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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천마, 죽다!
천마라는 존재가 누구인가? 마교제일인이다.
마교제일이라 함은 무엇인가? 천산마교에서 가장 강한 한 명의 지존을 말한다.
그런 천마가 죽었다.
후계가 누군지도 정확히 지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체불명의 존재와 생사결을 펼치고 죽어버린 것이다.
천마의 싸움은 무신(武神)들의 전쟁과도 같았다. 천마와 신원미상의 존재-이하 무명(無名)이 벌인 싸움은 산맥 하나가 중간에 뚝 끊겨 지도에서 산맥을 나타내는 선 하나가 통째로 지도에서 찢겨나갈 정도로 참혹하면서도 웅장했다.
그리고 결말은 천마의 죽음이었다.
상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살았거나, 또는 죽었거나.
무명이 마지막에 청해로 향하는 것은 확인을 할 수 있었지만-강물을 쫓아 보낸 부하들이 모조리 궤멸당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가 실제로 청해에 들어간 건지 아니면 현녀에게 살해당한 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소문은 무성했다.
아주 오래전에 잠에 들었던 고대의 천마가 깨어나 현대의 천마에게 승부를 걸었다더라.
녹림황이 부활하여 천마를 상대로 승부를 걸었다더라.
십마 중 한 명인 무마(無魔)는 실존했으며, 그가 천마와 후계자 구도를 두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어 생사결을 펼쳤다더라.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소문만 무성했다. 그렇다고 정보를 알아내자니 아무런 전조도 없었다.
싸움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아니 벌써 끝났다고?'라고 할 정도로 결착도 생각보다 빨랐다.
천마는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마치 짐승이 거대한 손톱으로 찌른 것만 같은 부상에 천마는 막대한 피를 흘렸고, 수습하기에는 너무나도 늦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머리칼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무릎을 꿇은 그는 웃고 있었다.
천마가 자기 개인에게 있어서는 만족스러운 생사결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천마는 웃으며 죽었다.
단지 그게 천마신교에게는 엄청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는 것.
천마가 죽었다.
"진짜야? 천마가 죽었다고?"
"진짜든 아니든 알게 뭐냐. 중요한 건...."
"마교제일인의 자리가 비었다는 것!!"
마교 최강의 자리가 비었다는 이야기에, 마인들은 모두 들끓기 시작했다. 천마가 없는 천마신교는 아무것도 아니다. 천마가 존재해야만이 천마신교이며, 천마는 곧 마교 그 자체인 존재다.
그런 천마가 죽었으니, 새로운 천마가 필요하다.
십만 마인의 위에 군림하며 으뜸이 될 최강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마교는 현재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고, 마인들은 세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 천마의 자손들이 천마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하는 이들.
천마의 정통성은 천마신공으로 대표되며, 천마의 직계인 소천마가 진정한 천마로 올라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갈렸다.
"정통성은 대공자에게 있다!"
"소공녀가 미래다!"
하나의 세력은 대공자의 적자승계를 주장하는 지린파.
그리고 또다른 세력은 소공녀가 천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비천파.
두 세력은 거의 균등하게 갈렸다.
소공녀가 본격적으로 중원에 나서기 전인 용봉지회 이전만 하더라도 압도적이었던 여론은 어느새 반반에 가깝게 갈라져버렸다.
일반 마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대공자.
미염신공을 전수받았던 원로 마인들을 중심으로 십마(十魔) 중 여럿의 지지를 받는 소공녀.
둘이 첨예한 대립을 하게 된 가운데, 나머지 또다른 한 세력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누가 천마인가! 내가 천마다!"
천마의 죽음 이후, 스스로를 천마라고 외치는 자들이 나타났다. 대공자도 소공녀도 자신보다 약한 존재인데 왜 자신이 그들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천마의 피가 흐른다고 천마냐? 천마는 자고로 힘(力)! 가장 강한 자가 천마이니라!"
천마신교의 정통성을 무시하고 반역의 꿈을 꿈꾸는 야인(野人)들.
천마신교는 천마의 죽음으로 인해 셋으로 갈렸다.
* * *
"대공자, 어떻게 해요? 두참월도가 천마를 자칭했어요."
"주지 님, 귀마대주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대공자, 이거 어떻게 하면-"
"......."
