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6.노예전쟁.3
"흐으음..."
몇번이나 계속된지 느낌이 별 나질 않는다.
손이 나뭇가지가 되어, 나뭇잎이 자라나고, 싱그러운 나무가 되어, 한 수십년 쯤? 그 즈음을 나무로 살아간다.
나무가 썩어 점점 몸을 구성할 수 없을 때, 흙이 되어 강으로 흐르고, 서서히 서서히 바다로 간 후 점점 가라앉는다.
그 삶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고 있을 때 자아는 점점 단순해지며, 자신이 누구인가 혹은 난 어떤 자인가 라는 질문이 무덤덤해질 때.
[당신은...]
다가오는 여성.
입을 벌리며 멍을 때리고 있을 때, 다가온 여성은 꽤나 익숙해보이는 그런 여자였다.
[으이구, 내가 그 개지랄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요. 폭주는 무슨 폭주. 이세계 이전자들 중 겨우 얻은 인턴인데, 다른 신들은 인턴이 얼마나 벌었다느니, 그들끼리 길드를 만들어서 떵떵거리며 안정적인 자금원이 된다느니 하는데 난 이게 뭐에요.]
[어어어...]
[내가 못살아서 증말! 내 죄야, 진짜 내 죄. 내 모든 여신 일 중 겨우 얻은 인턴이 이도교 개종 관 쓰고 자폐아가 되고 있어요?]
[어버버버...]
[흐이구!]
'짝!'
크게 박수를 치는 여성.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눈이 또렷해지고, 오랜 세월 나무가 되고 강이 되고 흙이 되며 바람이 된 기억들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아...]
[정신 좀 차리라구요! 이건 뭐, 직접 제가 와서 에프터서비스라도 해줘야하는거에요?!]
앞에 있는 여성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여성.
아름다움.
섹스.
서서히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만진다.
부드럽고, 또 사륵거리며 손가락 사이로 만져지는 말캉함과 코 끝을 간질이는 꽃향기.
[꺄아아악! 직장 내 성추행!]
바로 뺨을 때리는 그녀.
[상사를 성추행하다니! 제정신이에요?!]
[어...]
아직 침을 조금씩 흘리고 있는 최현기.
[뭐, 내가 먼저 선물로 키스로 버프를 주긴 했지만! 그건 애정을 나타낸 행동이 아니라 앞으로 잘하라고 준 버프거든요?! 그러니, 이런 불상사는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어요.]
[.......]
[들려요? 예?! 최현기씨!]
최현기!
그것이 나의 이름.
그리고 나의 존재.
과거, 오랜 시간 지내왔던 기억들이 쏟아지듯 들어온다.
[야, 쟤 고아래.]
[고아 새끼.]
어린 아이들의 자신이 용감하다 생각하며 욕하는 말들.
더러운, 그리고 꼬질꼬질한 캐릭터 옷을 입고 초등학교를 다니던 기억.
[헐, 불쌍해.]
[안됬다.]
라고 말하며 절대 도움이든 말을 걸지 않는 여자애들.
더럽다, 꼬질꼬질하다.
딱히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조차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삶.
보통 그런 아이들이 가는 길은 뻔했다.
'퍼억! 퍽!'
[야, 너도 때릴래?]
양아치가 되어,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던 학생을 개패듯이 패버린다.
분명, 저 맞던 놈...기억 상에 고아새끼라고 욕하며머리를 손가락으로 밀던 녀석이었다.
[알바 하러 가야돼.]
[야, 삥뜯어서 그 성지 형한테 가져다 바치면, 알바 그딴거 할 필요 없다니까. 그 형이 집도 빌려주고 그러니 고아원 나와버려.]
[그냥 간다.]
[새끼, 존나 열심히 사네. 야 우리 어차피 답도 없어. 흙수저도 아니고 아예 수저가 없는 놈이 뭘 그리 산다고.]
그러면서 비슷한 삶을 사는 최현기가 묵묵하게 열심히 사는 것을 응원하던 녀석들도 있었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부터, 자신과 비슷했던 녀석들은 거진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거나 들어가지도 않았고, 물흐르듯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남들처럼이 제일 힘든 시기.
[부모님 모시고 와.]
대부분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불려나간 최현기.
그저 학교에서 조용히 있어도, 문제가 발생하면 제일 큰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선생은 고아라고 해서 무슨특혜든 좋은 말이든 하지 않는다.
공무원이기 때문, 그로서 학교에서 내린 지침으로 하는 일처리 외에 최현기를 무슨 애정어린 눈으로 보진 않는다.
그저, '에휴 문제 일으킬 것 같은 고아새끼'라는 얼굴.
자기 밥벌이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나서는 그런 부류였고, 당연히 최현기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끌려왔고 피해자로 보이는 아이들을 감싸고 나타난 학부모들이 보인다.
