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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마결집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으로 모이는 경우가 있을까?
자신의 결정이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면, 누구도 대세에 편승하여 자기 의사를 무시하고 선택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천마신교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십마가 모였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그들은 의견이 만장일치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의견이 일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마교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내놓았다.
힘.
힘이 강한 세력이 천마의 자리를 취한다. 전통은 결국 힘의 논리 앞에 휴지조각에 불과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십마의 의견은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살아있을 때야 대공자든 소공녀든 누구든 지지할 수 있지만, 죽은 자가 어찌 살아서 지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대공자는 십마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오직 자신을 지지할 십마라는 허수아비를 세워, 십만마인의 지지를 받아 천마에 오르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기존 십마가 자신을 배신하고 능멸해도 묵묵히 감내했다.
단 한 명.
단 한 명만 반대표를 던져도 결국 십마의 의견 일치는 결렬되고, 그 뒤는 온갖 중상모략과 암살이 판을 치는 힘의 대결로 이어지기에.
"저 놈, 그래도 엄청 식겁했을 거야."
"그러니까."
대공자는 네 가지 보험을 들었다.
하나는 뢰마요, 하나는 수마요, 하나는 광마요, 하나는 무마다.
수마는 면전에서 배신했고, 광마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시험에 통과하고자 이름을 알아냈지만 효과는 없었고, 마지막으로 무마는 천마가 떡하니 나타나버리고 말았다.
"뢰마 덕분에 살았네, 정말."
"뢰마 머리 좋아. 양쪽에 팽당하지 않을 정도로 줄을 잘 섰다니까?"
대공자 측에는 십마 중 유일하게 대공자의 편을 들었다는 것으로.
소공녀 측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악연을 지울 기회를 줬다.
비록 수백이 수천을 상대로, 전력비가 무려 10배에 이르는 적을 상대하게되었지만 걱정은 없다.
이시아의 말대로 우리는 질로 승부를 하니까. 나 혼자서 일기당천의 무위를 보여줄 수 있는데, 거기에 광마까지 함께한다?
그야말로 금상첨화-
"안녕이다."
"...예? 광마. 잠시만요. 당신 지금-"
"누구를 지지하는지 밝혔으니 됐잖아. 애들 싸움에 어른 끼는 거 아니다."
광마는 단번에 자리에서 뛰어올라, 만마전의 객석 중앙으로 옮겨진 천마의 옆에 섰다.
"우오오!!"
명백히 방관하겠다는 태도에 대공자 세력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자연히 우리측의 사기는 한풀 꺾이고 말았다.
"저 사람, 진짜 종잡을 수 없네…."
"오히려 좋다. 혹시나 천마를 인질로 잡는다거나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르는 걸 사전에 막을 수 있으니."
천마는 현재 약하다. 아직 나에게 입은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회복되지 않은 척'할 뿐이다. 누군가 감히 천마를 상대로 직접 암살을 펼치려고 한다면, 천마는 무리를 해서라도 힘을 사용할 것이다.
만약 힘을 써버리게 된다면, 천마가 모처럼 이륜거를 타고 온 이유가 없어지지 않는가?
광마는 천마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천마의 옆에 섰다. 본인이 싸우기 귀찮아하는 것도 있지만.
"뭐, 광마가 없어도 돼.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싸우면 되니까."
이시아는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나를 포함한 십마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뒤에 선 마인들도 모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흐흐, 저 새끼들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잘 됐군."
"소공녀! 천마가 되시면 비무행 가는 겁니다!"
"전쟁이다! 크하하!"
다들 전투에 미친 존재들이다. 계략이나 모략 같은 것을 증오하며, 정면에서 때려부수는 것을 선호하는 짐승같은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숫적 우위에서 열세라고 겁을 먹을까? 전혀. 오히려 더 전력을 발휘하려고 할 것이다.
스륵, 스륵.
만마전의 위, 천장 밖에서 풀잎 하나가 바람을 타고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시간도 얼추 맞았고, 모두 무기를 들고 내공을 갈무리하며 숨을 죽였다.
잎이.
"전원."
떨어지는.
"전투준비."
순간.
""쳐라-!!""
와아아아아아아!!
마인들의 거친 함성이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 * *
이시아는 달린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앞으로 달린다. 수적 우위가 우리가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빠르게 적진을 와해시키며 앞으로 달렸다.
퍼억!!
이시아의 주먹이 앞을 가로막은 마인의 얼굴을 뭉게버렸다. 주먹을 당기니 코뼈가 부러지고 이가 하나 허공으로 날아가는게 슬쩍 보였다.
