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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명, 죽다
용봉지회 결승전 습격 사건.
벽력탄이 터지고 암살 시도라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있었지만, 구룡육봉이 된 이들이 활약하며 사건은 종결되었다.
흉수는 의외로 쉽게 밝혀졌다.
"범인은 마교의 몰락한 대공자, 주지요."
공자주지!
일촌남근으로도 악명이 자자한 그는 마교 내에서의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것에 앙심을 품었다.
그래서 비무장 곳곳에 벽력탄을 설치하고 그걸 터뜨림으로써 시선을 끈 다음, 솜씨가 뛰어난 암살자를 구해 마교의 소천마 이시아를 죽이려했다.
-마교의 짓이 아니었어?
-마교 소천마를 노렸는데 마교의 짓이겠냐?
흉수가 노린 건 소천마였다.
하지만 이시아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
천룡, 천무명!
그는 남궁패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기를 가져왔다. 남궁패도 분전했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게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관중들은 남궁패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강자가 이기는게 당연하지만, 모용란의 경우처럼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한판승을 따내는 것을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천무명은 달랐다.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자리를 스스로 버렸다.
-그거 봤는가? 흉수를 보자마자 바로 뛰었던 것.
-화살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건 나도 처음일세. 크으...여자를 구할 때 가장 강한 남자라니.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반하겠군.
-씨발. 소천마는 어째 흑백이화라서 아닐 줄 알았는데, 육봉이 될 것 같으니까 바로 엮이네?
천무명은 이시아를 구했다.
과연 흉수의 화살이 이시아를 다치게 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천무명은 등에 화살이 박히면서까지 이시아를 구했다.
그걸로 사실상 용봉지회는 끝이 나버렸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육봉쟁패가 이루어지겠는가?
-육봉이라고 하지마세요. 화가 나니까.
더군다나 혈맹월교의 소교주, 혈소예의 선동에 따라 많은 여인들이 지금까지 숨겨왔던 본심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봉이라는 이름은 좀 아니지 않나요? 여인의 별호에 수컷을 의미하는 봉을 붙이다니.
-뭐? 최고봉? 이 미친 새끼가 어디서 장난으로라도 그딴 별호를 나한테 붙이려고 해? 차라리 무슨무슨화라고 불러!
-...산봉오리도 아니고 말이죠. 저도 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선 결승에 오른 여인들이 하나 둘 육봉이 되기를 거부하자, 결국 무림맹주는 특단의 조치를 감행했다.
어차피 대회는 망했다. 육봉쟁패를 강행한다고 해도, 결승전은 기존 육봉들의 일방적인 승리가 될 게 뻔했다.
하물며 모용란은 이미 연희봉이 되었으니, 경기도 하나 줄었다.
-저도 연희봉보다는 천연화라는 별호가 좋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이제와서 대회를 속개한다고 한들 누가 관심을 가질까?
벽력탄이 터질까봐 행여나 두려워하니, 결국 무림맹주 독고자영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폐막.
구룡육봉 중 '팔룡'만이 당당히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남은 자리는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용봉지회 역사 이래, 무려 일곱 명이나 선정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 발생.
-용봉지회도 이제 끝낼 때가 되었지.
바야흐로, 용봉지회의 끝이 다가오고 말았다.
* * *
사각, 사각.
독고자영은 붓을 움직이며 문구를 정리했다. 동시에 자신의 생각도 정리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산.
현천백가의 가주, 백수광.
둘의 악연은 서로의 심장을 향해 비수를 찔렀다.
하지만 안휘 일대의 혼란을 생각하여, 두 명은 제각기 가주 자리에서 물러나 무림에서 은퇴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정리되었다.
-내, 내가 아니오! 나는 그런 흉수를 고용하지 않았어!
백수광은 처절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그가 안휘 일대에서 벌인 마교, 대공자 주지와의 결탁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특히 안휘를 지나가던 제갈세가 방계의 사람들을 습격한 일에 대해 방관한 것이 쐐기가 되었다.
비록 그 일을 진행한 건 제갈세가의 배신자였으나, 백수광이 이를 알고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는 증거가 나오고 말았다.
"형장의 이슬인가, 남은 명예라도 조용히 가지고 은퇴인가."
독고자영은 붓을 내려놓고 쓰게 웃었다.
