는 건가요?”

“네, 여기가 맞습니다.”

이리 대답한 직후, 나는 부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그게…….”

울먹이는 표정으로 잠시 말끝을 흐리던 부인은 이윽고 울음을 꾹 삼키며 덜덜 떠는 손으로 맞은편 차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자, 낯익은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부인의 남편 차량이다. 

심지어 차번호까지도 같으니 부정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진정하세요, 예나 씨. 아직 확인된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부인의 모습에 나는 다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주며 다독였다.

“뭔가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내 말에 부인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럴지도 몰라요. 우리가 오해한 것일지도…….”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쌍의 남녀가 맞은편 차량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다정하게 팔짱까지 낀 두 남녀는 마치 우리에게 자신들의 애정을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스스럼없이 입맞춤까지 하고 있었다.

“……여보.”

남편의 외도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게 된 부인은 허탈해 하는 목소리로 자신의 남편을 불렀다. 그러나 차 안에서 부른 것이기에 그 목소리가 그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설혹 닿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콧방귀만 뀔 것이다.

실제로 김 이혁, 저 남자는 서 민영에게 푹 빠져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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