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83화 (48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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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

떨어진다.

슬슬 이쯤되면 땅이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하염없이 떨어진다.

몸은 땅이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더욱 가속도가 붙는다. 내공의 힘을 이용해 절벽에 손을 뻗기에는 붙잡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도, 풀도, 심지어 튀어나온 암벽조차도.

선인의 무덤이라는 이름이 생긴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인조차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낭떠러지가 깊다는 것이며, 하나는 많은 선인들이 이곳 아래를 탐방하려고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죽을 가능성이 높아, 소예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하아."

떨어지는 와중에도 혈소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오빠, 내공 좀 줘봐요."

"살 방도가 있어?"

"잠깐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죠."

"그럼 얼마든지."

콰득.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혈소예는 내 목을 깨물었다. 송곳니에 남은 기를 짜내어 강기를 만들어, 마치 짐승처럼 내 피를 삼켰다.

"습, 쮸읍, 하아."

채양보음을 통해 내공을 얻는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성교를 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됐어요."

"더 빨아도 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해요."

혈소예는 절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뻗어진 핏빛 강기의 선이 거미줄의 끝처럼 절벽에 달라붙었고, 혈소예는 여덟 개의 붉은 끈을 하나로 묶었다.

"오빠!"

카가가강!

나는 발끝을 세워 절벽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혈소예를 꽉 붙잡고 미끄러지는 절벽에 최대한 붙었다.

키기기긱.

"...휴."

우리는 간신히 절벽에 달라붙을 수 있었다. 혈소예는 자신이 만들어낸 여덟 개의 혈선을 내 뒤로 당겼고, 나는 그걸 등에 이고 절벽에 수직으로 서듯 누웠다.

"휴우."

"...이제는 그만 안으셔도 돼요."

"그럼 어떻게 할까? 올라탈래?"

"...제가 안기면 오빠, 분명 오빠부터 떨어질 거잖아요. 싫어요. 등에 업힐래요."

"그건 절대로 안 되지. 남자 자존심이 있지, 어딜 아내를 죽이려고 들까봐?"

나는 혈소예와 서로 지긋이 노려봤다. 고집을 누가 먼저 꺾냐하는 지리멸렬한 싸움이 예상되었고, 나는 머릿속으로 내가 혈소예를 지켜야 하는 수백 가지 이유를 떠올렸다.

"...하아, 알았어요. 그럼 이렇게 할 게요."

혈소예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몸을 겹쳤다. 가슴에 안기는 듯한 자세가 되었고, 아기색마가 정확하게 혈소예의 허벅지 사이로 쑥 들어갔다.

"좋네."

"오빠라면 이 각도를 제일 좋아할 것 같아서."

"딱 좋아. 우리, 여기서 평생 이러고 있을까?"

"...무슨 이상한 소리를."

혈소예는 퉁명스럽게 한탄하며 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힘을 회복하면 둘이서 도전해요.여기, 기어올라가서 다시 도망치는 거예요."

"...응? 언제 여기 떨어져봤어?"

"네. 현녀한테 약올리려고 왔다가 여기 몇 번 떨어졌어요. 이정도까지 떨어진 적은 없었지만."

"아하. 기어올라간 흔적이 너였구나?"

혈소예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묻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떨어진 거야? 애초에 여긴 왜 왔어?"

"......오빠 때문이에요."

"나?"

"오빠를 위해서. 오빠가 또 말주변 없는 은둔형외톨이한테 상처입을까봐...오빠 중원에서 놀고 계시는 동안 제가 여기서 말상대가 되어줬거든요."

"...앗."

나는 혈소예의 노력에 탄복했다.

"설마 스승님이 그렇게 말을 잘하게 된게…?"

"다 제 덕분이라는 말씀. 솔직히 저 상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만나자마자 '여긴 네년이 발을 들일만한 곳이 아닌 성지. 꺼져라.'라고 말했던 여자라구요."

"......충분히 그러고도 넘치지."

말재간 없는 스승은 소위 경지 값 하는 말투를 자랑한다.

물론 나이나 신분이나 정체를 모두 생각하면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게 당연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현녀를 상대로 존댓말을 가르친 혈소예의 노고는 분명 크게 치하할만 하다.

"상으로 뭘 줄까? 자지?"

"...그냥 입이나 맞춰줘요."

"얼마든지."

나는 혈소예와 가볍게 입을 맞췄다. 설육을 섞고,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며 서로의 정기를 섞었다.

"움, 츄릅, 하앙…."

주로 내가 혈소예에게 나의 정기를 나눠주는 식이었지만, 나도 혈소예의 안에 쌓인 약간의 음기를 갈취했다. 우리는 서로의 내기를 주고받으며 체력을 조금이나마 회복했다.

