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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폭풍과도 같은 열락의 밤을 보낸 뒤.
나는 아침해가 뜬 순간이 되고 나서야 네 명을 재울 수 있었다. 색사경, 아니 생사경에 든 나는 햇빛을 통해서도 내공을 토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큰 무리 없이 넷을 기절시킬 수 있었다.
‘좆 될 뻔.’
아아, 무섭도다. 천마망교.
네 명의 화경 여고수가 펼치는 무덤에서 나는 빠져나오기 힘들었고, 나는 간신히 그들을 제압했다.
침대 위에서 펼치는 궁극의 색공, 교배천근추가 아니었다면 분명 아직도 셋의 가슴에 파묻혀 일어나지 못했을 터.
화륵.
중려신화정으로 방 안의 흔적을 모두 지운다. 그리고 네 명의 여인을 침대에 반듯하게 눕히고, 침대의 젖은 것 또한 바싹 말린다.
부들부들.
한 명 쾌락에 괴로워하는 이가 있지만, 최소한의 조치는 할 필요가 있다.
- 누가 그러더라고요. 밤 일을 하고 나서 혼자 밖에 나가서 연초 태우는 남자가 딱 질색이라고.
혈교주는 말했다.
- 최소한 하고 난 뒤에 땀이나 체액을 닦아주는 모습을 보이면, 귀찮더라도 욕먹는 일이 없다고.
'혈교주, 역시 당신이 옳소.'
국부 주변에 하얀 것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건 할 때는 정복욕이 생겨서 좋지만, 다른 때는 거부감이 들 뿐이다. 나는 그들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환기.'
끼이익.
나는 문을 열었다. 새벽은 이미 훌쩍 지나, 해가 서서히 중천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천산의 상쾌하고 맑은 바람이 내 폐부까지 깊게 찌르고 들어왔다.
[.......]
그리고 하늘에는 아침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가 한 명 있었다.
“수마?”
수마는 본래의 모습, 거대한 짐승의 형태로 전각 위에 올라가있었다. 그녀는 길게 하품을 하며 눈을 껌뻑거렸다. 잠깐 잠에 빠진 모습이었다.
"나를 기다렸나?"
[...음.]
“이런 모습으로 자면 들키지 않나?”
[괜찮아. 근처에 아무도 없거든. 올라타.]
수마는 앞발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손등(발등?)을 디디고 머리 위에 올라섰다.
펄럭. 수마는 나를 태우자마자 천천히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전각에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짧은 편지를 남긴 뒤, 수마의 머리 위에 앉았다.
“나를 찾아온 이유는?”
[천마께서 찾으시는데, 괜히 중간에 흥 깰까봐 기다리고 있었어.]
“무슨 일로 날 찾았지…?”
[천마께서 직접 말씀해주실 거야.]
수마는 바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그녀의 털을 붙잡고 천산의 바람을 만끽했다.
[교미, 재미있어?]
“최고지. 너도 성욕은 있지 않나?”
[글쎄. 잘 모르겠는 걸. 너는 개미끼리 서로 물고 빠는 걸 봐도 성욕이 생겨?]
“.......”
수마가 우리의 행위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 알게 되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강요는 할 수 없는 노릇. 나도 짐승과 하는 건 사양이다.
휘이잉.
“저기있군.”
수마는 금방 나를 천마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깎아지른 절벽의 끝, 천마는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누군가의 무덤 앞에 서있었다.
“찾으셨소?”
나는 수마의 위에서 내렸다. 수마는 수호석상마냥 조용히 네 발로 엎드렸고, 나는 천마를 향해 다가갔다. 회색의 단촐한 무복을 입은 그는 다소 눈이 퀭해보였다.
미약한 술냄새.
아마 밤 새 술을 마셨던 게 아닐까?
“왔나.”
천마는 나를 향해 술잔을 건넸다. 나는 묘석을 보고 천마가 따르는 잔을 받아, 묘비 위에 올리고 절을 올렸다.
"여기는...."
“시아를 닮아서 아름다운 여인이었지.”
“한 번도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소.”
“당연하지.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참 나쁜 짓이었지."
천마는 씁쓸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머니에 대해서 궁금해하기는 했을 거야. 낳아준 어머니를 태어나자마자 잃었어도, 주변에서 어머니가 되어준 여자는 많았어도, 낳아준 친모를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런가….”
나는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간단하게라도 이야기 해주지 그랬소."
"...용기가 없었다네. 웃기지 않나? 천마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니."
"이해하오. 가정사는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지."
