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42화 (54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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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지회의 끝

혈소예와 천화현녀.

두 명의 여인을 취한 나는 팽유월에게 혼이 났다.

또 사람을 임신시켜서? 아니다.

"상공. 뭘 잘못했는지 아시죠?"

"...다?"

혈교주는 말했다.

- 여자가 뭘 잘못했냐고 물으면 그냥 잘못했다고 하세요. 자존심 잠깐 죽이고, 밤에 침대에서 죽여버리면 되니까.

혈교주는 언제나 옳았다. 하지만 당장 내가 혼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해답을 주지 않았다.

"정말 뭘 잘못했는지 모르시겠어요?"

"...또 월아 동생을 낳게 만들어서?"

"네? 그건 딱히 잘못이 아닌데요. 아이야 몇 명이고 더 낳아도 되는데...."

팽유월은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기절한 두 여인을 가리켰다.

"이렇게 추운 지하실에서 냄새 안 빠질 정도로 하시면 나중에 환기하기 어렵다구요...."

"크흠. 어, 어떻게 밖으로 구멍하나 만들어주랴?"

"가능하면 그렇게 해주세요."

푹.

나는 벽에 손가락을 박아넣었다. 손가락 끝에 모인 강기는 앞으로 뻗어나가 밖으로 숨구멍을 만들었고, 나는 중려신화정과 빙백신공을 교차로 사용하여 외벽을 굳게 만들었다.

단숨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리자, 안에 있던 공기가 밖으로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추우니까 조금 닫아둘까?"

"그것보다 저 둘을 닦아주는 건 어떤가요?"

"아, 그건...."

"유월 언니."

한 명, 깨어있지 않은 여인이 있었다.

"소예야?"

"언니도 같이 즐겼으면서...."

"앗...!"

팽유월은 금방 얼굴이 붉어지며 인상을 썼다.

"너, 너 지금 상공 앞에서 그걸 이야기하면 내가 부끄러워지잖니...!"

"괜찮다, 유월아. 너한테 쾌감 가는 거 알고...."

일부러 소예한테 더 박았으니.

"...흥."

나는 기절한 현녀가 혹시라도 듣지 못하게, 팽유월의 등허리에 손을 올리고 손글씨로 내 마음을 전했다.

현녀와 혈녀의 대결은 당연하게도 혈녀의 승리로 돌아갔다.

둘이 똑같이 십할의 쾌감을 느꼈다면, 소예는 그 중 구 할 가량만 느꼈을 뿐이다.

나머지 일할은 팽유월이 챙겨갔다. 그래서 팽유월은 임신 중에도 딱히 나랑 하지 않아도 나랑 하는 것처럼 충분히 성욕을 채울 수 있었다.

아이에게 부담이 가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나 뭐라나.

"그나저나 상공, 결국에는 해내셨네요. 곤륜파에 계신 스승님을...."

"범했지. 임신시켰다."

"잘하셨어요, 상공. 예전부터 누구든 다 임신시키겠다고 말씀하셨지만...."

팽유월은 내 등을 토닥이며 팔짱을 꼈다.

"곤륜파 장문인 분까지 그럴 줄 몰랐어요. 그래도 제가 상공의 첫 아이를 낳은 건 잊지 말아주세요, 상공."

"유월아. 이제 호칭도 상공이 아니라 바꿀 때가 되었다."

나는 팽유월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왼손으로 왼쪽 가슴을 움켜쥔 덕분에 팽유월의 심장이 두근거리는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오늘부터 나를 여보라고 부르시오, 부인."

"......."

팽유월은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건 혈소예도 마찬가지.

"앗.... 오, 오빠! 이건 반칙이죠! 왜 유월 언니가 먼저인데?!"

"내 맘이다. 이제 모든 난관이 해결되었으니, 정식으로 혼례를 치뤄야지."

나는 팽유월의 볼에 입술을 맞췄다.

"육봉쟁패든 구룡쟁패든 이제는 아무래도 좋아졌다. 남궁패와 자웅을 겨루는 결승전에 올라갔으니, 거기서 떨어져도 남들에게 군소리를 듣지 않을 터."

"상...."

팽유월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왕이면 우승하고 와주세요, 여보. 월아랑 이월이한테 자랑할 수 있게."

"부인의 뜻이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자랑할 거리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당당히 구룡의 으뜸이 되어, 그 자리에서 고백하겠소."

"그러면 연이에게 칼침맞을 걸요. 상공은 저를 또 과부로 만드실 건가요?"

