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93화 (49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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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장의 삼색선녀

혈교의 문물은 현대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실 혈교의 문물이라고 하는게, 모두 혈교가 아니라 혈교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예요."

혈소예는 실과 바늘로 천을 빠르게 재봉하며 혈교의 문물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아버지가 어디서 온 분인지는 저도 몰라요. 짐작가는게 있다면, 하늘나라죠. 그분을 처음 만났던 의협이 말하기를,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더라구요."

"...정말로 천인(天人)인 건가?"

"그건 모르죠. 선인(仙人)일수도 있고. 선녀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저 하늘 위에 사람이 살고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혈교주가 선인이다, 라는 건 불분명했다.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아 지상으로 떨어진 이들은 수도 없이 많다. 혈교주가 그들 중 한 명일수도 있다는 가정에 뒷받침하는 근거는 몇 개 존재한다.

하나, 외모가 중원인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다르기야 하지만, 그는 저 멀리 서역의 색목인들과는 다른-혹은 잘생기게 닮은?-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둘, 말은 통하지 않아도 한자를 알고 있다는 것.

그가 가지고 있던 언어는 중원의 언어가 아니었다. 말은 할 수 있지만 한자는 읽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경우인가?

"한자가 퍼진 이국의 천인이 아닐까요?"

"그럴 지도.... 적어도 이런게 중원에서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지."

그리고 지금 우리의 앞에 펼쳐지는 것들이 바로 세번째 근거.

"오빠, 이게 뭔지 아세요?"

"...속옷 아니냐?"

"땡. 아래에 입는 바지랍니다."

혈소예는 자신이 만든 옷을 챙겨 바로 환복했다. 길고 거추장스러운 장포를 단숨에 벗어던진 혈소예는 거침없이 위아래 속옷도 훌러덩 벗어던졌다.

"어머나...."

"와...."

사공희는 혈소예의 과감함에 놀라고, 제갈선은 혈소예의 몸에 놀랐다. 혈소예는 아무렇지않게 자신이 만든 천옷을 익숙한 손길로 챙겨입었다.

음부를 가리는 삼각형의 속옷은 거의 천의 면적을 한계까지 줄였다. 그리고 위.

"어우야...."

중원의 전통적인 속옷과 달리, 정확하게 '가슴만' 감싸안듯 가리는 천에 나는 침이 절로 넘어갔다.

'예전에 많이 입혀줬는데.'

미래, 나는 혈교주(여)의 옷을 내가 도맡아 입혔다. 그래서 혈소예가 미래의 기억을 바탕으로 구현한 속옷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가슴 부분을 받치는 삼각형의 천 이외에는 긴 끈이 어깨와 옆가슴을 돌아 등에서 만나도록 되어있는 구조.

"이거, 어때요?"

혈소예는 정말 말그대로 중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알몸이나 다름없는 몸을 과시했다. 한편으로는 가릴 건 다 가린 상태라 요염함은 느껴졌지만 음란함은 없었다.

"무림인들에게는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이걸 입으면 가슴 쳐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답니다."

"이름이...뭐죠?"

"저도 몰라요. 그냥 혈교식 속옷이라는 것밖에."

누가 만들고 누가 퍼뜨렸는가. 혈교주 금우성, 그러니까 혈소예의 아버지이자 내 장인어른이다.

"속옷은 개인의 위생을 위한 속옷과 꼴림을 위한 속옷으로 용도가 나뉘어져 있다. 이건 후자다. ...라고 아빠는 말했죠."

혈교주, 역시 당신이 옳소. 나는 이런 저런 자세를 취하는 혈소예를 진정시켰다.

"조금 흥분한 것 같구나. 어서 입어라, 몸이 추워질 터."

"혹시 지금 섰어요?"

"선 거야 언제든지 서 있고. ...그보다 역시 원조를 이길 수는 없나."

나는 혈소예가 만들어낸 옷을 들어올렸다. 나도 나름 혈녀복의 기억을 되살려 월녀복이라는 명목으로 옷을 만들기는 했지만, 혈교의 복색을 따라갈 수 없었다.

'꼴려.'

대놓고 가슴골을 드러내거나 대놓고 다리를 골반부까지 드러내 엉덩이까지 드러내는 등, 여인의 매력을 가리지 않고 한껏 드러내는 복장은 역시 원조를 따라갈 수 없었다.

"오빠, 그거 알아요?"

그리고 나는 혈소예의 무시무시하고 악랄한 계획에 치를 떨었다.

"남자란 아무 옷이나 대충 입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는 예쁜 옷이면 사족을 못 쓴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더욱."

"그건 남자도 똑같은-"

"사, 상공."

