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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함락]
‘시간이…….’
여전히 잠에 취해있는 서 민영을 놔두고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7시 10분. 이 시간이라면 아직 부인의 남편도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을 일으킨 나는 옆집과 마주하고 있는 벽 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소란스럽네.’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모양인지,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발소리와 함께 달그락 거리는 식기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아, 저기……. 여보.”
불현듯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수십 년 만에 듣는 것처럼 감미롭게 들려왔다. 정말로 달콤하다. 저 목소리로 내 이름을 울부짖으며 신음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뭐야?”
“아, 그게…….”
냉담하기 그지없는 남편의 목소리에 그만 기가 죽어버린 모양인지, 부인의 목소리가 한 없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꽤나 중요한 용무인 모양인지, 부인은 애써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동창 모임이 있는데…….”
“동창 모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부부 동반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와서요. 혹시 시간이 괜찮으세요?”
“나 바쁜 거 몰라? 당신 혼자 가.”
“……”
남편의 매몰찬 태도에 부인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 했다. 하지만 이번 부부 동반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모양인지, 부인은 애써 용기 낸 목소리로 입을 열어 재차 부탁했다.
“이번에도 나가지 않으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다들 당신 얼굴도 궁금해 하고요. 이제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잖아요?”
이렇게까지 부인이 애타게 부탁해오자, 남편의 마음도 흔들리는 모양인지 이 이상으로 그의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
말 그대로 무거운 침묵이 집 안 가득 가라앉았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문득 남편이 말문을 열어 답해주었다.
“그래, 토요일이라고 했지? 시간 내볼게.”
“정말이요?”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네!”
기어코 남편의 허락을 받아낸 부인은 무척이나 기뻐해하며 크게 소리쳐 답했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부 동반 모임에 나가는 게 뭐가 그리 힘든 일이라도 저리도 생색을 내는 건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자기……. 어디?”
그 때, 바로 뒤 쪽에서 민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아.”
이런 내 말에 그녀는 벽 쪽에 붙어서있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암, 좋은 아침.”
오른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며 맵시 있게 하품을 한 그녀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내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정말이지 무방비한 모습이다. 흐트러진 셔츠 사이로 분홍빛 속옷이 훤히 보인다. 잠시 속옷에 시선이 팔렸던 나는 이내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헛기침을 했다.
“그래.”
이리 대꾸한 나는 민영의 안색을 살폈다.
좋아, 다행이도 들키지 않은 모양이다.
“웬일이야, 자지가 내 인사를 다 받아주고……. 그나저나 목이 왜 이렇게 메이지. 콜록, 물이나 마셔야지.”
라고 말한 그녀는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물을 마시기 위해서 방을 나갔다.
눈치가 느린 건지 아니면 정액에 하도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기가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 하고 있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아무리 정액에 익숙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입 안에서 단내 대신에 정액 냄새가 풀풀 난다면 눈치 챌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사정을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정액 냄새가 사라질 리가 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문득 불길한 예감 하나가 들었다.
만약에 서 민영, 저 여자가 한 밤중에 내 방 안으로 기어들어와 펠라를 했다면? 펠라를 하고서 내 옆에서 잤다면……. 다음 날 아침, 자기 입 안에 정액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설마.’
라고는 생각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럼 내가 먼저 당한건가?’
이러한 생각에 나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골 때리는 여자다.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냉장고 앞에 서서 물을 마시고 있는 서 민영의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잘록한 허리 밑으로 자리 잡은 토실한 엉덩이가 연신 탐스럽게 흔들리며 내 시선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렇게 가만 두고 보면 정말로 잘 빠진 미녀다.
들어갈 곳 들어가고, 나올 곳 나온 그런 서구적인 미녀 말이다.
‘너무 음탕해서 문제지.’
음탕하다 못 해 서큐버스 급이다.
남성의 정기를 남김없이 빨아 마시는 그런 소악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건가.’
입을 다신 나는 의자에 앉았다.
‘아니, 딱 한 명 있었지.’
일순 서 민영의 뒷모습 위로 부인의 뒷모습이 겹쳤다.
남편에게 헌신할 줄 알며, 가정에 충실한 아내. 심지어 결혼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남자라곤 전혀 몰랐던 순진한 여성이기까지 했다. 미인에 스타일도 발군, 여기에 성격도 좋다. 딱 내 취향이었다.
‘……지금 여기에 부인이 있었다면…….’
날 위해서 한창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부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국엔 욕정을 이기지 못 하고 덮치겠지. 부인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를 꽉 붙잡은 뒤에 음부 안으로 남근을 밀어 넣는 것이다.
‘좋은데.’
어서 빨리 부인을 내 집으로 들이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는다.
‘……집으로만 들이면, 매일 같이 귀여워 해줄 텐데…….’
이런 식으로 민영의 뒤태를 빤히 쳐다보며 상상의 나래에 빠져있는데, 문득 그녀가 부끄러운 듯이 양 볼을 붉히며 내 쪽으로 뒤돌아섰다.
“뭐야?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뭘?”
“다 보이거든? 무지 엉큼한 얼굴을 하고서……. 근데 말이야, 남의 몸을 가지고서 다른 여자를 생각하진 말아줬으면 좋겠거든? 그거 엄청 기분 나빠.”
내가 자기 몸을 가지고서 부인을 상상하고 있었단 걸 눈치 챈 모양인지, 민영이 엄청나게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꾸짖었다. 여자의 감이란 건, 참 무섭다. 나는 지은 죄가 있었기에 얌전히 그녀의 꾸중을 받았다.
