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5.이제부터 좀 역전물이 될거 같긴 한 노예.-4
[어쨋건 포인트는 착실히 모으시고 계시네요. 칭찬드려요.]
[예예. 어차피 뒤졌는데 칭찬 감사합니다.]
웃음 짓는 여신과 최현기 둘 밖에 은행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흔한, 프린트소리 딸깍거리는 소리 띠링하는 알림음 소리도 없이 정적만이 가득한 곳.
[원래 이렇게 한산한 곳입니까?]
[본래는 그렇지 않죠. 대부분 직원들은 다시 사람들 뽑아서 저쪽 세계 보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편이고요.]
[으흠. 대부분 노예로 가서 뒤지니 새로 인력 충원하느라 바쁘겠어요?]
[그러니까요. 으휴, 요즘 죄인들 구하기도 하늘에 별따기라니까요.]
[죄인?]
[...어머, 그냥...다른 세계로 가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칭하는...]
[진짜요? 구라 아니고 용사로 가든, 귀족으로 환생하든 뭘 하든 전부 죄인이라고 칭한다고요?]
[......]
[거 구라인 줄 알았다. 씨발.]
[......]
[그러니까 다른 세계로노예의 위치로 가는 일은 대부분 죄인이라고 하는 잘못한 사람이 가는 길이다?]
여신이 은근슬쩍하는 눈치로 최현기를 바라본다.
[근데 왜 전 노예로 간 겁니까? 내가 씨발 뭔 잘못을 했다고.]
[아,아니.]
[내가 씨발, 고아로 태어나서 뒤지게 일만 하고, 아니 잘못한 것이라곤 뭐 그래. 사장놈 월급 안 주고 쫓아내서 유리창 박살낸거랑 굶어뒤질거 같아서 편의점 폐기되는 삼김 턴거랑...미성년자때 씨발 좆같은 인생 하면서 소주 빨고, 담배 피운거 그거 외에 제가 죄인이라고 할 만한 짓 했습니까?]
[아뇨...오히려 정상참작 부분들이죠.]
[하아, 씨발 그러면. 내가 그 때 이후로 제대로 삐뚫어져서 사람을 패고 다녔습니까? 아니면 내가 씨발!!!!]
폭발 직전.
진정한 그라데이션 분노.
전전생은 정신차리고, 사람 답게 살아보고 싶어서 포기하지 않고 돈 벌고 정규직되고 전세로 집구하고 이제 살겠다 싶어 자축하며 술 먹다 뒤졌다.
그래서 다 내려놓고 노예로서 받아들이고 살려니 배에 칼빵이나 맞고 뒤졌다.
[뭔 잘못을 했는데 노예고! 씨발, 노예로 가서 150일 동안 좆뺑이까다가 칼 맞고 뒤져야 하는데!]
[지,진정해요!]
[...진정해야죠. 여기서 더 깝치면 지옥불로 떨굴 수 있는 여신님이니까.]
상황판단이 빠른 것은 조금 씁슬한 그의 재능 중 하나였다.
아무리 욕을 하고 싸워봐도 돈 한 푼 못 건지고, 오히려 상해죄나 기물파손죄로 벌금이나 물어야 하니까.
[진정하셨어요?]
저번과는 다른 반응.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서 작은 스푼으로 휘저어 건네주는 여신.
오랜만에 보는 믹스 커피를 빤히 바라본다.
'아메리카노.'
그 나마 좀 사람답게 살아볼까 하면서 얻은 새로운 알바직장인 위험한 밤.
'사장은 좀 슬퍼하시려나.'
뒤진 후로 뭐 알아서 잘 하겠지하는 생각도 든다.
아, 근데 전전생은 전셋집에 시체는 치웠을라나.
아무리 그래도 지금 몇 달은 지났는데 시체 부패되서 냄새 때문이라도 발견됬겠지.
젊은 성인 고독사로 뉴스라도 떴으려나.
주머니에 뭐 지갑 있었는데, 거기서 시체 치우는 사람들이나 장의사들 수고비라도 챙겨갔으면 좋겠네.
[그게, 제가 당신을 노예로 추천한 이유에요.]
[뭐요?]
아무리 여신이라도 내 생각까지 읽어대는건 선 넘었지 썅년아.
다시 날카로워지는 최현기의 표정에 다시 흠칫하며 뒤로 물러나는 여신.
[그...누구에게나 재능이라는게 있잖아요?]
[그래서요?]
[보통 최현기씨는 그렇게 억울하면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흠...]
지금 정신과처럼 치료라도 해주는건가?
뭐, 씨발 이거 병주고 약주고 인가.
[처음에는 억울하죠. 좆같고 씨발 내가 왜 이러나 싶기도 하고.]
[네. 대부분 표정에서 드러나는 타입이시구요. 그게 좀 섹시하고 흥분되게 하는 매력도 가지고 있고요.]
[...아니 별첨 달지 말고 좀 들어주시죠? 사람 두 번 뒤져서 지쳤다는데?]