사공희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다가왔다. 어깨를 살짝 드러낸 옷은 사공희의 몸을 천 하나로 얇게 가리고 있었고, 무릎까지 내려가는 긴 치마가 아래로 흐드러졌다.

"맙소사...."

"유부녀를 위한 혈녀, 아니 월녀복이랍니다."

혈소예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확실히 그녀는 칭송을 받을만했다. 바람이 옆에서 날리면 천이 몸에 닿을 듯한-

"......!"

나는 사공희의 옆으로 권풍을 일으켰다. 그러자 바로 바람에 사공희의 옷이 반대로 쓸렸고, 사공희의 몸매가 단숨에 드러났다.

"허어...!"

"...예쁜가요, 상공?"

"최고다. 크윽, 왜 이걸 기억해내지 못했지...?"

멍청한 과거의 나. 왜 사공희에게 이런 옷을 입히지 않고 매일 소복을 입혔단 말인가!

"천가장 밖으로 이런 옷을 입고 나가면 지탄받겠지만, 여기서는-허억...!"

사공희 뒤, 검은 다리가 슬쩍 밖으로 삐져나왔다. 아니, 얇고 검은 바지를 입은 여인의 다리가 튀어나왔다.

"따뜻하고 좋은데요?"

제갈선은 싱긋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고 단촐한 의복을 갖춘 그녀의 옷은 허벅지 위까지, 엉덩이 아래를 가릴 정도까지밖에 없었다. 그 아래는 혈소예가 만들어낸 검고 얇은 천바지가 아래를 발밑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선화는 다리죠."

"동감한다. 크으, 역시 혈...."

혈소예는, 아까전에 입었던 속옷 위에 얇은 웃옷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소매가 손목까지 다가올 정도로 긴 소복이었지만, 그걸 허리끈으로 모아 묶지 않고 가슴에 걸리게 대충 걸치고 있었다.

"짜잔. 어때? 이러고 지내려고 하는데."

"...그러지 마라, 제발."

나는 세 여인들의 과감한 도발에 그만 지고 말았다.

"...그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계속 꼴려서 세워야 하잖냐."

"그럼 저희야 좋죠."

나는, 어쩔 수 없이 일격기를 사용해야만 했다.

"...아이들 앞에서 아빠가 계속 세울 수는 없잖니?"

"앗."

"......."

"아이'들'이라...흐응."

세 선녀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씩 웃었다.

"환복하죠!"

왤까.

분명 이겼는데 이긴 것 같지 않은 이 슬픔은.

* * *

-그럼 월녀복은 천가장 안에서. 평소에는 일상복으로 만들고, 그거 할 때는 전용 옷장에서 하나씩 꺼내입는 걸로 하죠. 이 이상은 양보 못해요.

혈소예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비천각 안에는 제법 큰 규모의 '옷방'이 생겼다. 방이 옷을 위한 방이라는 것 자체가 나는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지하를 개조하여 옷들을 늘어놓으려는 혈소예와 사공희의 강력한 의사에 나는 그만 지하 개조를 허락하고 말았다.

"옷방이라니, 정말 난감하군."

"나름 괜찮지 않아요? 때로는 점소이로, 때로는 의원으로, 때로는 신진여고수로 꾸며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제갈선 또한 둘의 계획에 동참했다. 둘이 순수하게 예쁜 옷을 입고자 하는 의도가 강했다면, 제갈선은 옷을 소재로 하는 새로운 소재에 집중하고 있었다.

"...너, 어떻게 친해진 거지?"

나는 스리슬쩍 옆으로 빠져있던 제갈선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그녀를 붙잡았다. 사공희와도 그렇고 혈소예와도 그렇고, 제갈선이 어떻게 친해진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 방법'으로 접근한 거라면, 이 여자는 진정으로 천가장에서 위험한 존재로서-

"...응?"

"......."

제갈선은 잔뜩 긴장한 채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색안경까지 껴놓고, 그녀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를 못했다.

"왜 그래?"

"저 보지 마세요."

"왜?"

"...그렇게 계시니 낯설어서."

제갈선을 나를 상당히 어색해했다. 둘이 있는 것 자체에는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았지만,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하긴, 너는 혈마를 처음 보지."

어깨동무를 하듯 올린 팔 아래에서 두근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크게 울린다. 나는 부채를 손으로 접으며 제갈선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콧대를 쓸어올리듯 색안경을 이마 너머로 넘기니, 제갈선의 금빛 눈동자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왜 그렇게 긴장해?"

"......."

제갈선은 눈을 샐쭉이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는 고민에 빠진듯한 눈으로 나를 연신 흘겼다.

"이 얼굴, 이 모습이 익숙하지 않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는데요. 제가 천마망교 분들에게 들은게 있어서."

