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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사공희가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 사람들은 바로 의혹을 제기할 것이다.
-아버지가 누구야!!
도대체 누가 귀엽고 사랑스럽고 가슴크고 예쁘고 밤일도 잘하는 사공희를 임신시켰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곤란해진다.
사공희의 명예가 바닥을 치는 건 아니지만, 남들의 앞에 당당히 설 수 없게된다.
왜냐면, 우리는 아직 사공희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공식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어떻게' 밝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견이 있다.
천무명으로서의 나인가, 아니면 비천색마로서의 나인가?
천무명으로서 전면에 나서는 건 이미 계획이 마련되어있다.
나는 '천무명'으로서 용봉지회, 구룡쟁패에 참전할 것이다. 이미 예전부터 벼르고 있었고, 하북에서도 승자 예측을 점칠 때 다들 수군거리고 있을 것이다.
폭룡 남궁패!
연황(戀凰) 천무명!
천무명은 아직 구룡쟁패에서 별호를 얻지 못했지만, 여러 봉들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봉황의 짝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독고연을 구한 남자.
제갈선을 구한 남자.
유설라와 사랑의 도피를 한 남자.
아는 사람만 아는, 모용란과도 인연이 있는 자.
거기에 중최미봉, 흑백이화와도 관계가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리고 사공희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도 알려지면 어떨까!
-그래, 다 가져라 개새끼야!
'좋지.'
나는 다 가진 개새끼가 될 것이다. 강호의 모든 미인들을 천무명이라는 이름으로 취할 것이고, 구룡쟁패에서 우승한 자로서 나는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다만.
'사공희를 욕하는 놈들을 징벌할 수 없어.'
사공희를 상대로 감히 음해와 중상모략을 펼친 이들을 제압할 수 없다.
감히 사공희가 무당파의 제자랑 정분이 났니, 사실은 전대 장문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니, 색마에게 범해지고 충격을 받아 폐관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임신에 대비한 거라니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 용봉지회에서 사공희는 직접 자신을 향해 음해하는 자들을 제압했다.
그녀 덕분에 제법 많은 이들의 처녀를 취해 내공을 쌓았다. 이번에는 똑같은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천무명으로서 난봉꾼의 모습을 그린다?
'아니야.'
천무명은 가만히 있어도 여자가 꼬이는 남자다. 그렇게 되어있다.
'나랑 놀려면 최소 육봉 급은 되어야지.'
하늘에 날개를 펼친 거대한 대붕이 지상에 붙어사는 닭들과 어찌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했다.
사공희가 농담으로 제안한 것을 조금 비틀며, 내가 감히 사공희를 욕한 여자들을 직접 힘으로 다스릴 방법이 생각나고 말았다.
아붕은 죽었다.
무붕은 등선했다.
의붕은 천무명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 한 붕 남았다.
"이것이, 내 최후의 역체변용술이 될 지어니."
우둑, 우두둑.
"원판이 좋아서 굳이 안 건드려도 될 것 같은데…."
"화장은 어떻게 할까요? 손톱에도 색을 칠하는 건 어때요?"
"오빠, 입술 벌려. 내가 찐하게 색깔 내줄테니까."
나는 세 여인의 인형이 되었다.
나에게 남은 하나의 또다른 모습.
연붕.
나는 천무명으로서 출전하는 동시에, 연붕이라는 '여인'으로서 용봉지회에 나갈 것이다.
* * *
"가가, 언니라고 한 번 불러봐도 돼요?"
"......."
깜짝 놀래키려고 연붕으로 모습을 바꿨지만 소용이 없었다.
팽유월이 이전에 이야기를 한대로 다들 내 눈빛만 보고도 나를 알아챘지만, 역시 나를 바라보는 저 눈빛은 차마 견딜 수 없었다.
"이야, 연붕 소저! 아름답구려!"
"......."
팽도황은 나를 보자마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아름다워! 천하제일미! 구룡의 으뜸이 되려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육봉의 으뜸이 되려고 하는 건가!"
"시끄럽소. 나는-"
"가가."
독고연이 바로 내 턱을 아래에서 꾹 눌렀다.
"말투요, 말투."
"싫다. 절대 그런 말 안 할 거다. 내가 왜 벌써부터 여자답게 호호호 하면서 말을 해야한단 말이냐?"
"아이 참, 그래야 더 어울리잖아요!"
"싫다!"
얼마나 다들 잘 속아넘어가는지 확인할 겸,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지 않으려고 연붕으로 왔을 뿐, 나는 바로 역체변용술을 풀어버렸다.
-이게...가가라고요? 어, 어떻게 이런 예쁜 여인이...!
