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24화 (52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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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 때는 무림의 용봉이었다

"얘기는 들었어. 천 공자랑 같은 조라며?"

"너는 나를 놀리는 것이냐?"

남궁패는 갑작스레 객잔 뒤 훈련장으로 찾아온 남궁유린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천무명, 그 자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길고 짧은 건 직접 대어봐야 아는 법."

부웅.

남궁패의 검이 허수아비를 갈랐다. 고작 한 번 검을 내리그었을 뿐인데, 허수아비는 마치 번개가 지나간 것 마냥 수 갈래로 쪼개졌다.

"남궁의 검은 지지 않는다. 창궁무애검법의 앞에 적수는 없다."

"당연하지. 근데 천 공자 앞에서 그런 얘기는 하지마. 남궁의 검에 먹칠을 할 수 있으니."

깡!

남궁패는 검을 내던졌다. 그리고 단숨에 남궁유린에게 다가와 멱살을 쥘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너는 누구의 편이더냐? 남궁이냐, 천가냐?"

"......."

"너는 어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지난 용봉지회에서도, 이봉결정전에서도 추한 모습을 보이며 탈락했던 너다. 나였다면 분수를 알고 출전하지 않았을 것이야!"

"닥쳐!"

먼저 화를 내게 만든 건 남궁유린이었으나, 남궁유린은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버럭 화를 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육봉 중에서 가장 으뜸인 봉은 바로 나, 남궁유린이 될 거라고!"

"하! 호랑이가 사라지니 여우가 왕 노릇하려는 게냐? 그런데 어쩌지? 너는 그저 한낱 닭에 불과하다. 날고 싶으면서 하늘을 날 수 없는, 그냥 좋은 곳에서 태어나 고생 한 번 한 적 없는 닭에 불과해!"

"뭣들 하는 것이냐!!"

사자후가 울려퍼졌다. 두 남매는 화들짝 놀라며 서로 거리를 벌렸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용봉지회에 서로 제각기 출전한 만큼, 서로를 응원하지는 않더라도 반목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니더냐!"

"......."

두 남매는 불만어린 눈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서로 반목하고 시기하는 두 남매의 모습에 남궁산은 한숨이 푹푹 나왔다.

어쩌다 두 남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건 둘의 무공 실력이 비슷해지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압도적인 성장.

남궁유린은 엄청난 성장을 보였고, 남궁패는 수 년간 무공의 발전이 정체되고 있었다.

남궁유린은 남궁유린대로 남궁패를 무시하고, 남궁패는 남궁유린에게 따라잡혔다는 것에 시기하기를 벌써 1년.

그 갈등은 용봉지회까지 이어지고 있다.

"...패야. 대진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고 왔다. 네 결승 상대는 아마...천무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흥, 그전에 고꾸라질...흠…."

"괜찮습니다. 제가 이깁니다."

남궁패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차마 남궁산을 직접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래. ...그전에 놈이 고꾸라진다면 좋을텐데…."

남궁산의 눈빛은 이미 남궁패의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그는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유린아. 너는…."

"굳이 확인할 필요 없어요. 제 구역에서는...그 여자죠?"

"그래. 연희봉 모용란이 대진표 반대쪽에 있더구나."

"...흥."

모용란!

"그럼 됐어요. 제가 이겨요. 아버지는...제 별호를 생각해주세요. 나중에 모용세가를 마주했을 때, 당당히 고개를 드실 수 있을 거예요."

"호들갑은…."

강한 상대이기는 하나, 남궁유린은 자신의 승리를 점쳤다. 남궁산도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래. ...다만, 8강전을 조심하거라."

"8강전?"

"그래. 상대는...압도적인 힘을 보인 권사."

남궁산은 긴장된 목소리로 주의를 줬다.

"연붕이다."

"......네?"

남궁유린은 헛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연붕이에요?"

* * *

"육봉이 될 수 있는 자로 급부상하고 있네요, 연붕 소저."

"지금은 아니다."

"지금 연붕으로 계신대요?"

"그거야 너희가 이 모습으로 있어달라고 하니까."

나는 나를 가운데 두고 손장난을 치는 사공희와 팽유월의 인형이 되었다.

그들은 내 머리카락을 땋아 양갈래로 만들고, 세가닥으로 땋고, 풀어헤치기를 반복했다.

"연붕의 머리...비단같아요."

"미염신공 덕분이지."

