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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마결집
죽은 자가 살아돌아왔다. 이 때 해야할 반응은 무엇인가?
하나, 경악한다. 엄연히 죽은 줄 알았던 존재가 다시 나타났음에 놀라고, 멀쩡히 살아있음에 놀란다. 이는 대부분의 마인들이 그랬다.
천마가 마치 ‘혈마’처럼 보이는 이에게 도움을 받아 이륜거를 타고 오는 것도 그렇고, 천마가 여전히 금발을 반짝이는 것도 놀랍고, 천마의 눈에 씌워진 안대도 놀랍다.
또다른 반응 하나, 반긴다. 죽은 자가 돌아온 것에 놀라는 단계를 넘어, 살아있는 것 자체에 감사히 생각한다.
“아버지...!”
“미안하구나, 딸아.”
소공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십만마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기에 소공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으나, 모두가 그녀의 눈물을 이미 보고말았다.
“아....”
아무리 당차고 남들의 앞에서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여도, 태생이 여자인 만큼 부친의 생존에 눈물을 흘리니 감동을 받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반응 하나, 담담히 받아들인다.
“천마께서 돌아가셨을 리가 없지.”
천마를 곁에서 보좌했던 이들, 천마를 수십 년간 믿고 따라왔던 이들, 순수하게 천마가 누군가에게 져서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 모두 천마의 귀환을 환영했다.
그리고 유일한 반응, 꺼린다.
천마가 살아서 돌아온 것을 꺼리고, 비록 의자에 앉아있다고 하더라도 천마가 멀쩡한 모습인 것을 꺼리고, 무공의 수위가 여전히 강해보이는 것을 꺼리는 존재가 하나 있다.
“아들아.”
“...예, 천마시여.”
“너는 내가 돌아온 것을 반기지 않는 듯하구나.”
“........”
대공자는 고개만 좌우로 가로저었다. 말로 대답을 했다가는 목소리가 갈라져 행여나 다른 이들이 소리를 듣고 ‘오호라’하는 심정을 느낄 수 있겠다 싶었으리라.
“다들 오랜만이네. ...그런데 미치광이, 나는 자네에게 편지만 부탁했을텐데.”
“마교의 십마라는 칭호를 준 건 너다. 흐흐, 예전부터 한 번 하고싶었지. 1주짜리 주식을 가지고 주주총회에서 깽판 치는 거...!!”
“...하여튼. 됐다. 사위, 일단 나를 무마의 자리에 보내주게.”
“!!!!”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특히 소공녀가 바로 고개를 들어올리며 반색했다.
“아버님...!”
“이야기는 나중에.”
덜그럭. 붉은 머리 청년은 천마를 무마의 자리까지 이끌었다. 아래에 깔린 붉은 강기의 융단은 청년의 발 아래로 다시 흡수되었고, 무마의 자리에 천마가 오르자마자 바로 이륜거가 붉게 물들었다.
“흡...!”
붉게 물든 이륜거 위에 오른 천마의 모습은 마치 옥좌위에 앉은 이국의 군왕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만 명의 검은머리 중원인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찬란한 금발을 휘날리는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천마에게로 이끌렸다.
“본래, 무마란 존재하지 않는 자. 전대 무마도 없었고, 전전대 무마도 없었지. 무슨 말인지 다들 알겠나? 무마의 자리는 본래 천마의 자리라는 게야.”
“...큭.”
역대 십마집결에서 단 한 번도 무마는 나타난 적이 없지만, 단 한 번도 의견을 밝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무마는 항상 여러 소천마 후보 중 자신의 생각을 알렸다.
“천마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지지할 수 없는 노릇이니, 무마라는 가상의 마인을 만들어낸 셈이지. 흐흐, 그래. 아들아. 전대 천마 세대의 무마가 누구를 선택했는지 아느냐?”
“...천마를 선택하셨습니다.”
누구나 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마의 선택에 대해서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다른 모든 이들의 선택은 최초에 갈렸을지언정, 무마의 선택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모든 무마는 항상 옳은 선택으로 천마를 선정했고, 그들은 반대하는 자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천마가 되었다.
“그래. 그러니 나도 무마로서, 천마로서 의견을 밝히겠다.”
천마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역대 천마 중에서도 가장 강했던 남자가 스스로 의견을 밝힌다? 천마신교의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상황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지. 천하는 변하기 마련이고, 천마는 앞으로 변화하게 될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기 위한 자가 필요하다.”
