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09화 (50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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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마결집

푸화아악.

곳곳에서 피가 터진다. 방금 전까지 우리를 향해 칼을 휘두르려고 했던 마인들은 입에서 각혈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

나는 급히 이시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진각을 밟아 이목을 끌었다.

"천마신공 풀어!"

"?!"

이시아는 놀라면서도 바로 천마신공을 해제했다. 붉은 눈동자에 몰려있던 기운이 점차 빠지기 시작했고, 우리를 중심으로 비천마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이건 도대체…?"

"음공(音功)이다. 마공을 쓰는 자들을 강제로 폭주시키는 비법이지."

이런게 가능한 존재는 한 명밖에 없다.

"마화가 저기에 있구나."

"큭…!"

이시아를 통해 들었던 존재, 천마의 밤상대를 했던 자. 그녀는 멀리서 대공자의 옆을 지키며 비파의 현을 튕기고 있었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각혈하는 이들이 넘친다. 소리가 귀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마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끄어, 으어어…."

쓰러지는게 아니다. 그들은 혼백이 빠져나간 강시처럼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눈과 입에 피를 줄줄 흘리며, 몸이 허락하지 않은 막대한 내공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잠력을...강제로 일깨웠어?"

"폭혈의 응용처럼 보이는데…."

"미친. 마인들의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눈치 빠르게 우리 주변에 모인 마인들은 이를 갈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금방 깨달았다.

이시아의 주변에, '내' 주변에 있으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덜하다는 것을.

"저거, 뭐야?"

"강제로 심장이 빨리 뛰게 만드는 거지. 내공이나 무공에 관계없이, 신체활동을 더욱 격화시키는 사술이다."

"천마신공을 해제하라고 한 이유는…."

"천마신공 또한 피를 매개로 쓰는 내공심법이니까."

인간의 혈맥을 다스리는 음공인 만큼, 천마신공을 쓰는 자가 더 위험하다. 천마신공의 힘은 상단전, 즉 머리로 내력을 올리는 것을 중점으로 두고있으니.

"약한 자들은 뇌부터 곤죽이 될테지. 강제로 천마신공의 힘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다."

"...미친. 그러면 천마신공 없이 싸워야 한다는 거요?!"

"그건 아니지."

쿵!

나는 진각을 밟았다. 700명의 비천마인들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내 발 아래로 퍼진 붉은 강기가 넓은 진법을 그렸다.

"혈라지망. 우선 이 안에 있으면 천마신공 자체는 부담없이 쓸 수 있을 거다."

제법 내공의 소모가 심하기는 했지만 700명의 비천마인들이 모두 적으로 돌아서는 것보다는 낫다.

"문제는 진법 밖의 놈들인데…."

키아아악!!

벌써부터 몇몇 마귀들이 진법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내부의 사람들이 미치지 않도록 억제할 수 있어도, 외부에서 미친 자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거나 진정시키기에는 너무나 많은 내공이 소모된다.

더군다나 나는 이시아를 지키면서 싸워야하니, 내공의 소모를 신경쓰며 싸울 수밖에.

"...이거 최대한 빨리 정리하려면 달려야겠지?"

"물론."

이제 대공자를 향해 가는 길은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하물며 대공자의 옆에는 마화가 있으니, 직선으로 달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터.

크아아앙!!

내가 진법을 펼치는 사이, 지린마인 중 현경 고수들은 수마 궁기가 상대하고 있었다.

진법 밖에서도 현경 급 고수는 마화의 음공에 전혀 영향력이 없었다. 마화보다 성취가 높은 이들은 강제로 폭혈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즉, '현경'급인 마화보다 약한 수많은 고수들은 약하게라도 강제 폭혈의 영향을 받는다는 말.

"...쿨럭, 젠장."

도마부터 먼저 각혈하기 시작했다.

혈라지망으로 기혈의 뒤틀림을 최대한 억누르도록 진법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마화의 연주는 모두의 귀를 파고들었다.

"저거, 파훼할 수 있는 방법 없어?"

"당연히 있지. 하지만 그건 네가 해야하는 거다."

나는 이시아에게 손을 건넸다.

"내공은 내가 전해주마. 시아, 너는 답을 알고 있지?"

"......당연하지."

이시아는 옆으로 뻗은 내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서로 마주잡은 두 손을 통해, 나의 내공이 빠르게 이시아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사아아--

이시아의 머리에서 금빛의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 아래, 마치 금빛 생머리가 찰랑거리듯 뒤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이시아의 손에서 긴장감 가득한 박동이 느껴진다. 나는 그녀가 안심하고 걸을 수 있게 손을 꽉 붙잡았다.

"그냥 하던대로, 생각하던대로 하면 된다. 의식하고 걷지 마. 배운대로 꼭 안 해도 돼. 가장 무공답지 않은 무공이 천마신공이고, 정해진 초식이 없는게 천마신공이니까."

