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35화 (53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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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서로

독은 분명히 사람을 앓고 죽게 만든다.

선인은 하늘에서 살아가야하는 존재이며, 선인은 지상의 공기를 마시지 못한다.

지상의 독기를 계속 흡입하게 되면 몸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터지게 된다. 여기서 터진다는 말은 지상의 육신을 탈피하고 하늘로 올라가는, 등선을 의미한다.

독고연은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선도를 섭취했다.

그리고 선녀가 될 뻔 하였고, 그로 인해 많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제갈선은 하늘로부터 선기를 이어받았다.

이미 선기를 수용하면서 부작용은 모두 다른 이가 받아 하늘로 강제 등선했고, 제갈선은 남은 선기의 이로운 요소만 챙기게 되었다.

사공희도 마찬가지.

녹림황이 남긴 유산으로부터 얻은 선기는 지상에서 오랜 시간동안 적응했고, 내가 충분히 억제하고 다룰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현녀는 어떨까?

아무리 내가 그녀와 살을 섞었다고한들 그녀는 산을 내려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려오는 즉시 그녀는 지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순도 높은 선인의 육체가 반발하게 될 것이며, 강제로 등선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다소 안일한 생각이었다.

육체의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죽을 것처럼 아픔을 참으며 곤륜산에서 내려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스승님!!"

나는 바로 혈영귀라수를 꺼내 현녀를 공격했다. 그녀는 검을 수평으로 세우며 내 손을 막아세웠다.

"당장, 무공 사용을 멈추십시오!"

"싫다. 이 싸움은 둘 중 한 명이 포기해야만 끝난다."

현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 손을 튕겨냈다. 검은 유려한 원을 그리며 높이 올라갔다.

"네가 내 것이 되거나. 내가 네 것이 되거나."

서걱!

현녀의 검이 나를 반으로 가를 뻔했다. 내가 조금만 더 뒤로 뛰지 않았다면, 그녀는 분명 나를 두동강냈을 것이다.

"회광반조나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수 있다고요!"

"너와 함께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낫다."

"어찌 함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천가장에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얼마나? 100년? 200년?"

현녀는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반만년의 세월 앞에,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

카앙, 카앙-!

"수많은 제자를 떠나보냈다! 내 손으로 장사지낸 아이들만 곤륜산을 뒤덮을 정도다!"

현녀는 마구잡이로 내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으로 내게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평생동안 누군가를 잃기만 했던 삶이다! 그런데...이제 겨우 간신히 찾아냈어! 나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자를!"

"!!"

현녀의 검은 막힘이 없었다. 나를 상대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처럼 보인 공격도 정확한 초식이었다.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

"큭...!"

내가 익히고자 했지만 익힐 수 없었던, 익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곤륜파의 상승 검법.

"스승님!!"

"네게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다. 더이상 그 전의 여인처럼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제발, 제발 나를 바라봐다오. 나만을 바라봐다오!"

피를 토하며, 그녀는 절규했다.

"반만년 만에 처음으로 품은 마음이다. 내가,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너를 가질 수 없단 말이더냐!"

"......스승님."

나는 천천히 오른손의 검을 앞으로 겨눴다.

"스승님은 완벽하십니다. 나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천하의 모든 남자에게 묻는다면, 백이면 백 스승님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허나."

사아아.

검 끝에 붉은 강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저는 색마입니다. 여자 한 명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변태입니다. 아무리 스승님이 선녀라고 한들, 아니 여신이라고 한들, 저는 한 명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

현녀의 눈에 핏발이 섰다.

"고작...그런 이유 때문이란 말이더냐? 그게, 진심이었어?"

"당연하지요. 그리고 그건 다른 여인들에게 아이를 낳게하면서 더 확고해졌습니다."

나는 왼손을 뒤로 당겼다.

"임산부를 상대로 격하게 밤일을 할 수는 없지요. 채음보양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몇몇 여인들이 임신한 동안, 다른 여인을 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너...."

"스승님을 임신시키고나서, 제가 욕구를 참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지요.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현녀의 흰 무복에 절반가까이 혈화(血花)가 피어올랐다. 절로 마음이 쓰라려졌다.

추마귀 시절의 내가 떠올라 자괴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아라.'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설령 현녀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그녀를 반드시 떨쳐내기로.

설령, 그녀를 죽인다고 해도.

다시 스승을 죽이는 업을 범한다고 해도, 나는 현녀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

"저는."