"설마 내 손으로 끝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용봉지회.
수많은 대를 이어오며 많은 이들의 이름을 알렸던 역사 깊은 대회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스륵.
독고자영은 종이를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이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독고자영은 연단 위에 올라섰다.
"친애하는 강호의 무인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찾아주신 관객 여러분."
독고자영의 목소리는 비무장 곳곳으로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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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일, 용봉지회에서 마교 반란세력의 잔당이 벽력탄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무림맹주로서 이들의 행동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여러분께 공포와 혼란을 드린 점, 머리숙여 사죄드립니다.
특히 벽력탄의 폭발로 인해 이명이나 이통, 폭발에 대한 공포로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이번 용봉지회를 위해 장소와 인력을 제공한 많은 분들, 특히 황제 폐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경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본 무림맹에서는 당일 경기 및 이후 경기에 대한 관람료에 대하여 전액 환불 조치를 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직접적인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에 대해서도 무림맹 의료 시설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분들의 치료에 대한 일체의 비용은 무림맹과 저, 독고자영이 도맡아 부담할 것입니다.
무림맹은 현재 관, 금의위와 협력하여 비무장 내외에 설치된 모든 벽력탄을 수거했습니다.
다시는 이를 활용하지 못하게 관무가 함께 보는 곳에서 이들을 처분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무림인 여러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용봉지회가 끝을 맺었으나, 결코 마교를 탓해서는 아니됩니다. 마교는 피해자고, 모든 원흉은 전 대공자 위주지에게 있습니다.
무림맹은 대공자의 잔당 세력들을 색출하고 있으며, 이들을 검거하여 잔당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흉수를 사로잡아 그들의 죄를 일벌백계하도록 하겠습니다.
용봉지회는 끝났습니다.
용봉지회가 여러 악인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만큼, 많은 분들이 용봉지회의 존속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본 맹에서는 이번 용봉지회를, 마지막 용봉지회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고자 합니다.
이제 더이상의 용봉지회는 없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용봉지회에 도전하신 분도 계시고, 한 때는 용과 봉의 별호를 가지고 계셨던 분도 있습니다.
무림은 나날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위해, 우리는 용봉지회가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서로 화합하고 만나는 교류의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다시 만나는지에 대한 건 이번 사건을 명명백백 밝힌 뒤, 다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강호의 많은 의협 여러분!
용봉지회는 이것으로 막을 내리지만, 용봉지회는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겁니다.
언젠가 다시금 천하의 모든 이들이 화목하게 어울리는 그날을 바라며.
용봉지회는.
이만 막을 내리겠습니다.
* * *
밤.
용봉지회가 끝났다.
진정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단촐한 무복으로 갈아입은 채, 하북팽가의 정자에서 조용히 나의 달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공?"
"뭘?"
"상공이 용봉지회를 끝내버리셨잖아요."
"...솔직히 수십 번이나 했으면 한 번은 망할 때도 됐지."
나는 팽유월이 따르는 술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팽유월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천무명은 장외로 실격패. 남궁패는 다시 폭룡이 되는 걸 사양했지. 나머지 팔룡이 나름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조만간 별호를 반납하겠죠."
용봉지회의 별호는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터.
"천하제일 비무대회."
나는 내 앞에 놓인 책자 하나를 팽유월에게 넘겼다.
"2년마다 정기적으로 한 번씩 열리게 되어있소."
"나이...신분...성별…출신문파. 그 모든 것을 따지지 않고 누구든 참가 가능한 비무대회라."
용봉지회는 철저히 나이와 성별에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은퇴한 자도, 현역인 자도, 누구든 참가 가능한 대회가 있다면 누군들 나가지 않을까? 자신감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출전하겠지. 천하제일의 이름을 차지하기 위해서."
"더 혼란스러워지겠네요."
"용봉지회보다는 더 낫지 않겠소? 무림맹 공식 천하제일이 될텐데."
2년 뒤의 일이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천하제일에 오르는 자가 나올 것이다.
"나중에 거기서 당당히 선언하면 되겠군. 나, 비천색마가 팽유월의 남편이라고. 흐흐흐."
"어머. 색마인 걸 자랑하시려고요?"
"여자들을 함부로 범하는 색마가 아니라, 색을 관장하는 마인...뭐, 농담이오. 색마는 죽어야지."