“그나저나 물은 다 마신거야?”
“응, 다 마셨어.”
라고 말한 민영은 빈 잔을 개수대 안쪽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나는 흠 하고 목청을 가다듬은 뒤에 입을 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김 이혁, 그 남자랑 데이트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지?”
“토요일에?”
“그래, 이번 주 토요일. 가능하면 최대한 오래……. 일요일까지 붙잡아준다면 더 좋고.”
이러한 내 말에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았어. 그럼 자기는 나한테 뭐 해줄 거야?”
“그 남자를 데리고 있었던 시간만큼 놀아줄게. 어때?”
내 제안이 다소 의외였던 모양인지,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 한 채 입을 열었다.
“진짜? 너무 서비스가 과한 거 아냐?”
“그 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잘 붙잡고 있으란 뜻이야.”
확실히 중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주 토요일은 다름이 아닌 부인의 동창회였다. 심지어 부부 동반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김 이혁이 부인과 했던 약속을 어긴다면? 부인은 혼자서 쓸쓸이 동창회에 참석하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자기 혼자만 빼고서 모두가 부부로 나온 것이다.
제아무리 부인의 성격이 좋다고는 해도, 그런 창피를 당하고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설혹 참는다고 하더라도 남편에 대한 실망감만큼은 감추지 못 할 것이다.
‘겨우 남아있던 정나미도 다 떨어져 나가겠지.’
결정타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김 이혁과 이 예나,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부인을 차지 할테고 말이다.
“그나저나 나 배고픈데, 아침 어쩔 거야?”
그러다 문득 민영이 내 앞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집에 먹을 거 없으니까 나가서 사먹어.”
“나 혼자?”
“뭐 문제라도 있어?”
라고 묻자 그녀가 불만스레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내가 요리해 줄 테니까 재료 좀 사와.”
이리 말한 민영은 식탁 위에 올려져있는 포스트잇 하나를 뜯어선 그 위에 필요한 식재료를 적기 시작했다.
대충 훑어보니 카레라도 만들어 먹으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로 카레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포스트잇에 필요한 것을 다 적은 그녀는 자랑스레 내게 건네주었고, 그것을 받아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아직 마트가 열 시간은 아닌 것 같았지만 천천히 걸어가면 얼추 개점 시간에 맞을 것만 같았다.
“응?”
이처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자,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부인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엘리베이터 앞까지 남편을 배웅해준 모양이었다.
참으로 복 받은 남자라고 할 수 있었다.
혀를 끌끌 찬 나는 부인 쪽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예나 씨?”
“꺅! 아, 세, 세현 씨?”
내 부름에 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내지르더니, 곧바로 나를 알아보곤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는 이제 있었던 일을 무의식 중에 떠올린 모양인지,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시선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아, 세현 씨. 저번에 있었던 건, 정말로……. 고마워요.”
부인은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로 내게 감사를 표했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해하는 그 모습조차도 굉장히 사랑스럽다. 게다가 목선을 따라 부드럽게 내려가는 검은색 머리카락은 정말로 매력적이다. 저 고운 머리카락 위로 내 정액을 뿌려주고 싶다. 정액으로 더럽혀진 부인의 모습, 정말로 보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분기점은 이번 주 토요일이다. 그 때를 잘 이용해서 어떻게든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부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 할 수 있었다.
“고맙긴요. 그 때는 저도 즐거웠습니다.”
이 말에 부인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그런가요……. 아! 그나저나 세현 씨도 출근하시는 건가요?”
“설마요. 그냥 장 좀 보려고 나가는 겁니다. 게다가 오늘 점심 때, 같이 백화점에 가기로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잊으신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잊지 않았어요!”
짓궂은 내 말에 부인은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부인과 한 점심 약속, 그건 단순히 밥을 먹는 게 아닌 같이 쇼핑을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복도에서 있었던 일 이후 부인이 내게 이런 부탁을 한 게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오늘 들은 동창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얼핏 이해도 되었다.
아무래도 부인은 동창회에 입고 나갈 옷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부인이 입고 있는 옷들은 하나 같이 검소하고, 그리 화려하지 않은 값싼 옷들뿐이었으니 말이다.
동창회에 입고 나간다면 무시당하기에 딱 좋은 옷차림이었다.
“그럼 오늘 점심 때,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시간은 언제가 좋으세요?”
“세현 씨가 편하실대로 해주세요.”
이런 부인의 대답에 나는 잠시 시간을 계산해보았다.
‘부인과 만나기 전에 민영을 내쫓아야하니까…….’
괜히 민영을 집 안에 들여놓았다가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구태여 집 안에 우환거리를 둘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리 생각한 나는 민영과 아침 식사를 한 후, 내쫓는 시간까지 모두 계산해서 입을 열었다.
“12시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11시로 하자고 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2시라고 한 이유는 역시 서 민영, 그 여자의 존재로부터 기인했다. 내쫓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고, 더불어 잘 못 했다간 또다시 한바탕 치러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말이다.
부인을 만나기도 전부터 힘을 다 빼놓을 순 없으니까……. 라고는 생각하지면 여전히 자신은 없다.
“네, 그럼 그 때까지 준비해놓을게요.”
다행히도 내가 말한 시간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부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수긍해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12시에 찾아가겠습니다.”
“네, 그럼 그 때 봬요.”
이렇듯 약속 시간을 정한 나는 부인의 마중을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12시라…….’
지금 내 머릿속은 부인과 섹스할 일로만 가득 차있다.
부인과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가, 어디서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흥분되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