나는 끓는 마음을 다잡으며 말을 이었다.

"임신한 여인을 상대로 좆질을 하다가 아이를 잃게 만드는, 그런 짓을 결코 할 수 없습니다."

"너...!"

"검을 내려놓으십시오. 내공을 억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진짜로 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전력을 끌어올렸다. 이게 내 전력이구나 싶을 정도로, 아니 나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정도로 모든 힘을 손에 모았다.

"만약 제게서 아내들을, 아이들을 빼앗아가고자 한다면!"

나는 앞으로 뛰었다.

"다시금, 죽일 겁니다!"

스승은 나를 향해 검을 겨눴다. 검끝은 흔들렸지만, 곧 내 목을 정확히 노리며 수평으로 섰다.

내가 먼저 닿거나, 스승의 검이 내 목을 자르거나.

나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겼다.

비천혈세(飛天血世).

푸욱.

* * *

파사삭.

물방울과도 같은 조각이 깨졌다. 보현진인과 백청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아...."

"...원시천존이시여."

둘은 깨진 물방울 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푸른 물은 책상 위에서 넓게 퍼져나갔다.

뚝, 뚜둑.

책상끝에서 흘러내리는 그 모습이 마치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보현진인은 눈을 지긋이 감으며 목례를 했고, 백청하는 허탈해하며 주저앉아버렸다.

"어째서...?"

"...우리는 그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나보구나."

보현진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우리는 그분을 항상 인간답지 않다고 했으나...그분은 누구보다도 인간다운, 사람다운 분이셨어."

"스승님...! 지금이라도...!"

"늦었다. 이미 스스로 선택하신 길이야. 천기를 읽으시는 분이 설마 이 길이 옳은지 그른지조차 판단하지 못하셨겠느냐."

보현진인은 백청하의 어깨를 꼭 붙잡았다.

"곤륜에 돌아가면 그 때부터는 격동의 바람이 불 것이다. 어쩌면 피바람이 일 수도 있지. 반만년 동안 지켜내려오던 역사가 한 순간에 뒤바뀌게 생겼으니, 너는 격류에 맞서 당당히 정상에 올라야 한다."

"제가...."

"12장로의 제자 중 굳이 너를 하북에 데려오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

백청하는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태사부님의...유지를 이어받겠습니다."

"그래. 명심하거라. 수 대를 걸쳐 내려오던 곤륜의 현녀는 이제...."

보현진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죽었다."

* * *

푸욱.

피가 튀었다. 내 얼굴에 뜨거운 피가, 붉은 피가 터졌다.

"스승...님?"

"......흐."

혈영귀라수는 닿았다.

'어째서?'

혈영귀라수는 현녀의 검보다 느렸다. 나는 생사경에 닿았다고 생각했지만, 하늘 위에는 하늘이 또 있는 법.

같은 절정 고수라도 갓 일류에서 벗어난 자와 초절정을 눈앞에 둔 자가 큰 차이가 있듯, 나와 현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나의 목만 잘라 곤륜으로 데려가지않을까하는 망상을 하며, 나는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내가 반박자 느렸는데?'

하지만 내 예상을 깨고, 스승의 검은 내게 닿지 않았다.

스승의 검은 내 목을 스치며 옆으로 빗겨나갔고, 나의 손은 스승의 가슴에 손톱을 박아넣고 있었다.

"이게...무슨...."

"...별 거 아니다. 네 마음에 미혹이 없었을 뿐."

투두둑. 가슴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나를 죽이지 않으려고 했다면...분명 네가 죽었을 것이다."

스승은 왈칵 피를 쏟아내며 혈영귀라수의 손등을 손으로 두드렸다.

"장하구나. 너는 너 자신을 증명했단다."

"스승님!"

나는 손을 뒤로 빼려했다. 하지만 스승은 내 손목을 붙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살아있다면, 너는 아마 평생동안 걱정 속에서 살아갈테지. 이 몸에 하늘에서 내려올 '그 분'을 두려워하며 평생을...걱정하며 살 것이다."

"아닙니다, 스승님!"

"...흐흐. 괜찮다. 나는 진작에 죽었어야했을 몸이다. 단지...욕심 때문에 머물러있었을뿐."

툭.

스승은 뒤로 힘없이 넘어졌다.

"조금...어지럽구나."

나는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스승님!"

