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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天魔)
같은 천마지만, 나는 객관적으로 평할 수 있다.
'시아가 더 강해.'
지금의 천마보다, 혈겁난세 당시의 미래천마가 더 강하다는 것을.
하지만 둘의 천마신공은 방향성이 다르다.
아무리 같은 무공을 사용하고 혈연이라고는 해도, 태생인 '성별'의 차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둘의 천마신공은 달랐다.
미래천마 이시아의 천마신공은 속도.
가벼운 몸에서 나오는 속도는 중원에서 오직 파천신검만이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힘은 천마신공과 내력으로 극복했다.
그에 비해 지금의 천마는?
힘!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타고난 근력과 갖은 노력을 바탕으로 빚어진 완벽의 근육질 육체는 이미 외공만으로도 역발산기개세의 외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천마신공의 내력까지 더해진다?
"크하하!"
천마가 주먹을 내지르고, 다리로 걷어차는 방식은 특별한 무공이 아니다.
그저 주먹에 온 힘을 싣고, 발에 온 힘을 싣는 방식일 뿐.
별다른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주먹을 내뻗는 것으로 산이 울리고, 발을 찍는 것으로 땅이 갈라지는 것을.
괜히 천마신공의 무공에 '천마'가 붙는게 아니다.
천마가 하는 모든 행위가 곧 무공이며, 천마가 하는 모든 행위가 곧 힘이다.
주먹질 한 번에 산이 깎이는 신위를 보이는데, 어찌 신권(神拳)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으랴?
모든 것의 앞에 '천마'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당위성이 확보된다.
"천마의 힘을, 본좌의 힘을 똑똑히 보아라!"
천마가 다시 뛰어와 주먹을 내지른다. 이시아보다 속도가 느리다고는 했지만, 천마의 속도가 굼뜨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속도가 느린 것일 뿐. 마교제일인의 속도는 나조차도 순간적으로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였다.
"죽어라, 색마!!"
버겁지만, 가능은 하다.
퍼----억!
북을 주먹으로 때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동시에 충격이 내 몸을 타고 뒤로 튕겨나간다.
"호오…?"
천마의 감탄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주먹은 내 손바닥에 붙잡혀있었다.
"계속 맞은면 아프단 말이지."
즉, 나는 천마의 주먹을 손바닥을 펼쳐 붙잡았다.
"이 정도면, 피할 이유가 없지."
"그래, 그거지!"
천마는 주먹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몸을 빙글 돌리며, 움켜쥔 주먹으로 내 머리를 옆으로 치려했다.
몸을 숙여서 피한다? 그럼 바로 아래에 대기중인 무릎이 내 턱을 올려칠 터.
'이제는 아니지.'
천마의 전력은 파악이 끝났다. 이제는 그에게 말한대로, 나의 전력을 보여줄 차례.
"흐아아---!!"
기합과 함께, 나는 팔을 들어올리며 천마의 손등치기를 막았다. 아래에서 위로 튕겨올리며 맞받아침과 동시에, 앞으로 발을 뻗으며 뛰어올랐다.
"그래, 그거지!"
나는 천마를 향해 다리를 차올렸다. 천마는 내가 했던 것처럼 두 손으로 발목 부분을 밀어내며 뒤로 한 발자국 뛰었다.
키기긱!
다리에 몰린 강기와 팔에 몰린 강기가 서로 부딪혔다. 나는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일으켜, 천마의 팔을 몸째로 밀어버렸다.
"각법은 나도 좀 하지!"
"크윽?!"
천마는 두 팔을 좌우로 펼치며 내 올려차기를 막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다리를 위로 뻗었다.
"놈!"
천마는 자신의 공격을 모방하는 내게 역정을 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천마가 혈마를 상대로 꺼낸 기술인데, 따라하면 안 되나?"
다름아닌 천마의 기술인데. 나는 하늘 높이 들어올린 다리를 아래로 강하게 내려찍었다. 나는 공격을 피하는데 힘을 썼고, 천마는-
"흐하하!"
천마의 대처는 달랐다. 그는 광소하며 오히려 몸을 숙인 뒤,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한쪽 다리를 높이 치켜올렸다.
