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30화 (53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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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서로

<북경, 현천객잔.>

"음…."

현천백가의 가주, 백수광은 달을 벗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장 노야, 한 병 더 주시게."

"알겠습니다, 가주님."

이곳은 현천백가 소속의 객잔.

현천백가는 오래전부터 중원의 곳곳에 객잔을 펼처놓았다.

객잔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며,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히 정보도 함께 많이 모이게 되어있다.

현천백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정보를 수집해왔다. 강호의 이야기들을 종합하여, 그들은 막대한 이문을 추구하며 세력을 유지하고 넓혀나갔다.

성공한 삶이다.

팔대세가 급은 아니더라도, 안휘 사람들에게 '남궁세가 말고 다른 유명한 세가는 어떤 곳이 있소?'라고 묻는다면 현천백가가 손에 꼽을 순위로 나오기도 했다.

현천백가를 이어받은 가주, 백수광은 분명 성공적으로 가문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인생을 '완성'했다고는 하지 못했다.

후계.

가문을 이을 적자.

그가,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님. 소자, 다녀왔습니다."

문이 열리자,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방으로 들어왔다. 청년은 얼굴이 붉어져있었고, 백수광 이상으로 술을 한껏 들이킨 듯 잔뜩 취해있었다.

"...또 마셨느냐?"

"예. 오늘은 육봉이 될 가능성이 높은...남궁 소저와 술을 마셨습니다! 하하."

남궁. 백수광은 이를 악물었다.

"남궁세가는 저희 외가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하. 따지고보면 현천백가는 남궁의 방계-"

"백가는 현천백가다. 미쳤느냐?"

백수광도 이미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백보준, 네가 드디어 정신을 놓은 것이야? 현천백가의 후계자가 남궁의 방계를 운운하다니!"

"왜요?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이 몸에는 아버님의 피 뿐만 아니라, 남궁의 피도 흐르고 있습니다."

"큭…!"

백수광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백보준은 부친의 분노를 보며 이죽거렸다.

"이러다 자식을 때리시겠습니다?"

"이놈이 진짜…!"

"주먹으로 다스리려고 하십니까? 정말요? 지금 다치면...얼굴에 멍이 든 채로 사람들 앞에 서야할텐데요."

무공으로 자식을 다스린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이런 건방진 모습을 보이는데 어찌 훈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제가 이번 용봉지회에서 구룡이 되지 못한다면, 현천백가는 그저 그런 가문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될텐데요?"

"큭…!"

"제가 사랑하던 여인을 멀리 떠나보내게 한 건 아버님입니다. 원치도 않는 곳에 온갖 혼담을 넣어, 저는 이곳 저곳 껄떡거리기나 하는 왈패에 전락했지요. 하하, 좋으시겠습니다."

"닥쳐라!"

백수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모두 현천백가를 위한 일이다! 네가 우리 가문을 바르게 이어야해! 가문과 가문이 하나로 엮여서 살아남으려면 팔대세가와 결합해야함을 왜 모르느냐!"

"어디요. 팔대세가 전부 그 천가놈에게 이끌리게 생겼는데요?"

천가놈.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독고. 모용. 제갈. 당가. 일단 네 세가는 확실히 천가놈과 연이 있지요. 아까전에 제가 남궁세가와 한 잔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와는 반대쪽 대진표에 있는 남궁패, 그 자와도 마셨습니다. 이야기가 잘 통하더군요. 그가 그럽디다. 여동생이 천무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고. 그럼 남궁도 걸렸군요."

"큭…."

팔대 세가 중 다른 세가들보다 훨씬 더 역사가 깊은 '오대세가'의 여인들이 모두 천무명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몇몇은 천무명과 거의 사실혼에 가까울 정도로, 강호 사람들은 천무명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정정.

천무명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천무명을 스쳐지나가며 몇번 얼굴을 익혔거나, 천무명의 일화에 감동을 받은 이들이 호감을 가지고 있다.

"천하에 있는 미인이란 미인은 전부 천무명에게 넘어가는군요. 하하하! 이러다가 애딸린 유부녀도 천무명이 데려가겠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과 약혼을 했던 여자도요."

"억측이다."

"아뇨. 저는 확신합니다. 유력 세가의 모든 여인들은 천무명에게 빠져있고, 저는 지역 내 평범한 세가나 조금 이름 날린 여고수와 혼약을 맺는게 맞습니다. 눈을 낮춰야지요."

"안 된다! 너는 무조건 팔대세가의 여인과 혼인을 맺어야 해!"

백수광은 백보준의 혼처를 무조건 팔대세가가 되기를 고집했다.