같은 일은 없었다.
"...이 모습에서 그대로 나가도 사람들 속을 것 같은데?"
"화경 이상은 속이지 못해도, 그 이하 사람들은 다들 속겠죠. 미소년과 미소녀는 한끗차이니까요."
"쳇."
아무리 내가 여장을 하고 나가기로 했다고 서니 다들 너무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아아, 한 세가의 가주다운 위엄은 어디로갔단 말인가? 나는 팽유월의 품에 안겨 울분을 토해냈다.
"유월아, 너는 내 마음을 잘 알지?"
"그럼요. 남들의 이목을 태극화가 아니라 상공에게 모으려는 거, 잘 알죠."
팽유월은 나를 토닥였다. 뱃속의 이월이도 나를 향해 위로하듯 발을 굴렀다.
"어머나…."
"......!"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나는 절로 소름이 돋았다. 수마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오는 사공희는 나를 향해 조용히 웃기만 했다.
"상공."
"상공."
앞뒤에서 동시에 들려온 칭호에 나는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두 여인의 손을 붙잡았다.
"이, 일단 방 안으로 쉬러가자꾸나. 찬바람을 맞으면 좋지 않아."
"와. 애없는 우리는 서러워서 살겠나."
"소예 언니, 우리 같이 힘내요!"
"나 네 언니 아니야."
"......!!"
독고연은 굳어버렸다. 모두가 독고연과 혈소예를 번갈아보며 표정이 굳었다.
"나, 오빠보다 훨씬 연하인 걸."
"......."
나와 독고연은 한 살 차이다. 그리고 혈소예는 그보다 더 차이가 많이 난다.
본인 왈, 자신의 나이가 성인이 되고 난 뒤에 나를 만나고자 했다더라. 성인이 되기 전에 만나면 천기가 흐트러지고 천하가 요동치는 사태가 발생한다나 뭐라나.
"이, 이런…!"
"뭐, 그래도 같은 선녀니까 힘내보도록 하죠. 앞으로도 더 자랄 수 있을테니까."
"선녀 동맹이 점점 늘어나네요."
"그러게."
독고연, 제갈선, 혈소예, 사공희.
딱히 팔대세가나 구파일방으로 엮인 건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선기를 머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왠지 비슷한 걸.'
혈소예. 즉 혈교. 미래에도 혈교는 무림맹에 잠시 붙어있었다. 무슨 말이냐하면, 무림맹에 첩자로 혈교의 무리가 들어있었다는 말.
즉, 아직도 혈영대주와 같은 혈교의 무리가 무림맹에 암약하고 있다.
그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아직 모른다.
해남혈맹교의 사람들은 순수하게 월영신교에 희생되었던 자들이 모였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 특히 중원에 세력을 갖추고 혈교에 몸을 담근 이들은 사정이 다르다.
학살.
혈겁.
피난리.
그들은 혈교에 편승하여 살겁을 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혈교가 이제 '혈맹교'와 같은 식으로 탈바꿈한다면 어떻게 될까?
혈교였던 것을 숨기고 정파인으로서 다시 살아가거나.
아니면….
"응? 오빠, 왜 그래?"
"소예야. 너 지금 어느정도까지 힘을 쓸 수 있지?"
"초절정 넘어서 화경 초입 정도…? 무리해서 잠력을 끌어올리면 현경은 바로 할 수 있지만, 그건 난자손실 일어나서 싫어."
"그런가…."
소예신공을 해지하지 않은 상태의 혈소예. 그녀는 졸지에 다른 유력 우승후보들과 비슷한 실력이 되어버렸다.
물론 배란을 각오하고 소예신공을 해제하면 바로 원래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녀는 그러면 생리한다고 몹시 싫어했다.
"선녀맹주님, 그거 알아요? 이번 육봉쟁패에서 우승하는 사람은 말이에요…."
소곤소곤.
혈소예는 독고연에게 우승 포상을 밝혔다. 독고연은 바로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양옆의 여인들을 흘겼다.
"...배란부터 생리가 안 올 때까지…?"
"물론, 우승은 저랍니다?"
"......절대 안 져."
혈소예처럼, 정파의 그늘에 숨어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거나.
* * *
그 시각.
하북 북경에 자리잡은 무림맹 용봉지회 개최 위원회의 구석 창고에는 두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쪽은 어찌되었소?"
"실패했소. 아무리 시도를 해도 그분과 연락이 닿지 않소. 아무래도 내 생각으로는...소문대로 마교는 끝장난 것 같소."
마교가 끝장나다. 아직 마교는 건재함에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 뿐.
