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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선녀 독고연
독고연은 잠들었다.
기립 교배천근추는 그녀를 쾌락의 저편으로 보내버렸고, 몸이 구속된 채로 기절해버린 것이다.
"......츕."
이미 많은 양의 정액을 독고연의 안에 사정했다. 나머지는 여운만 해소하면 될 일이었고, 팽유월은 바로 가슴으로 나를 위로했다.
"유월아,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흥, 고작 이 정도로 그러면 팽가의 이름이 울어요."
"그래도."
"가슴으로만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청소해드릴테니까."
빨리 끝나면 팽유월도 빨리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나는 팽유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많은 사정에 따른 여운을 즐겼다.
"연이를 잘부탁한다."
"물론이죠. 애가 좀 많이 여우같기는 하지만...그게 귀엽잖아요."
"그렇지."
남들에게 전혀 질투심을 가지지 않을 것 같은 여자가 제일 질투심이 심하다?
어불성설 같지만 사실이다. 독고연은 다른 모든 것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독고세가에 갇혀있을 때는 새장 밖의 새들을 부러워했고, 새장을 빠져나온 지금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다른 새들을 부러워했다.
"연이는 말이에요, 같은 여자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 예뻐요. 선녀같다는 말...정말 상공이 말씀하실 때마다 구구절절 옳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작 자신은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면서.
남들보다 체구는 조금 작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다른 이들과 비교는 될 수 있지만, 누구보다도 사람의 사랑을 받는 작은 새라는 걸 독고연은 지금까지 자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자각할까? 모른다. 나는 그저 계기만 마련했을 뿐이다.
깨달음을 얻은 다른 독고연과 원래의 독고연이 다시금 하나가 된다면.
원래의 독고연이 기억을 잃은 독고연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포용한다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자애.
스스로에 대한 사랑.
그건 자기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나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깨우치고 강점으로 삼는 것.
독고연은 자신의 강점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고, 그걸 내게 갈구했다.
아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상공. 연이를 믿으세요. 상공에 대한 마음은 저에 못지 않은 강인한 아이니까요."
"...그래."
지금.
독고연은 스스로를 관조하며 깨달음을 얻고 있다.
나와의 관계를 통해 쾌락의 절정에 다다라 기절했지만,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 계기가 되리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다른 자신과 이야기라도 하고 있을까?
어느쪽이든 나는 독고연이 깨달음을 얻고 눈을 뜨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진정으로 그녀의 몸에 나의 사랑을 새겨넣기 위해서.
...비록 지금 눈으로 보이는 상태는 구속되어 과도하게 겁간당한 여인의 모습이지만.
* * *
저벅, 저벅.
독고연은 긴 다리를 걸었다.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구름 위를 거닐듯 다리를 끝까지 건너갔다.
"여긴…."
"무릉도원. 어서와요."
"...!!"
도원의 정문에는 독고연이 있었다. 소복과도 같은 흰 무복을 입고, 가슴부터 아래까지 피를 뚝둑 흘리며,독고연은 죽어가는 채로 독고연을 맞이했다.
"너는…."
"지금, 행복해요?"
독고연이 물었다.
"사랑하는 낭군님의 주변에는 수많은 여인들이 있고, 당신은 여러 여자들 중에서 고작 한 사람에 지나지 않죠.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에서 한 사람씩만 뽑아도 18명이고, 당신은 독고세가를 대표하는 여자일 뿐이에요."
"신랄하네."
"그게 사실이니까요. 아무리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고 한들, 그런 건 나중에 결국 소재가 떨어지기 마련이에요. 언제까지 순진한척, 언제까지 색녀스러운척 양쪽을 오고가면서 그분을 저울질하겠어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마모될 거에요. 당신을 바라보지 않는 그분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환멸하겠죠."
"그만."
독고연은 엄한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이이상 가가를 모욕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당신, 지금 미쳐있는 거 알죠?"
독고연은 반론하지 않았다.
"목숨을 구해준 남자를 향한 연심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과해요. 가문을 배신하고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결국 얻는게 사랑인 건가요?"
"그래."
