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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1] 사천당가를 털어라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나, 비천색마와 가장 협조적인 곳은 하북팽가다.
팽가의 가주 팽도황이 죽음으로부터 살아나면서 가문을 완전히 휘어잡았고, 그 덕분에 우리는 팽가를 혈맹월교가 그리는 새로운 무림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체질을 바꿔나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아주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팽가는 팽도황과 팽유월, 두 명 아래에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들이 한 번 본가를 버리고 분가로 나가려고 했다가 다시 돌아왔기에, 그리고 팽도황이 무림세가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무공'과 '자금력'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기에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한다.
팽도황은 하북팽가를 변화하는 강호의 흐름에서 직접 가문의 체질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강력한 힘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세가나 문파는 어떨까?
혈맹월교가 그리는 미래에는 무림인의 권위가 이전보다 상당히 떨어진, 강호 무림이라는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다.
무림인들이 점차 중원 민간에 스며들게 되면서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는 무가의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박해지는 미래가 당도하게 될 것이다.
이 흐름에 따르기로 한 두 번째 세가가 바로 제갈세가다.
제갈길은 혈맹월교가 보이는 모습을 파악하고, 제갈선을 통해 모든 것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제갈세가는 시류와 흐름을 읽고 팽가처럼 체질변화에 몸을 담았다.
그 다음이 독고세가 정도.
즉, 다른 세가들은 아직도 전통과 권위와 무위에 따른 무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오랜 역사가 자랑하는 무가로서의 관성이 있기 때문에, 가문의 방향을 바꾸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문파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무당파만 하더라도 다른 문파들에 비해 내 영향력이 훨씬 많건만, 무당파의 체질 개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리지 않았던가!
대신 무당파의 무가로서의 전통과 권위를 더 살리는 방향으로 틀었던게 한계였다.
여전히 의와 협이 넘치는 천하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앞에법치와 자본과 인간의 욕망에 따른 삶을 살아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법.
문제는 이들이 추후에 '자신들이 뒤쳐졌다'고 생각했을 때 과격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역 내에서 최고의 세가나 문파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관이나 혈맹월교와 결탁한 놈들이 어느덧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의 자리를 위협하게 된다면?
무공의 수위가 아니라 막대한 자금력으로 성 내 제일의 이름을 차지하게 된다면?
모두의 기억속에 '그 때는 걔들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영...그렇지!'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갑자기 정신이 확 돌아버려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무인들을 내세워 시비를 걸어 과거, 십상련이 날뛰던 시절스럽게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서 현판을 부수고 난동을 부릴지도 모른다.
당서희.
그녀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당가의 변화다.
당가는 다른 세가와 달리 당가의 이름앞에 '사천'이라고 붙일 만큼, 사천성 제일의 가문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런 당가가 사천 제일에서 내려온다?
독살, 암살 등 온갖 흉계가 당장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당가의 폭주는 쉽게 막을 수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당가는 아주 위험한 종자들로 분류되어 녹림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당가의 젊은이가 혈기와 자격지심으로 적대 가문의 누군가를 독으로 암살한다.
적대 가문은 암살을 무림의 법도가 아닌 관아에 고발하여, 나라의 지엄한 법률에 따라 송사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공식적으로 신고가 들어왔으니, 이제 관과 혈맹월교가 합동작전을 펼쳐 당가가 독을 썼다는 증거를 확보한다.
그렇다면 당가는 자기 가문의 젊은이를 살인자로 관에 자수하도록 유도할까, 아니면 그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틸까?
그 뒤는 안 봐도 뻔하다.
전쟁이다.
관을 등에 업은 혈맹월교가 당가를 직접 칠 것이다.
그러므로 당가의 사람인 당서희는 당가가 새로운 길로 나가기를 바랐다.
그게 어떤 방향이든, 최소한 암기를 다루고 독을 다루며 천하를 어지럽히는 잠재적 불안 요소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으리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사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나를 반긴 이는....
"이야, 안녕하십니까. 사천에 이렇게 저를 불러주셔서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색마."
비천적마.
내게 이름을 빼앗겼음에도 천마를 위해 기적의 발모제, 자라나라를 구하고 끝까지 이시아를 지지한 남자.
"반갑군, 천상천하유아독룡."
"......."