무릎을 꿇었다가 펴며, 그 탄력을 이용해 발끝을 세워 내 다리를 가격하려했다!
"우오오!!"
나는 다리에 전력을 다해 아래로 찍었다. 아래에서 찔러올리든 말든, 힘으로 찍어누르려고 했다.
힘 대 힘.
공격을 피하지 않는다. 공격은 맞받아치는 것이다.
"크하하! 강해, 강하구나! 언제 이런 적을 만나서 싸워봤을까!"
상대의 주먹은 더 강한 주먹으로 받아치고, 서로 다리를 동시에 차며 요격한다.
주먹을 맞대고, 다리를 맞댄다.
서로에게 무기는 필요없으며, 필요한 것은 오직 상대보다 더 강한 힘 뿐.
말? 필요없다.
초식? 필요없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호흡조차 아껴가며 주먹을 휘둘러야한다.
새애액---!!
주먹이 내 얼굴을 노린다. 나는 그걸 피하는 게 아니라 금나수를 펼치듯 붙잡아 안으로 잡아당겼다.
"음?!"
손목을 튕겨내려는 줄 알았던 천마는 내가 그의 손목을 붙잡자 당황했다. 그리고 이어진 내 동작에 더 당황했다.
나는 그에게서 등을 보이며, 오히려 그를 더 내쪽으로 잡아당겼다.
"뭣…?!"
강하게 팔을 당기는 탓에 보법이 흐트러진 사이, 나는 천마로부터 등을 돌리며 천마를 내 위로, 그리고 내 뒤로 넘겼다.
이른바, 업어치기.
혈교주가 자신을 덮치는 이들을 상대로 자주 하던 호신술의 일종.
당한 자는, 바닥에 대자로 뻗는다!
"크윽?!"
천마는 내게 붙잡힌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놓아라, 이 놈!"
"결코!"
손목을 잡고 있기에 그나마 억지로 업어치기가 가능한 거지, 그게 아니면 천마는 유유히 역공에서 빠져나가리라.
"그럼 힘으로 빠져나가마!"
천마는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억지로 몸을 빙글 돌리며 바닥을 발로 찍었다.
강렬한 진각에 나는 순간 몸이 흔들렸고, 천마는 천근추를 쓰는 것 마냥 땅에 붙었다. 천마의 몸이 돌아간 만큼, 그 반동은-
"이런 젠장!"
나는 천마의 손목을 놓으며 뒤로 뛰어올랐다. 검극을 나누는 무인처럼 몸을 수 차례 돌리며 천마의 공격 여파를 흘려냈다.
"하아, 하아, 하아."
전신의 혈맥이 뒤틀리기 전, 먼저 뒤로 착지하며 흔들림을 떨쳐냈다.
"...크음."
천마는 짙은 신음성을 흘렸다. 무복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는 호신강기 아래 푸른 멍이 짙게 들어있었다.
"강기를 뚫고 일격을 먹일 줄이야...제법이군."
"이쪽은 몸이 너덜너덜해지고 있는데."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주먹에 주먹으로 맞부딪히며 손가락 관절이 어긋난 듯 부러졌고, 그런 곳이 한 둘이 아니었다.
나의 타격이 천마에게 피멍이 들게 만드는 정도라면, 천마의 일격은 근골을 부수는 정도.
얼핏보면 권격의 교환은 내가 나쁜 것처럼 보이지만….
"하. 금방 회복하면서 무슨."
"그렇긴 하지."
나는 천마신공으로 강화하고 있는 소예신공의 힘으로 금방 기력을 다스릴 수 있었다.
부러진 곳은 부러진 대로 쓰면 그만. 심장만 살아서 펄펄 뛴다면, 관절이 망가져도 주변에 흐르는 혈맥을 조종하여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만큼 내 전신에 흐르는 피는 미쳐 날뛰고 있으니.
"좋구나."
"좋네."
천마도, 나도 서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주변을 보거라, 혈마."
천마는 두 팔을 쭉 펼치며 웃었다.
"이게 인간이 저지른 짓이니라."
"......."
땅이 뒤집히고, 대지가 갈라지고, 절벽이 무너져내리고, 숲이 망가졌다.
