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88화 (48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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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최고 미녀

사람마다 취미는 다양하다.

무인들 중 무공을 익히는게 취미인 변태들이 몇몇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무인들은 무공이 아닌 자신만의 다른 취미를 가지기 마련이다.

예를들어 팽유월의 경우.

그녀는 술을 즐긴다. 임신하고나서는 칼같이 절주를 하지만, 술에 취한 고주망태가 되어 나와 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

-야, 나 임신시킬 준비는 됐냐? 뭐? 안 된다고, 확 씨…젖이나 빨아!

술에 취해서 판단력은 흐려지지만 기억은 또렷하게 나는 편.

-어젯밤은...잊어주세요. 그건 제가 아니었어요, 상공.

그리고 자신의 추태를 부끄러워하는 다음 날의 모습을 볼 때가 참 재미있다. 나름 절주하려고 애는 쓰지만, 그녀에게 흐르는 팽가의 피가 그걸 가만히 두지 않는다.

또다른 경우로 독고연의 경우.

그녀는 집안일을 취미로 삼는다.

무공을 익히는 시간을 굳이 많이 할애할 필요가 없기에-천재니까!-, 독고연은 가사 자체를 즐긴다.

-아이 참…. 부엌에서 하면 안 되는데, 흐응…!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독고연을 상대로 새벽에 몰래 알몸 앞치마에 성공한 나는 너무나도 짜릿했었다.

그러고 아무렇지 않게 아침을 함께 먹고는 했지만, 부엌은 독고연의 영역이라 다른 둘은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취미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그렇지만, 사공희는 뭔가를 배우는 걸 좋아한다.

지금은 색공과 무공 익히기에 힘쓰고 있지만, 독고연을 따라 부엌일이나 다른 일들을 배우고 빠르게 습득한다.

-무엄하도다. 무당파의 장문인을 감히 범하려 하다니. 네가 간이...아이, 상공! 지금 제가 연습하고 있는...흐읏…!

무당파 장문인의 옷을 입고 예비 장문인으로서 범해지는 연습을 할 때마다 나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녀는 범해지는 것조차 배우며 가르침을 갈구했다.

-천마시간살.

이시아는 천마시간죽이기가 취미다.

이렇게 다들 취미는 아주 제각각이다. 가정적인 경우도 있고, 색정적인 경우도 있고, 한량적인 경우도 있다.

혈소예는 이들과 달리, 먹는게 취미다.

'누구 때문이기는 하지.'

혈소예가 어머니를 여의고 태어났지만, 혈교주는 혈소예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전대 교주님이요? 저 어렸을 때? ...정말 지극정성이었죠.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어요. 완전.

월교의 생존자 중 몇몇 이들에게 대신 젖을 물리기도 했고, 온갖 지식을 총동원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자 했다.

혈교주(남자)의 경우, 의외로 요리가 취미다. 그래서 나는 이 여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다.

-매번 먹을 때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음식을 먹지 못하겠지만...대신 제가 먹고 맛을 공유해드릴게요. 어, 느껴지나요? 그, 그러니까 이건 당신에게 많은 음식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많이 먹는 거지, 결코 제가 먹는 양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에요! 다 내공으로 가는 거라면 누구든 이렇게 먹을 거란 말이에요!

앉은 자리에서 닭을 세 마리나 먹어치우는게 이 여자의 '기본'이라는 걸,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소예야. 눈치보지마라."

"윽…."

혈소예는 아직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만두 세 개를 먹을 때, 만두 세 개를 먹는 것 조차 눈치를 보는 셈이다.

"...여기는 오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좀 그렇거든요?"

혈소예는 속삭이듯 얘기하며 내 무릎을 계속 발로 건드렸다. 신발을 신지 않았기에, 그녀의 따스한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자가 내숭 좀 떨면 안 돼요?"

"내 앞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오빠는 진짜 여자 마음을 모르네요."

"아는데, 내가 너를 잘 알고 있으니까 너를 배려하는 거지. 내숭은 침대 위에서 부리면 되고, 지금은 배부르게 먹어둬. 그래야 침대에서도 열심히 할 거 아니야."

"......."

혈소예는 짜증이 난다는 듯 만두를 한 입에 삼켰다. 제법 큰 왕만두를 볼을 부풀리며 먹는 모습에 나는 술이 절로 깔끔하게 넘어갔다.

'술 맛 좋고.'

혈소예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대신 나는 술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그녀가 먹는 동안 내가 술을 마시기에, 겉으로 보이기에는 우리 둘이 먹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혈소예가 독식하듯 먹는 셈이 된다.

