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6.노예전쟁.3 (42/86)



〈 42화 〉6.노예전쟁.3

"흐으음..."

몇번이나 계속된지 느낌이 별 나질 않는다.

손이 나뭇가지가 되어, 나뭇잎이 자라나고, 싱그러운 나무가 되어, 한 수십년 쯤?  즈음을 나무로 살아간다.

나무가 썩어 점점 몸을 구성할 수 없을 때, 흙이 되어 강으로 흐르고, 서서히 서서히 바다로 간 후 점점 가라앉는다.

그 삶을 수십, 수백  반복하고 있을 때 자아는 점점 단순해지며, 자신이 누구인가 혹은 난 어떤 자인가 라는 질문이 무덤덤해질 때.


[당신은...]

다가오는 여성.

입을 벌리며 멍을 때리고 있을 때, 다가온 여성은 꽤나 익숙해보이는 그런 여자였다.

[으이구, 내가 그 개지랄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요. 폭주는 무슨 폭주. 이세계 이전자들 중 겨우 얻은 인턴인데, 다른 신들은 인턴이 얼마나 벌었다느니, 그들끼리 길드를 만들어서 떵떵거리며 안정적인 자금원이 된다느니 하는데 난 이게 뭐에요.]
[어어어...]
[내가 못살아서 증말! 내 죄야, 진짜 내 죄. 내 모든 여신 일 중 겨우 얻은 인턴이 이도교 개종  쓰고 자폐아가 되고 있어요?]
[어버버버...]
[흐이구!]
'짝!'

크게 박수를 치는 여성.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눈이 또렷해지고, 오랜 세월 나무가 되고 강이 되고 흙이 되며 바람이 된 기억들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아...]
[정신  차리라구요! 이건 뭐, 직접 제가 와서 에프터서비스라도 해줘야하는거에요?!]


앞에 있는 여성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여성.
아름다움.
섹스.

서서히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만진다.

부드럽고, 또 사륵거리며 손가락 사이로 만져지는 말캉함과 코 끝을 간질이는 꽃향기.


[꺄아아악! 직장 내 성추행!]

바로 뺨을 때리는 그녀.

[상사를 성추행하다니! 제정신이에요?!]
[어...]

아직 침을 조금씩 흘리고 있는 최현기.

[뭐, 내가 먼저 선물로 키스로 버프를 주긴 했지만! 그건 애정을 나타낸 행동이 아니라 앞으로 잘하라고 준 버프거든요?! 그러니, 이런 불상사는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어요.]
[.......]
[들려요? 예?! 최현기씨!]

최현기!
그것이 나의 이름.
그리고 나의 존재.

과거, 오랜 시간 지내왔던 기억들이 쏟아지듯 들어온다.

[야, 쟤 고아래.]
[고아 새끼.]

어린 아이들의 자신이 용감하다 생각하며 욕하는 말들.

더러운, 그리고 꼬질꼬질한 캐릭터 옷을 입고 초등학교를 다니던 기억.

[헐, 불쌍해.]
[안됬다.]


라고 말하며 절대 도움이든 말을 걸지 않는 여자애들.

더럽다, 꼬질꼬질하다.

딱히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조차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삶.

보통 그런 아이들이 가는 길은 뻔했다.


'퍼억! 퍽!'
[야, 너도 때릴래?]

양아치가 되어,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던 학생을 개패듯이 패버린다.

분명, 저 맞던 놈...기억 상에 고아새끼라고 욕하며머리를 손가락으로 밀던 녀석이었다.


[알바 하러 가야돼.]
[야, 삥뜯어서 그 성지 형한테 가져다 바치면, 알바 그딴거 할 필요 없다니까. 그 형이 집도 빌려주고 그러니 고아원 나와버려.]
[그냥 간다.]
[새끼, 존나 열심히 사네.  우리 어차피 답도 없어. 흙수저도 아니고 아예 수저가 없는 놈이 뭘 그리 산다고.]


그러면서 비슷한 삶을 사는 최현기가 묵묵하게 열심히 사는 것을 응원하던 녀석들도 있었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부터, 자신과 비슷했던 녀석들은 거진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거나 들어가지도 않았고, 물흐르듯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남들처럼 제일 힘든 시기.

[부모님 모시고 와.]


대부분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불려나간 최현기.

그저 학교에서 조용히 있어도, 문제가 발생하면 제일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선생은 고아라고 해서 무슨특혜든 좋은 말이든 하지 않는다.

공무원이기 때문, 그로서 학교에서 내린 지침으로 하는 일처리 외에 최현기를 무슨 애정어린 눈으로 보진 않는다.

그저, '에휴 문제 일으킬 것 같은 고아새끼'라는 얼굴.

자기 밥벌이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나서는 그런 부류였고, 당연히 최현기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끌려왔고 피해자로 보이는 아이들을 감싸고 나타난 학부모들이 보인다.