"대공자께서 실종되었다는 것이 사실인 듯 하오."
"...젠장. 애매하게 살아있으면 더 곤란한데."
두 남자는 마교와 손을 잡은 이들이다.
천마가 대륙을 호령하기로 한 날, 그들은 정파 무림의 중역을 차지하면서 중요한 순간 마교를-대공자를 위해 배신하려고 마음먹은 이들이다.
"이렇게 된 이상 소공녀를 따라야 하는 건가?"
"소용없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소공녀는 무식하게 정면에서 치고박는 걸 선호한다더군. ...오히려 정파들은 반길 것이오. 마인들이 정정당당히 비무를 걸어온다면, 그걸 꺾어서 명예를 드높일테니."
"젠장. 대공자는 어쩌다가 소공녀에게 패배를 해서. 나이가 두 배는 더 먹은 양반이...끙."
두 남자는 동시에 한탄했다. 이전부터 자주 모였지만, 모일 때마다 시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의 일은 어떻게 되었소?"
"실패했소이다. 맹주가 복숭아는 냄새만 맡아도 질색이오. 언제는 복숭아주를 들고 갔더니 허허 웃으면서 자기가 준비한 탁주를 꺼내더군. ...젠장."
"아, 그 날이 혹시…."
"딸이 복숭아 먹고 그렇게 된 이후, 복숭아는 절대 입에 대지 않소. 아주 곤죽을 내서 입에 밀어쳐넣지 않는 이상, 먹이는 건 실패한다고 봐야하오."
맹주에 대한 '암살'도 쉽지 않았다. 독고자영은 경계심이 상당했다. 정파제일의 존재를 상대로 감히 '독이 든 과일'을 먹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젠장. 기껏 구한 벽력탄은 쓰지도 못하게 되었고, 대공자는 실종되고…. 그럼 우리는 계속 용꼬리로 살아야 하는 건가?"
"아직 그쪽이 남아있지 않소?"
"그쪽은 아예 노선을 틀어버렸지 않소!"
그쪽.
"혈맹교라니, 이 무슨 괴상망측한 말인가! 무림을 멸망시키자더니 덜컥 관과 결탁한 이 괘씸한 자들!"
"미친 놈들이지."
두 남자는 마교와 내통한 동시에, 혈교에도 발을 걸치고 있었다.
둘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회주의자. 위선자. 강자에게 편승하여 호가호위하려는 자들.
무림맹주는 모르겠지만, 둘은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만약에 '그들'까지 오게 된다면…."
"완전히 망하는 거지. 젠장, 그들은 왜 갑자기 온다고 해서."
둘은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용봉지회…."
"성공...하면 안되는데…!"
둘의 시선은 창고 구석에 있는 큼지막한 상자에 꽂혔다.
* * *
그 시각, 하남 무림맹.
"어서오십시오!"
무림맹주, 독고자영은 단촐한 차림의 일행에 진심으로 환대했다.
"이 독고 모가 감히 대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맹주. 곤륜 또한 무림맹의 일개 문파.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저는 이게 편합니다, 보현 선배님!"
"선배님이라고 들은 것도 벌써 30년도 전의 일이군요...후후."
보현이라고 불린 도사, 보현진인은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맹주는 이전보다 훨씬 더 늠름해지셨습니다."
"보현 선배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다우십니다. 저는 세월의 흐름을 맞아 이렇게 되었는데, 선배님은 여전하시군요. 역시 비결은 산입니까? 수양입니까?"
"자연을 벗삼아 함께 시류에 편승하는게지요. ...아 참. 여기."
보현진인은 자신의 옆에 있는 작은 체구의 남녀를 가리켰다.
"곤륜은 이번에 이 아이들을 출전시키기로 했습니다."
"...음?"
독고자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맹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소생, 백청하라고 하옵니다."
"소녀, 백천화라고 하옵니다."
"......."
독고자영은 쉽게 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직감에 따르면 이 둘은 마치….
"닮았지요? 남매입니다. 곤륜의 아주 자랑스러운 제자들이지요."
"음…. 그렇군요."
뭘까. 이 찝찝함은.
"두 제자 모두 용봉지회에 출전은 하지만...둘 다 견문을 쌓기 위해 온 것이랍니다.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크흠, 그런게 아니라…."
독고자영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천화현녀.
둘 중 한 명이, 혹시 다음 대의 천화현녀가 아니냐고.
둘은 기억 속 천화현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으나, 은근하게 닮아있었다.
마치, 천화현녀가 갓 성인이 된 모습처럼.
"왜 그러시죠?"
양갈래 머리의 여인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품후기]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