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5.이제부터 좀 역전물이 될거 같긴 한 노예.-1
'생각해보니 너무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
마음 먹고 그래! 이제 목돈을 몰래 쌓아서 이걸로 재미난 것들을 많이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여자를 꼬신다라...'
일단 여자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카페에서 립서비스를 하는 것 외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
수업 중 다른 여자들에게 말을 걸려고 하다가...
'내가 원래 이런 성격도 아니고...'
그리고 걸 명분도 없기에 패스.
결국 말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천직 노예인가 싶을 정도로 일하면서 하는 립서비스 외에는 잘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흠, 창녀촌에 가볼까.'
생각을 해서 돈을 모으긴 했는데,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열심히 번 돈으로 그런 곳에 가긴 아깝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가?"
손님들이 빠지고 난 후, 커피컵을 닦고 있던 사장이 말을 건다.
"아. 돈을 어디다 써야 할 지 고민이라서요."
걸레질을 하다 대답한 최현기.
"음? 아카데미 등록금 때문에 일하는거 아니었나?"
"오, 절 꽤 건실하게 생각하셨네요. 여기 와서 립서비스나 하는 사람을."
"뭐, 아카데미 등록금 내려고 기사지망생 여자가 술따라주는 호객업종에 뛰어드는 일도 비일비재 하니까."
흠, 그럴 수도 있겠구만.
"그냥, 돈을 벌어서 어찌저찌 위험하지 않은 여자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보려고 막 시작한 것이죠."
"흐음, 마구잡이로 벌인 관계라. 하긴 그런 의도로 시작한 것이 오히려 건전한 사람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
끄덕이던 사장은 옳거니 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보기엔 자네는 남창짓을 하기에도 꽤나 재능이 있는 사람일세."
저 썩을 사장은 칭찬을 저 따위로 하는 재능이 있네.
성노예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남창짓도 확실히 재능이 있을 수 있긴 하지만.
"그러니 귀족가의 아가씨들이나..."
"아니, 제가 말한 위험하지 않은 여자들은 결혼을 한 유부녀란 뜻이 아니라, 전투력이나 권력이 없는 그런 순진한 여자를 뜻하는 것니다."
"아, 그런 뜻인가? 흠, 권력이나 출세를 하지 않고 강하지 않은 여자라...그냥 창녀촌에 널린 사람들아닌가?"
여긴 정말 빌어먹게도 쓰레기 같은 관념을 가진 세계였다.
여자여도 능력이 출중하면권력이나 힘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남자든 여자든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것.
적어도 재산이나 좀 있다면 그 나마 어찌저찌 살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 인식에 재능이 쥐뿔도 없는 사람들은 창녀나 노예와 동급인 빌어먹을 세계관.
"그, 아직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그런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아, 키워서 먹겠단 소리군. 나도 한 때는 그런 맛에 들이려고 한 적이 있었지. 아직 꽃봉오리가 개화하지 않은 아름다운 그런...미학을 말일세."
뭔 소리냐.
"갸날픈...그리고 아직 덜 여문 그런...앞으로 더욱 아름다워질...그것 아는가? 세상에 미학은 완성형이 없다는 말 말일세. 그저 더욱 아름다워질 것과 더욱 추해질 것 그 둘 밖에 없는 것이며 세상은 항상 변해가는 법이지. 그리고 그 여린 꽃봉오리들은 더욱 아름다워질 일만 남은 세상의 완벽한 미학이었지."
"설마...미성년자 같은 애들건드렸단 소리인가요?"
"그렇게도 말하지."
뭐라는 거야, 이 씹 페도새끼는.
"하지만 결국 알게 되었다네. 더욱 아름다워질 그런 존재들은 지켜주는 것으로 더욱 완성되는 쾌감이 있다는 것을 말일세."
변태지만 변태신사입니다 같은 소리인가.
저 사장은 정말 배울 점은 많아도 친해지면 안된다는 느낌이 드는 씹새끼같다.
하긴 자신 주위에는 그런 존재밖에 없지.
"자, 오늘도 이만 마쳐야겠군. 아, 그리고 이 근방에서 자네 꽤 유명해졌으니 꼬신다고 하면 좀 힘들거네. 다른 곳으로 가서 꼬시는걸 추천하네."
"왜요?"
"왜긴, 다른 여자들이 가만히 있겠나? 그리고 이 카페가 자네 얼굴 덕에 은근히 먹고 살게 되었는데, 매출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지 않겠나."
"흠..."
'딸랑!'
손님이 오는 벨소리.
유난히 청명하게 나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야."
얼굴을 푸욱 숙이며 나온 여자.
'아?'
저 스토커 년.
왜 여기까지 쫓아온거냐?
