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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서로
남궁세가와 현천백가.
무림 내에서 그 규모나 세력으로 보면 비교조차 할 수 없으나, 남궁세가는 현천백가에 빚이 하나 있다.
기껏 시집을 보낸 여인이 사실 남궁세가의 식객으로 들였던 호위무사랑 정분이 났다?
심지어 그걸 수년 동안 지아비에게 숨겼다?
현천백가의 가주, 백수광은 두 세가의 명예를 위해 함구하기로했다.
이를 빌미로 여러가지 지원을 얻어낼 수도 있었으나, 남궁세가의 혈육인 어린 아이가 가출하여 죽은 것을 계기로 현천백가와 남궁세가의 관계는 사실상 단절되었다.
아무리 외간남자와 놀아난 여인의 핏줄이라고 한들 남궁의 피다.
그 아이를 계기로 두 세가는 알게 모르게 반목하게되었고, 결국 안휘에서 남들 모르게 서로 반목하고 싸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서로를 상대로 반목하던 와중에, 기적적으로 서로 모르고 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상대가 마교에 결탁했다는 것.
남궁산은 대공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던 무림맹의 배신자였고.
백수광은 '남궁살'이라는 이명으로 남궁을 죽이기 위한 마교의 안휘성 총책임자였다.
문제는 그게 둘 다 '대공자 주지'의 소속이었다는 것.
대공자는 둘이 서로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게 교묘히 연막을 펼쳐놓았다.
남궁과 백가 뿐만이 아니다.
안휘 이외에도 사천, 섬서, 하북, 하남 등 구파일방과 팔대세가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온갖 술수를 부려 첩자를 심어두었다.
대공자는 사람들을 부려 그들이 서로 마지막까지 눈치채지 못하게 조율하며 정파의 전력을 깎았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배반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사상누각의 흐름은 대공자의 패배로 끝났다.
서로서로 불안해하던 찰나 무림 전역에서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소란이 일어났고, 드디어 무림의 여러 세력들은 상대의 실체를 눈치채고 만 것이다.
-자네도 마교와…?
-실망일세! 어찌 그대가 마교와 결탁했단 말인가!
-그러는 자네야말로 마교의 배후성주라는 직책까지 받았으면서!! ...그런데 크흠, 우리가 마교와 관계가 있던가?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그래, 어찌 마교와 결탁한다는 음해를 할 수 있는가! 일촌남근을 따르라고 하다니!
첩자와 배신자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숨겼다. 이는 대공자의 용의주도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세. 자네는 어떤 명령을 받았나? 나는…무림맹 지부에 벽력탄을 터뜨리라는 말을 들었었네.
-나는 자네들을 십상련의 후예로 몰라고 하더군.
-...이런 미친. 이런 식으로 우리를 공멸시키려고 했단 말인가?
-......우리만 조용히 모른 척 넘어가고, 벽력탄은 전부 해체하도록 하세. 괜히 가지고 있다가는 맹이 아니라 관에서 붙잡아 고문을 할 것이야.
누구나 모두 무림 정파를 향해 정면으로 혼란을 일으킬 계획은 가지고 있었다.
단지 실행만하지 않았을 뿐이며, 대부분 눈치 빠른 이들은 서로 입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무림에 암약하는 마교의 끄나풀들.
"...이상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란다."
"과연…."
달칵, 달칵.
"거의 모든 세력에 마교의 그림자가 뻗쳐있던 겁니까?"
"그래. 지금은 많이 세가 기울었지만. 연아, 거기 물...은 내가 집어야지. 암."
독고자영은 독고연과 함께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독고자영은 독고연이 차린 식사에 집중하고 싶었으나, 독고연은 마교의 첩자들에 대해 더 관심이 많은 듯 했다.
"아버님. 그들에 대해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자신들이 지은 죄가 있으니 앞으로 잘 하겠지. 용서는 한 번 뿐일세."
무림맹은 이미 모든 이들의 행적을 주시하고 있었다.
제갈세가와 개방은 곳곳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대공자 주지의 물밑 행동을 쫓고 있었다.
대공자의 소실 이후, 무너진 명령체계는 금방 무림맹이 파악해내고 말았다.
독고자영은 덮기로 했다. 무림에 큰 혼란이 오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그는 일을 덮었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서 상호간에 밀고하는 경우는, 솔직히 이야기하여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찌하지…? 연아.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아버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독고연은 독고자영의 선택을 존중했다.
