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06화 (50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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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마결집

광마!

그는 누구인가.

미치광이다. 종잡을 수 없는 미친 존재다. 미칠 광(狂)이라는 글자는 누구보다도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글자이며, 광마를 본 이들은 모두가 그를 미쳤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광마는 어떠한 방식으로 미쳤는가?

그에 대해서, 광마를 아는 이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평범한 광인이라면 강호에 널린 미친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되고, 특별하게 미친 이들이라면 그 특징을 나열하면 되지만, 광마는 예외였다.

비상식의 괴물.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자.

‘미치광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자.

환마처럼 치매를 앓았는가? 아니다.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을 내린다. 지적 능력이 다른 이들에 비해 압도적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내리는 선택이나 기준은 강호의 법도를 따르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하며, 그게 중원인들의 상식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저 명예직이라고 알려진, 참가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광마가 등장했다. 누구보다도 붉은 장발을 휘날리며, 당당히 광마의 자리에 서는 그를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설마 저 자가....”

“십마 중 최소 두 명은 현경 고수로 채운다고 하더니, 설마 광마가 그럴 줄이야.”

“무섭도다, 현경 할당제!”

만마전에 모인 마인들은 광마의 존재를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무공에 대해 탄복하는 이들도 있고, 저런 자에게 광마라는 칭호를 붙인 천마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고,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붉게 머리를 물들였는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순식간에 시선이 광마에게로 몰렸다. 이는 대공자가 상정한 최악의 가정 중 첫 번째 상황에 속한다.

“...젠장.”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존재가 나타날 경우. 하지만 아직은 괜찮다. 대공자는 미리 준비한 말을 꺼내들었다.

“...당신이 광마라는 걸 증명할 방법은 있습니까?”

“뭐? 크하하하!!”

광마는 그의 이명대로 미친 사람처럼 크게 웃었다. 현경 고수를 상대로 당당히 의사를 밝히는 대공자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공자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그가 진실로 광마이며, 이번 일로 심기가 뒤틀려 대공자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대공자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을 하는 셈이다.

“좋다. 본좌가 지금껏 마교에 얼굴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내가 광마인 걸 증명해야겠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를 증명해줄 수 있는 나의 벗, 천마는 이곳에 없구나.”

“...벗.”

웅성웅성. 마인들은 광마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주목했다. 천마와 광마의 관계에 대해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천마가 광마를 굴복시킨 이야기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천마신공과 광마혈수라는-

“하지만 본좌를 아는 자들은 남아있지! 거기, 너!”

광마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품속에서 꺼낸 물건은 붉은 창이었고, 광마는 그걸 만마전의 객석에 있는 이를 가리켰다.

“본좌가 누구냐!”

“......여전히 미쳤군.”

흑발의 젊은 여인은 객석에서 일어나 좌중을 향해 포권했다. 아는 이들은 헛바람을 들이키고, 모르는 이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인은 천마께 구명지은의 은혜를 입어 마교에 투신한 자요. 옛 별호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광마를 증명할 정도는 되겠지. ...본인은 한 때 무상파파라고 불렸던 존재요.”

“시, 십상련?!”

“.......”

여인, 무상파파는 옆에서 놀라듯 외치는 남자를 흘겼다. 대부분 남자처럼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 무상파파는 무림 공적 중 하나인 십상련의 십대 고수가 아니던가!

그 자가 마교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광마까지 존재를 두둔한다?

“그, 그럴 리가. 무상파파는 무림맹주에 의해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죽을 뻔했소. 맹주와 거기 있는 광마에게 죽을 뻔했지. 하지만 장강 물길에 빠져 죽을 뻔 했고, 천마께서 본인을 거두셨소.”

“그녀가 무상파파라는 건 본인, 광천도주가 별호를 걸고 증명하겠소.”

“본녀, 참영수련검의 연홍도 거들겠어요. 저 여인이 무상파파라는 걸.”

“크윽...!”

무상파파의 존재에 대해 증명이 이루어지고, 무상파파가 광마의 존재를 증명한다. 더 이상 걸고 넘어지기에는 대공자 스스로도 부담이 컸다.

“당시 천마는 자신과 무공이 비슷해보이는 저분과 생사결을 펼치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서로 죽기 직전까지 싸우셨고, 천마께서는 저분께 마교의 미래를 맡겼습니다.”

“고맙소, 무상파파. 이렇게 본인이 굳이 불필요한 증명을 하는 이유는, 본인이 천마신공을 수여받지 않는 십마이기 때문이오!”

웅성웅성.