"사랑이라는 감정이 평생 갈 것 같아요? 안 그럴 걸요. 언젠가 사랑이 식는 때가 올 거에요. 애정은 식을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스스로에 대한 환멸과 자기혐오로 또다시 미쳐버리게 되겠죠.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게 뭐."
독고연은 거리를 좁혔다. 입구를 가로막고있던 독고연은 독고연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네요. 이렇게 얘기해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누군가의 여자가 될 수 있을지언정, 그는 당신만의 남자가 되지 못한다는 거에요!"
"알아. 천가장만 하더라도 벌써 여럿이 있는 걸."
독고연은 자조하며 답했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분이 있는데 왜 한 명만 보내주셨을까? 견희 언니에게는 견희 언니의 연인이 있고, 시아 언니에게는 시아 언니의 연인이 있고, 가가가 나만의 연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니까요. 그 모든 연인이 한 사람이고, 당신은-"
"하지만."
독고연은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내 목숨을 구해주신 분은 단 한 분 뿐이야. 견희 언니를 거두어주신 무당파의 고수도, 시아 언니를 지지하는 비천색마도 그분의 또다른 모습이지. 다 같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가가가 내 목숨을 안 구해줬어?"
"그건 당신을 따먹으려는 음습한 계책이었을 뿐이에요."
"상관없어. 내게 있어서 가가는, 내 목숨을 구해주신 것 만으로 이미 충분해. 구명지은은 평생을 갚아도 부족하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은."
독고연은 다급한 목소리로 독고연을 붙잡았다.
"정말, 이거로 만족해요?!"
"...만족 못 하지. 나라고 여럿이서 같이 공유하고 싶겠어? 다른 예쁜 언니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볼 때마다 그래. 나만의 남자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하지만 그게 안 되잖아."
독고연의 손에 푸른 검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내기는 검의 형태로 굳어지기 시작했고, 독고연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평생동안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평생동안 사랑을 갈구할 거야."
"그러다 배신당하면요?"
"그 때는, 죽는 거지."
단호한 독고연의 말에 주변이 전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일 없어. 가가는…."
푸욱.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시는데, 어떻게 배신하시겠어?"
독고연은 눈앞에 있는 소녀의 심장을 찔렀다. 예전처럼, 그 아이는 피를 왈칵 쏟아내며 눈을 반쯤 감았다.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네요. 논리와 이성이 전혀 없어요. 스스로 아버지의 실체를 파악해냈던 그 냉철함은 어디로 사라진 거죠? 가만히 앉아서 풍문만으로 강호의 시류를 읽어내는 총기는 모두 어디로 갔나요? 완전히 미쳐버린 건가요?"
"미쳤지."
독고연은 검을 뽑아 수평으로 세웠다.
"아버지가 옛날에 그러셨어. 사랑은 미쳐버리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건 아버지 말씀을 잘 따르는, 효도지."
"......."
왈칵. 독고연은 다시 피를 쏟아냈다. 가슴을 찌른 검 옆으로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가가를 위해 살겠어."
서걱! 독고연은 자신을 베었다. 손에 들려있던 검기는 영롱하게 빛나며, 서서히 보라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무릉도원의 안으로 들어온 독고연은 꽃밭에 도착했다. 자신이 처녀혈을 흘렸던 바로 그곳에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당신, 당신은 나."
"아니야. 틀렸어."
독고연은 검기를 겨누며 활짝 웃었다.
"너는 나고, 나는 나지."
"...이기적인 깨달음이네요."
"원래 나로부터 태어난 애가 말이 많네. 절대 안 져. 무공으로도, 색공으로도, 사랑으로도."
"...후우. 좋아요.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있지만, 해보도록 하죠."
독고연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반대쪽을 향해 검을 사선으로 내리며, 아래로 휘두르려는 자세를 취했다.
"잘 들어. 어차피 나한테 하는 얘기지만, 네가 첫번째야."
독고연은 앞으로 달렸다.
"내가, 다 이길테니까."
* * *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독고연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가리던 안대는 벗겨져 바깥의 따스한 햇살이 느껴졌고, 귀를 막은 솜은 빠져나와 주변의 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찌르르.
밖에는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렸다. 따사로운 햇살에 온몸이 나른했고, 독고연은 조금 늦게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다.
“일어났어?”
