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마결집
제일 처음 대공자와 1:1을 펼친다고 했을 때, 나는 이시아와 상당한 언쟁을 벌였다.
"위험하다니까?"
"내가 놈을 혼자서 잡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데?"
"내가 네 힘이 되어준다고 했잖아. 내가 곧 너의 주먹이고 발인데, 왜 나를 안 쓰려고 하는 거야?"
"그런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놈은 내가 직접 패죽이고 싶어서 그러지!"
결국 이시아와의 언쟁은 침대 위에서의 전쟁으로 결론짓기로 했다.
그곳에는 나는 그녀의 집념을 보았다. 갔으면서도 끝까지 가지 않았다고, 이제는 포기하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던 그녀의 고집에 나는 두 손을 들어버렸다.
"그래도 이건 양보 못해."
내가 이시아를 지킨다. 이시아는 대공자를 직접 패죽인다. 그 중간지점은 어디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우리는 중도에 이르는 방향을 찾아냈다.
"공격은 내가."
"수비는 내가."
천마기승위로 올라탄 이시아가 나를 위에서 찍어누르며, 우리는 깨달음을 얻었다.
말그대로 내가 이시아를 지키며, 동시에 이시이가 대공자를 직접 때리면 되는 것이다!
대공자가 무슨 공격을 하든 내가 막는다. 이시아는 그걸 보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공격을 퍼붓는다.
그것이, 우리가 계획한 승리 방식이었다.
"크으윽! 이 건방진!!"
내가 대공자의 움직임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공격을 막아내기에, 대공자는 상당히 난처해했다.
"이런, 이런 젠장!!"
자신의 모든 공격은 틀어막히고, 이시아의 모든 공격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유효타를 먹이기 시작했다.
"네놈! 부끄럽지도 않느냐!"
"무얼. 나는 소공녀의 살아있는 호신강기다."
누구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는 진정한 방패로서, 아무리 대공자가 용을 쓰고 대공자의 수하들이 날뛴다고 해도 나는 이시아를 지킬 수 있다.
희, 태극혜검.
아, 천마신공.
연, 파천신검.
월, 오호단문도.
검.
혈, 혈영검.
나는 이시아의 그림자며 검이다. 이시아의 몸을 지키는 핏덩어리 이기어검이다.
뒤에서 아무리 현경 고수들이 대공자와 연계하여 검을 찌르든, 독이 든 침을 날리든, 모든 공격을 튕겨내고 막고 공격자의 목을 손톱으로 그어버리며 공격을 막았다.
"어, 어떻게…!!"
"실력차이지."
나는 등 뒤에서 이시아를 노리는 현경 고수들을 향해 엄지를 내렸다. 마화의 음공은 끝났지만, 그들은 스스로 폭혈까지 사용하며 이시아를 공격하려고 했다.
카앙, 카앙, 카앙!
이시아는 빠른 몸놀림으로 주지를 압박했다. 주지는 아예 공세를 포기하고 수비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틈!"
반격을 위해 이시아의 빈틈을 노리는 순간.
카---앙!
빠르게 날아든 핏빛 비도가 주지의 검로를 틀어막았다. 이시아는 주지의 검신을 밟고 뛰어올랐다.
"죽어!"
이시아는 주지의 머리를 돌려찼다. 주지는 팔 하나를 들어 급히 이시아의 공격을 틀어막았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
"이…!"
싸울 때 가장 상대하기 싫은 족속이 누구일까?
야비하게 싸우는 자?
실력으로 안되니까 사술이나 독공같은 걸 쓰는 자?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이의 힘을 빌리는 자?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은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적'이다.
"이, 비겁한 년이!!"
"비겁? 현경 다섯 명의 딸자식을 인질로 잡은 새끼가 할 소리는 아니지."
"인질이라니!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마교 대공자가 와서 다리 벌리라고 하는데 그러면 누가 안 벌리고 버텨. 개같은 새끼."
이시아는 주먹으로 때리며 말로도 후려쳤다. 이시아를 향해 공격하는 현경 고수들 중 일부의 공격이 살짝 누그러졌다.
"혈영귀라수."
나는 그 사이 이시아와 등을 맞대며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걸 바닥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오악뇌절(五岳雷切)."
다섯 산을 번개처럼 가른다.
쩌저적!
지축이 흔들린다. 손톱이 박힌 땅이 손톱을 중심으로 다섯 갈래로 쪼개지며 충격파가 위로 치솟는다.
"크아아악?!"
마인들은 충격파에 휘말려 하늘로 붕 떠올랐다. 오악을 전부 부술 기세로 내공을 땅에 때려박으니, 감히 누구도 이시아의 뒤를 노릴 생각을 못했다.
"네, 네놈…!"
"설마, 이 힘은…?!"