“...알겠습니다. 그럼 광마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우선 순서를 바꿔보지요. 나머지 한 자리는 공백의 좌와도 같으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비어있는 자리는 대공자의 말 그대로 무(無)의 자리였기에, 몇몇 아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공자의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이 자리에 있는 아홉 명의 마인에게 묻겠소! 선택하시오! 대공자인가, 소공녀인가! 나를 따라 지린의 길을 갈 것인지, 소공녀를 따라 비천의 길을 따를 것인지!”

화륵!

십마가 있는 자리 아래에 빛이 환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불이 들어온 뢰마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허리를 숙였다.

“본인, 뢰마는 천마신교에 몸을 담은지 어언 60년이 넘은 자로서....”

뢰마의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전대, 전전대 천마를 모신 자로서 그녀는 이전까지의 십마결집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를 풀었고, 한 가지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러므로 저는 여전히 장자 상속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비의 업은 적자인 아들의 몫. 천마는,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와아아아아-----!!!

대공자!! 대공자!! 대공자!!

“.......”

모두가 대공자를 연호하는 가운데, 뢰마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소공녀와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본인이 말하겠소.”

환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본인은 천마로부터 영예롭게도-”

“결론만 짧게 말하시오.”

광마는 환마의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손으로는 검지와 중지만 펼친 채 붙였다 떼어내며 가위를 자르듯 손짓했고, 소공녀를 향해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소공녀는 허탈하게 웃었다가 환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뚱한 얼굴의 환마는 소태씹은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본인은, 비천환마요.”

만마전의 열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리고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었고, 모두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비천적마.”

“비천도마.”

“비천여염마.”

“비천여빙마.”

“비천여검마.”

여섯 명 연속으로, 십마 중 무려 여섯이 비천의 길을 따르기로 했다. 예전부터 소공녀의 사람이었던 비천삼마도, 새로이 소공녀를 따르기로 한 비천‘여’삼마도 소공녀를 지지했다.

단숨에 표가 갈렸다. 과반수는 이미 넘겼다. 하지만 마인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대공자를 바라봤다.

후계자를 결정하는 일은 본디 ‘만장일치’.

다들, 이번 의견 발표 뒤만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기대한다고 한다면, 지린수마가 다른 이들을 전부 잡아먹는 것과 같은-

“비천수마.”

“......뭐라?”

가만히 있던 대공자는 눈에 불을 켜며 고개를 돌렸다. 검은 호랑이를 연상케하는 가면을 쓴 수마는 가면 아래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포권을 취했다.

“야생은 약육강식. 짐승은 강자를 따르는 법.”

“어째서, 나를 배신했...?”

“배신이 아닙니다, 대공자.”

수마는 다른 이들을 쓱 둘러보며 다시 허리를 숙였다.

“수마는 대대로 여러 후보 중 가장 강한 존재를 지지해왔습니다. 이번에도 그 선택의 기준은 다르지 않습니다.”

“.......”

가장 짐승같은 여자가 소공녀를 따른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공자는 당장이라도 비천수마가 된 이를 죽이고 싶어했으나, 아는 사람은 모두 다 안다.

“대공자. 저는 저보다 강해질 자를 천마로 모십니다.”

수마.

소문 속 존재인 광마와 무마를 제외하면, 대외적으로 알려진 십마 중 최강의 존재. 마교 내에서 순위를 늘어놓으면 당당히 10위안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최강자.

“...두고보지. 다음!! .......”

8명이 각자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순번은 이제 광마의 차례. 광마는 근엄한 얼굴로 둘에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본좌는 이 자리에서 시험을 내리겠다. 시험에 통과하는 자를 지지할 것이다.”

“뭐...라고...?”

“시험은 간단해. 질문을 하나 할테니, 그걸 맞추면 된다. 천마가 될 존재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몰라서야 되겠느냐? 질문이다! 맞춰봐라!”

광마의 사자후가 만마전에 퍼졌다.

“내 이름!”

“......?”

“본좌는 본좌의 이름을 아는 자를 지지하겠노라! 정말로 자신을 위한 표를 얻고자 한다면, 10명밖에 없는 투표권자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겠지. 별호? 무공?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이름! 이름이다!!”

마인들은 서로 묻고 답하며 광마의 이름을 찾고자했다. 대부분 광마를 인증한 무상파파나 십상련의 시대에 중원을 호령했던 이들에게 질문을 퍼부었고, 그들 모두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치광이?”

“광견.”

“이국의 검은머리 쟁자수?”

그 누구도 광마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비천의 길을 따르는 마인들도 서로의 눈치를 보며-특히 검마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초조해했다.

“끄응...분명 무슨 성이었는데...!”

“하하하, 비천여검마! 그대에게 알려준 이름은 나의 13번째 가명이었노라!”

“...저러니까 미친놈 소리듣지.”

“대답하겠소.”