“죽어라, 소공녀!”
옆에서 단검을 든 작은 마인 하나가 이시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시아는 자세를 바로 잡은 뒤, 다리를 높이 치켜들었다.
쿵!
이시아는 단검을 피하며 마인의 등을 발로 내려찍었다. 척추가 부서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진각에 이시아를 향해 달려들던 마인들은 모두 주춤거렸다.
“크하하! 과연! 그 나이에 초절정이라니! 하지만 본녀를 이길 수 있을까?!”
“마암가패(魔暗佳覇) 옥소련?!”
화경의 고수가 이시아를 막아섰다. 두 사람의 나이차는 거의 3배에 가깝게 차이가 났으나, 옥소련은 이시아를 상대함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당신은 수치라는 걸 모르는 건가요?”
“응. 우리 딸이 대공자의 첩이 되었거든. 내 명예 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그런 각오라면, 얼마든지.”
이시아는 앞으로 달렸다. 옥소련은 검을 뽑아 이시아를 막으려고 했으나, 이시아의 옆에서 튀어나온 검기에 급히 몸을 막았다.
“큭?! 검마!”
“소공녀!”
이시아는 검마의 어깨를 디디고 옥소련을 넘었다. 옥소련은 급히 몸을 돌려 이시아를 추격하려고 했으나, 검마의 검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소공녀를 잡아! 소공녀만 잡으면 우리의 승리다!!”
대공자를 따르는 지린마인들을 모조리 이시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시아의 곁에는 이시아를 보호하는 십마가 있었고, 이시아를 지지하는 십마를 모두 죽여야 대공자가 천마가 될 수 있다.
“산개!”
이시아의 지시에 비천마인들은 모조리 흩어지며 각자 상대하기 쉬운 적들을 쓰러뜨리러갔다. 이시아는 앞을 가로막은 거구의 남자를 일격에 날려보내며 계속 앞으로 달렸다.
구천 명에 이르는 지린마인의 최후방으로 후퇴한 대공자 주지를 잡기 위해. 이시아는 마치 송곳처럼 인파를 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 이상은 다가오지 못하오, 소공녀.”
“큭...!”
이시아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앞에는 다섯 명의 남녀가 각자 무기를 든 채 이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교 십걸(十傑) 중 다섯 명이나 내 앞을 가로막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용서해주시오. 아무리 그대의 잠재력이 우리를 뛰어넘는다고 하나, 우리는 그대보다 몇 배는 더 오랜 시간을 먼저 살아온 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지. 끌끌, 여자가 천마라고? 백 년 넘게 그런 건 본 적이 없다!”
“...죄송합니다, 소공녀. 여기서 멈춰주셔야겠습니다.”
현경이 무려 다섯. 마교의 십대 고수 중 다섯이 앞을 가로막으니 이시아도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대공자가 당신들을 어떻게 포섭했지? 또 딸이나 손녀, 제자를 자지로 포섭했나?”
“.......”
모두가 침묵했다. 이시아는 자식들의 광명을 위해 오욕을 무릎쓰고 나선 이들을 비웃으며 주먹을 들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도 나중에 아이 낳으면 당신들처럼 될 거야. 그러니까...내 앞길 막지말고 비켜. 안그러면, 죽는다.”
이시아는 앞으로 달렸다. 다섯 명의 현경 고수는 이시아의 진격에 화들짝 놀랐으나, 주저하지 않고 무기를 뽑아 이시아를 견제했다.
“느려.”
나는 이시아를 노리는 검들을 밟고 이시아를 품에 안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를 보고 마인들은 한 번 놀랐고, 이시아를 향한 공격이 내 왼팔에 막힌 것에 놀랐고, 내 왼팔에 타오르는 붉은 불꽃과도 같은 혈강에 기겁을 했다.
“이게 무슨...!!”
“다 아는 얼굴들이구만.”
나는 이시아를 앞으로 내던졌다. 그녀는 내 왼팔을 디디고 앞으로 다시 달려나갔고, 나는 이시아의 뒤를 지키며 달렸다.
카앙, 카앙!
뒤에서 이시아의 뒤를, 나를 노리는 현경들의 추격이 이어졌다. 나는 그들의 공격을 혈영귀라수로 쳐내며, 놈들의 틈을 노려 오른손을 휘둘렀다.
서걱!
“큭?!”
현경 고수 답게 기습은 쉽게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력으로 사용하던 검은 검강째로 검신이 잘려나갔다. 나는 놈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며 이시아의 뒤로 다시 뛰었다.
