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57화 (55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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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1] 사천당가를 털어라

독선 당예진.

젊은 시절부터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그녀의 미모는 지금도 간혹 화자될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당서희만큼은 아니지만, 당서희에 준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더라.

서희가 성(性)스럽고 색(色)스럽게 예쁘다고 한다면, 당예진은 성(聖)스럽게 예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반로화동을 거치면서 어린 아이가 되었다?

'그건 안 되지.'

비천색마가 건드릴 수 없는 성역(聖域)으로 들어가버렸다.

색마는 성인을 건드릴 뿐.

성인이 아닌 자에 대해서는 결코 건드리지 않는다. 그건 나의 신념이며, 성인이 아닌 자를 범할 바에는 차라리 혼자서 벽을 보고 수음이나 하며 면벽수련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양심의 가책.

그리고 천기의 붕괴.

그런 짓을 했다가는 구천현녀가 냅다 하늘에서 내려와 옳다꾸나 하며 내 목을 동강 날려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른만, 성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색마의 눈을 피해 어린 아이로 '위장'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러니까 서희 네 말은 몸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아니더냐?"

"네. 독의 부작용으로 인해 몸이 줄어들었죠."

"그럼 독을 해주하게 되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는 거네?"

"그렇긴 하죠. 어떻게 하시려고요?"

독만 없애면 되는 거 아닌가?

"...흐흐, 좋은 생각이 났다. 서희야, 네가 잠깐 나를 소개해줘야겠다."

천무명이 아닌, 새로운 이명(異名)을 꺼낼 때가 되었다.

"내가 어지간한면 역체변용술을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어쩔 수 없지."

독을 해주하기 위해서는 약이 필요한 법.

"진가장에 서신을 보내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자."

"어쩌시려고요?"

"그야 간단하지. 나는 지금부터...약봉(藥鳳)이다."

의원이 아닌 약사.

독에 밀접한 당가에 접촉하기에 약사만큼 좋은 직업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당가의 독선과 접촉하려면...우선 당가의 자존심을 건드려야겠지. 서희야, 너는 잠시 휴가로 내려온 것으로 하자꾸나. 그리고 너와 나는...호북에서 인연이 생긴 것으로."

"네? 싫어요. 저 남자랑 엮이고 싶지 않은데요?"

"허허, 누가 남자랑 엮인다고 했느냐?"

삐걱, 삐거덕.

"...누가 약봉이 남자라고 했지?"

약'붕'이 아닌 약'봉'.

"이거면 충분하지 않겠어?"

"...서방님. 저."

당서희는 진지한 얼굴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화장하게 해주세요. 제가 저보다 더 예쁘게 꾸며드릴게요, 언니."

"......가슴에 이상한 거 넣으려고 하지는 마라?"

나는 당서희가 원하는대로 한껏 꾸미고 사람들의 앞에 나서게 되었다.

* * *

사천당가의 가주, 당오독은 가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성도 인근에 산책을 나왔다.

용봉지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중원은 평화롭고, 사천에도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사천은 매해 볕들 날이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조금 숨통이 트였다 싶은 수준으로 큰 사건이 없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검각이 붕괴되었다.

스스로 검담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당가에 원한을 가진 이들을 데리고 당가를 습격했다.

아미파에서는 한 청년이 사랑을 쟁취하며 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 일이 없다.

정말 고요할 정도로 아무 일이 없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사천 일대를 덮는 것 같아 당오독은 너무나 불안했고,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틈틈이 성도 근방을 돌아다니며 순찰했다.

적어도 자신이 돌아본 곳에는 큰 위험이 없으니까.

그렇게 돌아보는 와중에....

"응?"

당오독은 인파가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너무나도 아리따운 여인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좌판을 깔고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대하고 있었다.

"아이고, 아가씨. 참말로 용하구만!"

"후후,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혹시 계속 고통을 호소하면 약을 더 타시되, 1회분보다 더 많이 타면 안 됩니다. 과한 약은 독이 되는 법이니까요."

"물론이지! 아이고, 내가 참 아들만 있었어도...!"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허어...."

당오독은 참한 여인의 모습에 감탄했다. 뒤에서 슬쩍 여인의 진료를 살피니, 그녀는 약과 병에 대해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아가씨가 신의구만!"

"의사라기보다는...약사에요. 후후, 그래도 좋게 봐주시니 고맙네요. 아...죄송해요. 이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여인은 좌판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아쉬움에 계속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지 말고 하루만 더 있다가면 안 되오?"

