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69화 (46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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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용봉지회가 약 5개월 하고도 몇 주 남은 시점.

강호에는 크게 세 가지 주제가 크게 화자되고 있었다.

먼저 독고연의 귀환.

모용세가의 습격 당시 빙색마인이 모용세가를 공격한 틈을 노려 빙색마인의 거처에서 도망치는데 성공한 그녀는 팽가에 몸을 의탁했다.

사람들은 의아함을 가졌다.

무림맹주, 독고자영은 왜 바로 독고연을 만나러 가지 않았는가? 심지어 빙색마인은 독고연을 찾으러 하북팽가에 나타났으나, 팽도황과 제갈길의 연계에 패퇴하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죽은 줄 알았던 딸이 돌아왔는데 무림맹주가 너무한 거 아닌가?

라는, 말은 광동에서 들여온 소식에 싹 들어가고 말았다.

십상련의 부활!

정확히는 십상련 최후의 생존자가 살아남아 자신들의 거취를 천명했다. 무림맹주는 해남을 점령한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다가 광동으로 떠났고, 해남에서의 상륙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 * *

광동, 해안선.

무림맹에서 달려온 무사들은 해안선을 따라 진을 치고 무기를 들었다. 그들은 배 위에 오른 이들이 상륙하지 못하도록 벼르고 있었다.

쏴아아-

배의 색부터 시작하여 무복까지 온통 핏빛과도 같은 붉은 색으로 물들인 이들은 가만히 배 위에서 무림맹의 무인들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리듯.

그리고 누군가가 뱃머리 위에 가벼이 올라섰다. 핏빛처럼 붉은 머리를 흩날리며, 온통 붉은 색으로 도배를 한 무복의 중년 사내는 이목구비가 훤칠하여 무인들이 절로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오랜만이군, 고자영."

강호인 중에 누가 감히 무림맹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누가 감히 무림맹주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겠는가?

"네 이놈...미치광이!"

맹주는 호통을 내질렀다. 무사들은 모두 침을 꿀꺽 삼키며 맹주가 적색무인을 부른 호칭에 긴장했다.

미치광이.

그건 십상련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수많은 십상련의 주인들을 죽였다고 '소문'이 있던 존재.

홀로 사교의 무리를 수 천 명 죽인 괴물.

"금우성이라고 했을텐데."

그는 스스로를 금우성이라고 칭했다.

"나이를 먹더니 치매가 오셨나? 그러면 안 되는데. 맹주가 벽에 똥칠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군."

"닥쳐라!"

금우성의 신랄한 말에도 맹주는 쉽사리 검을 뽑지 못했다.

고고고고.

배 위의 금우성과 해안선의 고자영, 아니 독고자영.

두 사람이 서로 노려보는 것 만으로도 다른 무인들은 긴장하며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야만 했다.

그들은 직감했다.

무림맹주가 현경인 것처럼, 저 미치광이도 현경의 고수라고.

그것도 천하제일을 다투는 경지라고!

중원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었다. 무림맹주가 한창 현역으로 뛰어다니던 때, 무림맹주와 비슷한 무공 수위를 가진 존재가 있었다고.

모종의 이유로 타락한 사파고수. 아는 사람만 아는, 월영신교의 사이비들을 수 천 명 학살하고 미쳐버린 괴물.

"저 자가 정말 그 미치광이...!"

"한 때는 그랬었지."

미치광이는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본인은 이제 혈교의 교주.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면, 순순히 받아들이겠다."

강호에는 흔히 미치광이로 불리던 남자는 자신을 혈교주라 칭했다.

"본인을 혈교주라고 불러주겠나?"

혈교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자신을 소개했고, 마치 혈(血)에 미친 것처럼 체모를 전부 붉게 물들였다.

"해남파는...무엇을 한 것이야!"

맹주는 한탄했다. 해남은 구파일방 중 하나였던 해남파의 영역이었다. 섬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문파가 있는데 어떻게 혈교와 같은 사교(邪敎)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네놈들을 제압하기 위해...!"

"해남신검(海南神劍)은 진작에 죽였다. 무림맹으로 올라가는 모든 서찰은 내가 조작한 것이지."

"뭐...라고...?! 그럴리가! 필체를 모사할 수는 있어도, 그의 기억은-"

"죽었다. 이 검의 누구의 검이더냐."

"네, 네 놈...!"

맹주는 혈교주의 손에 들린 검의 손잡이를 보고 격분했다.

"나를...능멸해?!"