그는 과거 용봉지회에서 독룡이라는 이름을 널리 떨쳤던, 천상천하유아독룡 당이정이라고 한다.
* * *
잠시 뒤.
우리는 당이정이 추천하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이미 그는 나와 당서희의 방을 잡아놓았고, 우리는 객잔이 아닌 당이정의 방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호북에 비해 사천 음식은 간이 상당히 세지 않습니까?"
"그 간과 향으로 먹는 거지."
"그렇긴 하죠. 사천 여자들도 상당히 그런 느낌이 강하구요. 후후. 누구를 지칭하는 건 아닙니다."
".......이정 오라버니. 자꾸 그럴래요?"
당서희는 당이정을 향해 살기를 내비쳤으나, 당이정은 어깨만 으쓱이며 그녀의 살기를 흘려냈다.
"그것참. 사랑하는 서방님 앞이라고 참으로 조신하군요. 예전에는...후후, 여기까지."
그의 무공 수위는 어느덧 초절정. 내가 보기에는 약간의 깨달음만 얻어도 화경에 이를 것이다. 괜히 마교 십마로 임명된 남자가 아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처음 두 분의 제안을 받았을 때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당가를 털려고 하시다니."
당이정은 한껏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마교에 투신한 이유는 짐작하시다시피 당가를 부수고 당가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마교가 천하를 지배한다면, 저는 당가를 지배하여 가문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게 독룡이 적마가 된 이유였다.
"당가를 내부에서 바꾸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당가의 가주가 된다고 해도 당가의 원로들, 친지들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죠. 어쩌면 소리소문없이 가주가 교체되는 일도 발생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교의 힘을 빌리고자 했군."
"예. 천마께서는 다 아시면서도 저를 받아들이셨죠.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적마는 우리의 앞에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호북을 한 때 죽음으로 밀어넣었던 '천화'의 제조법이 적혀있었다.
"필사본입니다. 아무리 당가의 안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들, 저처럼 똑똑한 자가 한 번 보고 기억해서 나오면 유출을 막을 수가 없죠. 서희야."
화륵.
책은 순식간에 중려신화정의 불길로 타들어갔다.
"당가의 비고에 있는 내용들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당가에는 천하를 온갖 '독'으로 뒤덮을 위험한 것들이 가득합니다."
당장 실제로 우리가 본 것만 하더라도 천화가 있다. 그 외에도 온갖 병을 일으키는 독이 가득했다.
"당가는 앞으로도 독을 계속 연구할 것이고, 당연히 그 와중에 독을 사람에게 쓰는 사고가 발생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사천당가라는 이름으로 무마해왔지만, 앞으로는 불가능해지겠죠."
"사천당가라는 이름에 굽히지 않고 관에 신고하는 자가 나올 수 있으니 말이야."
아무리 지방의 관료들이 지방 토호들과 긴밀한 유착관계를 가지고 그들의 죄를 덮어준다고는 하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의 손을 들어줄 이유는 없다.
호랑이를 벗겨먹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분위기는 손바닥 뒤집듯 뒤바뀌리라.
"그러니 그 전에 모든 증거를 처분하고 싶었습니다. 마교가 당가의 극독을 흡수하기 전에, 비고를 불태우거나 파괴하고 싶었습니다."
팔대세가 중에서도 오대세가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가 깊은 당가의 독공서들을 모두 없앤다?
"그대도 참으로 대단한 남자로군."
"아무렴 천하를, 천마를 쥐어잡은 색마에 견주겠습니까?"
처세술도 능하고 눈치도 빠르다. 그리고 몹시 똑똑하고 예의가 바르다.
"차기 당가의 가주로 아주 안성맞춤이야."
"시켜만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색마."
그리고 백수다.
그는 현재 무직(無職)이며, 천하를 부평초처럼 떠돌고 있는 중이었다.
"당가의 가주와 원로들은 제가 설득해보겠습니다. 말로 대화가 통하면 좋고, 안 되면 물리적으로 해야지요."
"가능하겠나?"
"그 정도 능력을 보여주지 못해서야 어찌 십마의 일원이며, 감히 별호에 '비천'이라는 이름을 달고 지낼 수 있겠습니까?"
"오라버니, 마교에 들어간 이후에 화술만 엄청 늘어난 것 같네요."