"자산, 학력, 나이, 무공!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가문이다! 혈연이야! 현천백가가 안휘에서 그렇게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었더냐!"

"남궁세가와 혈연을 맺었기 때문아닙니까."

"틀렸다! 네 할아버지, 조부님, 그리고 모든 현천백가의 조상님들이 안휘의 유력가와 혈연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설령 방계의 여식이라고 한들! 이 핏줄의 남자들은 모두 여인들의 흠모를 받았어!"

"...큭. 그거야 옛날 이야기지요."

백보준은 쓰게 웃으며 한탄했다.

"이미 중원 무림의 여인들은 천무명에게 연심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천무명도 좋든 싫든 여자가 꼬이게 되어있습니다. 아미파를 정면으로 거스른 이후...천가놈은 이미 뭇 많은 여인들의 이상형이 되어버리고 말았죠."

"......."

"그 자를 용봉지회에서 이길 수만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팽가의 후계자마저 그렇게 패배했는데."

"길고 짧은 건 직접 대봐야 아는 법이다!"

백수광은 백보준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가 현천백가를 이어야해. 네가…! 남궁과 손을 잡는 건 아니된다...!"

"하."

백보준은 이를 갈며, 부친의 손을 옆으로 밀어냈다.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이미 과거의 그 영광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저는 이미 강호 내에서 혼기를 놓치고 구질구질하게 다니는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현천백가가 살아남는 길은...남궁으로 들어가는 것 뿐입니다."

"남궁은 안 된다!"

악을 지르듯 사자후를 터뜨린 백수광의 목소리에는 남궁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서려있었다.

"남궁만은 절대로 안 돼!!"

"어째서입니까? 어머님과 그렇게 행복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왜 남궁세가와는 자꾸 척을 지려고 하십니까?"

"......."

백수광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님.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어머님을, 남궁의 여인을 사랑했다고 하시는 분께서 왜 남궁과 자꾸 척을 지려고 하시는 겁니까? 안휘제일세가의 이름이 그렇게 탐이나십니까? 아들이 서로 연심을 품었던 여자를 죽였어야 할 만큼?"

"그건 내가 한게 아니라니까!!"

"그렇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어느분께서 혼수가 어떻느니, 집안이 어떻느니, 무공의 수위가 어떻느니 따지다가 모멸감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 그렇게 되어버렸지요. 하하…."

백보준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왜 현실을 보지 못하시는 겁니까. 왜 자꾸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 남궁을 꺾으려고하는게 아니라 남궁과 힘을 합치면 되는 거 아닙니까?"

"......."

"도대체 남궁세가에서 뭘했길래, 아버님께서는 그렇게 남궁세가를 증오하시는 겁니까?"

백수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남궁세가는 망할 것이다."

저주와도 같은 한탄만 할 뿐이었다.

* * *

"안휘배후성주 남궁살. 반드시 남궁세가를 멸문시키겠다고 마교에 목숨을 바치고자 했던 자. 그게 바로 현천백가의 가주지."

나는 소천마, 이시아의 거처에 몰래 잠입했다.

"남궁에 대한 증오야 뭐…."

"나 때문이지."

엄밀히 따지면 나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 마디로 치정관계.

남궁세가의 방계,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언니는 마교의 검마를 사랑했으나, 가문의 명령에 의해 현천백가의 가주와 결혼했다.

동생은 언니를 시기했다. 혼약을 맺은 남자를, 그리고 언니를 시기하여 언니의 남자를 빼앗고자 했다.

남자는 술과 색에 취해 둘 다 취하게 되었다. 언니는 자신의 호위무사와 살을 섞은 걸 숨겼다.

"개족보 특징은 남궁세가의 것일까, 아니면 현천백가의 것일까."

"꼬이긴 꼬였네. 거기다가 남궁세가의 가주, 현천백가의 가주 둘 다 마교의 첩자라는 거 아냐."

"그렇지."

남궁산과 백수광.

한 명은 남궁세가를 팔대세가의 으뜸으로 만들기 위해, 한 명은 현천백가를 남궁세가를 제치고 안휘 제일의 명문가로 만들기 위해.

둘 다 각자 가문을 위해 목숨을 건 셈이다.

그리고 먼저 움직인 쪽은 남궁의 가주, 남궁산.

"설마했는데 독고자영을 암살하려고 들 줄이야."

"어떻게 할 거야? 연이 말로는 이미 마셨다며?"

"그래. 선도를 갈아넣은 술을 마셨다고 하더군. 그것도 남궁산이 직접 가져온 거로."

남궁산은 선녀화의 독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리고 독고연은 그걸 보자마자 우리에게 알렸다.