“.......!!”
이미 대공자는 알아채버렸다. 그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졌고, 천마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주지야. 너는 전쟁을 일으킬 상이다.”
“...천마라면, 마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정마대전을 꿈꾸지 않겠습니까?”
“그래. 나도 한때는 그랬지. 나의 무위를 뽐내고 싶었으며, 나의 힘을 중원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허나 이제는 다르다.”
천마는 만마전의 마인들을 둘러보고는 대공자에게 소리쳤다.
“위주지! 너의 정마대전은 틀렸다! 수많은 고수들을 암살하고 독살한 뒤, 삼류 무사만 남은 강호를 점령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더냐!”
“......‘효율’적으로 중원을 점령하기 위함입니다.”
대공자는 마치 치부가 드러난 이처럼 이를 갈았다. 천마의 말에 대공자를 연호하던 이들 중 일부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그냥 가서 들이박는 거 아니었어?”
“독살...? 그런 비겁한 짓을...!”
“정면에서 깨부수는게 아니라면 정마대전이 무슨 의미가 있지? 그건...학살이 아닌가?”
호전적인 일부 마인들, 특히 투쟁에 미친 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시아,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천리비무행.”
소공녀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뜻을 밝혔다.
“기존의 정마대전은 무작정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죽였죠. 민간인을 학살하고, 약탈하고.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정파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명예를 꺾을 겁니다.”
“어떻게?”
“그들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생사결로 강호 무림 전체를 봉문시킬 겁니다. 이 주먹으로.”
마인들은 소공녀의 말에 침묵했다. 그리고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대공자의 방식과 소공녀의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의 성향이 가지고 있는 문제기에, 그 누구도 쉽사리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어느 쪽도 일장일단이 있다.
“본인, 마귀대주 아경현이 감히 의견을 밝혀도 되겠습니까?”
“말하게.”
“감사합니다, 천마시여. 모두가 알다시피, 본인은 남궁세가의 가주와 은원관계가 있습니다. 과거 그에게 패배한 아픈 경험이 있지요.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칼을 갈았으나, 병으로 앓아누운 그 자를 베고 싶지 않습니다. 설령 제 목이 날아가더라도, 그와 생사결로 목을 베고 싶습니다. 본인은 소공녀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미친놈. 네놈은 머리를 쓸 줄 모르는 것이냐?”
마귀대주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백발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천마시여! 본인, 마뇌에게도 발언의 기회를!”
“좋다.”
“마인들이여! 우리가 정파인인가? 복수라함은 가장 적을 비참하게 죽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수! 그들이 생사결에서 패배하여 ‘나를 죽여라’와 같은 말을 하게 할 것인가!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억울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죽게해야한다! 비열한 게 아니라, 효율적인 것이다! 믿었던 제자에게 배반당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마인에게 범해지는 모습을 보며 죽어야 한다! 대공자는, 그대들에게 가장 확실한 복수의 기회를 줄 것이다!!”
의견이 갈렸다. 너도나도 하나씩 서로 눈치를 보며 긴장하기 시작했고, 천마는 손을 들어올리며 좌중을 제압했다.
“그만.”
내공도 싣지 않았으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천마는 이미 육성을 내는 것 만으로도 목소리가 하늘에 닿고 있었다.
“너희들의 의견은 잘 알았다. 하지만 십마의 결정이 곧 천마의 결정. 마뇌, 지금 의견은 어떻게 갈렸지?”
“...대공자가 1명이며, 소공녀가 9명입니다.”
천마의 의견은 물을 필요도 없었다. 모두가 이미 천마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었고, 천마의 성정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곤륜의 현녀를 상대했을 때, 모두가 천마는 대공자의 방식으로 싸우는 줄 알았다. 현녀가 강해지는 곤륜산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며, 천마는 상대가 약화되는 효율적인 전투를 추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인들은 신화를 보았다.
산맥이 무너지고 대지가 갈라진 흔적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천마는 물러서지 않는다.
상대가 강하면 강한대로, 오히려 상대가 낼 수 있는 전력을 내기를 바란다는 것을. 준비만전인 상대를 정면에서 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천마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지야.”
천마는 쓰게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계책도 계략도 아무 의미가 없다.”
“......하.”
대공자는 한탄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아직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아직, 뢰마가 남아있습니다.”
“........”
