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67화 (46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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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天魔)

천마의 무공은 이어진다.

천마가 가르친 모든 무공은 미래천마에게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천마가 쓰는 모든 천마신공의 초식을 알고 있다.

천마신권도, 천마패륜각도, 그리고 천마군림보마저도.

모두 미래천마가 사용한 무공이기에, 나는 어떻게 하면 파훼할 수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그게 네 실체냐?"

"그런 셈이오."

천마는 내 왼팔을 보며 이를 갈았다. 나의 왼팔에는 핏빛의 불꽃이 타오르듯 강기가 흔들렸고, 손 위로는 짐승의 발톱이 날카롭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내가 손을 쓰는 것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해서."

추마귀 시절.

검을 다루기에는 근골이 망가져 신체적으로 불리했던 내가 선택한 전투 방식은 짐승이었다.

할퀴고, 부순다.

조법이라고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으나, 혈마의 진신전력이 이 붉은 팔에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태극검후도 미래천마도 파천신검도 아닌, 오직 혈마만의 무공.

"반칙 같아서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게 내 힘이니."

"반칙이라! 하하, 반칙이라니?! 진작에 보여주지 그랬나!"

천마는 오히려 껄껄 웃으며 나를 나무랐다.

"어떠한 힘이든 결국 하늘에 닿는 자가 승리하는 법! 검이면 어떻고 권이면 어떻고 조(爪)면 어떠하리!"

"동감한다."

단 한 명.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나는 이 손으로 모든 것을 씹어먹었다.

미래에는 오직 이 힘 만으로 모든 무공을 정면으로 부숴버렸으니까.

"제일 강한 자가 천하제일인이지."

지금까지 혈마의 기억을 되살리며 당시 피의 기억을 읽어 흡수한 무공을 사용한 이유는 둘.

하나는 구천현녀에게 직접 이 조법으로 상대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질렸기 때문이다.

혈영귀라수로 죽인 이들이 너무 많아서, 당시 혈강시로서 죽인 이들의 얼굴이 속속 떠오른다.

이미 수많은 무공을 혈영귀라수로 파훼했기에, 새로이 상대함에 있어 흥이 떨어진다.

천마신공마저도, 혈영귀라수에 결국 찢겼다.

내가 천마에게 했던 것처럼, 나는 미래-과거-에도 하늘로 날아오르는 미래천마를 혈영귀라수로 바닥에 내팽겨쳤다.

"...쿨럭."

한동안 내상을 다스리려던 천마는 피를 왈칵 쏟아냈다. 처음으로 피를 본 만큼, 그의 눈은 더욱더 사나워졌다.

"흐흐흐, 이게...몇 년 만에 보는 피인지 모르겠어."

천마가 새로이 자세를 잡았다. 두 팔을 하단으로 뻗으며, 앞을 향해 달릴 것처럼 상체를 숙인다.

"천마비상각(天魔飛翔脚)!"

천마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도망친 건가? 그럴리 없지.

나는 바로 혈영귀라수를 오른쪽으로 뻗었다. 내가 손을 뻗기도 전에, 이미 천마는 나를 향해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차기를!

콰------앙!!

"크하! 역시!!"

나를 향해 다리를 뻗으려던 천마의 일격이 내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천마의 몸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콰직.

나는 흩어지는 천마의 몸을 손으로 베어갈랐다. 그리고 괴물의 손으로 땅을 짚으며 몸을 거꾸로 뒤집었다.

"대단하구나!"

쿵--!!

다른 각도에서 땅을 내려찍은 천마가 내가 있던 곳을 짓밟았다. 나는 두 다리를 뻗어 천마의 머리를 걷어찼다.

사라락.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안개. 나는 바닥에 손톱을 박아넣으며 제자리에 반듯하게 착지했다.

"거기냐!"

그리고 팔을 쳐올리듯 내 등 뒤로 휘둘렀다. 몸이 뒤집히며 하늘을 베어가르니, 그곳에는 또다시 나를 향해 천마비상각을 날리는 천마의 환영이 혈영귀라수에 갈라졌다.

이건 환영인가?

아니다.

실체다.

단지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몸을 뒤로 빼며 거리를 벌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 잔상이 남을 뿐!

"크하하하하!"

천마의 광소가 사방에서 울려퍼졌다. 나는 소리보다 더 빨리, 육감이 반응하는대로 귀라수를 마구 휘둘렀다.

소리보다 먼저 몸이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리보다 한참 뒤에 주먹을 뻗는 경우도 있었다.

"크하하하!"