아직 대계의 한 조각은 남아있다.
바로 강호에 널리 알려진 '색마'를 죽이는 것.
"...언젠가 때가 되면 전 무림을 돌며 비색행에 나설 것이오."
"비색행은 또 뭐에요?"
"비무행처럼 색행을 나서는 거지. 앞으로 마교의 마인들이 무림문파들을 상대로 정문을 밟고 들어가 비무를 청하는 것처럼, 색공을 청하는 것이오."
"그걸 사람들이 받아들일까요?"
"그러니까 색마의 색무행이 아니겠소? 남들이 보는 앞에서 비무로 승리를 따내고 강제로 범한다. 그렇게 하나 둘 강호의 뭇 많은 여인들을 범하다가…."
서걱.
나는 엄지로 내 목을 그었다.
"천무명에게 살해당하는 거지. 천무명은 자신의 여인들이 색마에게 당한 복수를 이루는 것이고."
"많은 피해자가 생기겠네요."
그렇긴 하다.
나의 아내들만 색마에게 패배하여 범해진다면 모두가 내 아내들을 삿대질 할 것이다.
하지만 10명이 아닌 100명이 색마에게 범해진다면?
천 명, 만 명이 색마에게 범해진다면?
여차하면 그런 미래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지금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색마의 죽음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정해져있었다.
하나. 목이 베여 죽는 것.
또 하나.
질식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지가 졸려 죽는 것.
"시간이 되었소. 이리 오시오."
나는 팽유월을 부축하며 밤하늘을 가리켰다.
팡.
불꽃이 터졌다.
벽력탄이 터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폭죽'이라는 것이 터지고 있었다.
"혈맹월교가 참 저런 건 좋아. 낭만적이지 않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이라니."
"상공이 낭만을 말씀하실 줄 몰랐어요."
"밤이라서 그런가,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아니면 사랑하는 여인이 곁에 있어서 그런가."
"전부 다?"
나는 팽유월의 앞에 섰다.
"유월아."
"네, 상공."
"지금부터 하는 것에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놀래키면 안 돼요. 놀라면 애 떨어진다고 막ㅡ"
팽유월은 입을 두 손으로 다물었다.
-남녀차별을 하려는게 아니지만, 결혼 고백은 남자가 먼저 하는게 좋아요.
혈교주는 말했다.
-평생동안 잊지 못할 기억을 새기는 거죠. 여자는 말이에요, 사랑을 하게 되면 단점도 사랑스럽게 보는 법이랍니다. 중원 누구도 하지 않을 방식으로 고백해보세요. 아빠가 그렇게 하고 선녀의 사랑을 얻었으니.
혈교주가 했다는 방식으로, 나는 팽유월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와 결혼해주시겠소?"
"......소예가 이상한 거 할 거라고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라고 했는데."
팽유월은 벌써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남자가 어찌 여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십니까? 남들 보기 흉합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평생을 함께할 나의 아내와 내 아이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거지. 받아주시겠소?"
나는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
"왼손을 내밀어주시오."
중원의 옥가락지와는 다른, 혈소예의 조언을 받아 내가 직접 만년한철을 두드리고 세공하여 만든 반지였다.
"...소예가 이런 거 시키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요."
팽유월은 내게 왼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고, 반지 위에 살포시 입술을 맞추고 몸을 일으켰다.
"천마도, 곤륜의 현녀도, 무림맹주도 색마를 무릎꿇리지 못했지. 축하하오. 그대는 사랑으로 색마를 굴복시켰소."
색마는 죽었다.
사랑을 모르고 육욕만을 생각하던 색마는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아이의 아버지로, 여자의 남편으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될 수 있었다.
"사랑한다. 유월아."
"...저도요. 상공. 아니죠. ...님."
팽유월는 작게 속삭이며 나와 손을 맞잡았다. 나는 눈을 감은 그녀와 조용히 입을 맞췄다.
팡.
파바방.
우리의 언약을 축복하듯, 밤하늘은 불꽃이 화려하게 터졌다.
"...아, 상공. 배가…?"
"...젠장. 모처럼 분위기 좀 잡아보려고 했더니!"
양수도 터졌다.
[작품후기]
완결 아닙니다
스토리는 대략 95%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외전까지 포함하면 140% 정도 되겠네요.
하하하.
외전은 비색천마를 의미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