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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무덤
옛날 옛적에, 한 청년이 있었어요.
생긴 건 솔직히 말해서 오빠만큼 잘생겼고, 체격도 좀 좋았죠. 거기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아는게 이상하지. 오빠가 더 크다구요? 누군 줄 알고?
...맞아요. 누구한테 들었, 씁, 둘이서 같이 해수욕하면서 진솔한 몸의 대화를 나눴다구요? 어우야….
아무튼!
그는 스스로를 멀리서 온 존재라고 칭했죠.
대화는 통하지 않고, 아는 거라고는 천자문 조금밖에 없고,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죠. 한자를 보고 뭔가 아는 단어가 나오면 그걸 가리키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눴죠.
근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는 항상 몇 가지 단어를 들고 다녔어요. 특히 자신의 상태를 소개할 단어가 필요했죠.
아이문맹(我異文盲).
글을 모르는 까막눈. 멀리서 온 이방인. 그래서 전혀 글을 모르는 자.
그래서 그는 중원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거지처럼 지냈어요.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먹고 살 방도가 있겠어요?
그래도 몸 하나는 확실해서, 몸쓰는 일을 하고 빌어먹고 살았죠. 말만 안 통하지 평범한 청년이었으니까, 나름 눈치도 있고 밥 굶는 일은 없었더래요. 진짜 개방의 거지인 줄 알고 정보를 찾으러 왔다가 친분을 다진 의협들도 있었구요.
그러다가 어디로 들어갔냐면, 표국이래요. 짐 나르고, 옮기고 하는 쟁자수의 일을 했죠.
본인이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다른 건 몰라도 상하차만큼은 확실하게 할 수 있다고.
그는 몇 주만에 특급쟁자수가 되었어요.
특별히 무공도 익히지 않은 남자가 소면 한그릇 먹고 장정 여럿보다 더 뛰어나게 일을 하니, 표국주의 눈에 들었죠.
누군지도 모를 이야기 그만하라구요?
오빠, 진짜 흥을 다 깨네요. 어차피 여기에 우리 둘밖에 없는데 이렇게 좀 차분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있으면 안 돼요?
...몸으로 대화? 알았어요. 이야기 끝나면 하도록 해요. 오빠도 우리집 이야기는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맞아요.
그 쟁자수, 아빠에요. 혈교주죠.
네? 아빠는 그러면 어디서 온 사람이냐고요?
저도 몰라요. 그냥 지나가는 말씀으로...힘이 있으면 천국이지만, 힘이 없으면 지옥보다도 더 끔찍한 곳에서 왔다고 하셨어요.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 중원과는 다른 곳이라는 것 밖에는.
그렇게 멀리서 온 쟁자수는 표국주의 눈에 띄게 되었죠. 그는 말했어요.
무공을 배워보지 않겠느냐?
왜 무공을 가르쳐줬을까요? 그가 그만큼 성실하게 일했기에? 쟁자수가 아니라 표사로 쓰려고 해서? 뭔가 보이지 않는 재능을 발견해서?
맞아요.
내공을 익히게 해서 더 많이 일하라고 가르쳐준 거였어요. 내공이 있으면 더 지치지 않고, 일당백으로 일을 할 수 있었을테니까.
...굴러다니던 삼재검법 하나로 이류급 낭인을 쓰러뜨린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그는 평생 쟁자수로 살았을 거예요.
그래요, 재능이죠. 그는 무공의 천재였어요.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곳에 떨어진 남자가 사실은 천하재일의 기재였다고 한다니, 어불성설 아니에요?
그 뒤로 그는 표국을 떠났어요. 자신의 재능을 깨우치고 자신의 가치를 깨달은 시점에서, 표국이 얼마나 자신을 부려먹는지 깨달은 거예요. 글도 조금 익혔겠다, 마침 표국에서도 자신을 버릴 기미가 보이겠다, 먼저 도망친 거죠.
그는 그걸 '추노'라고 했어요. 자신을 노예보다 못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말을 한게 아닐까 싶어요.
그 뒤로는 전형적인 삼류무사의 인생 역전기예요.
쟁자수가 재능을 깨우치고 검을 들고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의협들을 만나서 웃고 싸우고 울고 서로 투닥거리던 이야기.
호적수라고 부를만한 남자와 비무를 펼치며 의형제를 맺기도 하고, 정체불명의 남자와 사냥감을 두고 시비가 붙었다가 같이 술 한 잔 나누고 친분을 나눴죠.
어린 시절에 저는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들으면서 자랐어요. 그 때의 이야기를 할 때는...정말이지 아이처럼 좋아라하셨죠. 중원에는 전부 쓰레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대인이라고 부를만한 자들이 있더라.
나중에는 그들 모두 하늘의 안식처에서 다 죽을 거라고 자조하기는 했지만, 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네, 맞아요. 정말 이해하지 못할 말만 골라서 하시는 분이죠.
그 중에 제일 웃긴 얘기가 뭔지 알아요?