[아, 이해 못해서 죄송해요. 제가 하도 죽은 사람들 많이 만나서...]
[그럼 씨발 묻지를 말던가. 이 따위가 뭔 여신이라고.]
[...맨날 하루에 수 만 명씩 죽은 놈들 만나봐요. 좆같은 또라이들도 많고 엉엉 하루 종일 울기나 하고. 엄마 보고 싶다 울고,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치고. 시장통이 따로 없다니까요.]
[그렇게 좆같으면 여신 때려치워야지요. 직업 적성이 안 맞네요.]
[억겁의 시간 동안 했던 일이고, 이 정도 짜증만 나타나는 정도라면 전 오히려 잘하고 있는 여신 맞거든요? 보통 이 정도로 좆같이 구는 영혼 있으면 바로 소멸 때리는게 기본인데 이렇게 커피나 같이 들면서 이야기 좀 들어주잖아요.]
[대신 꿀빨고요?]
[왜 제가 지금 꿀 빤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최현기는 한숨을 푹 내쉰다.
[번호표가 1번이고, 전 아예 당신 교단 인턴이라며요?]
[그게 왜요?]
[노예가 30만명이나 오고 갔는데 거기서 잘된 애들이 있겠죠. 그리고 처음, 담당 여신으로 헤론느 여신이었습니다라는 대사. 거기서 유추해본 것으론.]
한심하다는 듯 최현기는 여신을 바라본다.
[당신도 그리 잘난...그 12신이었나 거기서 좀 떨어지는 여신이라는 거겠죠. 신급이나 그런 것보단 흠...정확히 말하자면 담당한 소환사들이 좆망한 케이스? 그래서 당신 담당으로 배속된 소환사로 제가 맨 처음이라, 번호표가 1번인거고요.]
[어떻게 그리 추리를 잘해요! 역시 우리 에이스!]
라고 말하며 웃으며 뒤에서 최현기를 끌어안는데, 아깐 반 장난으로 젖탱이 만지고 싶다고 했고 지금 사람 뒤졌는데 음심이 일어날리가 없지 않은가?
[좀 치워봐요. 여신 젖탱이 감촉은 나쁘진 않은데 그럴 기분 아니니까.]
[그럼 다 유추하면서도 지금 분노하는거에요? 이유는 이미 거의 이해한거잖아요?]
[맞죠. 하지만, 내가 씨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얻는 거라곤 여신의 기쁨? 그 정도로 끝나는 좆같은 좆뺑이라 생각하니 욕나오는 것 뿐이고요.]
[그게 어때서요? 제 교단 사람들은 제 무표정한 얼굴만 봐도 질질 싸면서 무삽입 사정하는데.]
[...그걸 씨발 말이라고...아니...]
교단 자체가 사이비마냥 광신도들이 많은 것을 생각해보며 할 말을 멈췄다.
생각해보면 헤론느 교단 자체가 광신도들 중 으뜸인 곳이며, 거기 성녀인 세린느를 생각해보면...
'좆망한 교단인데?'
[아무리 저희 교단과 교리와 취향이 안 맞아도 거기 여신 앞에서 좆망이라뇨?!]
[생각 좀 그만 처 읽으라고요.]
[어쨋건 대부분의 추리는 얼추 맞아요. 아니, 오히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이해득실로 따지고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게 제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최현기를 가리킨다.
[당신은 최고의 노예인겁니다!]
이 씨발년이 진짜 어떻게든 좋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을 가랑이 사이처럼 하시네.
왜 샷건식 대화법이 필수인지 알겠다.
[그럭저럭 괜찮아보이는 애들을 죄인인 노예들 사이에 스탯창이랑 스킬창 넣어주고 집어넣었는데...그 중 하나 제가 얻어걸린게 아니고요?]
[아니요! 이 사람은 확실히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고, 천국이랑 지옥 갈만한 카르마도 아니어서 저어어엉말 애매하고. 그걸 제가 사정사정해서 얻은 사람이 바로 당신! 최현기랍니다!]
칭찬인가, 여신의 선택을 받은 것이니 칭찬이라고 들어야할지도 모른다.
[패배주의! 생존주의! 냉철한 분석!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노예로서 필요한 세 가지 요소!]
그건 좀 궁금하긴 하네.
[끈기와, 자기 합리화, 그리고 상대방이 덜 때리게 하기 위한 불쌍한듯하면서 섹시한 와꾸.]
죽일까.
갓슬레이어같은 검 하나 내 손에 딱 쥐어주면 좋겠는데.
[본래 그냥저냥 불쌍한 듯한 음침한 매력? 그 정도였는데 얼마나 자기 매력을 잘 살렸는지 지금 봐요! 성노예 특별 케이스! 자신이 알아서 알고리즘을 풀어 완성한 노예 중 스폐셜 리스트!]
[거, 씨발 자랑스러운건 알겠는데 적당히 아갈 텁시다. 사람 고혈압으로 뒷목잡고 쓰러지게 놀리지말고요.]
