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53화 (55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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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로의, 개천(開天)

공식적으로 팽유월과 혼약을 맺은 만큼, 비공식적으로 나의 아내들과 혼약을 맺은 만큼.

나는 내 아내들을 데리고 하북에서 호북, 천가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자마자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8괘."

천가장은 팔괘진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아무리 중간중간 개축과 증축 공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팔괘에 입각하여 진법이 형성되어있다.

즉, 괜히 한 자리를 더 억지로 늘리려고 한다면 진법이 망가져 외부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지."

굴러들어오는 돌이 박힌 돌 빼내는 법.

내 뒤를 따라 천가장에 들어온 여인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향했다.

"으으...."

모두의 시선이 현녀에게 꽂혔다.

천가장에 들어온 순서상, 나와 살을 섞은 순서상, 그녀는 마지막에 속한다.

전생에 대해서는 전혀 따지지 않으며, 이곳에서는 여인들간의 서열은 없지만, 다들 노골적으로 현녀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선이 진법의 축에 들어간다고 해도 8자리 남는데요."

"한 명은 가가랑 같이 지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와, 그럼 선녀원 제가 현녀님께 드릴게요. 저는 비천각으로.... 아얏."

"얘 봐라. 벌써 꼼수부리네."

독고연의 이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천가장의 구조, 팔괘는 개개인이 각자의 방을 가지는데 의의가 있다. 한 명이 하나의 건물에서 쐐기가 되어주기에 진법이 유지되는 것이야. 그렇지 않느냐, 선아."

"나중에 사람들이 빠져도 제가 지키면 되니까 괜찮긴 한데요.... 일단 한 자리 만들 공간은 지금 여기 없어요."

"......."

현녀는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꼼지락대기 시작했다. 천가장의 구조에 대해 전달받기는 했지만, 진가장이라는 여유 공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천가장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눈치가 강했다.

"그...."

"어머나. 권력이랑 신분으로 자리 잡으려는 건 몹시 잘못된 생각이야."

혈소예는 현녀의 말을 자르며 이죽거렸다.

"여기에 온 사람은 20살 곤륜파의 여제자 '현아'아니었어? 어머나,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설마 곤륜파의 장문인이자 태사부, 실제 나이 20살 보다 훨씬 더 많은 선인(仙人)으로 온 거 아니지? 어떻게 제가 존대라도 해드릴까요, 장문인?"

"아, 아니다! 나, 나를 그런 노인으로 엮지 마라!"

"아니다? 엮지 마라? 어머, 얘, 말이 짧다?"

"...아니에요."

현녀, 아니 현아는 주먹을 바들바들 떨며 막내가 되기를 자처했다. 스스로 곤륜산을 내려오면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주장하니, 당연히 그녀는 현아로서 지금부터 20살이다.

즉, 아무튼 막내다.

졸지에 현아는 나보다 연하가 되었다.

"나이는 어쩔 수 없죠."

"뭐...때로는 모르는게 득이라고 하니까."

추하기는 하지만,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라 나도 그냥 넘어가주기로 했다. 여자가, 아니 누구라도 한 살이라도 더 어려보이는 건 좋은 법이니.

"서방님, 현아 방 빼게 만들 생각 없으시죠?"

"물론. 현아가 이곳에 자리를 잡아야 진법은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다."

현아가 빠지면 안 되는 궁극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이곳은 소곤륜이 될 것이며, 현아와 소예와 내가 있음으로서 주변에 선기(仙氣)가 충만하게 자리잡을 것이다."

호북에서 가장 땅의 기운이 좋고 영기(靈氣)가 충만한 곳이 바로 이 천가장의 터다.

"이곳은 무공을 익히기에도 당연히 좋지만, 아이를 기르기에도 터가 좋은 곳이다.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지."

내가 사공희를 거두었던 날, 굳이 수많은 저택을 두고 초가삼간과도 같은 집을 만들고 세간을 손수 넓혀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육체적 시간의 흐름이 더디게 가서 바깥보다 상대적으로 덜 늙어요."

제갈선의 말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세 분이...아니 선녀가 된 저희도 일부 도움을 드릴 수 있겠네요. 저희가 자리를 잡는 것 만으로도 이 땅은 마치 도원향과도 같은 곳이 될 거고, 저희의 육체는 아주 서서히 늙어가게 되겠죠."

"톡까놓고 말해서 60년이 지나도 지금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는 거야. 오히려 더 성숙해지거나, 육체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유지하게 되겠지."