대공자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어떻게' 소리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모든 일들을 자신이 도맡아 처리하고자 하니, 주변에 있는 이들 중 천마신교라는 거대 집단의 혼란을 잠재울만한 자는 거의 없었다.
대공자의 곁에 있는 신십마녀(新十魔女)들은 대공자 주지가 직접 선정한 자신만의 십마였다. 남들은 대공자의 시녀라고 멸칭으로 부르기도 하는 존재들이며, 대공자는 무공과 미모가 동시에 뛰어난 여인들을 자신의 품에 안고 중용했다.
단, 그들은 딱히 집단을 이끄는 자들이 아니었다.
대공자 주지는 스스로 거대 집단을 이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주변을 여자로 가득채웠다.
"...대공자, 이쪽은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고맙다, 뢰마."
그리고 그중 도움이 되는 이는 지린뢰마 뿐이었다. 그녀는 천마신교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대공자를 적극 도와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했다.
"으으, 그냥 나가서 힘으로 밀어버리면 안 되나...?"
"일일이 다 정리할 시간 없어. 부하들 보내봐야 개죽음이야."
"야, 네가 가면 안 돼? 너랑 무공 상극인 거 같은데."
"나는 지금 여기서 이 서류들 처리해야해. 차라리 너는 어떠니? 너 아까부터 몸이 근질근질 거려서 참을 수가 없잖아."
"그건 몸이 아니라 ㅂ...거기가 근질거려서 그런 거라고."
대공자의 곁에 있는 여인들이 굳이 모은 이유는 하나 뿐.
일이 너무 많아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으로 대공자는 신십마녀들에게 일을 맡겼다. 대공자가 10개의 죽간을 처리하는 동안 하나 처리될까말까했으나, 그래도 그것만이라도 도움이 되는게 어디인가?
"대공자, 쉬시지요."
"...그래."
하루치의 일을 모두 처리한 대공자는 여인들을 물리고 홀로 침대에 누웠다. 뢰마는 익숙한 손길로 방 안을 정리하며 차를 우렸다.
"뢰마. 나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무엇이 믿기지 않으십니까?"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
"......."
뢰마는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천마와 소천마의 관계라고는 하지만, 우선적으로 둘은 '부자'관계였다.
"정말로 짐작가는 바가 없나? 그 붉은 머리의 남자."
"...들리는 바에 의하면, 혈교의 무리가 적발이 많다고 합니다. 아니면 중최미봉과도 관련이 있을 수도 있죠."
"......그런가."
대공자는 이마를 손등으로 짚으며 이를 갈았다.
"...반드시 아버지의 복수를 할 것이다."
"........"
아버지의 죽음에 눈물을 삼킬 틈도 없었다. 천마의 몸이 싸늘하게 식지도 않았건만, 천마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바로 반역을 꿈꾸는 이들도있었다.
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대공자는 전면에 나서서 천마신교를 다스렸다. 반역하지 않은 무리들도 소공녀를 지지하는 이들도 당장 천산에 있는 적자인 대공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이유? 대공자가 천마의 아들이니까.
"여유가 생기면 뢰마, 그대가 부하들을 이끌고 자료를 모아다오. 그 흉수의 실체를 밝혀 아버지의 무덤 앞에 효수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소천마."
"그리고...우선 그 전에 천마신교부터 정리를 해야겠지. 뢰마, 오늘 반역한 자들 중 경계해야할 이들이 있나?"
"태양사신, 내면지악마, 유원엄마가 있습니다."
"다 화경인가...."
소천마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에는 짙은 살기와 함께 강렬한 의지가 넘실거렸다.
"잠깐 서열정리를 하고 오도록 하지. 누가 정당한 천마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소천마."
"그래."
소천마는 잠시 쉬었다가 바로 비무를 하러 떠났다. 천마의 자리를 사수하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에 많은 이들이 대공자의 천마 계승을 머릿속에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는데, 대공자가 천마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
대공자가 떠난 뒤, 뢰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공자께는 죄송하지만...부질없습니다."
대공자의 행동은 조금만 살펴보면 그 목적이 보였다. 효심에 불타 복수를 추구하는 것도, 천마의 부재를 자신이 감당해내는 것도 모두 '여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기존에 천마가 만들어놓은 체계-십마의 지지가 아니라, 천마의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십만마인'의 지지를 얻기 위함이리라.
기존의 체계로는 자신이 불리하기 때문에.