"그래. …...흐, 좀 떨리네."

이시아는 실실 웃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는 내 손바닥을 파고들었던 이시아의 손톱이 붉게 물드는 것을 느낀 뒤, 붙잡은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이제부터는 이시아의 차례.

"......."

이시아는.

저벅, 저벅.

그저,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이시아의 오른쪽 뒤에 서서 그녀를 지키듯 호법을 서고, 뒤이어 마인들이 이시아의 걸음을 따라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키아아악!!

마귀들이 감히 이시아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시아는 그들이 달려오든 말든 계속 앞으로 걸었다.

콰득!

나는 달려드는 마귀들을 혈영귀라수로 잡아 집어던지며, 이시아의 뒤로부터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미래천마.

위압감, 당당함만으로 모두를 따르게 만든 여자.

대공자는 엉덩이를 흔들며 남자를 유혹해서 이끈다고 하기도 했지만….

'맞긴 맞는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믿음.

신뢰.

그녀의 뒤를 따르는 모두가 생각하리라.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앞에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이, 바로 진정한 천마라는 것을.

천마군림보.

그것은 초식을 사용하는 자가 천마이기에 천마군림보로 불리는게 아니다.

천마가 걷는 걸음이기에, 천마군림보다.

* * *

"...결국 먼저 깨달은 건 시아였나."

천마는 한탄했다.

"깨닫다니?"

"...천마는 천마라는 것을."

"선문답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망할 놈. 천마의 깨달음을 날로 먹으려고 하는 것이냐?"

천마는 혈교주를 상대로 침을 뱉었다. 혈교주는 핏빛의 작은 우산을 펼쳐 침을 튕겨냈다.

"천마신교는 강자지존의 원리가 기본이다. 천마는 누구보다도 으뜸이어야 하지. 그런데 그런 천마의 자리를 열 명의 마인이 정한다?"

천마는 피식거리며 비웃었다.

"어불성설이다. 십마의 선택을 받고 천마에 오른 자들은 하나같이 고뇌하고 또 고뇌했지. 과연 내가 천마인가."

"투표로 천마가 결정되었으면 천마지."

"아니, 아니야. 천마는...스스로 천마라고 생각하는 자가 천마다."

"자기세뇌?"

"전혀. 남들이 천마라고 인정해주기 때문에 천마가 아니다. 스스로 마교의 지존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비로소 천마가 되는 거지. 소천마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언젠가 선대 천마조차 이길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 그리고 자신이 최강이 될 거라는 믿음. 보아라."

천마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소공녀의 진격을 가리켰다.

"저 걸음에 어떤 두려움이 있는가?"

"두려울 리가 없지. 천하제일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데."

"아니. 저건 믿음이다. 저 녀석과 함께라면 결코 패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다. 언젠가 저 놈이 그러더군. 자기는 시아를 하늘로 올려다 보내줄 자라고."

"그래서 비천인가. 큭…!"

혈교주는 입꼬리를 비틀며 웃음을 참았다.

"그보다 슬슬 불안하지 않나? 소공녀를 지켜주는 건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주변이 슬슬 피폭되고 있는데?"

"...네놈과의 거래, 이곳에서 청산하도록 하지."

"호오."

천마는 마화를 눈으로 가리켰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천마인데, 마인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군."

"이미 죽은 자들도 꽤 있는데? 너는 네 딸이나 아들이 천마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기를 기다렸던 거 아닌가? 흐흐, 딸이 각성하자마자 바로 희생을 멈추려고 한다? 그럴 거면 진작에 멈추게 했어야지 않나?"

"흥."

천마는 당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부화뇌동에 휩쓸려 죽은 자들일 뿐이다. 그리고."

천마는 대공자를 지지하다 죽은 이들을 향해 이를 갈았다.

"남의 딸을 범하려고 하던 놈들이다. 죽는 게 당연하지."

"저 놈은?"

"죽이려고 했는데 실패했잖나."

천마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전력을 다해서 죽이려고 들었는데 졌으면 인정해야지. 그게, 남자 아니겠나. 네놈도 마찬가지 아닌가? 네놈도 나와 같은 처지인데?"

"......나는 경우가 다르지."

혈교주는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올렸다.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핏빛의 혈강은 단창과도 같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혈교주는 절벽 위에서 아래를 향해 단창의 끝을 겨눴다.

"나는 내 딸이 이미 나를 넘어선지 오래라서, 내가 말린다고 말려질 일이 아니거든."

"......뭐라?"

"그리고 난 저 놈, 마음에 들어."

혈교주는 어깨를 으쓱였다.

"선무사림(善武死林)의 뜻을 이해하고 실현한 놈이라서."

타-앙.

혈교주가 검지를 당기자, 단창의 안에서 붉고 작은 덩어리가 아래를 향해 빛처럼 날아갔다.