혈소예의 보충에 모두가 난색을 표했다.

현아가 있다면 누구든 선녀가 될 수 있다. 손녀를 보더라도 손녀와 친자매 소리를 들을 수 있을만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현아는 무조건 천가장에 자리를 잡아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자니 형평성에 맞지 않다.

"그럼 누군가는 상공의 곁에서 지내야 하는데...."

"왜 저를 다들 보는 거죠?"

다들 팽유월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미 나의 아이를 둘이나 가진 팽유월이라면 응당 주장할 수 있다.

천가장에서 나와 함께 사는 것에서 나아가, 나의 '비천각'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싶다고 얘기하면 누가 감히 앞에서 대놓고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대놓고 말할 수 있는 혈소예조차 팽유월의 눈치를 보는데.

"하, 정말...."

팽유월은 모두를 둘러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여기에 호북팽가를 지을래요."

"앗...!"

호북팽가. 한 마디로 충분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언니!"

"사랑까지야...그래도 좋긴 좋네요."

팽유월은 비천각으로 들어오기를 거부했다. 개인적으로 씁쓸하기는 했지만, 팽유월은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보였다.

"유월 언니, 은근슬쩍 한 자리 꿰차고 들어갔네?"

"그 정도 권리는 주장할 수 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럼 이제 남은 자리를 두고 자리 뺏기를 하거나 해야하는데...."

당서희. 유설라. 왕소현. 혈소예. 현아.

"저는 서고에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까 논외에요."

"와.... 대단하다. 신기제갈이라고 진법을 교묘히 틀어서 자기 자리 꿰찬 거 봐."

"너무합니다, 선. 저한테 말도 없이 이렇게 자기만 쏙 자기 집을 만들어놓고...."

"제가 진법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천가장에 자리 더 늘린 거거든요? 원래 자리가 없던 걸 하나 더 늘린 것도 아니고, 진법의 남는 자리를 들어간 것 뿐이에요. 창고방을 꿰차고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제갈선의 속사포와도 같은 말에 다른 여인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제 덕분에 원래 없던 자리도 늘어났잖아요."

"그렇긴 하지."

제갈선의 진법 연구 덕분에 없던 공간도 상당히 많이 넓힐 수 있었다.

더군다나 정식으로 정해진 자리를 꿰차고 들어간 것도 아니고, 자신의 능력으로 진법의 빈 자리에 방을 만들었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제갈선 덕분에 천가장에 온갖 편의 시설이 늘어날 수 있었다. 특히 그녀의 능력 덕분에 만들어진 온천 시설은 모두의 인기를 끌고 있으니, 감히 얌체같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소예랑 현아가 천가장 들어간다고 치면...흐흥, 오빠. 비천여삼마 중에 한 명이 빠져아겠는데?"

혈소예의 말에 셋의 표정이 전부 굳었다.

"그, 그럼...! 아, 안 돼...저도 호북빙궁을...!"

"나, 나이 많다고 빼면 안 된다! 이건 폭거야!"

"비, 비처녀도 한 때는 처녀였어요!"

"......그건 자폭이 아닐까한데, 진정해."

이시아가 비천여삼마를 진정시키며 바닥을 가리켰다.

"쟤가 설마 여기에 여자들이 들어오는 한계를 정해뒀을까봐?"

"소예. 다른 사람 놀리지마."

"알았어요. 후훗, 세 분 표정이 혹시나 자기 빠질까봐 전전긍긍해서....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알려드릴게요. 왜냐!"

혈소예는 바닥을 툭툭 건드렸다.

"지하에 땅파서 지하 1층을 만들면 되니까요!"

"......천재다."

역시 자미성.

소예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지하를 개발하여 천가장을 증축(?)하기로 했다.

* * *

늦은 밤.

천가장에 각자 자리를 잡고, 지하 1층이 완전히 만들어질 때까지 현아가 내 방에서 머물기로 한 뒤.

나는 모두가 잠든 사이 비천각의 지붕에 올랐다.

"오빠, 안 자?"

혈소예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소복을 입은 그녀는 내 옆에 술을 놓았다.

"그러는 너야말로."

"오빠가 혼자 나가는 걸 봤는데 어떻게 자."

"감시하러 온 거냐?"

"혼자 청승맞게 달 보면서 궁시렁거리나 해서."

혈소예는 나와 잔을 맞췄다. 우리는 단번에 술을 들이켰다. 알싸한 취기가 아래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있잖아, 오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앞으로라...."

행복한 가정을 얻었다.