그는 독고연이 있는 침대에서 직접 과일을 깎고 있었다. 독고연은 그 모습에 괜히 심술이 났다.
“...뭔가 억울한 것 같아요.”
“뭐가?”
“저는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가가는 태연하게 과일을 드시잖아요.”
“이거 내 거 아니야.”
그는 직접 깎은 과일을 집어 독고연을 향해 건넸다.
“아앙.”
“.......”
독고연은 입을 벌려 그가 건네는 과일을 직접 받아먹었다. 저녁 이후로 먹은 거라고는 하나 뿐이었기에 그녀는 다소 공복을 느꼈고, 그가 건넨 과일은 정말이지 달콤했다.
시원한 과육 사이로 퍼지는 따스한 기운은 정말이지 역설적이게도-
“...내공?”
“잔재주야. 얼마전에 익혔지.”
그는 과일을 들어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는 채양하지 않아도 나의 기를 일부 나누어줄 수 있게 되었단다.”
“내공, 많이 부족하신 거 아니었어요?”
“괜찮아. 용봉지회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고, 지금 당장 현경들이랑 싸울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싸우더라도 뭐….”
그는 왼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멋쩍게 웃었다.
“연이는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그럴 수는 없죠.”
독고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제가 가가보다 약하지만, 언젠가 더 강해질 거예요. 그리고 모두를 이기는 존재로 탈바꿈하게 되겠죠.”
“천하제일을 노리기로 했나?”
“네. 천하제일검이 되겠어요. 제가 가가의 검이 될게요. 천가장을 지키는 검이 되겠어요. ...가가를 위한 여인인 동시에, 검이에요.”
“......나 참.”
그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신검합일은 신검합일이네.”
“후후….”
여인으로서의 몸(身)을 가지고, 한 남자의 검(劍)으로 살겠다. 가정을 지키는 검인 동시에, 바깥의 위협을 먼저 제거하는 검이다.
“가가, 정말 고마워요. 제게 사랑을 가르쳐주셔서.”
“나도 마찬가지다, 연아. 나를 사랑해줘서 정말 고맙구나.”
그는 독고연의 앞머리를 간질이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사랑한다.”
“읏...!”
고작 한 마디. 어떻게 생각하면 공허한 울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말이건만, 독고연은 그 낮은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심장이 떨리고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여인들에 대한 질투심. 자신에 대한 자학심.
그 모든 부정한 감각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 전부 날아가버렸다. 새삼스럽지만 독고연은 다시금 자신을 자각했다.
십팔음뇌절맥을 앓던 독고연을 치료했던 근본적인 약은 바로 사랑이었음을.
모친을 여의고 병에 걸리고 바쁜 아버지로부터 홀로 지내며 마음을 닫았던 여인의 마음을 연 방법은 다름아닌 따스한 사랑이었음을.
“가가.”
“응.”
“새삼 그래요. 가가는 왜 한 명인지. 가가같은 분이 여럿이었다면...저만의 낭군님이 되었을텐데.”
“......미안하구나.”
남자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내가 한 명으로 만족할 수 없어서, 네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구나.”
“...괜찮아요.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시고,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시는 것 만으로도 저는 마음이 풀린답니다. 그저 그 말씀 한 마디면 충분해요.”
“그래. ...그런데 너,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안 했나?”
“윽, 그건….”
독고연은 고개를 돌렸다.
“그, 가가가 그 말씀을 하실 때마다, 자꾸 가슴이랑 아랫배가 욱씬거려서….”
“사랑한다, 사랑해, 선녀같은 우리 연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구나. 사랑한다는 말은 할 때마다 이렇게 움찔거리며 가버리는 쉬운 여자라니.”
“으, 으으…!”
독고연은 차마 반론하지 못했다.
“...이런 여자로 만들어버리셨으면서.”
그저, 불만어린 투정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런데 가가, 저 이거 언제까지 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 거예요?”
“........”
“혹시...눈요기 하시려고 그런 거라면 슬슬 풀어주시지 않을래요? 다음에 또 해드릴테니까…. 계속 이렇게 뒤집혀 있으니까 그, 부끄러워서….”
독고연은, 뒤집힌 채로 깨달음을 얻었다.
[작품후기]
알몸으로 대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