"아이 참, 곤란한데...."

"그렇소. 그러지말고 여기에 의원을 차리시오! 사천당가의 독도 그대의 약 앞에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오!"

"흐흥, 그거야 뭐...."

"호오."

저벅, 저벅.

당오독은 일부러 기세를 끌어올리며 좌중을 갈랐다. 아는 이들은 당오독의 얼굴을 보고 기겁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반갑소, 소저."

"어...안녕하세요?"

"하하, 신선한 인사로군. 안녕하신가. 본인은 사천당가의 가주, 당오독이라고 하네."

"......."

여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당오독은 싱긋 웃으며 포권을 취하며 은근히 압박했다.

"소저의 약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은데...당가에서 정식으로 소저를 식객으로 모셔도 되겠소? 거절은 거절하오."

사천당가.

그들은 사천에서 곧 법이며, 이름 만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

"약에 관하여 소저와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자 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소. 약봉 소저."

"...좋습니다."

하지만 여인, 약봉은 당당히 포권을 취했다. 오히려 당가에서 다가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소녀의 의술이 과연 당가에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제 약학에 많은 도움이 되겠군요. 당가의 독은 누구에게도 파훼된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으하하하! 요즘들어 젊은 여인들의 기개가 하늘을 찌른다하더니,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당오독은 눈을 반짝이며 약봉에게 뒤를 가리켰다.

"모시겠소, 소저."

"실례하겠어요."

약봉은 태연한 얼굴로 당오독의 뒤를 따랐다.

살랑, 살랑.

약봉이 지나간 자리.

붉은 실 한 가닥이 바닥에 닿아 바람에 쓸려갔다.

* * *

사천당가의 독은 맹독이며 극독이다.

치료에도 쓰이는 봉침부터 시작하여, 무형무취산까지 종류와 효과가 정말 다양하기 짝이 없다.

"...이건 이 재료를 이 조합으로 배합하여 해결하면 되겠군요."

"응기익침이요? 그러니까 혈기를 강제로 끌어올려서 흥분한 것처럼 속이는 거 아닌가요?"

"화골산에 대해서는 이미 피부가 녹아내렸으니, 이 때는 이 약으로 대처하여...."

그러나 당가에서 자랑하는 독들은 모두 파훼되었다.

'이 정도는 쉽지.'

대부분의 독은 만들어질 때부터 해독제가 필수적으로 개발되며, 해독제가 없는 독은 애초에 당가에서 취급하지 않는다.

'내게도 당가 사람들의 지식이 있다 이 말이야.'

당장 자신들이 중독될 수 있는데 어떻게 독을 제조하겠는가? 내게 당가의 독공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이상, 당가에서 아무리 독을 가져온다고 한들 파훼하지 못하는 독은 없다.

"끙.... 전부 정답이오. 대단하시구려, 약 소저!"

당오독은 나의 약학에 대한 지식을을 칭찬했다. 그가 준비한 당가의 모든 독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여 처방을 내렸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얕은 지식으로 아는 체를 했을 뿐입니다."

"허허, 이러다 당가의 극독 마저도 전부 파훼하는게 아닌지 모르겠군!"

"아는 지식을 최대한 활용했을뿐. 역시 당가의 독은 심오하군요. 이 이상은 제 지식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을 지경입니다."

"허허, 그렇소? 음...."

당오독은 나의 실력을 분명히 확인했다.

"혹시 남편이 있소?"

"...전혀 없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게는 그런 인연이 없었습니다."

약봉이 가진 약학을 무공으로 치자면 거의 절정, 아니 초절정 고수라고 봐도 무방할 지식과 실력을 가지고 있다.

"흐음...."

더군다나 미녀.

관심을 가지지 않을래야 안 가질 수 없다.

"혹시 어느 고명하신 분께 배우셨소?"

"스승님께서는 스스로를 자칭하기를 싫어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분들은 그분을 '약선(藥仙)'이라고 칭하셨습니다."

"허, 설마 진가장의 호북 약선을 말하는 것이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의약을 베푼다는 그분?"

"그렇습니다."

"허어!"

당오독은 혀까지 내두르며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약선은 이미 진가장에 들어온 뒤로 수많은 약초와 의약을 연구하며 명성을 떨쳤다. 호북 일대에는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없고, 이 먼 사천 땅의 당가 가주조차 그 이름을 알 정도다.