"정보조작은 세력간 전투에서 기본이지. 그래. 해남파의 현경 고수는 죽었다. 그리고...해남파는 봉문했지."

"뭐...라고!"

"그들은 이미 우리에 의해 제압되었다. 해남파의 잔당들은 모두 구금되었지. 해남은 이제 우리의 영역이다."

해남파, 봉문(封門)!

구파일방 중 하나가 다른 세력의 힘에 의해 문을 닫았다는 것은 중원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해남파가 망했으니, 혈교는 앞으로 기세등등하여 중원을 넘볼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래에서 올라오는 혈교의 무리에 잠식당한다. 그렇다고 선제적으로 해남으로 가서 그들을 제압하자니-

해남(海南).

안그래도 중원에서 진출하기 힘든 '섬'에 자리잡은 혈교를 다스리려면 이쪽에서도 배를 타고 넘어가야하니, 저들을 어찌 다스릴 수 있을까?

말이 섬이지, 하나의 작은 소국(小國)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하...! 이 건방진 놈들...! 네놈들이 감히 배를 이곳에 정박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맹주는 사자후를 터뜨렸다.

"모든 맹의 무인들은 들으라! 저들은 사교의 후예이며, 십상련의 잔당들이다! 결코 저들을 중원땅에 다시 들여서는 아니된다!"

"""존명----!!"""

"저런, 저런."

혈교주는 무림맹의 무사들을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편견에 빠진 망자들 같으니라고. 네놈들이 우리를 어떤 이유로 단죄하겠단 말이더냐?"

"갈! 닥쳐라! 인륜을 저버린 짓을 하고 학살을 자행하겠지!"

"아니, 아니야....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너는 여전히 과거에 매몰되어있구나. 시대는 변했다. 이제는 그런 의협이 갑인 시대가 아니야. 아!"

혈교주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맹주를 비웃었다.

"맹주는 왜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것인가!"

쏴아아-

파도치는 소리만이 해안선에 울렸다. 혈교의 무인들은 모두 잠시 눈을 감았으나, 혈교주는 오히려 더 당당하게 어깨를 펴며 웃었다.

"...저러니까 미치광이 소리를 듣지."

"크흐, 언제 이걸 써먹나 싶었는데. 흐흐흐, 뭐, 좋다. 의미는 통했을테고, 실제로 당하는 건 고자영이 네놈이니까."

"네놈...!"

"우리는! 해남에서 무역을 일삼는 교역집단! 동시에 여러 곳에 법가(法家)의 뜻을 널리 전파하고자 하는 자들이오!"

"...뭐?"

싸늘하다. 맹주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혈교주의 웃음에서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어떤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대들은 어찌 정당한 교역을 방해하는가! 그대들은 어찌 법가의 사상을 널리 퍼뜨리려는 우리를 방해하는가! 녹림의 무리인가, 아니면 사교의 무리인가!"

"네, 네놈!"

"비켜라! 이 배에는!"

혈교주는 광소하며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황제폐하를 위해 바칠 진상품이 들어있으니!!"

무림인(武林人)이면서 동시에 관(官)을 따르는 자.

무림인이면서 해남의 교역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납부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관에 이로운 일을 하는 자.

엄격한 법 아래 중원 모두가 황제의 아래에 있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는 자.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그들은 스스로를 혈교(血敎)라고 칭했다.

"안 비켜? 어라? 그러면...반역인데? 너희 지금...황제폐하께 바칠 진상품을 강탈하려고 모인 것인가?"

"궤변이다!"

"궤변이라고? 크흐흐,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

혈교주는 죽간을 펼쳐들었다.

"해남성주의 명령이다! 본인, 민간인 금우성은 해남성주의 의뢰를 받아 해남에서 황제폐하께 바칠 공물을 무사히 수도로 이송할 의무가 있나니! 이를 막는 것은 곧 관의 일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네 이 놈!!!"

"어이. 고자영이."

혈교주는 무림맹주를 비웃으며 배 위에서 뛰어내렸다.

"관무불가침, 알지?"

척.

혈교주는 바다 위에 착지했다. 수상비, 아니 해상비에 모두가 경악했고, 무림맹주는 곧장 검을 뽑아들었다.

"본인, 금우성! 나라의 지엄한 명을 받은 황제폐하의 백성으로서, 도적을 퇴치하겠노라!"

"이 새끼가!!"

카----앙!!

해안선. 바다와 육지의 경계.

두 현경 고수가 칼을 맞부딪혔다.

* * *

"크하하! 이 새끼, 걸작이구나!"

"폐하."

노인은 경박하게 웃는 중년의 남자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왜?"