"안녕하세요. 카페 위험한 밤입니다."
이제 설명하겠지만 이 카페 이름은 위험한 밤이라고 지었다.
"내가 다시 수업들으러 오랬지?"
"...주문하시겠어요?"
"감히 너 따위가 내 말을 무시해?"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이게 죽고 싶어서!"
멱살을 잡는다.
엘라슨.
그녀가 아카데미에서 쫓아온 것도 넘어, 이젠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손님, 일단 진정하시죠. 계속 행패를 부리시면 퇴거 요청하겠습니다."
"퇴거?! 해봐! 나 여기 졸업하면 기사될 몸이야! 누가 날 퇴거해?!"
미쳤군, 이미 눈이 돌아갔어.
"왜 내 말 안 듣고 이딴데에서 일하고 있냐고! 돈 필요해? 얼마면 돼?!"
저, 사장님 울상짓고 있어.
이딴데라고 해서.
[제자여.]
이세계에 와서 얻은 유일한 스승.
사장이 표정으로 마치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한 두번 여자들과 싸워왔거나, 한 두번 수라장을 거쳐본 사람이겠는가.
[이럴 때는 어찌 해야 합니까?]
[왜 묻느냐?]
인자한 사장의 표정.
[넌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느냐? 넌 충분한 창남이란다.]
씹새끼, 표정으로 창남이라고 칭찬하는 경지까지 올랐네.
'텁!'
손목을 잡아챈다.
소드 익스퍼드 최상급이 분명한 엘라슨의 손목이 소드 유저인 최현기에게 잡힐 리가 없다.
허나, 잡힌 채 울먹이는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짜증도, 귀찮음도 담겨 있지 않는 무표정의 눈.
숨결이 느껴지지만, 접촉은 없는 아슬아슬한 그 무아의 경지.
[그래, 잘하고 있다.]
뒤 콧수염 사장의 응원.
이건 그렇고 그런 경계가 아니며, 이것은 제일 중요한 서로간의 거리.
숨이 거칠어지는 그녀의 얼굴, 붉어진 볼과 떨리는 동공.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녀의 눈이 서서히 아래로 바라볼 때.
[지금!]
"진정해."
어떤 변명도, 어떤 주석도 필요없다.
그저, 아무 이유도 없는 듯 말해야 한다.
무덤덤한 얼굴로 푹 숙여진 그녀의 귓가에 저음으로 끝없이울리듯이.
'하아...'
얕은 숨소리.
"일단 앉자. 커피 줄테니까."
이유 같은 변호사들이 만들 법한 짜증나는 짓은 여자에게 필요없다.
감정적으로 격해졌을 때 그는 엘라슨을 제압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여자는 이유를 따지지 않는 생물이라고? 한달에 꼭 일주일은 호로몬으로 자궁이 박살나는 존재들이다.
감정적인 옥타브가 항상 위로 아래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여자들이 감정이 격해졌다? 항상 아플 때마다 굳이 이유를 다는 것도 지친 그녀들에겐 이유를 달기 보단 진정하라 말하고 앉힌 후, 따뜻한 커피를 내어준다.
"마셔."
"......."
천천히, 그리고 무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게 진정시키기 제일 뛰어난 효과를 지녔다.
"이제 수업 안 들으니까 반말해도 되지?"
"...그러던가."
통했다.
사장, 나 잘하고 있지?
어느샌가 마치 노인 고수마냥 '쯧, 이제 난 필요 없겠구만'이라는 양 자리를 피해준 그.
아니, 그냥 무서워서 튄건가?씨발새끼...
카페에는 둘 밖에 없었다.
'음? 분위기 맞춰주는건가.'
하늘이 분위기를 맞춰주는 듯 천천히 비가 내린다.
하얀 정장에 검은 앞치마를 입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옆에서 바라보고만 있다.
[남자는 달고 다녀야 하는게 불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장의 가르침.
천천히 자세를 낮추고 한 쪽 무릎을 기사처럼 꿇으며, 주머니에서 행거치프를 꺼내 그녀의 눈가를 닦아준다.
"...이제 괜찮아?"
"왜...나 보러 안 왔어?"
건방지게 명령을 안 들었다는 말에서 진심어린 말이 나왔다.
'니랑 내가 볼 일 있냐? 그냥 어린 남자애들이나 따먹고 다니던지, 왜 갑자기 요조숙녀 코스프레야 씨발.'
하지만 참아야 한다.
그녀는 나보다 쎄니까.
이 카페가 무너지게 된다면, 쉽게 쉽게 돈버는 알바자리가 무너진다.
"그러게."
이미 선수급으로 맞춰진 멘트.