"...분위기 타서 한 마디 하니 바로 찌르고 들어오는군."

"후후, 그야 당연하죠. 상공은 저희 모두의 지아비인 걸요."

팽유월의 말에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동시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내가 이 여인들의 지아비이며 기둥이며 남편이라는 것이 정말로 기뻤다.

"...결혼식은 어떻게 하지?"

"우승은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식부터 올릴 생각하는 거야?"

"혼약은 중대사항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공교롭게도, 나는 내 삶에 있어서 딱 한 가지 해보지 못한 것이 있다.

"내가 꼭 하고 싶은게 있지."

사람을 구해봤다.

사람을 키워봤다.

사람을 죽여봤다.

사람으로서 죽어봤다.

무림인으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했다고 봐도 무방한 가운데, 내가 하지 못했던 딱 한 가지가 있었다.

가족을 만드는 것? 이건 이미 천가장에 훌륭한 가족이 있으니까 논외.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는 무엇일까?

"내가 이번 생을 살며 평생을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소, 부인."

"뭔데요?"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지 못했소."

"......설마."

소예는 표정을 굳히며 팽유월을 가리켰다.

"유월 언니랑 제일 먼저 할 거야? 아, 안 돼! 결혼은 나랑 해야지!"

"누가 결혼은 미친 짓이니까 하지 말라고 안했나?"

"윽...!"

혈교주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번 생에, 아니 전생을 통틀어 혈교주의 진리를 정면으로 가장 크게 거스르고자 한다.

"독고자영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소. 인연이야 가장 애틋하게 새로이 '꾸미면' 되니까."

"여보...."

"결혼합시다."

"......아이를 둘이나 가지게 하고 이제서야 청혼하신다니, 참...."

나는 팽유월의 왼손을 잡아 들어올렸다.

"...정말, 고마워요. 여보."

팽유월은 눈을 지긋이 감으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오빠,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근데 그거 알아? 스승님 깨어있었다?"

"앗."

"......."

부스스.

"제자야...."

스승은 몸을 조용히 일으켰다. 얼굴에 아직도 정액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스승은 나를 올려다보며 우울하게 말을 이었다.

"고백은 내가 먼저 했는데...."

그녀의 눈동자는 심연의 바다처럼 착 가라앉아있었다. 명백히 질투하는 눈빛을 보였으나....

"아, 그러신가요?"

팽유월은 내게서 손을 놓고 앞으로 다가갔다. 손을 자신의 임신한 배에 올리고, 오연히 현녀를 내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저는 아이가 벌써 둘이랍니다."

"......으."

현녀는 복잡한 얼굴로 팽유월의 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떨궜다. 낙담한 그녀를 오히려 소예가 자신의 가슴에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남자애 낳으면 우승이야."

"...딸이 뭐가 어때서요?"

"딸을 낳은 걸 뭐라하는 거 아니야. 단지...."

혈소예는 나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들어올렸다.

"적자가 아닌 딸 중에 한 명이 천가장의 가주 자리를 이어받는 건, 어떻게 생각해?"

"......."

유감스럽게도.

"...그래도 가문의 대는 적자가 이어야하지 않겠어?"

나는 아직 혈교의 사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월아. 셋째 아명은 일단 월삼(月三)으로 하자꾸나."

"싫은데요. 월삼이가 뭐에요. 촌스럽게."

"......."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팽유월도 혈교와 거래를 자주 하면서 혈교의 사상에 물든 것 같았다.

"월아, 이월, 월삼. 하, 이름에 월자만 들어가면 다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그럼?"

"그건...."

팽유월은 내 등허리 아래로 손을 뻗었다.

"생각을 해봐야죠."

그러면서, 내 엉덩이 위에 손으로 글씨를 썼다.

비밀.

...요즘 자꾸 내 뒤를 노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 같지 않나?

* * *

연붕, 실격.

곤륜파의 백천화도 실격.

사라진 둘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경기는 속개되었다.

"그럼...."

"모용 소저랑 남궁 소저랑 붙어서 이기는 사람이 육봉이네?"

본래 연붕 또는 백천화가 상대했어야 할 여인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백기를 들었다.

일류 고수로서 나름 열심히 싸워왔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연붕과 우승후보로 꼽히는 두 명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모용란과 남궁유린, 두 명의 비무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정작 비무에 나선 둘은 한 사람을 동시에 찾고 있었다.

천무명.

한 명은 자신이 마음을 줬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 명은 자신이 몸을 이미 줬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흐흐흥."