명문세가의 소공자랑 친분을 맺었는데, 그가 사실은 알고보니 남색이었던 거예요. 맞아요. 남자가 남자에게 연심을 품었죠. 팔대세가의 소공자가 대놓고 사랑한다고 말했을 정도였으니, 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겠죠?
그러던 어느날.
운명처럼 그녀를 만났어요. 밤에 숲길을 걸어가던 도중에 녹림의 무리에게 춘약에 당해 달아오른 여인을 발견하고 구해줬죠.
…...저한테는 다르게 말했지만, 분명 강간당했을 거예요. 당시에는 '어머님'이 더 강했다고 들었으니까. 일류 수준에 불과한 남자가 춘약 중독의 초절정 여고수를 견딜 수 없죠.
그렇게 인연을 맺은 둘은 빠르게 인연을 쌓아나갔대요. 여인은 남자의 재능을 발견하고 옆에서 가르쳤고, 남자는 여인의 가르침을 받고 무럭무럭 성장해 몇 년 사이에 초절정 고수가 되었죠.
그리고 여인은 갑자기 사라졌어요.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죠. 남자는 여인을 찾아 곳곳을 누비다가 알게되었어요.
십상련이 여인을 납치해갔다는 걸.
그들을 추적하던 과정에서 이전에 인연을 쌓았던 많은 의협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하나의 세력을 만들었어요.
추련살.
맞아요. 지금 중원에 퍼져있는 추색살의 전신과도 같은 곳이에요.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그곳은 십상련에 피해를 받은 이들을 구하고 사파 무리들을 죽이는 의협집단이었죠.
그는 그곳에서 부대장 역할을 했어요. 실질적으로는 우두머리나 마찬가지지만, 출신도 불분명한 이방인이 중원 미래의 대표가 될 수는 없었죠.
그러던 도중, 그는 십상련과 싸우다가 폭포에 떨어졌어요. 그리고 기연을 얻었고, 어떤 이들의 흔적을 발견했죠.
작은 마을에서 인신공양을 하는 걸 발견한 거예요. 그는 바로 제단을 습격했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죠.
월영신교.
십상련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었던 십상련.
그들은 처녀를 제물로 바쳐서 처녀의 몸에 선녀를, 월녀(月女)를 깃들게 하려고 했어요. 빙의시키려고 한 거죠.
이유요? 간단해요. 무림통일.
선녀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는 오빠도 잘 알잖아요? 곤륜산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한들 곤륜산맥 자체가 엄청 넓은 지역인데...만약 태산이나 숭산에 자리를 잡으면? 만약 땅에 묶이게 되는 제약이 풀려서 중원 전체를 아우를 수 있게 된다면?
육신은 지상의 존재이되, 몸의 일부는 반선(半仙)이며, 영혼은 선녀라면?
지상에 닿은 육신은 땅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고, 무공은 선녀의 육신을 담기 위해서 그릇이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몸이 될 것이며, 그걸 다루는 자는 선녀니까 어떤 인간도 감히 범접할 수 없었겠죠?
월영신교는 그 맹점을 찔렀어요. 자신들이 강해지는게 아니라, 하늘의 선녀를 지상에 끌어당겨서 강림시키려고 한 거죠.
특별히 누군가를 지정한 건 아니에요. 단지 이왕 부를 거라면 그럴싸한 대상이 필요했고, 그게 월궁 항아가 된 거죠. 실제로 항아를 부른 건지 아니면 항아에 준하는 선녀를...또는 여신을 부른 건지는 저도 모르지만, 월영신교는 부르고자 하는 대상을 '월녀'라고 칭했어요.
당연히 중원 무림은 월영신교의 계략을 막으려고 움직였죠.
선녀가 강림하고 힘을 조금만 쌓아도 현경 고수들 따위는 어른이 아이 다루듯 쉽게 제압할 수 있으니. 마침 당시 중원을 떠돌아다니던 그도 다시 대열에 합류했어요.
의와 협,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나섰죠. 강호에는 월영신교 뿐만 아니라 다른 십상련들도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거든요.
사실 십상련이라는게 월영신교에서 나온거거든요?
월영신교, 월교의 교주는 자신들을 일부러 낮추면서 사파 조직을 하나로 이끌었어요. 정파는 애초에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적으로 둔 채, 사파 중에서도 자신들의 계획을 방해할 자들을 동료로 끌어들인 거죠.
당시 대외적으로 월교는 민란을 조장하고, 사람들을 혹세무민하면서 야금야금 세력을 키워나갔죠.
그거 아세요?
십상련 중에는 동창도 있었답니다. 월영신교는 내시들에게 '월녀가 강림하면 잃어버린 남성 또한 되찾을 수 있다!'라며 동창을 끌어들였어요. 관은 동창과 금의위 사이의 내전으로 무림의 일에 개입할 정신이 없었죠.
결국 십상련의 준동은 여러 정파인들에 의해 제압되었어요.
구파일방과 팔대세가, 그리고 지금은 현역으로 장문인이나 세가의 가주 급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십상련들을 제압했죠. 그들의 선두에 무림맹주 독고자영이 있다고 알려져있지만....