[이 새끼에요? 이 새끼가 우리 애 때렸어요?]
[아,아니 명진이 어머님. 진정하시고.]
[진정하게 생겼어요?! 얘네 부모는 언제 온데요?]
[아,아직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얘는 부모가...]
[아...고아새끼였어요? 어쩐지, 선생님. 애들 정서 상 이런 애가 학교에 있어도 되요? 얘.]
[......]
[으휴, 더러워라. 어디 의료수거함에서 교복이라도 얻어서 입었니? 얘!]
[......]
[미안하지만, 우리 애들에게 피해나 주지 말고 나가서 일이나 하지 그러니? 듣기로는 밤에 야자도 안하고 아르바이트 한다며? 그게 되니? 그냥 돈이나 벌고 나중에 검정고시라도 봐. 지금 우리 애한테 피해주지 말고.]
[아,아니 명진이 어머님...]
[선생님, 되었어요. 그냥 우리가 치료비 내기로 하죠. 하지만 이런 일 있으면 진짜 교육청에 문의할 줄 알아요.]
[조심하겠습니다. 들어가시죠.]

공무원이 제일 조심해야 하는 민원.

그 민원을 쓸 수 없는 최현기는 어찌보면 불쌍해서 넘어가준 케이스였다.

그리고,  명진이란 아이를 뒤에서 몰래 쳐서 쓰러트린 사람은 최현기가 절대 아니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상황.


[.......]


참는다.

[고아 새끼 불쌍하다고 일 시켜줬더니만, 뭐? 월급 달라고? 내가 언제 안준  있었어? 가게가 잘 안되니까 나중에 준다니까!]


그러면서 자신의 딸내미에게 두둑하게 쥐어주는 용돈과, 마누라에게 사주는 신상 빽을 자랑하던 모습을 봤다.

[네가 그러면, 잘 들으라고! 다 인생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하는 소리니까! 네가 달라고 하는 만큼 일을 제대로 했냐고! 으이구 요즘 것들은 어디 잘못된 것만 배워서 툭하면 노동청, 툭하면 교육청 이 지랄거리지. 꺼져 이 새끼야! 내일부터 나오지마!]


참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유리창을 깨부수긴 했지만, 진짜 깨부수고 싶었던 것은 그의 머리통이었으니 나름 참은 셈이다.


[피울래?]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만나지 못했던 녀석.

검은 색 야구점퍼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녀석이 내게 담배를 권했다.

[잘 사냐?]

듣기론 열쇠 따는 법을 아는 형에게서 배워서 재미  쏠쏠하게 본다고 한다.


[지랄마. 이번에 걸려서 경찰서 가서 조서 쓰느라 좆뺑이 쳤으니까.]
[그러냐.]
[뭘 그리 열심히 사냐. 어차피 답도 없는데.]

담배를 푹하고 피우며 그 때 생각에 잠겼다.

참으면, 복이 온단다.

그 말을 한 새끼에게 묻고 싶다.

너도 부모 없이 자랐는데 그 소리 하는거냐고.

씨발 것아.

[현기, 이번 분기까지 하면 2년 근속이네?]
[그러네요.]
[아무 문제도 없고, 마트 안건에 올려서 정규직으로 해도 되겠는데?]
[진짜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마트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던 최현기.

  기억을 잊지 못한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열심히 살다 마트 매니저가 부르며 어깨를 두들기던 그 때를.

처음으로, 그래 인생 처음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들었어. 저기 단칸방에 살고 있다며? 내가 알아봐줄까?]


매니저 또한 최현기의 삶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고, 나름 그가 돈을 모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 말에 전셋집을 구해준다.


[원래, 일을  정도로 열심히 하려면 집이라도 편해야 하는 법이야. 여기면 충분할거다.]


매니저는 자신이 만난 사람 중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뭘 그냥 형이라고 불러 새끼야.]

그리고...자축을  때 죽었다.

어째서.

나만, 어째서, 왜, 하필,  행복하면 안되냐, 씹새끼들아, 열심히 살아봤자 결국 뒤지니 좆같이 사는게 답이었냐? 개새끼들아.

묻잖아, 씨발것들아.

니들 씨발 엄마 손 잡고 군것질 거리 들고 다닐 때, 아침부터 밤까지 할 짓이 없어서 놀이터 흙이나 파는 아이는  했는지 궁금한가?

놀이터 화장실 세면대에서  처 마시면서 목이랑 배를 채웠다.

배가 텅텅 비어서, 숨을 쉬면 위장까지 전부 바람이 들어차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남을 해하지 말라. 남을 건드리지 말라. 참아라. 소중한걸 생각해라? 포기 하지말라, 희망을 가져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나중에 다~보면 추억이 될거라고?

그래, 그런 말들을 다 듣고 참고, 열심히 살아왔더니...살아왔더니...

살아왔더니.

