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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장의 삼색선녀
천가장으로 돌아온 나는 잠시의 여유를 즐겼다.
하북에 맡겨놓은 독고연과 팽유월도 걱정이 되고, 무엇보다 천산으로 떠난 이시아와 비천여삼마가 가장 걱정되었다.
'믿자.'
천마는 죽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천마가 수습해주리라. 아무리 자식간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를 쓰러뜨린 이상 대공자가 아무리 폭주를 한다고 한들 막아낼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안배도 더 해두었으니, 나는 그들을 믿고 천가장에서 힘을 다시 갈무리하기로 했다.
현녀하산.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현녀가 산을 내려온다고 한다면, 나는 그에 반드시 대응해야한다.
그녀가 노리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므로. 천기를 읽는 사람인만큼, 내가 어디에 터를 닦아 놓았은지 분명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일상을 영위하기로 했다.
신강과 청해를 거쳐 운남으로,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서쪽을 두 달이나 돌아다닌 끝에 드디어 나는 일상을 되찾았다.
사공희, 제갈선, 그리고 혈소예.
비록 일상을 그리는 사람들은 달라졌지만, 나는 세 명과 함께 천가장에서 지내며 당분간 숨을 돌리기로 했다.
다만.
나는 그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임산부와 소교주와 금지옥엽을 두고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겉으로 보이기에는 서로 화목하지만, 천가장 안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
가장 먼저.
그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 * *
"돌아가."
"안 돼."
나는 비천각, 나의 방에서 혈소예와 실랑이를 벌였다. 내가 돌아가라고 한 이들은 혈소예가 아닌 다른 둘이었고, 혈소예는 나의 말을 완강히 거부했다.
"임신한 아내랑 옆에서 돌봐주는 여인을 남편 방에서 보내려고 한다고? 오빠가 사람이야?"
"혈마다!"
"혈마도 사람이야, 사람.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
이미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해버렸기에, 최소한의 인정을 요구하기에는 몹시 난감해졌다.
"소예, 너...!"
"뭐? 내가 설마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을 줄 알았어?"
혈소예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침대에 겸연쩍게 앉아있는 사공희를 가리켰다.
"가만히 있어야 할 건 견희야! 오빠, 아내를 임신시켰으면 아내랑 뱃속의 아이를 제일 먼저 신경써야지. 그치?"
"그렇지. 하지만-"
"그럼 산모의 정신적 안정이 가장 중요하겠네? 특히 무인이라면 더더욱!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지만, 육신이 건강해도 마음에 병이 나면 어쩌겠어? 그러니까...."
쿵! 혈소예는 가볍게 진각을 밟으며 팔짱을 꼈다.
"우리 셋, 오빠 방에서 지낼 거야!"
"......."
그렇다. 제 1의 반란. 그것은 혈소예를 주축으로 셋이서 함께 비천각에 들어와 함께 지낸다는 계책으로, 내 개인 공간의 소실을 의미했다.
본래의 천가장은 각자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차피 방이 따로 되어있지만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기에, 개인실과 이곳의 여인들은 내가 원하는 때 부르거나 내가 가면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가주로서의 위엄이...!'
내가 원해서 가는 것과 불러서 오는 것은 명백히 달랐다. 나는 내가 원할 때 그들의 방에 가서 했고, 내가 원할 때 그들을 불러서 했다.
아무리 내 아내라고 한들, 감히 비천각에 와서 나를 독점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소예 너...!"
아직 혈소예를 위한 방은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혈소예에게는 내 방에서 지내라고 했다. 혼인 이후에 신혼 느낌을 내기 위해서, 나는 혈소예에게 내 방에서 지내라고 말한 것이다.
그랬는데.
'나도 신혼을 즐기고 싶었어!'
혼례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둘이서 오붓하게 지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설마 혈소예가 먼저 치고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오빠, 어차피 따로따로 지내면 쓸쓸하잖아? 안 될 이유가 뭐가 있어? 견희는 심신의 안정이 되어 좋고, 나는 다같이 가족처럼 지내서 좋고, 선화도 나랑 교대하면서 견희 살피면 되잖아."
"......."
혈라지망이 펼쳐진다. 논리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임산부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지내는데 그게 내 아이를 가진 여자다? 이미 나는 처음부터 지고들어가는 싸움이었다.
"견희, 선화, 너희는...아니다. 내가 말을 해서 무슨 소용이냐."
사공희와 제갈선은 이미 손을 꼭 잡은 채 무언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혈소예를.
"...천가장에 저런 분이 있으니까 좋긴 하네요."
"공자가 제대로 반박을 한 마디도 못하구요. 저런 모습은 처음이야, 하아."
천가장 안에서 당당히 내 의사에 반하는 주장을 한다?
