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46화 (546/568)

--------------------

용봉지회의 끝

얼마 전.

대기실에서 나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누군가의 방문을 받았다.

“반갑소, 천무명.”

“...남궁패?”

남궁세가의 소가주. 폭룡. 나와 같은 본선 9조에 속해있으면서 동시에 나의 반대편에서 파죽지세로 올라오고 있는 남자.

대중에게는 이미 천무명과 남궁패 중 이기는 자가 구룡 중 으뜸이 될 거라고 칭송받고 있으나, 이미 대외적으로 결과는 자명했다.

천무명이 9, 남궁패가 1.

나머지 1도 남궁세가와 관련이 있거나 전회차의 우승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손을 들어준 걸 생각하면, 누가 우승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것도 이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남자 대 남자로서 진솔한 이야기를 하러 왔소.”

“.......”

그냥 이야기를 하러 왔다고 하면 무시하고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남자 대 남자로서 이야기를 하러 왔단다.

‘천무명은 무시 못하지.’

비천색마라면 모를까, 천무명은 사내로서 자존심이 상당한 남자다.

“말하시오.”

“우선 동생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소.”

남궁패는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 자세가 워낙 절도있고 경건하여 나도 모르게 괜히 진지하게 대하게 되었다.

“동생의 일이라면….”

“지난 용봉지회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지금까지 함구해줘서 고맙소.”

“...당시의 본인은 의원이었소.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일 뿐.”

“...흐, 그런가.”

남궁패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한, 동생을 잘 부탁하오.”

“그건 무슨 의미인가?”

“동생은 그대를 사모하고 있소.”

“.......”

언젠가 고백을 들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이미 몇몇 이들은 나와 남궁유린을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흑색선전을 펼치고 있었다.

“단지 표현이 솔직하지 못한 아이요.”

그런데 남궁패가 와서 이렇게 대놓고 남궁유린의 마음을 까발린다?

“이건 좀 그렇군.”

“무슨 말인가?”

“당사자의 마음을 다른 이에게서 듣는 건 실례가 아닐까 싶소만.”

“...흐, 그것도 그렇지. 하지만 어디 유린이가 보통 여자는 아니잖소.”

남궁패는 남궁유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핼쓱해졌다.

“유린이는 어려서부터 세가의 금지옥엽으로 자라,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여자요. 만약 그대가 유린이를 품는다면...그 아이도 하늘 무서운 줄 알테지.”

“하. 가문에서 골칫거리라고 생각하는 여인을 내게 보내려는 속셈이오?”

“그도 그렇고, 동시에 보험이기도 하오.”

“?”

남궁유린을 내게 보내는 것이 보험이다?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궁세가는.”

남궁패의 이어진 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마...이번 용봉지회로 인해 몰락할지도 모르오.”

“응?”

“아버지, 남궁산이 위험한 일을 꾸미고 있소. 그대를 암살하고, 다른 세가의 주요 요인들을 벽력탄을 터뜨려 폭사시키려고 하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남궁산이 이미 대공자의 끄나풀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인데, 그게 지금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소. 진실이오.”

하지만 이렇게 과격한 행동을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대는 내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본인은 가주님의 친아들이오. 아들이 감히 아버지를 밀고하는 패륜을 저지를 수는 없소.”

“대신 내 손과 입을 더럽히겠다?”

“고깝게 듣지 않았으면 하오. 그리고...강호에 이제 믿을만한 사내는 오직 그대 뿐이니.”

남궁패는 씁쓸하게 웃었다.

“다른 팔룡들을 살펴보았소.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무림맹 부맹주를 상대로 뭔가를 도모해보려는 생각은 하지 못하더군. 하지만 그대는 다르다오. 아미파를 상대로 정면으로 거스른 자. 마교 대공자를 정면에서 없애려고 한 자. 그런 자를 어찌 내가 믿지 않을 수 있겠소.”

“.......”

“혹시나 남궁세가가 잘못되어도, 그대가 유린이를 품어준다면 유린이라도 살 수 있겠지. 반역자의 씨라고 형장의 이슬이 된다고 해도, 천무명 그대가 유린이를 품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오. 그래….”

남궁패는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상당히 낡은 책자는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남궁산의 비리를 정리한 것 장부와 증거요. 물증은 책 안에 적힌 곳에 보관해두었소. 나중에 큰일이 생기거든...그건 유린이가 그대에게 전한 것으로 해주시오.”

“그대는?”

“아버지 가시는 길 함께 따라가야지.”

“어처구니가 없군.”

남궁패는 침몰하는 배에 끝까지 함께 따라가려고 했다. 단지 반역을 꾸미는 남궁산이 아버지라는 이유로.