"역시 눈치는 채는 건가? 하긴, 그만큼 흔적을 흘리고 다녔으니 모르는게 이상하지."
나는 천마신공 대신 다른 힘을 극성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천마신공을 쓰다가 마화의 음공으로 인해 강제로 폭혈에 걸리는, 잠력을 터뜨려 회광반조의 효과를 일으키고 픽 죽어버리는 일은 없었다.
시간만 지나면 이들은 모두 피가 머리에 몰려, 머리가 터져죽을 것이다. 천마신공은 상단전으로 피가 몰리니까.
죽일까, 살릴까. 그건 내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오늘 철저한 검이자 피이자 호위일 뿐이니.
"이 년, 망할년! 네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주지는 이시아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이시아는 흔들리기 시작하는 주지의 검을 가볍게 피하며 공격을 때려박았다.
퍼-억!
"커헉…!"
"뭐래."
이시아의 주먹이 주지의 명치에 깔끔하게 꽂혔다. 주지는 왈칵 피를 토해냈고, 이시아는 장갑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이죽거렸다.
"나보다 약한 것 같은데?"
"이, 이…!"
어느순간부터 나는 이시아에 대한 집중을 조금씩 낮추고 있었다.
처음만 하더라도 대공자의 공격은 이시아에게 닿을까 조마조마했으나, 이시아는 생사결을 거듭하며 점점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대공자가 약해진 걸까?
아니다.
이시아가 강해지는 거다. 상상하지도 못할 수준으로 빠르게, 대공자와 생사결을 나누며 그녀는 미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의 안에 건네준 나의 내공 때문일까, 아니면 대공자만 쓰러뜨리면 소천마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소천마? 틀렸다.'
이시아는 소천마가 아니다.
이시아는, 이미 스스로를 천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확신이,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오늘만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숨을 죽여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각했다.
"위주지!!"
대공자에게 주먹을 꽂아넣고, 위주지의 얼굴에 무릎을 차올리는 순간, 그녀는 폭력으로서 깨달아버린 것이다.
"천마신교의!"
아주 어려서부터.
"천마는!"
자신을 죽이려고 든.
"나야!!"
대공자 위주지에게 더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허억, 허억…!"
주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이 밀린다는 것에 믿지 못했다.
"왜, 어째서?! 내가 너보다 배는 더 살았는데…!!"
"한 번 더 말해주지."
나는 바닥을 훑듯 뒤의 공격을 받아치며 혈영귀라수를 앞으로 내뻗었다. 이시아는 나의 손을 올라타며, 오른발을 뒤로 뻗었다.
"나는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여자라고!"
천마신공(天魔神功).
무쌍난무(無雙爛武).
비영승천각(飛影昇天脚).
"생사결 한 번 제대로 안해본 놈이 깝치기는."
파(破).
옥(玉).
콰득.
무언가, 크게 터졌다.
* * *
"어으."
혈교주는 인상을 찌푸렸다. 천마 또한 눈을 감으며 시선을 돌렸다.
"대공자가 고자라니. 고자는 독고자 말고 더 없다고 생각했는데."
"......업보지. 그리고 시아의 배려이기도 하고."
천마는 한탄했다.
"본래라면 목숨을 거두었어야할 일을 후대의 생명을 거두는 것으로 끝냈으니."
"아들이 고자가 되었는데 괜찮나? 자식은?"
"시아가 낳으면 된다. 애초에 그런 거에 연연하는게 이상한 거지. 마교는 세가가 아니야. 천마는 누구든 될 수 있다."
"설령 네 후손들이 아니더라도?"
천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를 이긴 자가 곧 천마다. 비천...마가 시아를 선택했으니, 시아가 곧 천마이니라."
"그럼 너는?"
"대외적으로는 시아 대신 천마 노릇을 해줘야지. 최소한 시아가 마교 안에 있는 모든 마인들보다 강해지고 난 뒤라면 모를까, 나는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다."
"팔불출이군."
천마는 객석 끝까지 이륜거를 밀었다. 그리고 앞을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그만-----!!"
천마의 사자후가 만마전에 쩌렁쩌렁 울렸다.
"승부는 났다! 소천마는 소공녀로서…?"
캉, 캉, 카아앙!!
천마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마인들은 전투를 멈추지 않았다. 비천마인들과 지린마인 뿐만 아니라, 지린마인 자기들끼리도 서로 칼을 겨누며 싸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머리에 피가 몰리고, 미쳐버린 거지. 단체로 광기에 물든 거야. 이미 저들의 눈앞에는 모든 것이 괴물로 보일 터."
혈교주는 굳은 목소리로 이륜거를 잡고 뛰어내렸다.
쿵!
혈교주는 천마와 함께 순식간에 전장의 한가운데에 내려앉았다. 그곳에는 마교 십마의 가운데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대공자 주지가 있었다.
"크, 흐킇, 크흐흐…!!"