[이 새끼에요? 이 새끼가 우리 애 때렸어요?]
[아,아니 명진이 어머님. 진정하시고.]
[진정하게 생겼어요?! 얘네 부모는 언제 온데요?]
[아,아직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얘는 부모가...]
[아...고아새끼였어요? 어쩐지, 선생님. 애들 정서 상 이런 애가 학교에 있어도 되요? 얘.]
[......]
[으휴, 더러워라. 어디 의료수거함에서 교복이라도 얻어서 입었니? 얘!]
[......]
[미안하지만, 우리 애들에게 피해나 주지 말고 나가서 일이나 하지 그러니? 듣기로는 밤에 야자도 안하고 아르바이트 한다며? 그게 되니? 그냥 돈이나 벌고 나중에 검정고시라도 봐. 지금 우리 애한테 피해주지 말고.]
[아,아니 명진이 어머님...]
[선생님, 되었어요. 그냥 우리가 치료비 내기로 하죠. 하지만 이런 일 있으면 진짜 교육청에 문의할 줄 알아요.]
[조심하겠습니다. 들어가시죠.]
공무원이 제일 조심해야 하는 민원.
그 민원을 쓸 수 없는 최현기는 어찌보면 불쌍해서 넘어가준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 명진이란 아이를 뒤에서 몰래 쳐서 쓰러트린 사람은 최현기가 절대 아니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상황.
[.......]
참는다.
[고아 새끼 불쌍하다고 일 시켜줬더니만, 뭐? 월급 달라고? 내가 언제 안준 적 있었어? 가게가 잘 안되니까 나중에 준다니까!]
그러면서 자신의 딸내미에게 두둑하게 쥐어주는 용돈과, 마누라에게 사주는 신상 빽을 자랑하던 모습을 봤다.
[네가 그러면, 잘 들으라고! 다 인생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하는 소리니까! 네가 달라고 하는 만큼 일을 제대로 했냐고! 으이구 요즘 것들은 어디 잘못된 것만 배워서 툭하면 노동청, 툭하면 교육청 이 지랄거리지. 꺼져 이 새끼야! 내일부터 나오지마!]
참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유리창을 깨부수긴 했지만, 진짜 깨부수고 싶었던 것은 그의 머리통이었으니 나름 참은 셈이다.
[피울래?]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만나지 못했던 녀석.
검은 색 야구점퍼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녀석이 내게 담배를 권했다.
[잘 사냐?]
듣기론 열쇠 따는 법을 아는 형에게서 배워서 재미 좀 쏠쏠하게 본다고 한다.
[지랄마. 이번에 걸려서 경찰서 가서 조서 쓰느라 좆뺑이 쳤으니까.]
[그러냐.]
[뭘 그리 열심히 사냐. 어차피 답도 없는데.]
담배를 푹하고 피우며 그 때 생각에 잠겼다.
참으면, 복이 온단다.
그 말을 한 새끼에게 묻고 싶다.
너도 부모 없이 자랐는데 그 소리 하는거냐고.
씨발 것아.
[현기, 이번 분기까지 하면 2년 근속이네?]
[그러네요.]
[아무 문제도 없고, 마트 안건에 올려서 정규직으로 해도 되겠는데?]
[진짜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마트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던 최현기.
그 때 기억을 잊지 못한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열심히 살다 마트 매니저가 부르며 어깨를 두들기던 그 때를.
처음으로, 그래 인생 처음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들었어. 저기 단칸방에 살고 있다며? 내가 알아봐줄까?]
매니저 또한 최현기의 삶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고, 나름 그가 돈을 모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 말에 전셋집을 구해준다.
[원래, 일을 그 정도로 열심히 하려면 집이라도 편해야 하는 법이야. 여기면 충분할거다.]
매니저는 자신이 만난 사람 중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뭘 그냥 형이라고 불러 새끼야.]
그리고...자축을 할 때 죽었다.
어째서.
나만, 어째서, 왜, 하필, 난 행복하면 안되냐, 씹새끼들아, 열심히 살아봤자 결국 뒤지니 좆같이 사는게 답이었냐? 개새끼들아.
묻잖아, 씨발것들아.
니들 씨발 엄마 손 잡고 군것질 거리 들고 다닐 때, 아침부터 밤까지 할 짓이 없어서 놀이터 흙이나 파는 아이는 뭘 했는지 궁금한가?
놀이터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 처 마시면서 목이랑 배를 채웠다.
배가 텅텅 비어서, 숨을 쉬면 위장까지 전부 바람이 들어차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남을 해하지 말라. 남을 건드리지 말라. 참아라. 소중한걸 생각해라? 포기 하지말라, 희망을 가져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나중에 다~보면 추억이 될거라고?
그래, 그런 말들을 다 듣고 참고, 열심히 살아왔더니...살아왔더니...
살아왔더니.