물론, 회복되는 양보다 절벽에 버티느라 소모되는 양이 더 빨랐다.

혈소예는 기둥에 묶인 동안 내공을 회복하지 못했고, 나 또한 천마와의 일전에서 많이 내공을 소모했다.

"...오빠."

"왜."

"현녀, 어떻게 수습할 거예요?"

"......사랑으로?"

콰득.

혈소예는 내 가슴에 이를 박아넣으며 잘근잘근 입술로 나를 씹었다. 불만어린 그녀의 눈빛에 나는 혈소예의 등을 토닥였다.

"스승님이 분노로 미쳐서 나를 죽이겠다고 곤륜파를 총동원하여 색마살해에 나서는 것까지 계획을 짰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곤륜파 따위는 문제가 아니에요. 진짜 문제는 현녀죠."

"그렇긴 하지."

곤륜파 12장로와 수천 제자들이 곱절은 있어도 현녀 한 명보다 못하다.

곤륜파 밖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현녀를 곤륜파 밖으로 빼낸다. 이번에 직접 마주하고 난 뒤에 느꼈어. 현녀는...곤륜산 안에서 못 잡는다."

"그건 동감해요. 저도 무공으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까."

"무공으로? 다른 건 이겼다는 거? 뭔데?"

"......오빠랑 한 거?"

두근. 나는 혈소예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그녀의 엉덩이를 살짝 잡았다.

"뭐하는 거야. 여기서 하자고?"

"절벽에 매달려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혹시 모르잖냐. 죽기 직전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즐기다 하는 것도. 아직 나 네 처녀 안 받았다?"

"그건 나중에 화촉 밝히고 나서 해도 좋으니까, 여기서 죽을 생각 말고 살 궁리나 하세요."

기억, 기억, 기억. 화촉 밝히고 처녀를 취한다. 그 전에 취하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용봉지회가 끝나면, 혈교 소교주와 결혼할 거야."

"야…."

"소예가 야라고 하니까 엄청 느낌이 이상하네. 나한테 이렇게 막대하는 여자는 중원 통틀어 네가 처음이다."

"...하아. 오빠, 내가 반말하니까 가끔 꼴려? 그건 침대에서나 하고, 지금은 제발, 제-발 여기서 살아 나갈 생각을 해주세요. 그래야 뭐 중원에서 처녀를 주든 뭘 하든 할 거 아냐!"

더이상 자극했다가는 혈소예가 진심으로 나를 착정하며 죽이려할 것이다. 나는 혈소예를 토닥이며 나의 계획을 말했다.

"오빠만 믿어. 오빠가 다 계획이 있단다."

"뭔데? 여기서 몸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어올라가서 도망치는 거?"

"아니. 여기서 더 아래로 내려가는 거."

"......."

혈소예의 표정이 굳었다. 나 또한 장난치던 표정을 바꾸고 아래를 가리켰다.

"무슨 계획이야. 여기 밑에 아무것도 없는 거 알잖아."

"그래. 누구도 모르지. 과거로 돌아온 나도, 미래의 기억을 읽은 너도."

"......."

혈소예는 침묵했다. 그도 그럴게, 이 아래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정정. 어떤게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소예야. 너나 스승님이 말하기를, 내가 천살성이고 네가 자미성이라고 했지?"

"......일단은 그렇지."

"그럼 말이야. 이거에 거는 수밖에 없어."

"오빠…. 기연에 걸자고?"

"그래."

기연.

그게 내가 곤륜을 '제 시간'에 탈출할 방도다.

"나 지금 급해. 나 또다시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어. 팽유월이랑 사공희랑 이제 슬슬 배가 불러올 때가 되었는데, 옆에서 지켜줘야한단 말이야."

"...그런 사람이 스승을 임신시킬 생각을 했어? 나중에 아이라도 태어나서 나타나면? 유월 언니 혼자서 개고생했던 것처럼 스승님도 혼자서 독박 육아에 독박 출산 시키려고? 오빠 그건 좀 너무하다."

"소예야. 그건 좀 다르다. 임신하더라도 스승님은 아이를 낳지 못해."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십팔음뇌절맥을 치료하며, 즉 선녀인 여인을 지상의 존재로 돌리며 나는 알게 되었다.

"여인의 몸이란 참으로 신기하지. 아이를 가지면 육아를 위해 전신이 바뀌도록 되어있잖아? ...현경, 아니 생사경 여고수도 마찬가지야. 여자로 태어난 이상, 선녀든 뭐든 모성은 똑같아."

"그래서."