남궁유린은 시작하기도 전부터 괜히 이긴 기분이었다.

"오랜만이네요, 모용 소저."

"......."

모용란은 이전보다 훨씬 더 방자한 모습을 보이는 남궁유린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녀는 불과 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신경질적이고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혔으나, 지금은 그런 기색 없이 아주 정신이 맑아보였다.

"당신, 천 공자랑 아는 사이라고 했죠?"

"......."

모용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남궁유린의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제."

남궁유린은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입모양으로 작게 속삭였다.

"천 공자와 저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답니다."

"!!"

모용란은 비무 시작을 알리기도 전에 칼집에 손을 올렸다. 칼을 빼들지 않은 건 실격할까봐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마음을 다잡고 수양하지 않았다면, 눈앞의 존재를 베어넘기면 다시 연희봉이 될 수 있다는 목표가 아니었으면 어처구니없게 실격했을지도 모른다.

"...헛소리."

"아뇨, 헛소리가 아니에요. 뭣하면 공자에게 물어보시든가."

비무, 준비-!

두 여인은 동시에 무기를 뽑아들었다. 하늘 높이 들어올린 남궁유린의 검은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모용란의 칼 또한 푸른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관객석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검기와 도기!

비록 강기의 형태는 아니었으나, 둘 다 불과 수년 안에 그 단계에 이를 수 있는 잠재력이 엿보였다.

"훗, 한 마디 더 해줘?"

남궁유린은 소리없이 말했다.

"나, 잤어."

"!!"

모용란은 한걸음에 남궁유린을 향해 뛰어들었다.

* * *

"이제야 육봉쟁패에서도 서로 비슷한 실력끼리 치고박는 모습이 보이는구나."

붉은 갓으로 머리를 가린 흑발의 중년 사내는 두 여인의 비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 형, 구 형은 어디에 거셨소?"

"...내가 자네에게 뭐라고 이름을 말했지?"

"구성임. 뭐 가명이라도 여러개 쓰시오?"

"......같은 이름으로 판돈을 거니 안 넣어주더라고."

스스로를 구성임이라고 말한 중년 사내는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구룡쟁패는 다 잃었어도, 육봉쟁패는 확실하게 지금 다 따고 있지 않는가? 본명 하나로만 넣었으면 분명히 따지 못했을 것이야. 하하."

"그럼 구 형이 보기에는 누가 이길 것 같소?"

"전력비로 따지면 남궁의 아이가 6:4로 좀 더 유리하지."

이야기를 나누는 중년 사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흐흐, 구 형의 안목도 뛰어나지만 이 몸의 안목이 더 뛰어났군. 본인은 남궁 소저에게 걸었소이다."

"마지막에와서 갑자기? 자네, 연붕이라는 소저에게 계속 걸어서 재미 좀 보지 않았나?"

"역으로 거는 건 큰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소. 그래서 이번에는 안전하게 가려고 하오. 남궁 소저에게 전재산을 몰아넣었소이다! 하하."

"......."

구성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왜 그러시오? 그대도 남궁소저에게 걸었지 않소?"

"그래서 지금 졸ㄹ...아니,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는 중이네. 전력비가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승패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릴 수 있지 않은가."

"아니, 왜 그러시오? 나 불안해지잖소? 나 땅 판 돈으로 남궁 세가에 넣었는데...."

"그러길래 누가 그렇게 돈을 넣으라고했나? 원래 도박은 가벼운 놀이로 하는 거야. 나를 보시게. 그냥 은자 몇 냥으로 금덩어리 하나 만드는 정도까지가 좋은 거라고."

구성임은 비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궁의 제왕검형은 분명히 강하네. 그에 비해 모용의 도는 많이 흐트러져있어. 남궁의 아가씨가 상당히 영리하게 검을 휘두르는 것도 있지."

"그럼 남궁유린이 유리하잖소?"

"사람 말을 끝까지 듣게. 어차피 저 둘의 비무는 무공으로 승패가 갈리는게 아니야. 여인네의 마음이 꺾이는 자가 이기는 거지."

"그게 무슨 개뼈다귀같은 소리요?"

구성임은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누가 더 정신줄을 단단히 잡느냐에 따라 비무의 승패가 갈릴 것이오. 그래,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구성임은 비릿하게 웃으며, 소란으로 웅성거리는 객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무명이 응원하는 쪽이 승리한다거나...?"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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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2) 오늘의 비색천마(다른 작품)은 시아쟝 엉덩이 천마스팽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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