하늘같은 지아비를 모셔야 한다고 배운 사공희와 가주의 명령이 지엄한 팔대세가의 금지옥엽으로 자란 제갈선과는 전혀 달랐다.
혈소예는 그만 천가장의 여인들에게 극독을 풀어버렸다. 집안에서 아내가 가질 최소한의 권리라는, 혈교식 예법을!!
'나쁘진 않아.'
오히려 좋다. 단순히 남자의 부속품이라는 느낌보다는 함께 평생을 함께하는 반려와 동반자라는 입장으로서, 나는 그들의 새로운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집 안에서 나만의 소중한 공간을 가지고 싶은, 나의 개인적인 소망이 시작부터 망가지기 시작하는 느낌은 어째서일까?
- 결혼하지마요.
혈교주는 말했다. 아니, 잠깐. 그 말을 한 게 눈앞의 이 여자가 아닌가?
"왜요?"
"...끙."
인지 아닌지 아직 긴가민가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이미 혈소예는 두 선녀를 상대로 물밑작업을 해뒀는지, 둘은 가만히 입을 꾹 닫고 모든 일을 혈소예에게 맡겼다.
-네? 그럼 저희야 좋지만....
-상공께 반기를 드는 건....
-걱정마요. 이 집안의 나쁜년은 제가 도맡을테니까. 앞으로 당당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저한테 해주세요.
분명 그랬겠지. 혈소예가 이런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두 여자는 거기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쉽사리 호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른바, 혈소예가 나와의 비무에서 먼저 창대를 쥐고 내 앞에 선 셈이다. 시작부터 내가 거부할 수 없는 논리로 무장하여 덤벼드니 파훼를 할 수 있나.
그러나 이대로 질 수는 없다. 나도 아직 비장의 한 수가 남아있다.
"...밤에."
첫 마디만 운을 띄웠을 뿐인데 벌써부터 선녀 동맹은 와해의 조짐을 보였다.
"같이 계속 지내면 밤에 다른 사람이 하는 모습을 보게 될텐데, 너희는 그게 좋-"
사공희, 제갈선, 혈소예.
...아차!
"저는 뭐든지 괜찮아요."
"...태극화와 혈교 소공녀와의 체위. 씁, 이건 꽤나 잘...."
"오빠, 나 알잖아?"
이들은 이시아가 아니다. 이들은 독고연이 아니다.
사공희는 내가 남들과 하는 것에 관대하며, 제갈선은 내가 남들과 하는 것을 관찰하며, 혈소예는 내가 남들과 하는 것을 관음하기를 즐긴다.
그야말로, 여럿이서 하기에 최적의 조합!
좆됐다.
"...정말 옆에서 같이 해도 괜찮다 이거지?"
그렇게, 나는 첫 반란의 제압에 실패했다.
그렇다.
첫 반란.
혈소예를 주축으로 한 천가장의 개편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 * *
사람이 사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의, 식, 주 세 가지다.
주생활에 대한 문제는 금방 해결되었다. 천가장이라는 장소는 산 속에 위치하고 있지만 내가 호북에서 고르고 고른 천혜의 땅으로, 제갈선이 그 위치에 탄복했을 정도로 풍수지리가 적합한 곳이다.
천가장은 내가 직접 건물을 쌓아올렸다. 작은 움막집에서 사공희와 함께 지내며 그녀가 무공 수련을 하는 동안 내가 기둥을 깎고 바위를 잘라 일일이 공사를 지었다.
즉, 이 천가장의 모든 곳에는 내 손길이 녹아있었다. 내가 지은 집이며, 내가 만든 집이다. 삶에 대한 나의 철학이 담겨있는 곳으로서, 구조와 기반에 대한 자부심은 여느 팔대세가에 못지 않다. 하나의 집을 이루는데 있어 나는 내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음...."
하지만 혈소예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여느 궁전에서 지내다가 막상 지내려고 하니 불편한 점을 발견한 것처럼 난색을 표했다.
"뭐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도?"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돼요?"
"음, 말해봐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전혀 없어요! 이곳은 부부를 위한 공간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자식을 위한 배려가 전혀 이루어져있지 않아요! 일단 측간이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소예야, 선녀는 그런 더러운 곳 안 간다!!"
"애들은 가야할 거 아니에요!"
논-파. 자청선녀가 주장했던 측간무용론은 단숨에 논파되었다.
"태어날 자식들이 최소 화경이 되기 이전에는 화장실을 가야할 거 아녜요. 아이들이 부끄럽지 않게 구색이라도 맞춰놓아야죠. 집마다 하나씩 개인 위생 시설이 필요해요. 욕탕도 다함께 좁은 곳에서 쓸 게 아니라, 가볍게 씻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구요."
"소예야, 그건-"
"집 구조도 좀 그려봐야겠어요. 선화, 붓 좀 빌려줄래요?"