해결하지 못한 자잘한 일들도 많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색마를 죽여야지."

강호의 모든 악을 끌어모은다.

아직 색마는 곳곳에서 종횡하고 있고, 색을 바탕으로 타인을 파멸로 인도하는 자들도 있다.

"나는 정의로운 색마가 될 것이다."

"색마와 정의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였어?"

"물론. 나라면 가능하지."

색마로서, 색으로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범한다.

"관과 무림에서 심판하지 못하는 자를 내가 처단할 것이다. 색으로 고통받는 억울한 자가 있다면, 그곳에 가서 내가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것이다."

"흐응, 색공으로?"

"그건 생각해보고."

색공으로 할지 무공으로 할지는 미지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천가장에 우리 모두가 들어왔다고 해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

"언젠가 우리도 죽겠지. 구천현녀와 마주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날, 나는 나의 업보를 씻고 하늘로 올라가 구천현녀의 앞에 당당히 바지를 내릴 것이다."

"여신을 상대로 성희롱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지. 구천현녀를 상대로 협박하는 거지. 내 여자가 되면 앞으로 다시는 색마짓을 하지 않겠다. 구천현녀는 색마를 죽이는 셈이 되고, 나는 구천현녀를 범하게 되니 이 얼마나 훌륭한 계획이더냐?"

구천현녀.

그녀는 나의 자지를 만지고 도망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나는 이미 현녀를 통해 깨달았다. 그녀와의 대담을 통해 깨달았어. 아무리 여신이라고 한들...."

"오빠 자지에 환장하는 건 똑같다 이거지?"

"그래. 내가 색선(色仙)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면, 구천현녀가 나를 전담하지 않는 한 모든 여선들이 임신할 것이다. 흐흐."

"그래,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나도 끝까지 도울게. 나도 나름 여선의 딸이니까."

"그럼 나는 월궁 항아의 딸을 취한 남자인가? 흐흐."

혈소예는 내게 어깨를 기대었다. 늦은 밤, 모두가 잠든 천가장-비천각의 지붕 위에서 우리는 달을 올려다보며 술잔을 비웠다.

"그런데 소예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응."

"만약 내가 자식을 낳으면...그 아이들은 괜찮을까?"

"어떤 의미에서?"

"내 몸에 저주받은 피가 흐르고 있지 않느냐."

소위, 개족보.

"나는 무섭다. 혹시나 내 아이들이 그렇게 될까봐."

"거의 대부분 딸이 태어날테니, 그게 더 무섭기는 하지. 후후, 걱정마. 다 방법이 있지."

혈소예는 하늘을 가리켰다.

"어차피, 하늘만 모르면 되는 일 아니겠어?"

"...야."

"오빠. 알잖아."

혈소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사람 마음은 멈출 수 없다는 걸."

"........"

"오빠는 자신있어? 만약에 내가 오빠랑 낳은 자식이 아들이다 치자. 천하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랑 예쁜 여자가 낳은 아들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리가 없잖아. 안 그래?"

“그게 설령….”

“걱정마. 만약에 그런 일로 하늘이 무너질 일이 생긴다?”

혈소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그럼 우리의 승리야. 지상이라는 유리한 전장에서 싸운다면 우리가 이긴 거야. 그리고….”

혈소예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평생 남자 하나 제대로 사귀지 못해본 여자랑 달리, 우리는 서로 삼생을 이어나가면서 사랑할 거잖아? 그러니까 이미 이긴 거야.”

“...하, 하하.”

“만약에 꼬우면 자기가 내려오겠지. 그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천현녀님을 이기고, 같이 범해버리자.”

너무나도 간단한 해결방법에 나는 혈소예를 향해 다가갔다.

“명쾌하군.”

쪽.

“그럼 하늘에 과시를 해볼까. 우리가 얼마나 사랑을 하는지."

우리는 밤하늘을 등지고, 서로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그래서 다음은 누구를 범하러 갈 거야...?"

"글쎄. 한 명씩 데려와서 한 번 더 전면전 하고 나면 알게 되지 않을까? 얼마나 더 필요한지."

1:10.

나는 승리했다.

"지하로 계속 공간을 뚫고나가면 천가장에도 더 공간이 늘어나는 셈이지."

"사람이 들어갈 공간도 생기고 말이야."

그러므로, 나의 색마행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이 자지가 꺾이지 않는한, 나는 멈추지 않아."

강호의 모든 미인들을 취하는 그 날 까지.

비천색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비천색마(完).

[작품후기]

이겼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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