어...아시네요? 맞아요. 맹주는 주워먹기의 달인이었어요. 추련살의 대표였던 자가 바로 맹주였어요.
모종의 이유로 혼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그가 혼자서 엄청난 전과를 내기 시작한 거예요.
자신의 여자를 되찾겠다는 의지가 그만 그를 엄청난 고수로 만들어버렸죠.
그리고 그가 십상련을 박살내고 나면, 바로 그가 남기고 간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무공을 덧씌워 자신의 실적으로 만들었죠.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냐구요? 그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거든요.
사랑하는 여자가 월교에 납치당했고, 십상련 중 하나라는 건 알았지만 어느 조직인지는 몰랐어요. 그래서 하나하나 전부 박살내면서 여자를 찾아다녔죠. 월영신교가 납치했다는 걸 알았다면 아마 달랐을테지만….
운이 없었어요.
정말로 운이 없었어요.
하필이면 마지막 남은게 월교였죠. 그만큼 월교도 다른 십상련을 내세워서 철저히 숨어있기도 했고.
그렇게 월교의 본거지를 찾아나선 그는 혼자서 월교에 잠입했어요. 그리고 최초로 월교의 잔혹함을 직접 눈으로 보게되었죠.
전부, 죽여버렸어요.
미쳐있었죠.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분서갱유나 신안대학살과 견줄, 아니 비교도 되지 않을 참극을 막지 못했다는 충격에 월교의 무리를 죽이지 않고는 못 버텼을 거예요.
참고로 미리 말하자면, 혈교는 월교의 생존자들이랍니다. 월교의 교인들이 아니라, 월교에 의해 붙잡혀 인간 제물이 되거나 연구 자료로 쓰이던 자들이죠.
그리고 생존자들 중에는 제 어머니도 있었어요. 정말 극적인 장면이었죠. 월교의 교주는 제단에 제 어머니를 두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월교의 호법사자들을 검으로 베고 길을 뚫었어요.
그리고 구출했죠. 월교의 교주를 죽이고, 어머니를 구했어요.
하지만 이미 어머니의 몸에는 월녀가 깃들었어요.
월교는 여신 강림의 의식에 성공했고, 그녀는 그가 알고 있던 여인이 아니었던 거죠.
아버지는 어머니를 안고 도망쳤어요. 당시 십상련의, 월교의 잔당은 남아있었고, 또 선녀가 깃든 어머니를 잡으려는 중원 문파들도 나타났죠.
이유야 뭐…알잖아요? 선녀의 피가 흐르는 후손이라니. 참을 수 없었던 거죠.
아버지는 그래서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월교의 피해자들을 이끌고 중원에서 사라졌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기적을 낳았죠.
그래요. 저.
선녀가 된 그분은...저라는 지상의 흔적을 낳고 등선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정말로 등선인지, 아니면 다른 말일지는 모르지만.
* * *
"...여기까지가 제가 반쯤 선녀라고 한 이야기의 전말이에요. 월영신교와 한 미친 남자의 관계. 이해했어요?"
"응."
"...그렇게 뒤에서 가슴 만지면서 이야기듣는데 기억이나 해요?"
"전부 다 알지. 네 아버님이 이방인이라는 것도, 네 어머니가 선녀가 빙의한 여자라는 것도, 그리고 네가 그 두분의 사랑으로 기적과 함께 태어났다는 것도."
나는 혈소예를 엎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대문자도 안다 이거지?"
"네."
"그러니까 반쯤 선녀님께서 해석하신 이 고대문자가 정확하다면, 내가 선녀님이랑 여기서 음양합일 하면 문이 열릴 거란 말 아니야."
"이야기가 바로 그렇게 흘러가는 건 그렇지만…...그렇긴 하죠."
"그럼 맞네. 기연. 원래 이런 곳에 남녀가 둘이 오면 말이야...그런게 있더라고. 너도 천기를 읽었으면 그런 경우가 있는 걸 봤잖아. 여자가 남자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흐흐."
"......."
혈소예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건 혈소예의 치욕 중 하나였다.
"혈교주랑...."
"응, 맞아."
미래의 혈소예.
그녀는 혈강시의 폭주를 풀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던졌다. 스스로의 몸으로 혈강시의 양기를 받아냈다.
"...그러니까 그렇게 처녀를 잃기 싫단 말이에요. 이번에는."
"...응?"
"이번 생에는."
혈소예는 울먹거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첫날 밤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등불 하나 켜두고, 서로 입을 맞추면서...."
"네가 좋아하는 결론부터 말해봐."
"......이, 일단 뒤로 시험해봐요."
혈소예는 이를 갈며 말했다.
"...뒤로 해도 안 열리면, 그 때는...어쩔 수 없죠."
"기연을 만든 분께 비나이다. 부디, 제발!"
뒤로 하는 건, 인정하지 마시길!!
[작품후기]
선녀와 뒤로 하는 것도 성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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