"...수마, 거기있지?"
"찍."
뢰마는 침대 아래를 들췄다. 그곳에는 주먹보다 작은 쥐 한 마리가 어둠속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뢰마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도망가지 않는 아주 특이한 쥐가.
"너는...봤지?"
도리도리. 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뢰마는 단숨에 쥐의 꼬리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봤잖아. 얘기해. 맞아?"
"찍, 찌익, 찍."
"육성으로 소리내지말고 그냥 말로 해줄래?"
"...천하에 말하는 쥐가 어디에 있겠어?"
쥐가 말했다.
"대답해. 그분은 뭐라고 하셔?"
"......그분은."
쥐는 허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기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죽은 거로 이야기를 진행하라고...."
그렇다.
천마는, 아직 살아있다.
단지 죽은 척을 할 뿐이다.
"왜?"
"......하나, 천기의 흐름상 무대에서 잠시 물러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기에. 둘, 큰 부상을 입었으니 요양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리고 셋."
수마는 날카로운 이를 반짝였다.
"감히 천마의 자리에 도전하는 반역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역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천마는 죽은 척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 * *
대공자가 천마신교를 이끌고 있는 그 시각.
죽은 것으로 알려진 천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가부좌를 튼 채 앉아있았다. 배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은 흰 천을 감은 채, 그는 벽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고 있었다.
"붕대, 갈아드릴게요."
"음."
천마의 곁에는 마화가 있었다. 그녀는 단정한 손길로 천마의 흰 천을 풀어낸 뒤, 새로운 흰 천으로 천마의 배를 감았다.
"정말 지독하리만큼 짙은 상처네요.... 구미호가 손톱으로 할퀴고 가도 이 정도는 아니겠어요."
"조법의 달인과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그만큼 강한 자의 주력 무공이 괴물의 손이라니."
천마는 헛웃음을 지으며 눈을 떴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는데...."
"네?"
"그렇잖느냐. 검을 상대로는 수천수백명을 상대로도 싸워봤다.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아무리 검술이 다양하다고 한들, 손에 든 길쭉한 날붙이라는 건 다 똑같았다. 그런데...그는 달랐어."
천마는 희열이 넘치는 목소리로 아이처럼 기뻐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받은 생일 선물을 회상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와 나눈 권격은 난생 처음이었다. 나와 맞수를 이루는 권각술은 처음이었지. 만약 그가 무공을 몸에 맞췄다면...분명 나는 권각술로 패배했을지도 모른다."
"...농담이시죠?"
"아니. 진짜다. 그건 단순한 무공이 아니다. 철저하게 사람을 '죽이기' 위해 한계까지 발전되고 개량된 천마신공이니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경험으로 빚어낸 무공이라는 거지. 그래, 최소한 수백...아니 천 단위도 가볍게 넘길지도 몰라."
"......."
마화는 천마의 증언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건...말도 안 돼요. 유사 이래 그만큼 사람을 때려죽인 천마는 없었어요."
"그거야 모르는, 쿨럭."
천마는 피를 토했다. 마화는 급히 천마의 입에서 흐른 피를 닦아냈다.
"약을 가져올게요."
"...아니, 약은 필요없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다른 거야."
천마는 떠나려는 마화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마화는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천마는 능글맞게 웃으며 마화의 허리를 휘감았다.
"인간은 죽기 직전에 몰리면 번식 욕구가 강해진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그게 전부 맞는 말인듯 하구나."
"...나 참. 정말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하기 싫으냐?"
"......."
마화는 머리에 묶어둔 끈을 풀었다. 그리고 천마의 어깨를 지긋이 밀며 그를 바닥에 눕혔다.
"...움직일 생각말아요. 오늘은 제가 올라타드릴테니까."
"왜? 너도 내가 한 번 졌다고 패배자처럼 보이나?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한테 좆으로 하는 거 말고는 다 이기거늘!"
"야 이.... 상처가 덧나잖아요. 무슨 개소리야."
마화는 천마의 몸을 가슴으로 누르며, 아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얌전히 닥치고 따먹히기나 하세요. 상처 벌어져서 천 또 갈게 되면 그 때는 천이 아니라 좆을 갈아버릴테니까."
"뭐로?"
"이거로."
찌걱.
천마.
그는 상처를 회복할 때까지, 자식에게도 진실을 숨기고 요양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