안휘성에서 파리나 날리는 약방의 노인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는 명성을 원한 건 아니지만, 각지로 '혈맹월약국'의 사상과 취지에는 공감하여 약선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내걸고 약을 제조하고 있다.

혈교는 약선을 대표로 삼아 '약국'이라는 곳을 만들었다. 그들은 야금야금 중원 전역에 퍼져나가며 기존의 비싼 약값을 반값 이하로 떨어뜨렸다.

기존 약방 사람들은 크게 반발하기도 했지만, 혈맹월교는 그들을 약국의 가맹점주로 영입하는 것으로 큰 불만을 잠재웠다.

약선의 이름은 나날이 높아졌고, 나는 그의 제자를 사칭했다.

'사칭해도 말 못하지.'

내가 그를 위해 지금까지 캐다 바친 영약이 얼마나 많은데. 제자라고 이름을 판 것 정도는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내가 약선의 이름을 팔아 금전적 이득을 추구할까? 아니다.

나는 너무나도 몹쓸 병에 걸려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여인을 구하려고 정체를 숨겼다. 그녀를 구하는 즉시 당가를 떠날 것이다.

"약선 어르신의 제자라!"

사문도 좋으니, '그 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

"흠흠. 오늘 저녁은 함께 식사를 하십시다."

"황공할 정도의 환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언니!!"

밖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당오독은 목소리의 주인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서희야?! 네가 어떻게...!"

"진짜로 오셨군요!"

"반가워요, 서희."

나는 당서희의 손을 맞잡았다. 당서희는 호들갑까지 떨며 나를 반겼고, 앉아있던 나를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호북에서 사천까지 먼 길 힘드시지 않으셨어요?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죠?"

"그런 일 없었어요."

"어...혹시...."

"아, 가주님. 호북에서 사귄 언니에요. 언니, 혹시 방은 손님방으로 소개받으셨어요? 제 방으로 오실래요? 아니다, 제 방으로 가시죠!"

나는 당서희가 이끄는 대로 따라 일어났다. 당오독은 명백히 당황했으나, 나와 당서희를 보며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서희가 사귄 벗이라면...음, 분명...."

자문자답하며 뭔가 결정했다는 듯,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에게 한 번 봐달라고...."

혼자서 뭘 궁시렁거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서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끼이익.

문을 닫자마자, 당서희는 문고리를 걸어잠그고 내 얼굴을 붙잡았다.

츄릅, 츕, 츄릅.

남들이 보면 여자 둘이서 물고 빠는 모습이겠지만, 당서희는 개의치 않고 나와 입을 맞췄다.

"...하아, 언니. 정말 예뻐요. 제가 확 잡아먹어버리고 싶은 만큼."

"네 덕분에 잠입에 성공했다만, 그 일은 나중으로 미루자꾸나."

"아...그런 게 어디있어요? 여긴 제 방인데."

"정말로 그녀가 있다면, 이곳에서의 일도 귀기울여 듣고 있을테지."

지금은 괜찮지만, 괜히 빌미를 줄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지금은 작전에 집중하자꾸나. 당가의 독을 차례대로 파훼했으니...새로운 독을 가지고 오겠지."

"어머, 그래요? 저는 달리 생각하는데. 제 생각이 맞을 걸요?"

"...설마."

아무리 내가 미모가 출중하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가주님이 과연 서방님을 위한 새로운 시련을 준비할까요, 아니면 당건면 소가주의 짝으로 적절한지 아닌지 판단할 집안의 어르신께 고견을 물어볼까요?"

"......."

보통 이런 경우에는 둘 다던데.

* * *

그리고 늦은 밤.

당오독은 한 명의 작은 여인을 데리고 나의 처소로 들어왔다.

"약 소저, 잠시 괜찮겠소?"

"네, 무슨 일이십니까?"

"인사드리거라, 예진아."

"...인사드리겠습니다. 소녀, 당예진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당예진과 마주하게 되었다.

츄릅.

나는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이 여자.

요리보고 다시봐도, 왜소증에 걸린 성인이다.

'그럼 괜찮지.'

당예진은 왜소증에 걸린 성인이다.

즉, 범해도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

"스으읍."

처녀는 못 참지.

'합격.'

오늘 밤.

당예진에게 걸린 저주를 풀고 처녀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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