"...제자야. 울지마라. 남자는 태어나서 단 세 번 울어야한다. 그걸 나를 위해 쓰는 건...옳지 않아."

스승은 내 눈을 향해 소매를 뻗었다. 피가 묻은 손이었지만, 그녀는 엄지로 내 눈가를 닦으며 힘겹게 웃었다.

"멀리서 너를 지켜봐왔단다. 아주 힘든 삶을 살아왔지만...지금이 가장 행복해보이더구나. 그래. 사랑하는 여인과 아이를 낳고행복하게 사는 삶을...그런 걸 원했지."

"말하지 마십시오, 제발! 피가 흘러나오지 않습니까!"

"후후.... 그게, 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생을 너와 내가 낳은 아들딸과 함께 살며...영생을 누린다면...."

스승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제자야. 언젠가, 만약, 이 땅에서 내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스승님!"

"그 때는...나와...."

스승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자식을 낳고...농사를 지으며 살...."

툭.

"스승님? 스승님?"

스승의 손이 옆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스승님...."

그녀의 심장은, 아주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운명이 있다면, 바꿀 수 없는 걸까.

나는 이번 생에도 내 손으로 스승을 죽였다.

"흐."

그럴 리가.

"스승님. 어딜 제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떠나려하십니까?"

아직 스승은 죽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상처 속에 혈영귀라수를 뜯어 나의 피를 잔뜩 부어넣었다.

"불초 제자가 제 죄를 속죄하기 전까지, 스승님은 못 죽습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소예야."

"흐흐, 흐흐흐, 흐흐흐흐흐흐흐."

뒤에서 귀기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긴급조치를 마친 뒤, 기절한 현녀를 안아들었다.

"감히 나를 기둥에 묶고 평생동안 거미줄치게 만들었겠다...?"

"위험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후후, 오빠. 어차피 평생 내 명령을 들어야하는데 뭘."

촤르르. 혈소예의 열손가락에서 핏빛의 선이 흘러나와 현녀를 묶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이 선녀는 제 겁니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우리가 준비한 비책.

"물론 내가 오빠 거니까...."

혈선녀.

"어머. 현녀님도 이제 오빠 거네? 아하하!"

선녀를 타락시켜, 지상의 존재인 혈소예에게 묶어버린다. 혈소예는 현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얘기했지. 내가 언젠가 당신이랑...오빠랑 셋이서 침대에 뒹굴 거라고."

"......그런 말을 했어?"

"그럼. 이게 천기누설이지. 후후, 본인은 죽어서 편안해지려고 했지만...누구 마음대로."

혈소예는 입맛을 다시며 나를 올려다봤다.

"현녀 몸에 구천현녀가 빙의하지 못하게, 당장 가서 애 만들자."

지상의 존재로 변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역시, 임신이다.

* * *

저벅, 저벅.

"왔는가. 지상, 내 육신의 영이여."

현녀는 구름 위를 걸었다.

"영생을 원하던 나는 네가 되었다. 너는 나의 미련이며, 잔재이며, 인간인 구천현녀였지."

구름 위에는 도원이 하나 펼쳐져있었고, 그곳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인이 절벽 위에 서있었다.

"지상의 미련은 이제 다 끝났느냐?"

"...예."

"그래?"

저벅, 저벅. 현녀는 여인의 옆에 섰다.

"반평생을 함께할 남자를 찾았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그는 저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제가...많이 부족해서 그런 거지요."

푸른 바다처럼 깊은 눈동자를 한 여인은 자신과 쌍둥이처럼 모습이 닮아있었다.

"...아하하하하!"

여인은 배를 잡고 웃었다. 현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아둔한 것! 잘 듣거라."

여인은 현녀의 뒤로 돌아간 뒤.

"구천현녀는 그 어떤 전쟁에서도 지지 않는다. 칼을 든 싸움에서도, 여인네들끼리의 싸움에서도."

"어-"

툭.

"다시 내려가서 싸워라. 임신을 하든, 밤일로 이기려하든. 너의 육신은 여인 중 최고의 미녀, 나 구천현녀의 몸이니."

여인은, 현녀의 등을 발로 밀었다.

"어디서 항아의 딸에게 수치를 당하고도 하늘로 올라오려고 하느냐?"

구천현녀는 현녀를 절벽에서, 하늘에서 떨어뜨렸다.

[작품후기]

전투씬이 짧은 이유는요

침대전투씬을 쓰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것도 비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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