광소와 함께 공격이 닿기도 했다. 한 번 호흡을 할 때마다 공격이 이어졌고, 사방에 천마의 잔상이 넓게 퍼졌다.

"큭…!"

대응하는 방법은 한 가지.

붙잡아야한다.

하지만 어떻게?

혈영귀라수로는 잡을 수 없다. 천마는 지금 가장 경계하는 것이 혈영귀라수이며, 그의 모든 시선은 나의 왼팔에 집중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최적의 수단은-

이쪽에서도 따라서 움직이는 수밖에.

쿵!

내가 있던 곳에 천마의 잔상이 남았다. 천마는 땅과 수평으로 날아가며 나를 걷어차려했다.

"흥."

나는 높이 뛰어오르는 것으로 공격을 피했다. 천마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뛰어올랐고, 이후의 동작은 간단했다.

천마대팔식.

허공을 달린다. 빠르게 허공을 박차고 달린다.

물리법칙? 인간의 한계?

무(武)의 극한에 이른 존재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모든 물건은 하늘 아래에서 땅으로 이끌린다는 법칙 따위도 통하지 않는다.

"크하하!"

천마는 내뻗은 다리를 수습하며 바닥을 디디고 뛰어올랐다. 그는 내가 날아가는 방향을 향해 위로 뛰어오르며-

"천마삭월각(天魔削月脚)!"

마치 초승달을 그리듯, 옆으로 다리를 돌려차며 나를 요격하려고 했다.

지금이 기회. 나는 허공을 여러번 박차고 달려, 천마의 다리를 향해 미끄러지듯 몸을 눕혔다.

혈마, 환월각.

카가가강!

천마가 돌려찬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천마의 다리를 걷어찼다. 서로가 서로의 정강이를 맞대며 걷어찼고, 나와 천마는 동시에 서로의 반대편으로 튕겨나갔다.

"그래, 이거지! 피하는게 아니라 나를 쫓아와서 패죽일 생각을 하다니!! 이게 싸움이지!"

천마는 광소하며 다시 내게로 뛰어들었다. 그 먼 거리를 한 걸음에 좁히며, 어깨 너머로 뻗은 주먹을 내게 휘둘렀다.

"우오오오!"

천마는 기합과 함께 내 얼굴을 노렸다. 나는 혈영귀라수를 얼굴 쪽으로 들어올려 천마의 손을 잡으려했다.

"크하하! 속았구나!"

천마는 주먹을 허공에 멈췄다. 내 얼굴을 직접 때리려는게 아니라-

카가가가각!!

권풍으로, 나를 높이 띄워올렸다.

"어디, 또 허공답보로 하늘을 달려봐라!"

나는 쉽게 대처하기 위해 공중에 뛰어오르며 몸이 붕 뜰 수밖에 없었고, 천마는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며 다시 뛰어올랐다.

"본좌가, 땅에 다시 처박아줄테니!"

똑같은 일격? 아니다. 학처럼 뛰어오른 천마는 어느새 몸을 빙글 돌리며 나를 내려찍으려했다.

"누구도, 내 위에 설 수 없다!!"

마치, 벼락처럼. 천마는 나를 혈영귀라수 째로 바닥에 걷어차려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천근추.

상체 위로 내력을 뿌리면서까지, 나는 바닥에 착지하여 힘을 모았다. 천마의 일격은 허공을 갈랐고, 천마는 바로 낙법을 취하며 허리를 틀었다.

"천마신권, 극(極)!"

"!!"

천마의 발끝이 내 한쪽 발끝에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는 허리를 튕기듯 돌리며, 어깨 너머로 넘긴 주먹을 당겼다.

분명 저 자세는-

"초격(初擊), 일격필살(一擊必殺)."

초대 천마의 무공.

그저, 전력으로 때려부순다.

여기서 피한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뼈를 주고, 살을 취한다.

명백히 내가 손해를 보는 전술이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뼈 하나 내어주고 상대에게 확실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말.

퍼----억!

천마의 주먹이 내 옆구리를 때렸다. 심장과 명치까지, 아니 전신으로 퍼져오는 일격필살의 고통에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덥썩.

나는 천마의 어깨를 붙잡았다.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그도 잘 알고 있을 터.

"희아연월."

찢어진 폐부를 내공으로 억누르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고랑혈조(孤狼血爪)."

초식을 말하는 것조차 내게는 격통이었지만, 나는 천마의 멱살을 붙잡은 손을 놓치 않았다.

"파천추혈수(破天錐血手)!"

나는 전방으로 띄운 천마를 향해, 혈기로 들끓는 왼손을 찔러넣었다.

푸---욱!