병신이 아니고서야 지 이유가 있을 것인데도 그러게라고 하자 눈을 반쯤 내리 깔며 다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입가에 가져간 엘라슨.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밤그늘이 어둑해지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켜지고 이 거리는 둘 밖에 남지 않은 듯 고요해지기만 했다.
"야."
이미 톤 자체가 엄청 누그러진 엘라슨이 말을 건넨다.
"왜?"
"수업 안 나와도 되니까...너 내일 시간 비워놔."
건방진 년.
누구보고 명령질이야.
"안돼."
"...!"
말도 안된다는 듯 바라보는 엘라슨의 얼굴.
"왜?!"
"내일도 여기서 일해야 해."
"돈 필요하면..."
"돈 문제가 아니야."
천천히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차분한, 그리고 차가운 감촉이 서늘하게 그녀의 귓가를 스치며, 천천히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준다.
"하고 싶은 일이야."
"...그렇구나."
"커피 먹고 싶어지면 다시 와. 해줄게."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다시 가서 정리를 시작한다.
사장이 남겨둔 커피잔들을 닦아내며, '아니 사라지더라도 커피잔 존나 남기고 떠났네 씹같은 사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 오늘 밤에 시간 있어?"
가까이 하긴 싫지만, 이것까지 거절할 명분이 있을까?
흠, 저 야생마같은 덩치를 볼 때 매몰차게 거절하는 순간 뭐 끝장나는건 내 종잇장같은 몸이겠지.
여긴 능력이 최고지, 법이 최고인 세상이 아니니까.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여유롭게 반 쯤 마신 커피잔을 치워주며 말을 건넨다.
"응?"
"비오고 어둡잖아. 레이디가 이럴 때 그냥 가면 위험해."
기사 후보이며, 등 뒤에 걸쳐진 날이 제대로 벼무려진 위험한 창.
어깨가 여자면서 최현기보다 살짝 작은 그녀가 위험하다고?
키 또한 180은 넘을 것 같으며 허벅지는 야생마 저리가라 할 정도로 굵은 것 같다.
앞치마를 벗고, 검정 우산을 펼치며, 카페 문을 잠근다.
"가자."
우산을 같이 쓰고 걷고 있다.
최현기보다 더 큰 그녀가 수줍게 두 손을 모으고 천천히 걷는 상황.
잔잔히 내리는 비는 그 두 사람을 축복하듯 그칠 줄 몰랐다.
"여기야."
기사후보라서 그런지 기숙실에서 살지 않고, 아카데미 내에 따로 별관을 아예 빌려서 산다고 한다.
'돈 존나 많구나.'
하긴, 모험가로써 s급 용병이라고 하며, 마계 차원문까지 막아낸 존재이니 포상금이 어마어마 했겠지.
어디 귀족 저택의 큰 대관 앞에서 그녀에게 살며시 입꼬리만 웃어주며 우산을 건네준다.
"가져가. 감기 걸릴라."
"응? 하지만..."
"난 뛰어가도 되니까."
조심스럽게 다시 살짝 내려간 그녀의 옆 머리를 뒤로 넘겨준다.
"또보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유유히 사라진다.
솔직히 아직 비가 존나 내려서 춥다.
하지만, 희생했다는 명분이 있어야 저 년이 그 나마 쫓아와서 지랄은 하지 않을 것 아닌가.
지랄하는데로 놔두라고 할 수 있는데 소드 익스퍼드다 소드 익스퍼드.
소드 마스터만 맨날 주구장창 나오는 소설들만 봐서 '소드 익스퍼드 그거좆밥임'이럴 수 있는데 소드 마스터가 탱크라면 소드 익스퍼드는 기관총이다.
소드 유저는 그냥 권총 수준이라고 보면 편한 그런 세상.
기관단총 개발 후 세계 전쟁이 달라지는 수준인데 그런 세상의 주역, 그리고 최고의 전력이 바로 소드 익스퍼드.
즉, 그냥 놔두라는 말은 기관총 든 미친 놈을 카페나 내 사는 곳에 그냥 떠넘기라는 소리와 같다.
'적당히 꾀꼬리 날려주고 관리하지 않으면 내가 씹 털리겠지.'
다행히 먹힌 모양.
엘라슨은 최현기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자신의 손에 쥐여진 그가 건네어준 행거치프를 바라본다.
'좋은 냄새.'
커피 냄새가 떠나질 않은 그의 행거치프.
모험가 시절때부터 절대 느낄 수 없었던 저 예의와 부드러움.
'아아아...'
그리고 그녀는 모르겠지만 성노예로서 나오는 달콤한 유혹과 아찔함.
'오늘은...이거다.'
최현기와 행거치프는 그날 엘라슨의 반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