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 / 0052 ----------------------------------------------
[부인함락]
“이번엔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제법 싹싹 맞은 미모의 여성의 행동 덕분인지, 그 또한 마음을 풀고서 그녀에게 살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아니, 살갑게 대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벌써부터 몸의 여기저기를 더듬고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 또한 그리 싫은 건 아닌 모양인지, 그의 손길을 굳이 거부하지 않고 즐기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역겹군.’
그 모습을 가만 보고 있자니 속이 절로 울렁거려왔다. 저 여성이 얼마나 음탕한지, 얼마나 추악하지, 그 모습을 세세하게 알고 있는 나로서는 부인의 남편이 참으로 한심스러워 보였다.
“저기…….”
문득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성이 불안해하는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며 불렀다. 이에 나는 짐짓 부드럽게 미소 지어보이며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른 뒤에 김 이혁 씨에게 말했다.
“다음에 또 시간이 나면 이렇게 만나죠.”
이 말과 함께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또한 히죽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네, 오늘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은…….”
“오늘 일은 저희들만의 비밀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능청스레 답한 나는 그의 손을 한 차례 마주 잡은 뒤에 술집을 빠져나갔다.
“이제 일은 끝났죠?”
술집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물어오는 여성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 위에 둘렀던 손을 풀어주었다.
그 후, 지갑에서 오만 원 짜리 두 장을 꺼내 건네주자, 그녀는 무척이나 만족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시간이 좀 늦었는데 바래다줄까요?”
“아뇨, 괜찮아요. 아직 지하철도 다니고 있을 텐데요.”
예의상 물은 내 질문에 그녀 또한 예의 있게 대답하며 고개를 꾸벅 숙여보았다. 이렇게 가만 보니 이 여성도 아주 못난 여성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선 그 여자보다 훨씬 더 그럴 듯한 미인이다.
“그렇군요.”
라고 말한 나는 차후 이 여성을 더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명함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그녀 또한 자신의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그 후, 그녀는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듯이 서둘러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서인인가?’
그렇게 명함에 적혀있는 그녀의 이름을 한번 훑어본 나는 안주머니에 명함을 밀어 넣으며 버스 정거장 쪽으로 향했다.
‘잘 하겠지.’
이제부터는 내가 손 델 수 없는 부분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김 이혁, 그가 미모의 여성에게 아주 푹 빠지기만을 기도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내가 예상한대로 그가 성행위에 능숙한 여성을 좋아한다고 하면, 분명 그녀는 부인의 남편을 노리개 이상의 것으로 매혹시킬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정도로 그녀의 성경험은 풍부하니까 말이다.
‘그만 신경 쓰자.’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이튿날 아침 그녀에게서 결과 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 일단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김 이혁, 그는 완전히 그녀에게 푹 빠져 버렸다고 한다.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직후 그가 그녀에게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밝힌 뒤에 자신과 정식으로 교제해 달라며 애원했다고 하니, 그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 얼추 짐작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녀 쪽에서는 그와 교제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자식, 물건도 조그매서 싸기는 얼마나 빨리 싸던지…….]
수화기 너머로 온갖 투정들을 쏟아내는 그녀의 말소리에 나는 미간에 가느다란 주름을 만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 조루 자식하고 사귀는 동안 네가 날 상대해 줬으면 하는데?]
라며 도발하는 듯이 물어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미쳤냐?”
[아니, 제정신인데?]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재차 물어오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또다시 침묵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와 얽히면 얽힐수록 껄끄러워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되도록 몸을 섞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그런데 그녀와…….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이 일을 부탁한 것부터가 실수였을지도 몰랐다.
“알았어, 하지.”
통화를 끊은 직후 나는 부인의 집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서 빨리 이 더러운 기분을 씻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외출 준비를 서둘러 마친 뒤에 집을 섰다. 그런 다음 바로 옆집, 부인의 집 앞에 선 나는 인터폰을 누르고 부인을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컥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세현씨?”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갑자기 찾아왔지요? 오늘 마침 일을 쉬게 되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실례가 된다면 있다가 오후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뇨! 그렇지 않아요. 어서 들어오세요!”
이렇듯 내가 갑작스레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기분 좋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니, 어렴풋이 반가움마저도 서려있었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남편이 어젯밤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깔려있을 것이다.
불안했겠지. 남편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러던 중에 내가 찾아왔으니, 어지간히도 반가웠을 게 분명했다.
아, 이 사람이라면 분명 나를 이 위기에서 구해줄 것이다. 저번에도 그랬을 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해줄 것이다. 이 묘한 기대 심리가 부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아뇨, 저도 사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다리고 계셨다니요? 뭔가 잘 안 되셨습니까?”