"그래. ...설령 가족이라도 숨기고 싶은게 있는 법이야."
천마는 쓰게 웃으며 술을 전부 무덤에 뿌렸다.
"자네의 배경에 대해서는 들었네."
"......."
화제전환. 나는 묵묵히 듣기로 했다.
"현천백가라…. 우리 마교와 아주 인연이 깊은 곳이지. 그거, 알고 있는가?”
“알고 있소. 현천백가의 가주가 마교의 하수인이라는 걸. 누구보다도...잘 알고 있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안휘의 배후성을 맡고 있는 배후성주, 남궁살(殺)이다. 왜 남궁살인가. 그건 나의 출생과 인연이 깊다.
"내 생모는 남궁의 여인이었으니까. 실제가 어떻든."
“그래. 그는 남궁세가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지.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호위무사와 이미 깊은 인연을 맺은 상태였고. ...어찌보면 그는 남궁세가에 큰 배신을 당한 셈이야.”
“뭐, 부인에 대한 배신감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건 알겠소. 이해도 동정도 할 수 없지만.”
정작 본인은 아내의 여동생과 또 관계를 맺었으면서.
"천마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는 표리부동의 화신이오. 너무나도 더러운 이야기니, 고인의 앞에서조차 할 수는 없는 법. 나중에 서면으로 알려주겠소."
나는 굳이 그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았다. 적어도 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는 인자하고 자상한 어버이였으니.
“...내가 모르는 사정이 또 뭔가 있나보군. 알겠네 그건 넘어가세."
"그것만 물어봅시다. 내 이야기는 왜 꺼낸 거요?"
"자네의 생부. 그 자에 대해 내가 알고 있으니까. 혹시 알고 있나?"
"...전혀."
알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호위무사라는 것밖에. 꽃뱀에게 휘둘린 남자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자식을 버리고 떠난 남자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오."
나는, 내 아버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래. 그렇군.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이 아니라….”
그는 내게 검 한자루를 꺼내들었다. 묵빛의 검은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지금까지도 관리가 쭉 이어진 듯 보였다.
“천마신검(天魔神劍). 천마신교에 대대로 내려오는 검이다. 나는 권사이기에 이 검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전대 교주는 이 검으로 마교 전체를 호령했지. 전대 교주가 누구였는지 아는가?”
“.......”
흐름에 따르면.
"전대...천마?"
“그래. 시아의 할아버지셨지. 내게는 장인어른인 셈이었지. 그는 내게 이걸 맡기고 명을 달리했네. ...나와의 생사결에서 패배했지. 그래서 나는 자네가 처음 나에게 도전장을 날렸을 때 생각했다네. 운명이라고.”
천마의 얼굴에는 짙은 후회가 엿보였다.
“내가 전대 천마를, 스승을 내 손으로 죽였으니 나 또한 이렇게 죽는 건가. 그래서 내 대에서는 그 악순환을 끊고 싶었다네. 설령 시아에게 원망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그대를 쓰러뜨리려했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기 마련이고, 시대 또한 빠르게 변하지.”
나는 천마의 말을 잠시 잘랐다.
“나는 비극을 원하지 않소. 다른 이들처럼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누구 하나 죽지 않고 평화로운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 꿈이오. 그걸 위해 나는 언제나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소. 나 또한 마찬가지였소. 내가….”
나는 왼손을 움켜쥐었다.
“천마보다 강해지지 않으면, 천마를 죽이지 않고 끝낼 수 없었지. 그래서 목숨을 걸었소.”
“그러다가 나한테 죽었으면?”
“안 죽고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이기지 않았소? 결론은 하나요. 이시아의 남편이 천마를 죽이지 않고 이겼다. 끝.”
“.......”
천마의 표정이 잠시 벙쪘다.
“강호 무림을 상징하는 단어는 역시 은원(恩怨)이지. 특히 그중에서도 복수는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법. 나는 그래서 이제 더이상은 핏빛 복수가 일어나지 않게 하고자 하오. 모두를 죽이는 길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사는 천하를 열고자 하오.”
“...힘들텐데.”
“힘들어도 해야지.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수백, 수천년은 살지 못할 것이오. 피에는 피로 복수하는 강호 무림의 오랜 법도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고, 많은 난관에 부딪힐 것이오. 체제를 바꾸는 건 기존 체제를 원치 않는 수많은 이들의 지지가 없으면, 체제를 유지하고 하는 이들에게 역천(逆天)으로 다가오는 법."