푸우욱!

파공성과 함께, 마화의 손이 파괴되었다.

* * *

"......하."

마화는 비파와 함께 박살난 자신의 손을 보며 한탄했다.

"마, 마화?!"

"...천마가, 나를."

마화는 만마전의 위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비파를 연주하던 손은 비파와 함께 통째로 터져버렸고, 손목 아래는 피만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런 젠장. 이대로라면 폭혈이…!"

"알겠네요. 왜 천마가 당신을 선택하지 않은 건지."

마화는 쓰게 웃으며 손을 소매로 붙잡았다.

"손이 괜찮냐고 묻기도 전에 음공의 효력이 사라지는 걸 걱정하다니. 참으로 비정하네요."

"......."

"알아요. 그게 당신의 천성인걸. 날 때부터 봤으니까 너무나 잘 알죠. 하지만…."

마화는 증오어린 시선으로 이를 갈았다.

"당신을…어머니처럼 키운 나조차도…!"

"......"

대공자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결정타가 되었고, 마화는 비릿하게 웃으며 뒷걸음질쳤다.

"그분께서는...아이를 낳지 못하는 제게 당신이라는 자식을 키우도록 명하셨죠. ...저는 당신에게 어머니조차 되지 못했나요?"

"나는."

대공자는 정면으로 달려오는 소공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암컷 짐승 따위를 어머니로 둔 적이 없다."

"...하."

마화는 허탈하게 웃으며 바닥을 발로 크게 굴렀다.

"그 말, 잊지 않겠어요."

화륵! 마화는 갑자기 나타난 푸른 불꽃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대공자는 허리춤에 걸어둔 자색의 검을 뽑아들었다.

"결국, 인생은 홀로 살아가는 법."

파스스.

대공자의 머리가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대공자의 곁에 있던 이들 모두가 그 모습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초마교인!!"

"실력의 3할은 감추고 살라고 하지. 틀렸다. 3할만 드러내야 하는 법."

대공자는 굳은 얼굴로 검을 겨눴다.

"와라...동생아. 나의 앞길을 가로막겠다면."

대공자의 눈에는 살기가 번들거렸다.

"나는, 가족이라도 베겠다."

* * *

"제대로 미친 놈이군."

정면으로 걸어가는 이시아를 향해 대공자는 검을 겨눴다. 심지어 그 검은 내가 익히 알고있던 검이었다.

'검선의 검을 저 놈이 주웠구나.'

중간에 찾으러 갔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누가 기연삼아 가져갔다고 흘려버렸지만, 설마 그걸 대공자가 가져갔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상관없어.'

검선의 검은 그냥 평범한 명검일 뿐이다. 사용한다고 자하신공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멋'을 더 신경쓴 검일 뿐이다.

"쓸데없이 멋진 검을 쓰네. 괜히 고수들이 직검을 쓰는게 아닌데."

저벅.

이시아는 대공자의 앞에 섰다. 신랄하게 빈정거리는 어조였으나, 대공자는 묵묵히 검을 이시아에게 겨누며 이시아를 비웃을 뿐이었다.

"진정한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 법이지."

"장인도 본실력을 내기 위해서는 가장 우수한 도구를 사용하는 법 몰라?"

"건방진."

이시아의 말에 대공자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언제부터 네가 내게 말대답을 할 정도가 되었느냐?"

"뭐래. 오라비 취급을 받고 싶으면 오라비답게 행동했어야지. 나, 아직도 네 치부를 누구에게도 안 밝혔어. 알아?"

"......."

대공자는 바로 침묵했다. 나 또한 이시아의 뒤에서 그녀의 선택을 조중했다.

나는 안다. 대공자가 이시아에게 저지르려고 했던 끔찍한 짓을.

천마가 안다면 십마집결이고 병자행세고 나발이고 바로 의자에서 뛰쳐나와 대공자의 얼굴을 바닥에 처박을 끔찍한 짓을 이시아에게 저지를 뻔 한 걸 알고 있다.

현생의 이시아는 내게 말하지 않았다. 미래천마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대공자도 이시아도 죽고난 뒤, 미래에서 대공자의 아래에 있던 여인 중 혈녀가 된 여자로부터 지나가는 말로 전해들었을 뿐이다.

"오늘, 네 더러움의 근원을 부숴버릴 거야."

이시아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달렸다. 대공자는 이시아의 목을 날리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어딜."

나는 대공자의 검을 좌수로 붙잡았다. 대공자는 화들짝 놀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네놈!!"

"부부는, 일심동체인 거 모르냐."

모르겠지. 혼자니까.

"그래도 양심이 있으니, 나는 안 때리마."

하지만 이시아의 주먹은 어떨까?

[작품후기]

생사경이 화경 상대로 공격은 할 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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