혈소예는 종이를 넓게 펼치고 단숨에 천가장의 구조를 파악해냈다. 아니 해부해냈다. 혈소예가 구조를 파악하기도 전에, 제갈선이 먼저 천가장의 구조와 배치, 아래에 깔린 기문진식까지 모두 파악한 종이를 가져와 펼쳤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런 구조랍니다."
"선화, 너 어느새 이만큼...?"
"두 달이나 여기서 지냈는데 이 정도도 모르면 제갈세가 이름이 운답니다."
아아, 그 이름도 찬란한 신기제갈!
"진법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것부터 우선적으로 깔도록 하죠. 오빠, 여기 수원(水源)이 어디죠?"
"...계곡수를 받아서-"
"좋아요. 정화시설도 필요하겠다. 아니다, 아예 방마다 상하수도를 깔아버릴까요? 오빠, 중려신화정 좀 빌려주세요. 철관을 녹여서 벽에 매립하게."
"......."
나는 혈소예의 주도 하에 따라야 했다. 나의 철학을 강요하기에는 혈소예의 머릿속에 든 '혈교식 구조'가 너무나도 대단했고, 편했고, 효율적이었다.
세상에, 방 안에서 장치 하나만 들어올리면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구조라니? 매일 아침 물을 길어다 중려신화정으로 한껏 끓여서 여인들이 씻을 물을 만들어냈던 나로서는 놀랍기 그지없는 구조였다.
"...소예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아요."
"......이거 밖으로 알려지면 바로 난리가 나겠는데요? 황궁에서 기술자가 누구냐고 납치해갈 지도 몰라요."
"흐흥, 혈교의 비기랍니다. 이른바, '수백년 뒤에 엄청 성행할 지도 모르는 혈교식 기법(技法)' 중 하나라구요."
"와아...혈교 대단해!"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분명 강호의 정세를 크게 흔들 지도...?"
혈소예는 혈교의 비기를 풀어버렸다. 교주 이외에는 누구도 감히 볼 수 없는 혈교식 기법을 천가장에다가 써먹은 것이다.
"소예야. 나중에 장인 어른께서...."
"손자손녀 예쁘게 키우기 위해서 제가 알고 있는 지식 좀 쓰겠다는데 어쩌겠어요? 아빠도 해남에서 꿀빨...편하게 지내고 있고, 저도 배운 걸 써먹을 뿐이라고요. 천가장 밖으로 유출 금지. 알죠?"
"음...."
나와 제갈선은 동시에 시선이 마주쳤다. 워낙 압도적인 주거 환경 개선 공법을 보았기에, 아무래도 천가장 이외의 장소가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진가장? 아니다. 나는 하북팽가가 신경이 쓰였고, 제갈선은 본가인 제갈세가가 신경이 쓰였다.
"소예. 두 분이 아무래도 밖에 있는 분들에게 미안한 것 같은데, 혹시 배포해도 좋은 거 없을까요?"
"...견희야?"
사공희는, 바로 그런 우리의 심리적 부채를 파악하고 혈소예에게 허락을 구했다. 혈소예는 다소 뚱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다가 고민에 빠졌다.
"이거 무가로 치면 가주에게만 내려오는 기법인데.... 무당파로 치면 태극혜검이고, 제갈세가로 치면 천기미리보며, 하북팽가로 치면 오호단문도와 같죠."
"윽."
"......어떻게, 안 되겠냐?"
"안 될 건 없죠. 다 같은 가족인데. 대신 황궁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추려서 알려드릴게요."
다행히 혈소예는 기법을 공유하기로 했다. 위험부담을 감수하지 않는 정도로 해야하기에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삶의 편의를 늘린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럼 사는 건 얼추 해결됐고.... 오빠, 천 좀 줘볼래요?"
"......잠깐. 너 설마?"
주생활이 해결되고, 다른 문제가 남아있었다.
"옷, 제가 편한대로 만들어서 입으려고요."
"......그, 그건 안 된다!!"
나는 혈소예의 악랄한 계획을 막기 위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위험해! 너무 위험하단 말이다!"
"뭐가요. 오빠의 자지가요?"
" "
들켰다. 뒤에서 두 선녀는 귀를 쫑긋 세우며, 또다시 침묵으로 혈소예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흐흥, 하긴. 맨날 다소곳한 복장만 보면 혈교식 복장에 정신을 못차리겠죠. 오빠,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거 알죠?"
"아, 안 된다. 얘들아, 너희는-"
"월녀복."
"......."
"집안에서 입을 수 있는 월녀복이라...?"
망했다.
이렇게 되면.
'볼 때마다 꼴려서 눈을 둘 곳이 없어져버려!'
두 번째 반란.
"옷 싹다 가져와봐요. 천가장 안에서는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질테니까...!"
의복혁명.
[작품후기]
혈소예 : 지금부터 속옷은 브라와 끈팬티로 통일한다.
혈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