내가, 혈교주가 바꾸고자 하는 강호의 질서는 기존 강호의 질서와 크게 배치된다. 어쩌면 구파일방이, 팔대세가가, 중원 무림 전체가 우리를 상대로 칼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무림을 해체하려는 것이냐?"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것 뿐이오. 천마의 시대는 의와 협이 있었지만, 동시에 비극도 있었지. 이제는 바뀌어야 하오."
나는 천마에게 포권을 취했다.
"수틀리면 칼을 겨누는 강호는, 모든 것을 무(武)와 협(俠)이라는 이름을 사칭하여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무림은 이제 이 천하에 더이상 존재해서는 아니되오.”
모든 악행을 막을 수는 없다.
모든 복수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복수가 점점 커지고 불씨를 피워 중원 전역, 대륙 전역으로 번지는 일은 막아야한다.
혈겁난세는 혈교가 일으키는게 아니다. 혈겁난세 또한 결국 강호의 뒤틀린 복수극에서 파생된 것이며,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살극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의협심은 이미 십상련이 죽였소. 지금의 무림은 강대한 힘을 가지고도 자신의 것을 지키기에 급급한 옹졸한 자들 뿐. 그들이 가진 힘을, 권위를 부술 것이오."
"그걸 바라지 않는 자들도 많을텐데. 그대도 개고생을 할테고."
"앞으로도 몸을 험하게 굴리면 도닦는 놈들에 비해 훨씬 적은 삶을 살 수도 있겠지. 나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나타난다면, 그 중 나보다 강한 자가 나타난다고 하면 나도 죽을 수 있소. 100살...아니 그 이전에 죽을 수 있을 지도 모르오. 하지만.”
나는 결심했다.
"최소한 자식 손주 낳는 것 까지는 보고 죽어야하지 않겠소?"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자, 천마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크흐."
천마는 다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가. 아직 나는...크흐흐. 알았다, 알았어. 자, 이 검을 네게 맡기마."
천마는 내게 검을 건넸다. 나는 그로부터 천마신검을 받았다.
"이건...."
"시아를 소천마, 아니 천마로 정한 것으로 나의 숙명은 다했다. 이제부터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왕 죽을 거라면 네게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하려고 했지. 그래, 전대 천마를 벤 검으로, 나를 베어달라고 하려고 했다."
스릉.
"이렇게."
천마는 검을 뽑았다. 내게 칼집을 잡게하고, 그는 바로 검을 뽑아-
서걱!
머리를 베었다. 머리칼을 베었다. 금빛으로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려 절벽 아래로 흩날렸다.
"시아는, 천마는 네게 맡기마. 아니지. 솔직히 얘기하자면...나는 아직도 너를 비천색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색천마라고 생각하지. 천마의 이름은, 천마의 검은 네게 맡기마. 언젠가 시아가 천마의 이름을 달게 되는 때, 네가 시아에게 그걸 넘겨주거라."
"...알겠소."
이이상 사양하는 건 나의 실례다. 천마는 검집에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아까 말을 하다가 잠시 옆으로 흘렀는데, 본디 천마신검은 대대로 검마(劍魔)에게 이어지는 검이다. 검마가 천마의 호위로서 목숨을 바쳐 천마를 지키는 거지. 전대 검마...호북에서 죽었던 그 놈은 자기 복수에 미쳐버렸지만."
"그래서 이제 나보고 시아를 지키는 검이 되어라?"
"그런 것도 있고, 이제는 응당 네게 이어져야하는 이유도 있고."
천마는 우수에 잠긴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마검비와 전대 검마 사이에 '한 명'의 검마가 있다는 거, 알고 있나?"
"......."
설마.
"마교제일검."
"......."
"남궁세가에 잠입했다가 사랑에 빠져 검을 꺾은, 어리석은 자였지. 같은 마인으로서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그의 명예를 위해 내 알려주겠네."
천마는 절벽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자식이 있는지 몰랐다네."
"......후."
나는 검을 움켜쥐었다.
"예전에 현천백가의 무덤가에 간 적이 있었소. 그곳에는 내 생모의 무덤이 있었지만, 다른 이의 무덤은 없었지. 나는 그곳에 꽃을 놓으며 생각했소. 나의 부모가 어떻든...나는 자식에게 이렇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랬는데...조금은 다행인 것 같군."
나는 검을 내 허리에 채웠다.
"말해줘소 고맙소.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는...좋은 부모가 되리다."
착각일까.
따스한 바람이, 내 머리를 어루만지듯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