[어차피 영혼만 있는 상태라 고혈압으로 죽진 않아요.]
[기분이 좆같다고요.]
[어쨋건, 당신은 극도의 생존주의를 이용해서 자신도 모르게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마성의 매력을 스스로 손에 쥐었어요. 이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헤론느 교단에 비벼서 얻는 신의 권능을 아득히 넘어선 이능적인 인간이 할 수있는 특별한 케이스죠.]
[특별한 케이스?]
[호감도 시스템을 이용해서 간수를 꼬신다던가, 교단의 기도를 이용해 신성력을 습득해서 신성교로 간다던가 해서 노예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많아도, 아예 그곳 수장을 꼬셔서 사노예가 된다는 케이스는 없거든요.]
원해서 사노예가 된 적은 내 기억 상 죽어도 없는데.
[그리고 자유민이 되거나, 교단으로 소속되는 순간부터 당신은 제 관할이 아니게 되어요.]
[뭔 소리에요? 저기 보낸게 당신이고, 그리고 헤론느 교단에 소속되면 당연히 헤론느 여신의 소속이 되는거잖아요.]
[물론, 저 안에서 교단에 속해지면, 제가 관리하는 편히 말하면 관리부 소속? 한마디로 따지면 npc가 되는 것이죠. 허나 편히 말하면 영업부, 포인트를 벌어다주는 존재. 제 소속 유저라면 무조건 노예 타이틀을 단 user여야 하거든요.]
[아니, 씨발 잠깐. 너 풍요와 가정의 여신이잖아?]
갑자기 또 분노가 치밀어올라 그라데이션 분노가 폭발한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바로 앞에서 꽈악 끌어안는 헤론느 여신.
[슬슬 완전히 눈치챈 모양이네요?]
[너, 씨발 지금까지 이세계에 노예로 보낸 애들 전부 니 포인트벌이였지? 그리고 그 와중 뒤지지 않고 인턴 승급한 애가 나고. 그래서 특별관리로 나랑 면담하는거고?]
[정~~~답♥]
[막가자는거지?]
이상하게 움직일 수 없는 최현기.
당장이라도 안고 있는 헤론느 여신을 치우고 죽탱이를 한 대 꽂고 싶다.
[인생 잘 마무리하고 다음 생이 되건, 알아서 어떻게 되건 그런 사람을 지가 괜찮아보여서 끌고와서 노예 시키고 잘되니 이런다고? 이런 씨발 좆같은...]
[이런 노예적인 분노 매우 좋아요! 이런게 삶에 정말 큰 원동력이 되는거거든요!]
[뭔 쌉소리야. 이미 뒤졌는데.]
천천히 교태를 부리며 헤론느는 최현기를 가까이 끌어안으며 입술을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가까이 가져간다.
[정말 그렇다 생각해요?]
[뭐?]
[이건 지금까지 잘한 노예에게 주는 선물. 앞으로도 노예로 잘 있어줘요~.]
입술이 포개진다.
그리고 서서히 눈이 떠지며...
.
"음."
죽었었는데.
분명 죽었는데.
[여신의 가호.
레벨 : ???
전 스텟 40 상승.
상처치유력 100% 상승.]
꾸드득 거리며 몸이 수복되어 가는 것이 느껴진다.
'흠. 근데 뭔가...딱딱하게 막혀있는게...느껴지는...'
서서히 손을 내려 상처 환부를 만져본다.
'꼬매져 있네...분명...나 물풍선 터진거 마냥 장기 다 터졌었는데.'
이상하다...싶은 생각과 함께 눈을 떠 주위를 바라본다.
"어..."
눈 앞에 보이는 수 많은 눈알들과 장기들.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붉은 커텐이 눈에 띈다.
누군가 보면 이도교의 뭔가 끔찍한 것을 소환하는 소환진 같은 곳 위에 누워 중요한 사타구니 쪽만 수건으로 가리고 있는 그.
"내 씨발, 죽어서 지옥갈 줄 알았지."
"헛소리할 기력은 있나보네."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팔락이는 책소리와 함께 살짝 맡아지는 오래된 나무가 내뿜는 살짝 텁텁한 톱밥내음.
"아."
아멜리오르.
환희의 마녀이자...마기를 다루는 리치급의 괴물이자 자신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한 명.
"언데드?"
죽은지 얼마 안된 인간을 가지고 마녀가 할 수 있는 수법 중 하나.
허나, 분명 신성력이 있는 사람은...언데드가 될 수 없는데?
"어둠의 길에 온 것을 환영해."
좆된 모양이다.
아니? 전생에 그냥저냥 죽은 추천 직종 노예인 내가, 이 세계에선 칼빵맞고 뒤진 언데드?라는 내용으로 앞으로 내 이세계라이프가 전개되는건가?!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함께하자."
맛탱이간 하트표시가 가득한 눈을 한 채 서서히 다가오는 그녀.
'흠, 더욱 좆됬군.'
대략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 뒤 마지막 기억은 아멜리오르가 손에 쥔 수술용 매스로 다시 배를 가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