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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무당파에는 신진 고수가 없다. 대부분 이류 수준에 머물러있고, 일류 수준에 이른 무사도 없다.
무당파는 지난 용봉지회 이후 많은 도사들을 길렀다. 이제는 무당파의 원로 장로로서 직책에서 물러난 현철도사는 무당파의 살림 전체를 도맡았고, 현타도사의 방침을 존중하며 무당파를 발전시켜나갔다.
한 명의 초고수에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소수의 인원이 무공을 독점하지 않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무당파의 무공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많은 이들이 무당파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한다.
단, 무당파를 떠난 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가장 힘들 때 무당파를 떠난 자는, 앞으로도 무당파가 어려울 때 문파를 떠날 수 있는 자들이다.
현철도사도 현타도사도, 모두 역병이 일어났을 때 무당파에서 야반도주를 하거나 무당파를 나간 이들을 다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극화 사공희가 무당파를 구파일방 중 으뜸으로 올려놓으며 여러 사람들이 무당파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들은 무당파의 정문에서부터 문전박대를 당했다.
불만?
감히 드러낼 수 없었다. 무당파의 세력은 나날이 강해졌고, 그들은 문파를 버린 한낱 소인배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무당파를 향해 뒷말만 하며 수군거리며 인생을 허비했다.
태극화 사공희보다 검희봉 독고연이 훨씬 더 강할 거라든가, 현철도사는 마교와 손을 잡았던 자라든가, 현철도사가 성추문에 연루되었을 때 무당파에서는 그를 잘라내려고 했다든가 등등.
무당파에서는 코웃음을 치며 악의어린 선동이라고 호통을 질렀지만, 그것도 호북 내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무당파는 이번 용봉지회에 낼만한 신진 고수가 없다더라!
호북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무당파를 욕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전부 이류 수준에 불과하지. 쯧쯧. 지난 번에도 구룡육봉에 이름을 못 올리더니, 이번에도 구룡육봉 중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겠어!
-지난 번이랑 이번은 조금 다르지 않나?
-에잉, 시끄럽다! 전후관계야 어떻든 ‘구룡’에도 ‘육봉’에도 무당파가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구룡육봉이 없다. 다른 문파들도 마찬가지지만, 만약 이번에도 구룡육봉을 배출하지 못하면 무당파의 명예가 떨어질 수 있다.
밖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 오니, 자연히 무당파 도사들은 기가 죽었다.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한 건 인정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하여 실력을 쌓았다.
그저 압도적인 한 명의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났을 뿐이다. 그리고 도사들은 여전히 그 한 명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지 못했다.
-태극화 참전 하냐!!
태극화는 공식적으로 용봉지회에 불참을 알렸다. 여전히 그 이유는 불분명하나, 폐관수련에서 아직도 그녀는 밖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강호의 다른 문파들은 태극화가 폐관을 마치고 나오지 않기를 바랐고, 무당파의 무사들은 태극화가 결정을 번복해도 좋으니 제발 나와달라고 바랄 뿐이었다.
그러던 찰나.
한 가지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태극화를 상대로 아주 악의적인 중상모략이며, 동시에 태극화의 폐관수련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소문.
-태극화, 임신했다던데?
-???????????
소문은 널리 널리 퍼졌다.
* * *
“어떤 놈이지?”
나는 사정후와 함께 바로 광동으로 쳐들어갔다. 하오문주는 나와 사정후를 보자마자 먹던 검은색 면을 내려놓으며 포권을 취했다.
“오해입니다.”
“오해?”
“예, 그렇습니다.”
하오문주는 힘의 원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가 먹고 있는 음식들의 구성만 하더라도 혈교의 흔적이 엿보였다. 작장면(炸醬麵)에 탕수에 절인 과포육(锅包肉), 그리고 튀기듯이 구운 만두까지.
가운데 초에 절인 무까지, 혈교에서 주로 먹는 음식 구성의 전형이었다!
“일단 입에 묻은 춘장부터 닦고 말하시게.”
나보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사정후였지만, 그 또한 목소리가 상당히 가라앉아있었다. 하오문주는 재빨리 입술을 닦고 자세를 잡았다.
“어째서 오셨는지 압니다. 다만 진정하시고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그래. 우리는 지금 상당히 진정한 상태야. 만나마자마 칼을 빼내지도 않았잖는가?”
“그, 칼은 이미 어검술로 띄우고 계신...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보게, 하오문주.”