"너 지금 뭔가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스승님도 천가장에 들일 여자다. 내가 설마 그런 위험한 일을 하겠어?"

"......난 또. 아이를 매개로 유산시켜서 선녀를 지상의 존재로 격하시킨다는 줄 알았지."

역시 사파제일, 혈교다운 생각이다. 실제로 혈교의 전신인 월영신교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무림 여고수들의 전통적인 신분세탁 방법이 있잖아."

나는 류서시를 통해, 왕소현을 통해 그 비법을 깨달았다.

"환골탈태."

선녀가 지상의 존재를 품기 위해서는 우선 지상의 기운을 머금고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선녀가 타락하게 되면 지상의 인간으로 격하된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는 일이지."

"고작 한 번 떡친 거로 타락할 수 있을까?"

"......흐흐, 음란해지면 얘기가 다르지.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신기(神氣)는 눈치채지 못하더라고."

정액이 너무 뜨거워서.

"오빠 설마-"

화륵.

"중려신화정. 선대(仙代)보다 더 이전인 신대(神代)의 힘을 깃들게 해놨지."

나는 당서희를 통해, 여자를 원격으로 보내버리는 비법을 터득했다.

"선녀도 신 앞에서는 안 되는 거야."

* * *

"장문인.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너는 알 필요 없다."

현녀는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자신을 에워싼 여러 장로들이 오늘따라 불쾌하게만 느껴졌다.

제자에 비해 얼굴이 못났다.

제자에 비해 무공의 성취가 훨씬 못하다.

제자에 비해 목소리도 좋지 못하다.

제자에 비해 몸에 풍기는 미약한 땀냄새가 불쾌한….

제자, 제자, 제자.

"...윽."

현녀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한 사람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스승님…?"

"나를 그렇게 부르…후우. 쉬어야겠다. 너무 큰 피를 흘렸어."

"의원, 의원을 부르겠습니다."

"그건 괜찮다. 흉수는 내가 쫓아냈으니...너희는 가서 일을 보거라."

현녀는 제자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바로 곤륜산 안에 있는,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아…."

그곳에는 제자의 향이 아직 가득하게 남아있었다. 열락의 흔적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제자야…. 어찌 모르느냐.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한 순간 뿐이라는 것을."

몸이 범해진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건 그에게 더욱 죄책감을 심어줄 좋은 무기가 될테니.

"수십 명과의 백년을 지내는 것보다...나와 수만, 수십만 년을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떠냐?"

하지만 이 마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로는, 너를 가득 채울 수 없는 것이냐…?"

천기로도 읽을 수 없는 그가 떠나버리고 난 빈 자리는 어떻게 채우면 좋을까.

"......."

현녀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손을 아래로 향했다.

찌걱.

여전히 안에서 끈적한 덩어리가 흘러나왔다. 현녀는 그걸 천천히 자신의 안으로 다시 밀어넣었다.

찌걱, 찌걱.

"...으응."

현녀는 손을 갈고리처럼 꺾었다. 그가 했던 것처럼, 현녀는 천천히 손을 안으로 밀어넣었다.

"하아, 하아...이게, 자위…."

그리고.

손가락을 더 안쪽으로 집어넣은 순간.

화륵-

"!!!"

현녀는, 뱃속이 타오르는 듯한 감각에 전신이 긴장되었다. 안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각이 현녀의 몸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두근, 두근, 두근.

"아, 아아…. 제자, 제자야, 너는…!"

현녀의 손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검지만 넣었다가, 이제는 중지까지 함께 넣으며 안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아아, 제자야…!"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꽃이, 현녀의 뱃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은 현녀가 손가락을 안으로 밀어넣을 수록 더욱 격하게 타올랐고, 현녀의 정신도 조금씩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 아아, 아아아…!"

현녀는.

"나의, 나의 사랑하는 제자야…!"

스스로를 위로하며, 제자와 다시 만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반드시.

절벽 위로 올라올 거라고 믿으며.

* * *

"그래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도망치면 되죠? 현녀의 눈앞에서 불꽃을 튕겨서 강제 절정시킬 건가요?"

"아니. '기연'에 건다."

"...오빠, 진짜 이런 거로 저희 운명을 걸어도 돼요?"

"당연하지. 천살성과 자미성이 위기에 처했는데, 하늘에 기도하면 썩은 동앗줄이라도 내려주시지 않겠냐."

나는 생각했다.

이전에 이 절벽 아래에 떨어진 누구 한 명 쯤은 절벽 아래에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하고.

그래서 더 내려갔다.

더.

더.

연옥의 입구가 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려간 끝에.

"...말도 안 돼."

"소예야. 요즘은 기연 같은 건 스스로 쟁취하는 거다."

기연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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