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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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함락]

다음날 아침.

평소처럼 옆집에서 소란스런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한 가지 바뀐 점이 있다면 부인의 말소리에 좀 더 강한 애절함이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어제 내가 부인에게 조언한 대로 그녀는 제법 필사적으로 남편에게 달라붙으며 대화를 하자고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평소보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부인의 태도에 인내심의 한계라도 느낀 모양인지, 남편이 대뜸 성을 내며 부인의 어딘가를 때린 것이다. 정확히 어디를 때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짝 소리에 이은 부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으니, 분명 남편에게 맞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만 좀 해!”

그 후, 부인의 남편은 큰 목소리로 화를 내더니 그대로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이어 부인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와, 내 마음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 부인을 위로해주고 싶지만…….’

마음 같아선 부인의 몸을 끌어안아주며 다독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내가 해야 될 일은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부인의 모습을 무심히 떨쳐내며 집 밖으로 나갔다.

“…….”

다행이도 부인의 남편은 아직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은 모양인지, 그 앞에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내 인사를 아주 태연하게 받는 그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화가 치솟아 올랐지만, 나는 애써 분을 삭이며 웃는 낯짝을 했다.

“꽤나 서두르셨나 봐요?”

“네?”

“넥타이가 좀 삐뚤어지셨는데요?”

이러한 내 말에 그는 잠시 당혹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둘러 자신의 넥타이를 매만졌다. 그리고는 곧 넥타이가 삐뚤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둘러 넥타이를 고쳐 매려 했다. 그러나 그 일에 익숙지 않은 모양인지, 그가 넥타이를 만지면 만질수록 더더욱 헝클어질 뿐이었다.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

“아, 하지만…….”

“괜찮습니다. 별로 힘든 일도 아닌 걸요.”

라고 말한 나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의 비뚤어진 넥타이를 다시 메어주었다. 

“부인께서 제법 덜렁거리시나 봐요? 아니면 신호 초라서 아침부터 한바탕 하신 겁니까?”

“크흠.”

제법 짓궂은 내 농담에 그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헛기침을 했다.

“하핫, 농담입니다.”

그 모습에 짐짓 재미난다는 듯이 웃어 보인 나는 어느새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걸음을 들여놓았다. 그러자 뒤이어 부인의 남편 또한 나를 따라 안에 발걸음을 들여놓으며 탔다.

“솔직히 이런 얘기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제법 소란스러우시더라고요.”

“들으셨습니까?”

약간 경계하는 듯이 내게 물어오는 그의 태도에 나는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답했다.

“듣지 않으려야 듣지 않을 수가 없죠. 그렇게나 시끄럽게 떠드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옆집에 사는 이웃으로서 좀 불쾌했습니다.”

이러면서 되레 내가 불쾌함을 표시하자, 부인의 남편은 그제야 자신 쪽에서 무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다소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조금 말다툼을 하다 보니…….”

“아닙니다, 그 쪽을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말다툼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럼 왜?”

이러한 내 말에 그는 무척이나 의아해하는 표정을 띠우며 물음을 던졌다.

“제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잠시 말끝을 흐린 나는 부인의 남편 쪽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웃으로서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 겁니다.”

“조언이요?”

이 말에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재빨리 말문을 틀었다.

“네, 솔직히 부인의 말을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울컥울컥하는 부분이 꽤나 있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회사 일이란 게 하다보면 사람이 늦을 수도 있는 것도 아닙니까? 게다가 회사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술자리를 할 수도 있고요.”

“…….”

줄줄 늘여놓는 내 말에 그는 딱히 무어라 대답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 표정을 보아하니 내 말에 대단히 긍정하고 있는 듯이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하는 이유가 다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노력도 몰라주고, 자기만 생각해서 불평불만만 늘여놓다니……. 같은 직장인으로서 좀 울컥하더군요.”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남편 쪽에서 화를 내는 건 당연……. 아니, 이제까지 참으신 것만 해도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이런 내 칭찬에 점차 그의 표정이 편하게 풀려가는 게 보였다. 이에 나는 그와의 친목을 확실하게 다지고자 재차 말을 이었다.