"저는 몹시 아팠지만, 그 아픔이 그분을 만나기 위한 시련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서는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달려가서 검을 휘두를 생각은 없습니다."
"연아…."
"복수는 칼같이 하라고 했지만, 과연 다짜고짜 죽이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명예를 꺾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죽이는 것이 아닐까합니다만."
"명예라."
독고자영은 독고연이 한 말을 계속 곱씹었다.
"모든 것을 폭로하고 나면 두 세가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남궁산이야 개인의 일탈이라며 방계에 가주 자리를 떠넘기면 되지만, 백수광은 가주 자리를 넘겨줄 수도 없지."
"한 번 잃은 명예는 다시 되찾을 수 없는 법입니다. 최소 10년...아니 20년은 지나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겠죠."
"그래. 나는 그걸 무당파의 사태를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명예를 잃은 무림인이 어떤 식으로 굴욕을 당하는지, 그는 무당파 전대 장문인이 된 현철 도사를 통해 깨달았다.
"무림에서의 죽음은 꼭 목이 달아나는 것만 죽는게 아니었더구나. 의혹을 받아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도 죽음이며, 관의 법도에 따라 철창에 갇히는 것 또한 죽음이더구나. 강호인으로서...무림인으로서 온전히 죽어버리는 셈이지."
독고자영은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
애써 말은 아꼈지만, 여인도 마찬가지. 색마는 참으로 많은 여인들을 죽였다. 독고연을 비롯해서.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알고 나서도 침묵했다. 무림맹은 마냥 착해서 그들의 배신모의를 모른척하는게 아니야. 명예롭게 마무리할 수 있게 도우려고 했지."
"하지만 이제 두 세가는 아니다?"
"그래. 특히 남궁세가는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독고자영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용봉지회가 끝나고 난 뒤, 남궁세가의 건에 대해서 정식으로 하남의 맹에서 상의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날이 된다면...그를 네 앞에서 사과하게 만들겠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버님. 하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그런 자들은 진정으로 사과하는게 아닐테니까."
구출 이후.
기억을 하나 둘 되찾기 시작한 독고연은 상당히 정중해지고 날카로워진 모습을 보였다. 때때로 신랄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 그나저나 천 공자와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느냐?"
"...네? 가, 갑자기 그분의 이야기는 왜 하셔요?"
하지만 누군가를 상대로 이야기를 할 때는 과거의 모습이 보이곤 했다.
"왜 하기는. 이번 일도 천 공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꼼짝없이 십팔음뇌절맥에 걸렸지 않았겠느냐?"
"...그건 그렇죠."
독고연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동물과 함께 산책 중이었어요.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눴죠. 그리고...알려드렸어요."
"잘했다. 그도 알아야지. 그 덕분에 나 또한 구명지은을 입었으니."
독고자영은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으로 눈을 돌렸다.
"...연아. 너는 네 어머니처럼 좋은 아내이자 어머니가 될 것이다."
이미 한창 식사를 하던 중이었지만, 독고연의 음식 솜씨는 무림맹 특급 숙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었다.
"네 어머니가 그러더구나. 여자는 부엌을 지배해야한다고. 밥이 맛없으면 남자가 밖으로 나돌아다닌다고 그랬지."
"부엌이라…."
독고연은 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겠어요, 아버님. 아버님의 말씀을 잘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된다."
이미 독고자영은 깨닫고 있었다.
시집 보낸 딸을 두고 왜 '출가외인'이라고 부르는지. 이미 많이 멀어진 사이였지만, 이전보다도 더 서먹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연아. 정말 이것만 먹으면 되는 것이냐?"
"네. 그럼요. 천 공자가 저를 치료해주는동안, 저는 하루에 한 번은 이걸 계속 약처럼 먹었답니다."
"음…."
독고자영은 넓은 그릇 위에 올려진 덩어리들을 숟가락으로 들어올렸다. 탱글탱글한 덩어리는 푹 삶아졌음에도 핏방울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이거…그…."
"네. 피랍니다."
피. 생물의 몸에 흐르는 붉은 액체.
그것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고깃덩어리에 가끔 딸려나오는 비계처럼 만들었을까.
아니, 애초에 피를 익히고 국으로 먹는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범인은 혈교주, 금우성이다.
"혈교에서 나온다던 그 음식이구나."
"네. 동쪽의 전통음식이라고 하더라구요."
독고자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혈교.