“올테면 와봐라.”
누구도 이시아를 건드릴 수 없다.
대공자 주지를 향해 달려나가는 이시아를,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지키고 있으니.
* * *
"대공자, 불리합니다."
뢰마는 담담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옆에 있던 마뇌는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불리해? 누가. 내가?"
대공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일류 이상의 고수가 9천명이다. 초절정만 백여명에 이르고, 화경은 서른 가량에 현경 고수는 무려 다섯이나 된다. 그런데 우리가 져? 왜?"
대공자는 이를 갈며 전방을 가리켰다.
"저 놈 때문이냐? 저 자 때문이야? 저 시뻘건 핏빛머리 때문이냔 말이다!!"
"...저 자는, 비천색마인줄 압니다."
"안다! 나도! 다 알아! 그런데, 그런데…!"
대공자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악을 썼다.
"한 명에게, 현경 고수 다섯이 밀리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유감스럽게도, 현실이었다.
대공자가 열심히 허리를 흔들며 품은 수많은 여인들은 대부분 현경 고수와 깊은 관계가 있는 이들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제자나 딸, 손녀 등이 천마의 부인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대공자의 편에 섰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
현경 고수들은 단 한 명에게 묶여버렸다. 그나마 남아있는 현경 고수, 마뇌도 언제 마귀대주가 튀어나올 지 몰라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서른 명에 이르는 화경 고수 중 절반 이상이 수마 한 명-아니 한 마리에게 붙잡혔다.
나머지 화경? 남은 비천마인들과 다른 고수들이 능히 제압가능했다.
수적 우위는 분명 대공자가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질적으로 크게 밀리고 있었다.
단 한 명.
현경 고수들을 묶고 있는, 아니 가지고 놀고 있는 적발의 청년만 없었다면.
비천색마만 없었다면 진작에 소공녀를 제압하고 소천마의 자리를 취했을 것이다.
응당 자신이 가졌어야 할 자리였다.
왕은 왕자가, 황제는 황태자가 잇는 것이 법도다.
"...안 되겠군.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대공자! 그건…!"
"마화, 나오시오."
또각. 또각.
몸에 착 달라붙은 옷을 입은 퇴폐적인 미인, 마화는 손에 비파를 든 채 야릇하게 웃었다.
"시작, 할까요."
"당장. 만마전에 온 마인들은 모두 조치를 취해두었소."
"호호, 알겠어요. 그럼 시작합니다. 연주를."
마화가 비파의 현을 튕겼다. 그러자 사방에서 '컥'하고 각혈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대공자…? 이건?"
"별 거 없소. 마인들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응원의 힘일 뿐."
디링, 딩.
현이 울릴 때마다 마인들은 각혈했다. 눈동자가 붉어지기 시작했고, 뢰마와 마뇌 또한 자연히 몸에서 '어떤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대공자, 이건…!"
"이건 아닙니다, 이것 만큼은…!"
"뭐가 문제요? 내가 천마가 될 텐데."
대공자는 비릿하게 웃었다.
"천마가 천마신공의 힘을 감히 내가 베풀고자 하거늘, 무슨 문제라도?"
크아아아악-----!!
수많은 마인들이 각혈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폭혈대법.
마인들이라면 누구나 익히고 있는 금단의 내공신공이 마화의 현에 자극되어 강제로 잠력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대공자! 이대로라면 마인들의 목숨이-"
"이들은."
대공자는 붉은 눈동자 아래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좋은 부하들이었지. 내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오."
* * *
"내가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네 아들은 그보다 더한 놈이로구나. 천마신공을 풀어버리다니."
"......."
천마는 침묵했다.
"어찌할 거냐. 직접 나설테냐? 아니면 내가 나설까."
"...소공녀가 알아서 할 문제다."
천마는 최전방에서 두 주먹으로 마인들을 때려잡는 이시아를 보며 눈을 감았다.
"그 어떤 난관이 앞에 닥치더라도, 천마는 물러서지 않는다."
순간.
아주 서서히.
이시아가 지나간 길에 금빛의 빛무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작품후기]
앗. 시아 머리의 상태가...?
아래는 스포
원래는 공자주지가 몰락하고 소천마 즉위식 중에 반란이 일어나고 머리아픈 계략과 암습 암살이 가득한 형제의 난을 쓰려고 했는데
좀 더 빠른 천마망교 5P 씬을 쓰고 싶어서 바꿨습니다.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