...류 모씨를 상대로 알몸산책을 하던 때라 조금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는 했지만.

"본인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 그걸 감수하고 술을 섞어오다니. 대단한 남자야, 남궁산."

"칭찬할게 아니잖아. 장인어른이 장모님이 되는 건 싫다며?"

"그렇지. 그런데...그건 술을 마셨을 때의 이야기잖아. 흐흐흐."

만취할 정도로 마셨어도, 독고자영은 멀쩡할 것이다.

"독에 암살당할 수 있는데, 설마 미쳤다고 그걸 '그냥' 마셨겠어?"

그것도 딸이 죽을 병, 십팔음뇌절맥에 걸렸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암살이 이루어지려고 했는데.

"지금쯤 독고자영, 머리 깨질걸."

일을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아주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인가.

"독은 이미 문제가 아니야. 진짜 문제는 흉수에 대한 처리지."

부맹주가 맹주를 암살하려고 한 희대의 사태에 대해, 과연 그는 어떤 대처를 보일 것인가?

* * *

"죽일까."

독고자영은 서슬퍼런 눈으로 이를 갈았다. 그의 옆에는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믿었던 두 남자, 군사 제갈길과 개방 방주가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떻게고 자시고 간에...이게 사실이라면 맹주도 지금 위험한 거 아닙니까?"

제갈길은 굳은 얼굴로 맹주를 가리켰다.

"마셨다면서요."

"그래. 술을 마셨지. 하지만 그 전에 약도 먹었네."

독고자영은 책상 아래에 놓아둔 상자를 하나 꺼내들었다.

"십팔음뇌절맥을 해독하는 약. ...썩을 새끼들. 감히 내 딸을 죽이려고 했던 독으로 나를 죽이려고 들어?"

독고자영은 진심으로 분개했다.

"방주. 아직까지 그들의 소식은 없소?"

"없소이다. 신강과 청해에 있는 거지들도 아예 모르고 있소. 대공자 주지, 사실상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오."

"그렇다면 대공자가 남긴 계획을 그 새끼가 직접 저질렀다는 말인데…."

이미 독고자영은 상황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화가 나는 건 다른게 아니오."

부맹주 남궁산이 대공자로부터 극독을 넘겨받은 것.

"같은 독을 사용했으면 필히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겠지.

그 극독이 독고연이 앓았던 것과 똑같은 독이라는 것.

"내가 독에 중독될 뻔 한 건 중요치 않소."

그리고….

"연이를 십 수년 넘게 피흘리고 고통스럽게 했던 개새끼가...그 놈일지도 모른다는 거 아니오."

딸을 병들게하고 아프게 한 장본인을 십 수년 넘게 무림맹에서 지켜보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

"방주. 정말 맞소?"

"맹주…."

"남궁산은 젊은 시절부터 나와 강호를 누비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였소. 의형제라고도 할 수 있었소. 그런 그가...정말로 그런 참담한 짓을 저질렀던 것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정황은 모두 그렇소이다."

방주는 자신의 손에 들린 투서를 가리켰다.

"군사와 교차 검증을 끝냈소. 남궁산은 마교와 결탁했고, 맹주를 죽이려고했소."

"왜? 이유가 도대체 뭐요? 마교에 댄 줄은 이미 끊어졌고, 완전히 망해버렸는데? 차라리 혈교에 결탁했다고 하면 이해라도 하겠소!"

"...맹주."

제갈길은 안쓰러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항상 높은 곳에 있는 새는 아래에서 나는 새의 기분을 모르는 법이지요."

"믿고 싶지 않소. 어째서…."

"맹주 자리에 대한 욕심이지요. 남궁은 대대로 자존심이 강한 자들이니."

"......."

독고자영은 한탄하며 투서를 건네받았다. 투서의 내용에는 남궁산이 저지른 악행과 그 증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예의주시하고 지켜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온갖 증거들.

'안휘'에서 직접 조사한 내용이기에, 그리고 투서를 쓴 당사자가 당당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기에 독고자영은 무시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자가 왜."

"가주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현천백가의 가주, 백수광이 가진 남궁에 대한 증오를."

"...끌끌. 뻐꾸기 당하면 누구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

현천백가의 가주, 백수광.

무림맹의 부맹주이자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산을 '마교와의 결탁' 혐의로 밀고하였다.

"그런데...."

셋을 가장 골치아프게 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이 새끼들...."

독고자영은 새로운 투서를 꺼냈다. 마찬가지로 대량의 증거가 책자로 엮여있었다.

-현천백가의 백수광이 마교와 결탁했소.

남궁산이 가져온 자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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