씨바아아아알!!!!!! 개 씹창 새끼들아!!!! 왜 행복 다 느끼고 살았던 니 새끼가 아니라!!!! 내가 뒤져야 하는건데!!!!!


[으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깨어난다.

눈 앞에 보이는 여성.


[헤론느?]
[이젠 여신님이라고 말도 안 붙여주는거에요?]


기억이 온전해졌다.

또 다시 눈이 반쯤 감긴다.

어쩌라고.

씨발, 여기서 뭘 어찌하라고.

다...포기하고 싶네.

아니 포기된건가.


[피울래요?]


그녀가 옆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여신 이미지에 담배가 어울립니까?]

초원, 자신이 나무가 되어 일평생을 보낸  같은 기분이 드는 초원에서 담배를 받아든다.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피워본다.


[원래 여자 아이돌들도 접대도 하고, 무대 돌면서 악플로 욕도 듣고 섹드립도 듣고 그래서 무대 뒤에서 담배 좀 태우는거 몰라요?]
[걔넨 어리잖아요.]
[어머? 여자 나이 가지고 차별하는거에요? 힘든건 다 똑같잖아요. 그리고 여신 차별! 여신은 담배 태우면 안됩니까?]

생각해보면 자신 주위에 비슷했던 여자애들도 담배를  나눠 피고 그랬다.

딱히 상관은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왜 오셨어요?]
[우리 인턴이 세뇌당해서 좆되는거 막아주러 한달음에 달려와줬더니 매몰차시네요?]
[아.]

세린느.

그녀가 자신의 이마에 철관을 씌우고 미치게 만든 기억이 난다.


[흠, 아무리 제 성녀라고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답도 없네요. 진짜.]
[사랑에 빠진 적이 있으세요?]
[좀  이야기죠. 지금은 싱글, 왜요? 관심 있어요?]
[...금단의 사랑은 관심 없네요. 좆되기 싫으니까.]
[역시, 우리 에이스.]

다시 표정을 찡그리다 담배를 한 대 열심히 태운다.


[이제 전 어떻게 되나요?]
[흠, 제가 나타났잖아요. 그럼 어떻게 될지 모르시나요?]
[물론 멀쩡히 돌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전쟁 상황 어찌될 지 묻는거잖아요.그거 씨발 어떻게정리해요.]
[확실히, 과거 전쟁 후유증으로 사람들이 미친듯이 모여들어 전쟁을 방불케하곤 있죠. 귀찮은 새끼들.]
[자기 교단 사람들이 참전한 것인데 귀찮은 새끼들이라고 말해도 되요?]
[뭘, 만약 부싯돌 좀 모아와라 라고 하면 세상 모든 부싯돌을 모으고, 가지고 있는 자를 신성모독이라 학살하고 빼앗고 약탈하는 놈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거기까진 바라진 않았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전대, 전전대 성녀들 또한  똑같이 어떻게든 전부 모아와야 한다 선동하고. 마녀들이 귀찮다 하니 다 죽여버리려 하고.]

마녀사냥의 주범이 너였냐?


[귀찮다 했을 뿐인데 다 죽여버리려 하는건...그래서 귀찮게 되었죠. 그 이후로 이세계 사람들을 뽑아서 뭐 진정효과를 바래왔거나 포인트제도를 설비하긴 했고요.]


그게 여기까지 이어지는 설정인지는 몰랐네.

 그냥 대충대충 나오는 썰들인줄 알았는데 인과관계가 있었구나?

[그럼 나가서 어찌하면 됩니까?]
[그건 말이죠. 현기씨는 아마 눈을 뜨면...]


헤론느가 귓속말을 한다.

[에라이 씨발.]
[하지만 사실인걸요? 현기씨를 살리기 위해선 이 수 밖에 없었어요.]
[하아...뭔 귀찮은 일만 죽어라 생겨요?]
[그건 솔직히 말하자면 현기씨 업보...아닐까요?]
[.......]

결국 그녀의 말을수긍하며 그의 눈이 뿌옇게 변하는걸 느낀다.


[아, 그 말 진짜였어요?]
[뭐요?]
[나중에 바득바득 기어올라 저 따먹어주겠다며요?]

아, 마기에 폭발해서 주체할 수 없을  알림음에게 했던 소리.


[흠...그걸 바라세요?]
[어? 갑자기 아무 상관 없다는 척 말하는건 좀 치사한데요? 지가 말해놓고는 오히려 바라냐니? 사내성추행! 신고할거에요?!]
[...담배나 마저 피고 들어가세요.]
[나중에 이건 이야기해요. 그럼.]


 이런 강간 얘기를해야할까 싶지만 그녀가 원한다는데 뭐, 좆같은 노예새끼는 그저 고개나 끄덕일 뿐이었다.

.

'푸쉬시시시시!!!!'


철관의 스파크가 사라지고, 눈이 떠지는 남자.

"하아..."


크게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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