중원 무림의 시기와 질투를 이끌어 서로 불신이 팽배하게 만들던 마교와 달리, 혈교는 중원 무림이 가지고 있던 이점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혈맹통운!
보법이 뛰어난 무사들이 말이 걸어가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목제 기구를 움직이며 중원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이게 그 표행기사들이 자주 먹는다는 그거로구나."
그리고 혈교는 각 지역마다 주요 위치에 있는 객잔을 사들이며 표행기사들을 위한 '기사식당'을 곳곳에 만들었다.
오직 음식만 파는 객잔. 그곳에서 서로의 무위를 비교하거나 싸우는 일은 없다.
먹고나서 바로 연초 한 대 태우고 일을 하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곳에서 나오는 음식이 이런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국과 쌀밥.
단지 여러 종류의 국 중 독고연이 끓여온 국은 돼지고기 대신 다른 걸, 짐승의 피를 집어넣은 음식일 뿐이다.
"......."
독고자영은 억울했다. 혈교가 이렇게 일상생활에 침투하는 것을 두 눈 뜨고 보면서도 대처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림에서 금한다? 나라에서는 적극 장려하고 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억울한 것은….
"맛이 아주 좋구나."
맛있어서 더 화가 난다.
금우성이 중원에서 벗어나 저 멀리 해남 아래에 갔다가 뭘 잘못 먹고 머리가 이상하게 되었는지, 그는 혈겁을 철저히 피하며 무림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이러다 언젠가 무인들이 자신의 무공을 일반인들의 앞에서 기예처럼 뽐내는 날도 오지 않을까.
무림인이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신비한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기존의 은원 확실하고 복수심 넘치는 미래는 사라질 것이다.
국과 밥 한 그릇에 일희일비하는 무림인이라. 독고자영은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어...입맛에 맞지 않으신가요?"
"아니, 그건 아니다. 그냥...조금 독특한 재료로구나. 이건 무슨 동물의 피더냐?"
"......동물이요?"
독고연은 볼을 긁적였다.
"...호랑이?"
"호랑이이라고?"
"네. 엄-청 큰 호랑이의 피랍니다."
"이런 맛이었던가…? 예전에 먹었을 때는 안 이랬던 것 같-"
순간. 독고자영은 표정이 굳었다.
"아버님...호랑이 피를…?"
"...크흠. 영물의 내단을 섭취하면서 그만."
"영물이요?"
"아아, 그래. 예전에 젊은 시절, 태산에 갔을 때 덩치 큰 호랑이가 나타났었지."
독고자영은 자신의 젊은 시절에 관심을 가지는 독고연의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내가 그 때-"
"그래서 맛이 별로인가요?"
"아니다! 맛있단다. 매일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로구나!"
짝.
독고연은 손뼉을 치며 씩 웃었다.
"그래요? 매일매일이라…. 알겠어요. 삼시세끼 다 챙겨드릴게요."
"......."
독고자영은 침묵했다. 이걸 먹지 않을래야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 딸이 만들어주는 것도 있지만….
"천 공자가 그랬어요. 그냥 약으로 섭취하는 건 힘드니까, 이런 식으로 먹어야 한다고. 십팔음뇌절맥을 억제하고 독기를 몸에서 빼내려면 당분간 이렇게 계속 드셔야 해요. 후후, 예전에 저는 당과로 먹었었는데."
"......."
독고자영은 입안에 남은 탱글거리는 감촉이 참으로 복잡미묘했다.
* * *
"고맙다, 수마.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다."
[이러다 나중에는 내 등심도 잘라달라고 하겠어?]
"그건 아니지. 영물의 피를 약으로 쓰는 거랑 요리하려고 받은 거랑은 다르잖나."
[요리에 썼잖아!]
"약을 국에 타서 먹었을 뿐이다."
[으으, 굴욕이야. 내 피를 고작 선녀화를 막는데 쓰다니.]
독고자영은 선기가 깃든 술을 마셨다.
그렇다면 술을 해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독제독.
선녀의 기운이 몸에 들어온 또다른 기운과 싸워 중화가 되도록 할 뿐.
"요기가 깃든 선지국이죠. 후후."
"깜짝이야. 소예야, 너는 언제 나왔냐."
"오빠 경기 이제 얼마 안남았으니까 응원왔죠."
약 3시진 뒤.
나의 본선 2차전이 시작된다.
현천백가의 소가주, 백보준과의 2차전이.
[작품후기]
술 vs 해장국
독고자영은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