이것이 바로 혈소예의 대식을 위한 약간의 배려. 혈교주든 혈소예든 둘 다 '여자가 많이 먹는 것'에 상당히 부끄러워했다.

여자끼리 간다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여자끼리 가면-

"실례하겠소."

이렇게, 귀찮은 일이 생긴다. 나는 우리의 옆에 선 무사를 향해 눈치를 줬다.

"실례하지 마시오."

"...무안하게."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나누고자 하오."

"아, 아내…? 이, 이런."

무사는 낭패한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그에게 살기를 살짝 내비쳤다.

"그만 실례하시오."

"아, 아니 나는 그러니까...하, 잠깐 기다려보시오."

나의 살기에도 무사는 궁시렁거리며 돌아갔다. 나의 살기를 눈치채지 못한 걸까, 아니면 자신의 억울함이 더 컸기에 저러는 걸까?

"아내라고 하니까 믿지 못하는 건가?"

"솔직히 오해하는 사람은 자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걸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술잔에 비친 내 모습을 살폈다. 호쾌하게 생긴 천무명에 비해 다소 호리호리한 샌님같은 모습이라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이게 내 원래 모습인 만큼 큰 불만은 없었다.

"오빠는 자기 얼굴에 대해서 얼마나 무서운가 몰라요."

"...여자들은 천무명같은 얼굴을 더 좋아하지 않나?"

"오빠. 여자는 잘생기면 끝이에요. 남자도 여자가 예쁘면 끝인 것처럼. 외모도 힘이랍니다. 오빠는 그중에서도 천하제일이구요."

"......."

금칠은 고맙지만, 나는 혈소예의 말에 진심어린 공감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천무명 쪽이 더 잘생겼다고 생각하는데…."

"남자가 보기에 호쾌한 쾌남형이라는 건 인정해요. ...근데 그거, 아빠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 분이랑? 세상에. 그런 농담을-"

"실례하겠어요."

이번에는 또다른 자가 실례를 범하러왔다. 흑발의 여인은 아까 전의 무사를 뒤에 대동한 채 나타났다.

"...누구십니까?"

나름 미인인 만큼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여인은 안하무인 격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저를 몰라요? 운남 최대의 문파, 착융파의 허유선을?"

"착융파?"

"...구파일방을 노리는 정파라고 알고 있어요. 그 세력의 크기가 워낙 커서 운남 일대에 이름을 떨친다고."

혈소예의 부연 설명에 그녀는 우쭐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와 혈소예는 빠르게 눈으로 의사를 교환했다.

-혈겁난세에 저런 문파가 있었나?

-없었죠.

나와 혈소예는 바로 결론을 내렸다. 착융파는 그냥 이름 널리 알려진 문파일 뿐, 실제 혈겁난세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사라진 집단이다.

"그런 곳에서 저희 부부에게는 무슨 일로-"

"무사님. 저희 문파에서 초대하고자 합니다."

"......."

실례, 아니 무례도 이런 무례가 짝이 없다. 내가 엄연히 부부라고 말했건만, 이 여자는 혈소예를 애써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다.

"오."

정작 혈소예는 눈을 반짝이며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취향을 생각하면, 내가 자신을 두고 여인을 따르기를 바라겠지.

"오는 무슨 오냐. 초대해주셔서 고맙소. 생각해보리다."

"지, 지금-"

"생각, 해보겠다고 말했을텐데."

살기를 가미하며 겁을 주니 금방 뒤로 물러났다. 나는 끝까지 웃지않고 여인을 노려봤고, 그녀는 무사의 부축을 받고 얼굴을 붉히며 객잔을 떠났다.

"의외네요. 오빠가 여자를 마다하다니."

"네가 옆에 있는데 뭐하러."

"그래도 저 여자는 바로 앞을 벌려줬을텐데요."

"그런 가정은 통하지 않는다."

이름도 모를 문파 여인의 처녀를 취할 바에는 혈소예와 뒤로 하겠다. 나는 다시 술잔을 채워 한 입 크게 털어넣었다.

"크으, 쓰다."

"이보시오."

술을 마시기 무섭게 또다른 이가 나타났다. 그는 우락부락한 신체에 표정마저 사나운, 위압감이 느껴지는 사내였다.

"무슨 일입니까?"

당연히 나는 혈소예에게 어떻게 해보려는 개수작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쭈뼛거리는 움직임으로-

"......혹시, 그쪽에 관심 있소?"