“저번에 세현 씨가 조언해주신 대로 남편에게 대화를 요구해 보았어요. 그런데 돌아온 건…….”
그러면서 살짝 부어오른 뺨을 내게 보여주었다. 뺨을 맞은 모양이었다. 이 사실에 부인의 남편에 대한 적대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여성에게 손찌검이라니, 같은 남성으로서 정말로 최악이다. 심지어 얼굴이다.
저 고운 얼굴에 상처를 입히다니, 정말이지 인간 이하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손찌검을 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혹시라도 제가 뭘 잘 못 한 게 아닐까요?”
필사적으로 남편을 옹호하고, 잘못은 다 자신에게 있다며 호소해오는 부인의 모습에 절로 측은감이 밀려왔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인. 오히려 이건 더 잘 된 것입니다.”
“잘 되었다니요?”
“이제까지 남편 분은 부인에게 무관심을 표시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행위로 반응해 왔죠. 물론 그것이……. 제대로 된 행위는 아니지만요.”
라고 말한 나는 부인이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걸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걸요?”
“부인의 남편 분은 부인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폭력을 행사하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고 있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군요. 혹시 무언가 남편 분에게 속이고 있는 게 있으십니까, 부인?”
“속이는 거라니요!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내 물음에 부인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어보이며 부정했다.
“잘 생각해보세요, 부인. 뭔가 남편 분께서 부인에게 크게 실망을 했다거나 그런 거요.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이러한 내 추궁에 부인은 잠시 고개를 숙여 곰곰이 기억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무언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던 모양인지, 부인은 양 볼을 수줍게 붉히며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저기……. 한 가지, 하나 짐작 가는 게 있어요.”
“뭡니까, 부인?”
“신혼 첫날밤에 그 이가 제게 무척이나 실망한 표정을 지은 적이 있어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라며 내가 좀 더 부추기자, 부인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연분홍빛 입술을 살짝 찌부러트리며 그 날 상황을 자세하게 털어놓았다.
“제가 처녀였다는 걸 안 순간, 그 이가 무척이나 실망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어요. 그리고는 그……. 그러니까, 절 내버려두고 자버렸어요. 홀로 거실로 나가서…….”
가만 들어보니 정말로 최악의 첫날밤이 아닐 수 없었다. 아내가 단지 처녀였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실망한 표정을 지어보이고서 행위 도중에 방을 나가버리는 신랑이라니! 심지어 부인을 홀로 침실에 놔둔 채로 말이다.
이제 막 처녀를 상실한 부인에게는 더없어 고통스러운 첫날밤이었을 게 분명했다.
만일에 그날 있었던 신랑이 나였다면 내 부인이 처녀였다는 사실을 안 순간, 오르가즘을 느낄 때까지 범하고 또 범했을 것이다. 내 품에 안겨 앙앙 울어대며, 임신시켜 달라며 질내 사정을 조르게 만들 것이다.
아니, 아예 질내 모양이 내 성기 모양에 맞도록 교정시켜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인의 남편 분은 거의……. 아니, 확실하게 처녀를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닳고 닳은……. 아, 실례했군요. 정정하겠습니다. 부인의 남편 분께서는 경험이 많은 능숙한 여성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인에게 실망한 것일 테고요.”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보통 여성들이라 하면 결혼 전에 성경험을 가지기 마련이니까요. 아니, 그보다 결혼 전까지 성경험이 아예 없다는 것 자체가 좀 희귀한 편이지요. 옛날도 아니고요. 그런 의미에서 부인은 정말로 희귀한 편입니다. 부인의 남편 분께서 당황스러워 할만도 합니다.”
이러한 내 설명에 부인은 수긍한 모양인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보였다.
“확실히 제게 문제가 있었던 거네요. 그 이가 제게 화를 낼만도 해요.”
라며 반성하는 부인의 태도에 재차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정숙한 부인을 놔두고서 닳고 닳은 여자만 찾아다니다니…….’
물론 저마다 각자의 취향이란 게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나 정숙하고 청초한, 거기다가 미인이기까지 한 부인을 놔두고서 다른 여자를 찾아다니다니……. 너무나 우스워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뭐, 덕분에 내가 이 부인을 차지하게 될 테지만 말이야.’
이런 훌륭한 부인을 방치해준 남편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표한 나는 살짝 그녀를 바라보았다.
올곧은 이목구비와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간 착한 몸매. 그리고 무엇보다도 터질 듯 한 큰 가슴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