"나중에 수염도 이렇게 자랄까요?"

"글쎄다. 길러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기르고는 싶다. 하지만 예전에 수염을 기른 중년의 모습을 취했다가 이시아에게 혼쭐이 난 이후로 다시는 안 한다.

나름 미중년을 생각했지만, 이시아는 내 얼굴을 가리는게 아깝다고 하더라. 어떤 심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이해가 간다.

"상공, 다음 번에는 연붕으로 이렇게 출전하시는 건 어때요?"

"양갈래 머리로 출전하라고? 양심이 있어야지. 이건 주책이다."

"그럼 이건요?"

"한쪽으로 말총을? 으으, 내가 소녀냐? 응?"

두 여인은 나를 가지고 노는 것에 완전히 재미가 들렸다. 월아가 지난 번에 내 머리를 땋아내렸던 이래, 두 여인은 내 머리를 가지고 장난치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상공. 상공의 조에 모용 소저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윽."

나는 머리칼이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살짝 잡았을 뿐인데 두피가 찌릿하게 울렸다.

"어떻게 하실 거죠?"

"뭘 어떻게 하겠느냐. 올라오면 최선을 다해 상대하는 거고. 연붕은 용봉지회에서 당당히 이름을 날리고 사라진 전설적인 존재가 되는 거지."

"혼자서 일룡일봉의 자리를 전부 차지하려고 하시다니. 욕심쟁이군요."

"연붕은 천무명보다 더 약하다. 나름 조절은 할 거야."

연붕의 출전 목적은 용봉지회에서 우승하는게 아니다.

용봉지회에서 이 두 여인을 상대로 온갖 음해를 펼친 이들에게 정의의 징벌을 내리는 것이다.

'사공희는 이번에 고생했지만, 팽유월은 아주 예전부터 고생했지.'

여인의 적은 여인. 혈교주의 말을 빌어, 나는 그들의 적이 되고자 여장을 하고 출전했다.

"천무명과 연붕이 번갈아 대회에 나갈 수 있다는게 천만다행이지. 암."

이번 구룡쟁패와 육봉쟁패는 하루 하루 성이 번갈아가며 이루어지는 대회다.

지난 대회에서 두 대회가 함께 이루어지니, 모든 시선이 육봉들에게로만 간다는 불만을 수용하여 변경된 운영 방식이다.

덕분에 하루는 관객들이 여인들로 가득차고, 하루는 관객들이 남자들로 가득차는 기이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관객 수익을 제대로 빨아먹으려고 작정을 한 거지. 용봉지회를 양쪽으로 볼 사람들은 어차피 양일에 다 돈을 낸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아니야.”

“남자들은 미인들을 보고 싶고, 여인들은 미남들을 보고싶어하죠.”

“그래. 지난 이봉결정전이 아마 무림맹의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 모양이더군.”

아름다운 여인들이 비무하는 객석에 여자 관객의 수는 전체 중 3할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만석을 이루었고, 무림맹은 성별을 격일로 대회를 열며 현재 객석을 매일같이 만석으로 가득 채웠다.

가히 돈을 쓸어담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덕분에 나도 하루는 천무명으로, 하루는 연붕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후후, 상공의 활약을 지켜보지 못하는 건 아쉽...으읏.”

“견희야?”

사공희는 배를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유월아, 이건…?”

“상공,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큰 문제는 아니니까. 뱃속에서 아이가 상공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으읏…. 괜찮아요. 아프지, 않으니까.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사공희는 배를 붙잡고 활짝 웃었다. 나는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싶었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뭔가 약이라도 가져올까? 아니면 혈이라도 좀 눌러주랴? 약선에게 받아온 약이 몇 개 있다. 그거라도 주랴?”

“후우, 아니에요. 예전에 책에서 본건데, 괜히 약을 음용했다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줬다고 하더라구요. 약은 최대한 안 하는 거로 했으면 해요. 약선 어르신의 마음은...죄송하지만 2,3년 뒤로 미루는 거로.”

“너...설마 젖 떼어낼 때 까지….”

사공희는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무림인이잖아요. 괜찮아요. 상공만 보면 아픈 건 싹 달아나니까. 후후. 그래도 상공이 이렇게 걱정해주시니 임신한 보람이 있네요. 상공, 지금 제일 약해보여요.”

“그거야 걱정이 되니까….”