“본인, 천무명은 부친이 없었소. 아니, 양친이 없었지. 그래서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자식을 가진 아버지로서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소.”

“...자식이 있다고?”

“이 나이에 자식이 없는게 이상하지.”

“그럼 독고 소저랑 다른 소저들은 도대체…?”

남궁패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그걸 내게 왜 얘기한 거지?”

“다른 거 다 차치하고, 사내 대 사내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며? 그렇다면 숨길 것도 없지.”

남궁패.

미래의 검황.

내가 삼구에게 가르쳐준 광천수라검의 주인.

그는 누구보다도 확고한 의협이었다.

“아니면 내 슬하에 자식이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말할 것인가?”

“그럴 리가. 축하하오. ...그렇다면 유린이는 첩이 되겠군.”

“보통 이런 말을 하면 ‘아내가 있으니 포기해야겠군’이라고 하지 않나?”

“고삐 풀린 망아지를 잡을 수 있는 건 천하제일 뿐이지.”

뭔가 자꾸 나를 치켜세우는 동시에, 그는 자신에 대해 계속 자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린이도 하늘같은 지아비를 섬기다보면 자연스레 기가 죽을 것이오. 오직 그대만이 유린이를 얌전하고 조신한 여인으로 만들 수 있지.”

“글쎄. 내가 아는 그녀의 성격이라면 오히려 질투심에 내 아내들을 잡아먹으려고 할텐데.”

“...들이라. 크, 흐하하하!”

남궁패는 배를 잡고 껄껄 웃었다.

“대단하시오! 정말...대단하군.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원망스럽소. 아아, 제갈공명을 질투하던 주공근의 심정이 이런 기분인가? 정말 부럽소! 진심으로.”

남궁패는 시원하게 웃었다.

“나는 사람 한 명을 사랑하기도 벅찬데, 그대는 어찌 그렇게 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단 말이오?”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타고난 힘이 있지 않은가?”

“......흐. 그렇군. 그거라면 인정해야지. …...그래도 유린이랑 하게 된다면 조금 상냥하게 해주시오. 그 아이, 그쪽으로는 여전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니.”

“뭔가 내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나는 남궁패를 가리켰다.

“친오빠의 앞에서 여동생을 상대로 성희롱을 하는데, 그대는 왜 그렇게 시원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유린이는 좀 그래도 되는 아이니까.”

공감은 한다. 하지만 친오빠가 그러면 안 되지.

“농담이고, 그대가 유린이를 받아들이겠다면 나는 얼마든지 쓰레기가 될 수 있소. 모든 오욕은 내가 감수할테니, 그대는 혹시 남궁세가가 위험에 빠지면 유린이를 수렁에서 건져주시오.”

“.......”

반대였다.

누구보다도 남궁유린을 아끼는 남자였기에, 그는 남궁유린을 가장 확실하게 아껴줄 수 있는 길을 선택하려고 한 것이다.

“위악이로구나.”

“본가의 핏줄을 잇게 하려는 고육지책이지. 안 그러면 유린이, 평생 시집 못간 노처녀로 살게 될테니.”

“...그게 그대의 선택이라면 존중하지.”

나는 남궁패가 내민 증거물을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겠소. 그대는 지금 남궁의 몰락을 생각하고 내게 이런 걸 건넸겠지? 남궁세가의 직계는 삼족이 멸할 수 있겠다 싶으니, 내게 남궁유린이라도 맡긴 것이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남궁패는 내 손에 들린 증거를 가리켰다.

“감히 황녀를 상대로 벽력탄을 터뜨리려고하는 미친 짓을 저지른다면….”

“그거라면 걱정마시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으니.”

“......뭐라고?”

“그대가 걱정할 것은 단 하나.”

나는 남궁패와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비무. 서로 전력으로 싸워봅시다. 물밑에서 움직이는 적은 우리같은 후기지수가 아닌 맹의 높으신 분들이 맡아서 하실 일이지.”

“...하, 정말.”

남궁패는 마지막으로 포권을 취했다.

“잘 부탁드리오, 천 형.”

그렇게, 나는 남궁패로부터 남궁세가의 악행을 단번에 퍼뜨릴 증거물을 받아냈다.

그래서 나는 부담없이 대회를 준비할 수 있었다.

-맹주님, 큰일났습니다.

-황녀님, 이걸 보십시오.

무림맹주와 관에 직접 증거를 제출하였으니,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터.

그게 벌써 며칠 전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마지막 확인을 위해 무림맹 지하의 어떤 장소를 찾았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공자.”

그곳에는 하얀 도복을 입은 제갈선이 색안경을 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어두운 밀실.