씨바아아아알!!!!!! 개 씹창 새끼들아!!!! 왜 행복 다 느끼고 살았던 니 새끼가 아니라!!!! 내가 뒤져야 하는건데!!!!!
[으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깨어난다.
눈 앞에 보이는 여성.
[헤론느?]
[이젠 여신님이라고 말도 안 붙여주는거에요?]
기억이 온전해졌다.
또 다시 눈이 반쯤 감긴다.
어쩌라고.
씨발, 여기서 뭘 어찌하라고.
다...포기하고 싶네.
아니 포기된건가.
[피울래요?]
그녀가 옆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여신 이미지에 담배가 어울립니까?]
초원, 자신이 나무가 되어 일평생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초원에서 담배를 받아든다.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피워본다.
[원래 여자 아이돌들도 접대도 하고, 무대 돌면서 악플로 욕도 듣고 섹드립도 듣고 그래서 무대 뒤에서 담배 좀 태우는거 몰라요?]
[걔넨 어리잖아요.]
[어머? 여자 나이 가지고 차별하는거에요? 힘든건 다 똑같잖아요. 그리고 여신 차별! 여신은 담배 태우면 안됩니까?]
생각해보면 자신 주위에 비슷했던 여자애들도 담배를 좀 나눠 피고 그랬다.
딱히 상관은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왜 오셨어요?]
[우리 인턴이 세뇌당해서 좆되는거 막아주러 한달음에 달려와줬더니 매몰차시네요?]
[아.]
세린느.
그녀가 자신의 이마에 철관을 씌우고 미치게 만든 기억이 난다.
[흠, 아무리 제 성녀라고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답도 없네요. 진짜.]
[사랑에 빠진 적이 있으세요?]
[좀 된 이야기죠. 지금은 싱글, 왜요? 관심 있어요?]
[...금단의 사랑은 관심 없네요. 좆되기 싫으니까.]
[역시, 우리 에이스.]
다시 표정을 찡그리다 담배를 한 대 열심히 태운다.
[이제 전 어떻게 되나요?]
[흠, 제가 나타났잖아요. 그럼 어떻게 될지 모르시나요?]
[물론 멀쩡히 돌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전쟁 상황 어찌될 지 묻는거잖아요.그거 씨발 어떻게정리해요.]
[확실히, 과거 전쟁 후유증으로 사람들이 미친듯이 모여들어 전쟁을 방불케하곤 있죠. 귀찮은 새끼들.]
[자기 교단 사람들이 참전한 것인데 귀찮은 새끼들이라고 말해도 되요?]
[뭘, 만약 부싯돌 좀 모아와라 라고 하면 세상 모든 부싯돌을 모으고, 가지고 있는 자를 신성모독이라 학살하고 빼앗고 약탈하는 놈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거기까진 바라진 않았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전대, 전전대 성녀들 또한 다 똑같이 어떻게든 전부 모아와야 한다 선동하고. 마녀들이 귀찮다 하니 다 죽여버리려 하고.]
마녀사냥의 주범이 너였냐?
[귀찮다 했을 뿐인데 다 죽여버리려 하는건...그래서 귀찮게 되었죠. 그 이후로 이세계 사람들을 뽑아서 뭐 진정효과를 바래왔거나 포인트제도를 설비하긴 했고요.]
그게 여기까지 이어지는 설정인지는 몰랐네.
난 그냥 대충대충 나오는 썰들인줄 알았는데 인과관계가 있었구나?
[그럼 나가서 어찌하면 됩니까?]
[그건 말이죠. 현기씨는 아마 눈을 뜨면...]
헤론느가 귓속말을 한다.
[에라이 씨발.]
[하지만 사실인걸요? 현기씨를 살리기 위해선 이 수 밖에 없었어요.]
[하아...뭔 귀찮은 일만 죽어라 생겨요?]
[그건 솔직히 말하자면 현기씨 업보...아닐까요?]
[.......]
결국 그녀의 말을수긍하며 그의 눈이 뿌옇게 변하는걸 느낀다.
[아, 그 말 진짜였어요?]
[뭐요?]
[나중에 바득바득 기어올라 저 따먹어주겠다며요?]
아, 마기에 폭발해서 주체할 수 없을 때 알림음에게 했던 소리.
[흠...그걸 바라세요?]
[어? 갑자기 아무 상관 없다는 척 말하는건 좀 치사한데요? 지가 말해놓고는 오히려 바라냐니? 사내성추행! 신고할거에요?!]
[...담배나 마저 피고 들어가세요.]
[나중에 이건 이야기해요. 그럼.]
꼭 이런 강간 얘기를해야할까 싶지만 그녀가 원한다는데 뭐, 좆같은 노예새끼는 그저 고개나 끄덕일 뿐이었다.
.
'푸쉬시시시시!!!!'
철관의 스파크가 사라지고, 눈이 떠지는 남자.
"하아..."
크게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