주지는 피눈물을 흘리며 웃고있었다. 가히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너무 세게 터뜨렸나?"
이시아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주눅들었다. 지린마인들을 통제할 대공자가 완전히 가버렸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우와아아----!!
마인들은 모두 괴성을 지르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아귀다툼을 벌이기 시작했고, 아직 이성을 유지하는 이들은 하나 둘 혈라지망의 진법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방법...없나?!"
"있지."
나는 혈영귀라수를 다시 팔에 머금었다.
아까전까지는 지키기 위한 힘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압도적인 힘을 보이는 혈마로서 날뛰어야 할 때가 되고 말았다.
"폭혈 때문에 미쳐버린 거라면 방법은 간단해. 몸에서 피를 빼버리면 된다."
"어떻게?"
"죽지 않을 정도로, 과하게 흘리지 않을 정도로 몸에 상처를 만들어. 가슴에 일자로 흉터를 만들든 어디 치명적이지 않은 혈관을 끊든, 몸안에 있는 피의 1할을 빼내버리면 된다."
"그, 그걸 어떻게…?"
"내가 다 해봐서 알아."
추마귀 시절. 수차례 폭혈을 쓰고도 살아남았던 방법이다.
"물이 흘러넘쳐서 문제라면 물을 덜어내면 안정되는 거랑 같은 이치다."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고, 나는 대공자가 떨어뜨린 보검을 집어들었다.
"내가 베는 즉시 눕혀. 그리고 피 좀 빠져서 눈에 핏발 좀 가라앉았다 싶으면, 바로 지혈하고 치료하면…되겠지."
와아아아!!
어찌나 미쳤는지, 감히 나를 상대로도 검을 휘두르려고 달려온다. 나는 그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딱, 죽지않을 만큼만 베겠다."
* * *
"...아하하!!"
만마전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그래, 저거야…! 나는 저런 걸 원했다고!"
혈겁을 일으키는 핏빛 괴물을 보며, 마화는 입맛을 다시며 손을 붙잡았다.
"그래. 생명이 꺼지고 피가 난자하는...응?"
마화의 표정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안...죽여? 왜? 싹다 죽여버려야지. 하! 알량한 양심!!"
마화는 날카로운 이를 부딪히며 으르렁거렸다.
"젠장! 천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안 되는...힉?!"
마화는 기겁하며 몸을 바짝 엎드렸다. 멀리서 자신을, 아니 자신의 너머 혈귀를 바라보는 시선에 없는 꼬리까지 바싹 말았다.
두근, 두근.
높은 산맥 위.
푸른색으로 빛나는 두 눈빛이 혈마의 학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시산혈해가 이런 광경이 아닐까.
나는 전신에 피를 가득 흘리며 쓰러진 마인들의 무덤 위에 올라섰다. 내 전신에는 피가 가득 묻어있었고, 나는 혈영귀라수를 해제하고 마인을 밟고 올라섰다.
"......."
모두가 나를 향해 두려움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를 몰랐던 마인들도, 나를 알던 마인들도 나를 향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바라본다.
이해는 한다.
혼자서 수천에 이르는 마인들을 베어넘겼으니. 왼손의 손톱과 오른손의 검으로 베어넘겨 흘린 피가 바닥에 장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후."
전신에 짙은 탈력감이 든다. 천마와의 일전 이후 내공을 전부 소모한 이래, 나는 그나마 모아놓았던 모든 내공을 또 소모하고 말았다.
회복에 막대한 시간이 걸릴 터. 지금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바닥에 엎어지지 않은 건 나의 마지막 자존심일뿐.
저벅, 저벅.
이시아는 마인들의 산을 밟고 올라왔다. 그녀는 두려움없이, 아무런 떨림도 없이 나를 향해 다가와 나와 마주섰다.
"고생했어."
"......."
그녀는 그저 웃으며 나를 반겼다. 수천의 마인들을 혼자서 베어버린 압도적인 무위에 대한 두려움따위는 없었다.
"역시 비천색마야. 역시…."
오히려, 그녀는 자랑스러워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천마의 남편이라고 할 수 있지."
"...하."
헛웃음이 나왔다. 이시아는 피에 젖은 내 손을 자신의 어깨 너머로 부축하며 나를 끌어당겼다.
"아직 싸움 안 끝났어. 정신 차려야지."
"...뭐?"
콰득.
이시아의 손이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 하늘로 올려줄 차례 아니야?"
"......."
주물주물주물.
"그, 그만해…!"
"쓰읍, 색마 빵뎅이 튼실하네. 귀여워."
"그, 그런 말은 어디서…!"
"마교가 이렇지 뭐."
[작품후기]
천마군림보(아빠) : 지축과 산맥이 흔들림
천마군림보(딸) : 엉덩이가 흔들림
현경과 초절정(화경 직전)의 차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