나는 식탁에 올려진 탕수 그릇을 들어올렸다. 흥건한 탕수 안에는 넓게 펼쳐져 튀겨진 과포육의 튀김가루가 살짝 묻어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지 않으면 부어버리겠네.”
“하오문이 아닙니다!! 하오문이 음해를 당한 겁니다!!”
“호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다. 소문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하오문이 음해를 당했다?
“그러니까 그대의 말은 이번 소문이 어떤 자들에 의해 ‘하오문이 퍼뜨린 소문’이라고 중상모략을 당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장문인!!”
“오.”
현철도사를 상대하며 강호의 더러운 계략에 나름 눈이 트였는지, 사정후는 약간의 정보만으로도 금방 정황을 이해했다.
“그럼 범인은? 나는 이번 소문이 단순히 한 두 명의 음해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조직적인 음해공작이 분명해. 누구지? 누구인가? 누가 사공희가 임신했다는 소문을 퍼뜨렸어?”
“...결론을 말씀드리기 전에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소문을 퍼뜨린 자들도 분명 진실은 모를 겁니다. 그건 제가 확신합니다. 사공 소저의 일은 색마님과 더불어 저희 하오문에서 특급, 아니 초특급으로 다루던 비밀이니까요!”
“그래. 여기서 새어나갔으면 이걸 당장 부어버렸을 거야. 물론 탕수 대신 누군가의 피가 흘렀겠지. 그렇다면….”
나는 탕수 그릇을 45도로 기울이며 협박했다.
“무림맹인가?”
“히익!”
끈적한 탕수가 과포육 위로 넓게 펼쳐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튀김옷은 눅눅해질 것이고, 튀김은 씹는 맛 하나 없이 탕수에 절여지겠지.
“이 탕수가 다 떨어지기 전에 말해라.”
그냥 장난으로 하는게 아니다. 탕수는 경고이며, 하오문주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그, 그게…!”
“설마 자네같은 자가 아직까지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알고 있다면 말해주게. 이는 무당파의 명예와도 관련이 있는 일이야!”
“......얻어 걸린 셈이며, 범인은 불특정다수입니다.”
“그러니까 누구!”
“......태극화가 용봉지회에 출전하지 않았으면 하는 여인들 전체요.”
“.......”
혈교주는 말했다.
-여자의 적은 여자에요.
혈교주, 역시 당신이 옳소.
나는 허탈한 마음에 그만 남은 탕수를 전부 부어버렸다.
* * *
<그시각, 하북성 - 북경.>
북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용봉지회를 불과 50일 가량 남은 시점에서, 용봉지회가 열리는 북경에 모인 사람들은 죄다 용봉지회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하나, 직접 참가하기 위해.
둘, 직접 참가하는 이를 옆에서 돕기 위해.
셋,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돈을 벌기 위한 장사를 하기 위해.
넷,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이들을 순수한 마음에서 구경하기 위해.
관에서조차 나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는 용봉지회는 망할 수가 없는, 망해선 안 되는 무림의 대축제였다. 4년마다 한 번씩 있는 이 대회를 위해 중원 전역에서 내노라하는 신진 고수들이 모이고, 그들 모두가 서로를 견제하며 적으로 삼는다.
참가자는 수천 명, 하지만 자리는 고작 아홉과 여섯 자리!
함께 우애를 다지며 온 형제라고 한들, 구룡의 자리 앞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적에 불과하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참 좋은 말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무인들은 용봉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으며 상대를 깎아내렸다.
자신이 더 돋보이기 위해.
자신이 더 이름을 널리 떨치기 위해.
만약 이들이 정정당당히 비무장 위에서 비무로서 이름을 날린다면 누구든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무장에 오르기도 전에 이름을 날리는 자들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무명(無名)에 불과한 이들은 기분이 어떨까?
시작도 전에 지고들어가는 불쾌감을 가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용봉지회는 예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언검(言劍)을 휘두르는 전장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누가 용이 되고 누가 봉이 될 것이며, 기존에 있던 이들 중 몇몇은 떨어지고 누구는 팔강에 그칠 것이며, 우승자는 누가 될 것이며 하는 설왕설래가 객잔마다 만연하게 된다.
이해는 할 수 있다.
4년마다 한 번 열리는 대회의 우승자가 누가 될 지는 당연히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승자로, 또는 구룡육봉에 오를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것 만으로도 명예를 얻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음해’가 시작된다.특히 전대 구룡육봉에 대한 음해, 깎아내리기는 절정에 치솟는다.
-와백봉 제갈선은 한 번 납치를 당한 적이 있다더라. 자기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여자가 와백봉을 지킨다는게 의미가 있을까?