제갈선은 천가장 안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비천각과는 다른, 내가 예전에 제갈선을 위해 만들어준 '서재' 건물이었다.

"그 상태면 머리에 핏기 빠질 때까지 핏물 빼셔야한다면서요?"

"핏물이라고 하는 건 좀 다르지만, 대충 넘어가자면 그렇지."

하얗고 끈적한 피를 빼내야 머리에 물든 혈색도 빠지게 될 터. 천마신공으로 치면 찬란하게 태양빛-금색으로 반짝이는 머리칼이 상시 유지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 혈마로서 비천여쌍마나 현검마망을 상대했을 때, 나는 임신을 각오하고 셋의 안에 사정했다. 그들에게는 아쉽게도 가임기가 맞지 않아 임신은 되지 않았지만, 덕분에 나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혈마에 대한 정보는 이미 천가장 모두가 알고 있다. 제갈선은 천색록으로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쳤다.

"제가 빼드릴게요. 지금 견희랑 소예 정신없으니까...."

"아, 그거 말인데."

나는 제갈선으로부터 떨어졌다. 내가 거리를 벌리자 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결심했다. 뒤로 안하기로."

"......?"

제갈선은 눈만 껌뻑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옆에서 말을 듣지 못했을 리는 없으니, 분명 내 말을 머릿속으로 분석하며 해체하고 있으리라. 현실 부정의 끝이다.

이런 존재를 위해서는 확실하고 간결하고 단호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나는 헛기침으로 그녀의 이목을 끈 뒤, 나의 진심을 당당히 전했다.

"엉덩이에다가 자지 안 넣기로 했다."

" "

툭.

제갈선이 천색록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한 얼굴로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왜 울어?"

"저...천가장에서 퇴출인가요?"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 잘 들어봐! 내가 쟤랑 무슨 일이 있었냐면!!"

- 성교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 혈소예와 뒤로 했다!

- 정답이다, 연자여----!!

나는 혈소예와 곤륜에서 있었던 '기연'을 설명했다. 제갈선은 진지한 얼굴로 기연을 전해들었다.

"성교를 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이라...."

제갈선은 뭔가 또 떠오른 듯한 얼굴로 세필을 들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걸 정리하는 사이, 도망치지 못하게 다시 어깨동무를 하며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그래. 고대의 선인 놈들이 아주 멍청한 자들이라니까. 그걸 인정하면 어떻게 해? 문이 안 열리면 어쩔 수 없이 앞으로 했을 거 아니야. 그치?"

"그건 그렇네요. 그런데 그럼 뒤로 하는게 성교가 아니라면 뭐죠?"

"......."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나의 논리를 부정한다면, 나는 결국 뒤로 하는게 성교라고 인정하는 셈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안 된다. 제갈선과 주고받는 이 설전은 결국 제갈선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그럼...저도 앞으로 해야겠네요. 후후, 설마 이렇게 처녀를...!

혈소예가 그랬듯이, 제갈선과도 앞으로 하기 위한 기초공사인 셈이다!

"그, 그러니까."

말렸다. 제대로 말렸다. 혈소예와 거기서 못했다는 것에 분하여, 나는 그만 제갈선과 이야기를 하며 논리가 꼬이고 말았다!

"제가 정답을 말씀드릴게요, 공자."

제갈선은 내 한 손을 자신의 허리 뒤로 당겼다. 나는 그녀의 인도대로 엉덩이에 자연스레 손을 올렸고, 제갈선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였다.

"공자가 자위한 곳에, 그냥 제 엉덩이가 있었을 뿐이에요. 그럼 된 거죠?"

"......뭐?"

"왜, 그런 농담이 있잖아요. 길을 걷다가 넘어졌는데, 마침 거기에 다리를 벌린 여자가 있었다더라. 그거랑 같은 거예요. 공자는 그저 넘어졌을 뿐인데, 마침 제가 거기 엎드린 채 누워있었을 뿐이죠."

"......그런가?"

"네, 그럼요. 저희는 성교를 한 게 아니에요. 맞죠?"

천잰가. 나는 눈웃음을 치며 서재를 가리키는 제갈선이 이끄는 대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실험, 해보실래요? 제 위에서 넘어지면...어떻게 되는지."

"......."

불가항력은, 어쩔 수 없지.

'역시 신기제갈. 역시 와룡의 후예.'

감히 신산귀모의 피가 흐르는 여인을 상대로 설전을 이기려고 드는게 어리석었다.

"그거 정말 이상한 실험인 걸."

당장,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실험이었다.

[작품후기]

사공희 : 나는 관대하다

제갈선 : 나는 관찰한다

혈소예 : 나는 관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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