정적.

잠시, 대지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전까지 붕괴되로 파괴되느라 여념이 없던 대지는 아주 한 순간 고요가 찾아왔다.

"......훌륭하다."

천마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나의 혈영귀라수는 그의 배를 정확히 찔렀다.

"역시 천마요."

천마 또한 주먹을 내 가슴 아래에 질러넣었다. 으스러진 갈비뼈 너머 폐부가 뼛조각에 짖이겨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격통이 심했다.

"...강하군."

"하, 건방은…."

서로가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하지만 승패는 명백했다.

"...끝에 와서 봐주다니, 이 얼마나 허망한 짓이란 말이냐…!"

천마는 분노했다. 자신의 가슴을 충분히 노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복부'를 노린 것에 그는 진심으로 분개하고 있었다.

"너는, 본좌를 죽일 수 있었다!"

"...그거야 그렇겠지. 그랬으면 이렇게 폐부가 찌그러지는 일도 없었을테고."

아마, 평생 숨은 한쪽으로 쉬어야 하지 않을까. 제 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호흡이 반만 이루어지리라.

호흡이 중요한 무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일격. 하지만 나는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충분히, 즐기셨소?"

"......이 놈이."

천마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냥 네가 천마해라."

"싫소. 나는 색마요. 그리고 시아가 천마가 될테지."

"......시아가 여자로 태어난게 다행인가. 한 가지 묻지. 왜 시아를...선택한 거지?"

"큭."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 본인조차 모르고 있거늘, 내가 어찌 말할 수 있을까?

"글쎄. 전생에 삼생의 은혜를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고 하면 되지 않겠소?"

"......흥."

푸욱.

나는 혈영귀라수를 해제했다. 천마의 배로부터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고, 우리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멀리 떨어졌다.

"다음 번에는...지지 않는다."

"그럴 일 없기를 바라오. 나는...너무 많은 내공을 썼거든."

순수하게 사용한 내공이 시간이 지나면 모두 회복되는 천마와 달리, 나는 채음으로 쌓은 모든 내공을 잃어버렸다.

"다시는 싸우지 않을 것이오. 천마."

"놈. 그러고도 네가 시아의 지아비라고 할 수 있느냐?"

"싫소. 장인을 할퀴어 죽이는 패륜아가 되고 싶지는 않소."

"네놈…."

천마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비틀비틀 거리다 주저앉았다.

"...이 재미있는 생사결을 다시 할 생각을 안 한다고…?"

"재미는 있는데, 살떨려서 못하겠군."

지금까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모아온 모든 음기를 천마와의 대결에서 소모했으니, 그걸 다시 쌓으려면 보통의 채음보양으로는 부족하리라.

"네놈...그럼 이제 뭘 할 거냐."

"글쎄."

천마에게 큰 상처를 입혔으니, 최소 반 년보다 훨씬 더 많은 기간을 요양해야 할 터.

용봉지회에서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그걸 빌미로 마인들을 동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약속을 지켜야지."

"무슨 약속."

"살아서 돌아가면, 아이를 가지기로."

"......."

천마는 입까지 벌리며 놀랐다. 입에 고인 핏물이 흘러내림에도,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축하하오. 손녀딸 이름은 맡기겠소."

"......허, 시발."

천마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네 좆대로 해라, 개새끼야…."

툭.

천마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그는 앉은 채로 기절했고, 의식을 잃었다.

피가 아래에 흥건하게 깔려있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의 복부를 공격하는 순간, 약간의 조치를 취해놓았으니.

"......흠."

나는 안주머니에서 단환 하나를 꺼냈다.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 꺼낸 단환으로 고통을 억누른 뒤, 혈마의 기운이 자연히 빠지기를 기다리면 되리라.

으적, 으적.

어디 사람 습격할 생각 말고, 동굴에 처박혀 얌전히 물이나 빼면-

"...젠장."

순간.

새애애액.

멀리서 날아온 굵은 화살이, 내 어깨를 정확히 찔렀다.

'어떻게 하지.'

아프지는 않다. 그냥 호신강기에 찔린 척 하면 되고, 실제로 화살이 박히더라도 아프지 않다.

와아아아---!!

마인들이 멀리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마침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천마를 상대로 혈전을 벌여 그를 무릎꿇렸다. 사실상 나의 승리가 확실하며, 이제 더 천마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도망을 쳐야하는데.

"...흐."

쏴아아아.

나의 뒤에는, 아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남쪽을 향해 흐르는 거친 물줄기의 소리가 들렸고,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파바박.

얼굴만 보호하며, 나는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낭떠러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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