황제는 죽간을 든 채 상체를 내렸다 올리기를 반복했다. 무릎은 'ㄱ'자에 가까운, 마치 몸이 '弓'자를 그리듯, 황제의 몸이 활처럼 휘었...지는 않고 활 글자 모양처럼 몸을 움직였다.

"재미있기만 하구만."

"폐하를, 황궁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용하라지. 우리는 언제 그들을 이용하지 않았나?"

황제의 말에 노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십상련에 동창이 엮여서 국란이 벌어질 뻔 했을 때, 우리는 그를 이용하여 동창을 한 번 정화했지. 그도 마찬가지야. 서로 한 번 주고받은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가 말한대로 반박을 하겠나이다."

황제의 말에 감히 반박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남자, 금의위의 태감만이 가능하리라.

"그는 폐하의 일개 백성임을 표방했습니다. 그런 자가 어찌 폐하와 한 번 씩 주고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면?"

"이 나라의 백성이 되기로 하였다면, 혈교라는 사조직을 해체하고 응당 관과 나라를 위해 애써야 함이 옳을 듯 하옵니다."

"크하하하!!"

황제는 껄껄 웃으며 죽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두 개의 철봉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자네, 후욱,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 않았군!"

"능력만큼은 확실한 청년이니까요."

"그래, 능력이 되니까 황궁을 이용할 짓을 하지."

황제는 몇 차례 몸을 올렸다 내렸고, 다시 땅을 디뎠다.

"이용당해주겠네. 황제를 향한 진상품을 바치려고 한다는데 어찌 막을 수 있겠나? 그들이 중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려는 이든, 먼 외국에서 왔든, 대국의 황제가 어찌 진상하겠다는 자를 물릴 수 있겠는가?"

"그랬다가는 무림맹이-"

"가만히 있어야지."

황제의 말에 태감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미 자신이 뭔가 말을 꺼내보기도 전에 이미 황제는 마음을 굳혔다.

"그들이 진정으로 법가를 주장하고 황제를 따르고자 한다면 어찌 막겠는가? 남해의 해적들을 토벌하고, 해상의 치안에 도움을 주었으니, 이는 관이 할 일을 대신하여 크게 치하할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건 그들이 사익을 추구하기 위함입니다."

"사익이라도 그게 국익이지 않느냐? 내가 그 놈의 꿍꿍이를 모를 줄 알고. 놈은 절대 관에 피해를 줄 행동을 하지 않아. 그게 자신의 계획에 더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걸 아니까."

"그...선녀를 부른다는 뚱딴지같은 이야기라면 허풍입니다."

"글쎄. 본인이 직접 선녀를 봤기에 허풍같지는 않은 걸."

"황후마마에 대한 말씀이라면...크흠."

태감은 괜히 어깨를 으쓱이며 헛기침을 했다. 황제는 조용히 다시 천장에 달린 철봉을 붙잡고 몸을 들었다 올렸다.

"아무튼 그에 관한 이야기라면 내 충분히 알아들었네. 평소대로 처리하게."

"나라와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즉시, 사교의 무리는 제압하라.... 알겠습니다. 지침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지침.... 어불성설이로군. 그 지침의 초안을 짠 것도 그가 아닌가. 스스로를 구속하는 독소조항임에도 따른다니. 그가 말했지. 악법도 법이라고."

"불경한 말이로군요."

"원래 범법자들에게는 국법이 악법인 법. 그래서 해남성주는 뭐라던가? 무림맹을 곤경에 처하게 해놓고 진상품이 금관 같은 건 아니겠지?"

"...잡다한 건 전부 집어치우고, 천환단 세 개를 확보했답니다."

"......."

황제는 잠시 쇠질을 멈췄다.

"내가 아는 그 천환단? 그게 복수로 표현될 수 있는 영약이던가?"

"열화판이라고 합니다. 원본을 잘게 쪼개어 효력이 발생하는 시간은 더디나, 효과는 확실하다고 하더군요. 해남성주의 아들도 극독을 이겨내고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런가...."

황제는 죽간에 적힌 진상품을 쭉 눈으로 훑으며 한켠에 놓인 아령을 붙잡았다.

"그 일은 태감에게 맡기겠소. 그래서 또 다른 이야기는 없나? 요즘 무림의 일을 들으면서 쇠질하는게 참 재미있단 말이지."

"금의위 검토 결과, 관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태감은 아령을 들어올리는 황제를 향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천마가 죽었습니다."

"......?"

쿵!

아령이 바닥에 떨어져 벽끝으로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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