"하하, 동생아. 공적으로는 내 주군의 부군이 되는 분이시며, 사적으로는 네 부군이신 분이다. 내 어찌 예의를 갖추지 않을 수 있겠느냐?"
역시 독룡이다. 남들이 들으면 세치 혀가 간사하다고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이 전부 사실이니 아첨은 아니다.
"...그래도 도울 건 돕지. 혹시나 비무를 펼치게 될 때를 대비하여 조만간 한 수 가르쳐주겠네."
"아. 그러면 혹시...."
당이정은 진지한 목소리로 자세까지 바로잡았다. 그의 열렬한 눈동자에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비천적마, 비천색마에게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달라고 하길래 이렇게 진지한 눈빛과 자세를 취하는 걸까?
"그...."
그는 당서희의 눈치를 보며.
"색마의 색공을 배우고 싶습니다. 둘이서 잠시 기루에 가지 않겠습니까?"
"야!!"
"으하하하!!"
친척 여동생의 남편에게 당사자가 보는 앞에서 기루에 가자고 한다?
"그 패기,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에게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하지만 마음만 사마. 나중에 색공서로 보여줄 터이니, 스스로 보고 연마하도록 하라."
"...직접 여인을 안으며 보여주실 줄 알았습니다만."
"예전이라면 그러겠지. 하지만."
나는 당서희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 어여쁜 부인을 두고 어찌 바람을 피울 수 있겠는가?"
"......인생의 무덤으로 들어가셨군요."
"어허. 그 무슨 망발인가. 자네도 결혼하면 알게 될 것이야. 결혼의 행복함을."
그러니까 반드시 결혼해라. 꼭 해라. 두 번은 하지말고.
"서방님...."
이 얼마나 행복한가?
"...색마의 결혼생활과 일반인의 결혼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천하제일인과 삼류의 인생이 다른 것처럼 말이죠."
당이정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결혼 안 할 겁니다, 색마."
꼭 저런 애들이 어느날 갑자기 결혼한다고 연락하던데.
"그리고 운우지정은 옆 방에서 해주시길. 책상 아래에서 손장난 치시는 거 다 들립니다."
"......."
당이정의 방에서 쫓겨났다.
* * *
"이정 오라버니, 나름 배려했네요."
우리는 음식 냄새라고는 전혀 없는 말끔한 방으로 돌아왔다. 당서희는 요염히 웃으며 침대에 누웠다.
"서방님. 그럼 저는 방에서 쉴게요. 두 분이서 기루 다녀오셔도 돼요."
"서희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나는 당서희에게 다가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내가 너를 두고 왜 기루에 간단 말이더냐. 이렇게 어여쁜 아내가 있는데."
"흐흥, 그러면 질문 하나 할게요. 기루는 안 가도 여자를 범하긴 하실 거죠?"
"......봐서?"
기루에 들락날락 거리는 건 바람이라도, 정의로운 색마로서 행동하는 건 바람이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전자는 허락을 받아도 큰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후자는 그 어떤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다? 색마가 -색마-했을 뿐.
"그럼 한 분 범하셔야 할 사람이 있어요."
"당연히 여자일테고, 당연히 미인이겠지?"
"그건 보시면 아실텐데.... 제가 보장은 할게요. 이정 오라버니의 계획에 다른 분들은 몰라도 그분은 큰 차질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당서희는 자신의 머리칼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머리를 손가락으로 빙빙 꼬았다.
"독선. 당예진."
"검선과 검존. 그들과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여고수."
나는 그녀에 대해 조사하며 너무나도 아쉬웠다.
"...가슴이 상당히 풍만하다고 들었는데. 그래, 서희랑 비슷한 정도라고 했지? 크흐, 아쉽군. 사천에 올 때마다 둘러봤는데 그런 여자는 안 보여서 말이야."
"...그게."
당서희는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서방님. 당가에서 연구하는 독 중에는 부작용을 이용해 몸을 치료하는 약도 있답니다. 그리고 독선은...지금 약에 중독되어있어요."
"허어, 마약이라도 된단 말이더냐?"
"회춘약이어요."
"......."
"그분은 지금 회춘약의 부작용으로 나날이 어려지는 병에 걸렸어요. 반로환동을 하며 약을 섭취했다가 그만. 지금은...침대보다 평평한 수준이죠."
.......
역시 당가의 독은 없애야 한다.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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