“……오늘 화를 내신 걸 듣고 제 속이 다 시원하게 풀리는 듯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여자는 이렇게 휘어잡아야하는 것 같습니다. 강압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남편을 무슨 돈 벌어오는 호구처럼 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정말 잘 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잘 한 거지요?”

“물론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면 분명 아내 분도 더 이상 투정부리지 않을 겁니다.”

라며 내가 부추기자, 그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제 마음이 한결 놓이는군요. 저기…….”

“유 세현입니다.”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한 모양인지, 어쩔 줄 몰라해하는 그의 태도에 나는 방긋 웃어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이에 그 또한 내 손을 마주잡으며 입을 열었다.

“김 이혁이라고 합니다. 언제 한번 시간이 나시면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그럼 저야 좋지요.”

이리 말한 우리는 서로의 명함을 교환하고는 지하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 ∴

김 이혁, 부인의 남편과 언제 한 번 하기로 한 술자리는 다음 날 저녁으로 맞춰졌다. 의외로 빠른 시일 내로 잡혀서 약간 당혹스러웠긴 했지만, 어차피 마주해야 될 상황이었고 상황이 빠르게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유리한 것은 나였기에 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이렇듯 다음 날 저녁에 맞춰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곳에는 이미 여러 안주들과 술을 시켜놓고서 홀로 먹고 마시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참으로 처량해 보이기 그지없었는데, 그는 그저 술을 마시는 게 좋은 모양인지 주변 시선엔 전혀 개의치 않아해 하며 연거푸 술을 들이 마셔대고 있었다.

“벌써부터 한잔 하고 계셨습니까?”

“생각보다 일찍 나와서 말이죠.”

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자, 나는 남편 분을 도로 자리에 앉히며 입을 열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많이 마시고 계시던 게 아닙니까?”

“그렇긴 하군요.”

“뭔가 다른 고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마치 그렇게 보이는군요.”

그러면서 나는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렇게 보였습니까?”

“그렇게 보이다마다요. 어디 한 번 속시원하게 털어놓아 보세요. 제가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나는 마치 그의 근심 걱정들을 모두 다 이해해 줄 수 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이런 내 표정에 안도한 것일까? 그는 내가 따라 준 술을 단번에 들이켜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번에 한 결혼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후회하고 계시다니요?”

“그런 여자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여자일 줄 몰랐다니요? 뭔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달랐습니까?”

이 물음과 동시에 내가 그의 빈 잔에 술을 채워 넣어주자, 그는 여전히 괴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를 못 합니다. 심지어 처녀이기까지 한……. 차라리 석녀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군요. 연애 때부터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 다 내숭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숭이 아니더군요.”

“내숭이 아니라는 건, 전부…….”

“네, 전부 다 진짜였던 겁니다. 마치 무언가 속은 기분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첫날밤, 당장에 이혼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혹시라도 뭔가 바뀔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까지 참아봤는데……. 전혀 없더군요.”

“그럼 이혼하실 생각이십니까?”

조심스레 의중을 묻자, 그는 재차 술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그 이야기는 진작 꺼내보았었습니다. 그런데 거절 하더군요.”

“그거 참 유감이로군요.”

그러면서 진심으로 유감을 표시한 나는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저기…….”

그러던 중 두 명의 여성이 우리가 있는 자리로 와서는 말을 걸어왔다. 그 말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수준급의 미모가 상당히 돋보이는 여성과 그런 여성을 더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동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수한 외모의 여성이 나란히 서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방긋 웃으며 물음을 던지자, 먼저 말을 꺼냈던 미모의 여성이 꽤나 화사한 미소를 띠워 보이며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다면 합석해도 될까요?”

“저는 괜찮지만…….”

라며 슬쩍 김 이혁 씨를 바라보자, 그 또한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답했다.

“저도 괜찮습니다.”

이렇듯 허락이 떨어지자, 두 여성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마음에 드는 남성의 곁에 앉았다. 미모의 여성은 김 이혁 씨의 옆자리에, 그리고 내 옆에는 평범한 여성이 앉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대놓고 취급을 받으니, 살짝 마음이 상하긴 했지만 어차피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었기에 금세 그런 마음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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