나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눈치가 보였다. 팽유월은 그저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평생의 죄다. 나는 사공희를 내 품에 끌어안아 토닥이며, 눈으로는 몇 번이고 팽유월에게 사과했다.

‘이렇게 힘들어 할 줄은 몰랐어.’

아이를 낳기 직전의 여인은, 정말이지 약했다.

‘앞으로도 계속 임신을 하게 하는게 맞는 건가?’

배 안에 새로운 생명이 들어있는 것도 기분이 이상할텐데, 아주 약간의 상황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했다.

이렇다면-

“상공, 혹시 이상한 생각 하는 건 아니죠?”

“맞는 것 같은데. 대신 아파하는 방법을 연구한다거나…아니면 아프게 할 바에는 임신을 안 시키려고 한다거나? 그건 주책이에요.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지, 저희를 힘들게 하지 않아요.”

“큭….”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상공은 다른 부인들이 상공 자식의 어머니가 될 기회를 빼앗을 건 가요?”

“다들 왜 육봉쟁패에서 우승하려고 하는데요.”

“...내 생각이 짧았다. 미안하구나.”

일단 무조건 사과.

“너희가 이렇게까지 아파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했던 말인데…. 그게 너희에게 상처를 준 것 같구나.”

“아니에요. 으으…. 괜히 상공을 걱정하게 한 것 같아서 제가 더 죄송스러운데요….”

“그러면 그것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상공, 저희 가슴 좀 주물러주세요.”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팽도황은 내게 아이를 임신한 여인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뼈에 사무치는 조언을 했다.

-임신했을 때 잘해야지. 안 그러면 그거 평생간다? 아이를 가지게 했으면 최소 1년은 나 죽었다, 하고 아내를 위해 살아야 해. 안 그러면 평생동안 바가지 긁힌다니까?

혈교주도 알려주지 않은 가르침이었다.

다행히 한 겨울에 복숭아가 먹고싶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둘은 주로 아이에게 영향이 가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행위를 원했다.

이성을 지키고 적절히 성감을 해소할 수 있게, 나는 둘의 입과 가슴을 탐하며 몸에 나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아…. 태희랑 이월이가 나오면…. 기념으로 저희 셋이서 한 번 더…?"

"그러다 또 임신하면 어쩌려고?"

"그럼...대희랑 삼월이가 나오는 거죠."

"......."

훗날, 셋이서 하룻밤을 함께 하기를 기약하며.

나는 아침이 밝을 때까지 두 여인이 바라는 대로 다 들어줬다.

"그...너희는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자지 주세요."

줬다.

* * *

와아아아아!!

하늘에 태양이 떠오르고, 수많은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조청홍! 조청홍! 조청홍!

장득배! 장득배! 장득배!

우성금! 우성금! 우성금!

승자의 이름을 관중들이 연호한다.

예선이 아닌 본선, 무사와 무사가 1:1로 진검승부를 펼치는 이 승부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유명인'들의 등장을.

이름없는 이들이 강자를 꺾고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도 즐겁지만, 역시 최고는 이름난 강자가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이는게 최고 아니겠는가!

"일각 뒤, 본선 9! 제 1경기를 시작하겠소!!"

왔다. 모두 숨을 죽여 비무장에 오를 이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저벅, 저벅.

먼저 비무대 위로 오른 남자는 큰 체구에 훤칠한 구릿빛 피부의 청년이었다. 그의 등에는 큼지막한 참마도가 걸려있었다.

"하북팽가의, 팽태양ㅡㅡ!!"

와아아아아-----!!!

하북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하북팽가를 응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이미 팽태양은 경계대상 1호로 급부상했다. 그가 펼치는 무공은 다름아닌 팽가의 비전무공, 오호단문도.

"팽태양! 팽태양! 팽태양!"

팽태양은 참마도를 뽑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가 비무대 위로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저벅, 저벅.

반대편.

한 자루의 단촐한 검을 쥔 청년 무사가 비무대 위로 올랐다. 모두가 그의 등장에 숨을 죽였다.

"이름은?"

"천무명."

팽태양이 물었다. 그는, 천무명은 묵묵히 검을 뽑아 기수식을 취했다.

"무공은?"

"희아연월검."

처음듣는 검술이다. 하지만 용봉지회에 나온 모든 검사들이 천무명의 검세를 보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목표는?"

"하나."

천무명은 검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천하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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