"그쪽?"

"같은 일행분은 분명 눈속임일 터. 나는 알고 있소. 그대가...나와 같은…."

츄릅.

거한이 입술을 핥자마자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자꾸 입술을 할짝였다.

"그대는...정말이지 내게는 없는 자궁도 두근거리게 만드는 구려."

"아하하하하!!"

"이거 완전 미친 놈 아닌가!"

혈소예가 뻥 웃음을 터뜨린 사이, 나는 나를 남색의 길로 인도하려는 거한의 뒷통수를 벼락같이 쳐서 기절시켰다. 그는 주변에 있던 무사들에 의해 객잔 밖으로 쫓겨났다.

"오빠,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중최미봉은 전데."

"...난들 알겠냐.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아무리 조금 괜찮게 생겼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꼬일 만큼은 아니다. 특히 남색이 와서 대놓고 수작을 부릴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공의 이 얼굴은 위험해요! 여러 여자들을 울릴 얼굴이예요. 천무명 얼굴보다 이 얼굴이 여자 꼬시는데 더 효과적일 걸요?

팽유월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상공이 천하제일미예요.

정말로 중원최고미인은 나인 걸까. 모르겠다.

"실례합니다."

"실례는 그만...이 아니군."

쿵. 점소이는 빈그릇을 치운 뒤, 다른 그릇보다 두 배는 더 큰 그릇을 식탁 한 가운데 내려놓았다.

"스읍."

음식을 딱히 신경쓰지 않는 나조차도 풍미가 느껴질 정도로 향이 좋았다. 그릇 위에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닭 한 마리가 통째로 튀겨진 채 식탁 위에 올랐다.

"......."

혈소예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다른 것보다 닭을 가장 좋아하는 걸 알고 있지만, 그녀는 체면과 식욕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거 잘라달라고 하면 민폐겠죠?"

"통째로 들고 먹는 거라고 적혀있군. 못해도 우리가 이 집게로 뜯어야 해."

"...하아."

혈소예는 우울한 눈으로 나와 닭을 번갈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젓가락 끝에 날카로운 강기를 불어넣어 닭을 먹기 좋게 잘라냈다.

"아."

혈강시 시절, 닭을 해체하는 건 나의 주 업무였다. 여기서 하나 더 하자면-

"아앙."

"아, 아앙…?!"

"뭐해. 팔 떨어진다."

혈교주에게 직접 먹여주는 것. 혈소예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살포시 입을 벌렸고, 나는 강기로 잘라낸 살점을 후 불고 혈소예의 입에 살포시 올렸다.

"........"

혈소예는 소리내지 않고 우물우물 고기를 씹었다. 나는 그 사이 다리를 몸통으로부터 해체하며 다음 살점을 준비했다.

정말 눈치를 많이보는 여자다. 있는 그대로 먹으면 될텐데.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냥 원하는 대로 다리 끝을 손으로 붙잡고 잡아 뜯어도 남들이 뭐라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혈소예는 예쁘니까. 남들이 뭐라고 하면 뭐 어떤가? 내 눈에만 예쁘면 되지.

그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

순간, 나는 술잔에 비친 내 모습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곳에는 적발적안에 미청년이 있었다.

수염이라고는 전혀 없고, 사내다운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어 아까처럼 남색을 노리는 자들이 혈소예를 두고 나를 노릴 정도로 예쁘장한 청년이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저게 나다. 이게 나다. 천무명도, 빙색마인도, 추대광도 아닌 저 혈마가 나다.

-남들이 뭐라하든, 본인이 떳떳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혈교주는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주변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세요. 중요한 건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니까.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어요?

"......그렇군. 역시 언제나 옳군."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소예는 언제나 옳다고."

나는 또다른 살점을 혈소예의 입에 넣었다. 그녀는 여러번 씹고 단번에 삼킨 뒤,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당연하죠. 제가 언제 틀린 적이 있었어요?"

"없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 나는 술잔을 들어 스스로를 마주했다.

혈마.

혈강시.

이번 생에는 그렇게 떨치고 싶어했던 핏빛으로 물든 추악한 괴물.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추악한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다.

즉. 이게, 나다. 역체변용술 따위로 숨길 수 없는 '나'다.

"...아."

"...오빠?"

"소예야, 밥먹다가 미안하다."

나는 내게 너무나 큰 선물을 준 혈소예에게 큼지막한 다리살을 잘라 넘겼다.

"나, 아무래도 깨달아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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