모두의 시선이 뢰마에게 꽂혔다. 만장일치로 정해야하는 만큼, 뢰마가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하는 바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게 된다.
“뢰마가 저를 지지하는 이상-”
“비천뢰마인가, 지린뢰마인가?”
천마의 말에, 대공자는 표정이 일변했다. 뢰마는 검마를 슬쩍 훑고, 천마와 천마의 뒤에 있는 적발 청년을 훑고 마지막으로 소공녀에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
“저는 두 분을 함께 모신 입장으로서, 누구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이 목숨을 다하여, 마지막 기회라도 드리고자 합니다.”
뢰마의 말에 마인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소공녀는 울것처럼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대공자 또한 눈을 감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는, 여전히 대공자를 지지합니다.”
어째서, 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뢰마는 유모로서 소공녀의 어머니였던 동시에 대공자의 어머니기도 하였으니까.
“뢰마여. 결국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천마. 누구 한 명은 대공자 님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래야지. 씁. 항상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구만. 만마전의 마인들은 들으라!”
“““하명하시옵소서!!”””
마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십마결집으로 결론이 나지 않은 이상, 마인들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마교의 소교주를, 소천마를 정한다! 자신이 따르고자 하는 이의 뒤에 서라! 물론, 본인은...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겠다.”
뢰마가 십마결집을 붕괴시켜 중립을 지켰다면, 천마는 참전하지 않는 것으로 중립을 지켰다. 뢰마가 두 남매의 유모인 것처럼, 천마 또한 두 남매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일각이다!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곳으로 가라!”
이미 결론은 보이지만, 아들을 위해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일각 뒤, 소천마를 결정하는 전쟁을 치를 것이니!!”
결국, 내전이다.
* * *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있듯이, 일각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다.
특히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으면, 상당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게 된다.
“괜찮겠나?”
“응, 괜찮아.”
나는 이시아와 따로 잠깐 시간을 가졌다. 몇 달 만에 만나는 해후를 나눌 새도 없이, 우리는 대공자의 세력을 한 번 꺾기 위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예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일이야. 만약 뢰마가 나를 지지해서 내가 오늘 소천마가 되었다면, 바로 다음 날 반란이 일어났을 걸?”
“...그럴 가능성이 높지. 뢰마도 그걸 아니까 이 자리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거고.”
뢰마는 대공자에게도 기회를 줬지만, 동시에 이시아에게도 기회를 줬다. 대공자가 뒤에서 암약하며 계략을 펼치지 못하게, 이시아가 가장 잘 하는 ‘정면싸움’이라는 무대를 만들었다.
천마가 중립의 위치에 선 이상, 나머지는 이제 대공자와 소공녀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곧 소천마가 될 것이며, 훗날 천마가 된다.
“떨려?”
“전혀. 네가 옆에 있는데 뭐가 떨리겠어. 그보다....”
이시아는 내 머리칼과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색깔 진짜 특이하네. 나 나중에 현경으로 올라서 아이 낳으면, 금색이랑 붉은 색이랑 섞여서 나오는 거 아니야? 막 금발에 한쪽만 붉은색으로 한 가닥 머리에 튀어나와있고.”
“...설마.”
“후후, 나중에 낳아보면 알겠지. ...슬슬 시간이네. 온다.”
대공자의 뒤.
만마전의 9할 가량이 대공자의 편을 들었다. 십마결집 이전부터 대공자를 따르기 시작했던 자들로, 저들은 모두 대 색마시대에 편승한 자들이기도 했다.
강간, 방화, 약탈, 살인. 그 모든 흉악범죄를 저지르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자들. 그건 이시아를 따르면 결코 하지 못할 일들이며, 위주지를 따를 때 가장 효과적으로 누릴 수 있다.
대공자의 뒤에 있는 9천 마인에 비해, 이쪽에 있는 이들은 고작 700여명이 되지 않는다. 마교 십마 중 여덟-무마와 뢰마를 제외한 모두가 이쪽에 있으나, 절대적인 사람 수가 부족하다.
“괜찮아. 애초에 저놈이 사람들 모으라고 방치했던 것도 오늘 쓸어버리려고 했던 거니까.”
“...그래. 이번에 마교도 확 바꿔버리자.”
“당연하지. 나는....”
힘으로 모두를 박살낸다. 설령 양에서 밀리더라도.
“질로 승부하는 여자야.”
“.......”
일각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