-연희봉 모용란은 어떻고요? 그녀는 수년동안 이름을 숨기고 살았잖아요? 그동안 어디서 뭘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그리고...빙색마인에게 당한 건 사실이잖아요? 깔깔깔!
-중최미봉은 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산주봉은 뭐...말이 좋아 녹림이지, 산적이잖아요? 아무리 용봉지회라고는 하지만 남을 해하는 자와 어깨를 나란히 해야한다니.
-검희봉 독고연은…이크, 무림맹 사람들이네요. 조심하자구요. 맹주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마교 소공녀, 소천마가 되었다네요? 참나. 용봉지회에 나올 생각은 커녕 천산에나 처박혀있지.
북경에 모인 여인들은 서로 삼삼오오 모여 기존의 육봉과 흑백이화에 대한 험담에 열을 올렸다. 그들의 무공 실력으로는 흠을 잡을 수 없으니, 대외적으로 보이는 흠결로 그들을 깎아내리려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지탄아닌 지탄, 악의 가득한 음해를 받는 두 명의 여인이 있었으니….
“태극화 사공희와 빙백봉 유설라.”
팽유월은 세가 무사들의 보고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 명은 백도제일화, 한 명은 강호를 뒤흔든 연풍(戀風)의 주인공. 여자들이 질투하는 건 당연하죠.”
자색의 눈동자를 빛내던 독고연도 마찬가지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추하게.”
“...임신을 했다라.”
강호에 널리 퍼진 소문이 있다.
태극화와 빙백봉은 다음 용봉지회에 결장할 것이다.
- 1년 폐관수련? 하, 웃기는 소리.
- 남자랑 하다가 임신한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 뭐? 아니라고? 아, 몰라! 아무튼 임신이야! 임신 아니면 나와보라고 그래!!
태극화는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용봉지회를 1년 앞둔 시점에서 폐관에 들어간게 분명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빙백봉 또한 마찬가지.
빙백봉은 아예 염문설의 대표와도 같았기에, 사실상 임신 은퇴를 전부 확정적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미파의 사람들도 빙백봉이 사천을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기에, 다들 자유와 행복을 찾아 떠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견희가 걱정이네요. 괜히 나쁜말 들었다가 아이에게 영향이 가면 안 되는데.”
“겉으로는 약해보여도 속으로는 강한 언니라서 크게 상처는 받지 않겠지만...작은 상처도 상처니까요. 으으,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나쁜 거 안 듣고 안 보고 무시하고 살면 돼요. 가장 중요한 건 내 아이니까.”
“과연….”
독고연은 팽유월로부터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다. 사공희와 마찬가지로 만삭인 팽유월은 배를 쓰다듬으며 옅게 웃었다.
“그래도 괜찮을 거예요. 이제...곧 오기로 했으니까.”
며칠 전. 연통이 하나 도착했다.
방 네 개를 준비해달라는 ‘그’의 연락이.
* * *
늦은 밤.
나는 사공희와 함께 밤산책을 나섰다. 사공희와 손을 잡고 아주 천천히 걸으며, 나는 사공희가 먹고 싶다고 한 당과를 함께 먹으며 밤의 천가장을 거닐었다.
“다들 어떻게 알았을까요?”
“안 게 아니다. 오비이락일 뿐이야.”
당장이라도 하북으로 날아가서 소문을 퍼뜨린 자들에게 혼쭐을 내고 싶지만, 나는 혹시라도 사공희에게 안좋은 영향이 갈까봐 최대한 참고 있었다.
"아직 중원의 사람들은 네가 진짜로 임신한 건지 아닌지 모른다."
"아뇨. 전 차라리 모두가 제 임신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설령 미혼모라고 하더라도. ...상공의 아이니까."
"견희야."
"상공이 걱정하시는 건 그거잖아요. 세간의 시선. 태극화를 임신시킨 남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
나의 업보다.
"이대로 모습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으면...폐관 수련 중인데도 안으로 쳐들어오려고 하겠죠. 무림맹은 사공희의 참전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니까."
"...독고연이 사공희를 꺾기를 바라는 무림맹주의 바람 때문이지."
"네, 그래요. 하지만 이 상태로 나갈 수는 없죠. 그러니까...."
사공희는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활짝 웃었다.
"상공이 저를 임산부가 아니라고 세간에 증명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아."
"농담이에요."
"그럼 그렇지. 으휴, 내가 너로 변장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하...하...."
......좋은 생각이 났다.
[작품후기]
아빠없는 아이를 만들지 않기 위한
아빠의 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