대공자의 말에 좌중이 침묵했다. 대공자는 너무나도 평온해보였고, 광마는 기대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우성(金雨星).”

“......호오.”

광마는 눈썹을 치켜뜨며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알았지? 그건 무림맹에서도 맹주나 군사급이 아니면 모르는 이름인데.”

“별 거 없소. 삭제되고 말소된 기록일지언정, 사람의 기억은 남아있는 법. 나는 이미 강호의 비사(秘史)를 알고있소. 그대를 숨긴 무림맹의 실체를 알고 있지.”

모두의 목소리가 대공자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대공자는 부채를 펼치며 마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십상련을 멸망시킨 장본인! 본디 무림맹주의 명예를 가져갔어야 했을 자! 하지만 명예와 권력을 버리고 다른 것을 선택한 자! 혈혈단신으로 월영신교를 멸망시킨 진정한 중원의 영웅! 이름하야, 금! 우! 성!”

“......거기까지 알고있다니.”

짝, 짝, 짝.

광마, 금우성은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군. 천마는 말했다! 언젠가 자신의 후계를 정할 때, 나의 일을 후계자의 시련으로 내어달라고! 십상련의 비화도 알지 못하는 자, 어찌 천마가 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충분히 시련을 통과했다, 공자주지!”

“고맙소. 지린광-”

“비천광마!”

“.......”

“뭐, 왜. 뭐.”

* * *

“김우성 저 미친 놈이 왜 여기있지?”

“당신도 김우성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당연하지. 성은 금(金)인데 ‘김’으로 발음해달라니, 미친놈이 아닌가? 신강까지 오다니, 저 미친놈.”

“...하긴, 이름만 누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알았으면 끝날 일인데.”

“뻔하지. 자기 일 아니라고 지금 신난 거다. 저놈, 분명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걸?”

***

마인들은 서로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대부분 광마에 대한 말못할 험담, 욕설, 그리고 패륜적인 언어가 대부분이었다.

요지는 하나. 대공자는 답을 말했고, 소공녀는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잖은가.

“이야, 대환장 파티 직관 개꿀. 이맛에 트롤링 한다니까.”

“...뭐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아, 헛소리일세. 자네, 귀가 참 밝군.”

광마의 말에 소공녀는 헛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미 언질은 들어 알고있었지만 이토록 대화가 통하지 않고 혼잣말이 심한 존재일 줄이야.

- 광마? 조심해. 성인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는 존재니까. 어떤 미친 마인이냐고? 겪어보면 알아. 한 마디로? 관심종자. ...관심종자가 뭐냐고? 그러니까....

“...당신 말이 옳네.”

“자네는 누구랑 이야기하는 건가? 설마 내면의 자신?”

“아뇨.”

“크윽...설마...!”

소공녀와 광마가 서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하는 걸 본 대공자는 둘 사이의 관계를 눈치챘다.

“이미 마음을 정하고 왔.... 하, 하지만 그럴 리 없어! 그대의 이름은 금우성이다! 내가 몇 번이고 확인했-”

“쓰는 건 금우성. 읽는 건 김우성. ...중원 밖에서 온 분의 이름을 중원식으로 표현하는 거랑 다르죠.”

“그렇소. 본인은 비천광마, 지옥불반도에서 온 궤이(軌李)-김우성이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모두가 하나는 이해했다.

광마는, 소공녀를 지지한다는 걸.

“......하, 하하.”

대공자는 간신히 진정하며 부채를 접었다. 그리고 남은 한 자리를 부채로 가리켰다.

“이건 여흥에 불과했을 뿐! 내 다른 십마들에게 마지막으로 나를 따를 기회를 줬건만! 보시오! 무마가 없소! 십마가 보여야 하거늘, 이곳에 있는 자들은 아홉명! 어린 아이가 와서 산수를 해도 하나가 모자라는 것을 알테지! 그러므로 이번 십마결집은-”

덜커덩.

문이 열렸다.

무마의 길 앞에, 붉은 강기가 융단처럼 길게 깔렸다. 마치 황제의 행차를 알리듯, 무마의 자리까지 ‘강기’가 깔렸다.

“뭐, 뭐...?”

덜그럭, 덜그럭.

무언가가 돌아가는 소리가 만마전에 울려퍼졌다. 모두가 열린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곧 기립하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세상에...!!”

“마인을 찾았나, 대공자.”

나무바퀴가 양 옆에 달린 이동식 의자 위에,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안대의 남자가 한쪽 적안을 빛내며 나타났다.

“여기, 천마가 있다.”

천마는, 붉은 머리칼의 청년이 끄는 바퀴의자에 탄 채 만마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품후기]

Q : 저 아조씨 왜 저래요?

A : 원래 저런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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