그곳에는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인이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일을 어찌 처리하면 좋단 말인가.”

“크게 키우려면 한도 끝도 없이 키울 수 있는 문제일세. 벽력탄이라는 건...아주 심각한 문제야.”

“예. 그러니 지휘사 어르신과 황녀님께도 말씀드린 겁니다.”

“실은 저희쪽도 똑같은 자료를 입수한 상황이라.”

무림맹주, 무림맹 군사, 금의위 지휘사, 그리고 황녀.

사실상 중원 무림을 아우르는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가운데에 각기 다른 서책 두 권을 놓고 심각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비밀리에 여옥상 장군을 보냈소. 그녀의 보고에 따르면, 비무대 곳곳에 아주 교묘히 숨겨져있었다고 하더군.”

“관객석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부에 설치된 것으로 보아...공사 단계에서부터 섞여들어간 듯 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맹주.”

“아닐세. 맹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내 잘못이지. 그것도….”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산.”

황녀는 담담히 서책 위에 손을 올렸다.

“증거를 보니 정황을 알 것 같습니다. 이건 남궁세가에서 나온 겁니다.”

“남궁세가가 어째서?”

“가주를 밀고하는 거지요. 방계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면 남궁산의 폭주를 보다못한 그의 아래에서 나온 것이든….”

황녀는 이미 증거를 만든 자를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증거를 쓰는 필체에서 느껴지는 기세에서 그녀는 차마 확실하게 말을 하지 못했다.

“누군지 척봐도 보이지 않습니까.”

“...여자인 것처럼 글을 쓰려고 했다면, 경우는 하나밖에 없지.”

넷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 청년의 고귀한 희생에 감명을 받았고, 동시에 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끓었다.

“이대로 희생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황녀로서, 아니 무림을 좋아하는 이로서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갈길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하북팽가, 무당파, 마교, 사천당가, 아미파, 독고세가, 검각, 혈교, 곤륜파, 그리고 제갈세가에서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모든 벽력탄을 회수했습니다.”

“...뭐라? 독고?”

“맹주께는 말씀드리지 않아 죄송합니다. 독고 소저가 부친이 괜히 신경쓰이지 않게 하겠다고 하여. 이 모든 판은 독고 소저가 만들기도 했습니다.”

“허….”

“좋은 따님을 두셨군요. 맹주. 그럼 군사, 벽력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혈맹월교에서 지금 개조 중입니다.”

“...개조?”

“예. 벽력탄 자체를 보관하면 결국 누군가가 사용할테니, 그걸 이참에 전부 터뜨리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제갈길은 쓰게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기. 하늘 위에서 터뜨린답니다.”

* * *

“...불꽃놀이?”

“벽력탄 쪽은 그렇게 됐어요.”

제갈선은 제갈길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내게 전했다.

“제갈세가 내부 상황은 이미 정리가 됐고, 나머지는 무림맹주의 공식 발표만 남아있는 셈이죠. 벽력탄을 이용해 무림을 또 어지럽히려는 흉수는 십상련의 후예였다고.”

“결국 또 십상련인가.”

십상련의 잔당이 살아있다고 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무림맹주는 자신의 치적을 더욱 높임과 동시에, 십상련을 일깨우는 것으로 이번 남궁산의 반란을 무마하려고 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빙색마인이 여인들을 겁탈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십상련의 후계자를 만들어서 용봉지회 폭파 미수를 못하겠어요?”

“그건 그렇지.”

가공의 인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주 사악하고 교묘한 그는 대공자 주지와 연계하여 정파의 무사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끝이다.

용봉지회는 말 그대로, 화려하게 막을 내릴 것이다.

“이제 슬슬 결말인가….”

“네. ...아참. 공자. 내일 결승전이죠? 제가 확실한 응원을 해드릴까요?”

“응?”

스르륵.

제갈선은 색안경을 벗으며, 손에 들고있던 세필을 손으로 빙빙 돌렸다.

“말로 응원하는 거야 다들 하는 거고...몸으로 응원하는 것도 생각을 해봤는데, 크게 색다르지는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공자.”

제갈선은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끝을 기념하는 의미에서...제 처녀 따먹으실래요?”

앗.

[작품후기]

원래는 이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남궁패랑 붙으려고 했는데....

일러레분께 제갈선 일러스트를 깜짝 선물 받았습니다.

아래 그림이 바로 선물 받은 그림입니다!

그러므로 선물 기념으로 제갈선의 처음을 취하겠습니다.

네? 처녀는 결혼할 때 취하는 거 아니었냐고요?

이런 예쁜 팬아트 선물을 받았는데 어떠케 안 쓸 수 있습니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