"내가 왜 천산에서 계속 사는지 아느냐? 서안만 가더라도 주지육림이 넘쳐흐르거늘, 왜 천산에 숨죽이고 있는지 아느냐?"
"글쎄."
"오늘같은 날을 위해서다."
천마는 자신의 아래에 생겨난 거대한 구덩이를 가리켰다. 내가 천마의 머리 위로 다리를 내려찍었고, 천마가 한 발로 땅을 디디고 요격하며 생긴 구덩이였다.
"우리같은 자들이 시가지에서 싸우면, 그 여파만으로 죽는 이만 수 천에 이를테지."
"과장은."
"아니. 진실이다. 너나 나나 이미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기 직전인 자들이 아니더냐. 이런 자들이 시가지에서 싸운다면, 바야흐로 민간인들에게는 인재(人災)라고 할 수 있지."
천마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의 몸이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아니다. 천마는 걷고 있었다. 허공을 계단 오르듯 아주 천천히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공기를 밟는다? 허공답보?
그런 정도가 아니다.
발 아래로 뿜어내는 내력의 힘 덕분에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아주 느긋한 발걸음처럼 보이지만, 너무나도 강대한 내력이 차고 넘쳐 흐르는 양이 발 아래로 뿜어져내리고 있다.
"나는 궁금했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무공을 극한으로 연마하고 익히면,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꼭 그런 말을 하면 엄청 강력한 기술이 날아오던데."
"크, 크하하!!"
천마는 광소하며 활짝 웃었다.
"그래! 백도 놈들이 다 그렇지! 그런데 어쩌겠느냐, 나도 백도 놈들과 싸우면서 물든 걸 지도 몰라!"
척.
천마는 내게로 몸을 돌렸다. 그는 팔짱을 낀 채, 허공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본좌의 생에, 가장 강한 무공이니라! 어찌 설명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신났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나의 힘을, 온전히 받아내는 자는!"
아주 제대로 신이 났다.
"아아, 그래! 여자로 태어났다면 반했을 지도 몰라! 분명 임신시켰을테지!"
"...그건 아닌데."
저 금발적안의 마인은 지금 제대로 미쳤다. 싸우다 정이 든 것도 아니건만, 천마는 나를 향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로 태어난 걸 후회하거라! 여자라면 봐주지만, 남자라면 얘기가 다르지!"
"그건 공감하오."
여자에게는 멋으로 져줄 수 있어도, 어찌 사내끼리 질 수 있겠는가?
하물며 무공으로!
"흐하하…! 전대 천마를 내 손으로 쓰러뜨렸던 그 무공을, 오랜 세월을 봉인한 나의 힘을-"
"천마."
나는 말이 길어지는 천마의 말을 끊었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
미래천마, 왈.
"천마는 숨쉬는 것조차도 천마라고."
"......."
천마는 벙찐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과연 그는 나의 말을, 그녀의 말을 알아챌 수 있을까?
"흐."
천마는 웃었다.
"그런 거였나…. 그렇군. 그래. 더 말은 필요없겠지."
방금전처럼 광소하지도 않고, 기나긴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천마(天魔)."
그저, 나지막하게 한 마디를, 끊어서 내뱉었을 뿐.
"군림보(君臨步)."
하늘 위.
천마의 아래,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수마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의 투쟁을 지켜봐왔다.
수십 만명이 서로 죽고 죽이는 대전쟁도 보았고, 천하제일을 다투는 이들의 생사결도 보았다.
그러나.
수마는 단언컨대,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전투가 가장 '야성적'이라고 칭할 수 있으리라.
"아니...좀 피하라고."
오죽하면 자신이 더 답답해서 훈수를 두고 싶을 지경이다. 자신보다 강한 인간 둘이 싸우는데, 왜 답답할까.
말 그대로 둘은 서로 치고 박고 있었다.
색마가 천마의 힘을 파악한 순간 이후.
두 남자는 한 순간도 서로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지는 거라고 약속이라도 한 거야 뭐야…."
색마가 옆구리를 걷어차면 천마가 다리를 붙잡고 내던진다. 천마는 그걸 쫓아가 색마를 걷어차고, 색마는 천마의 다리를 향해 팔꿈치를 찍으며 공격을 상쇄한다.
주변에는 두 남자의 선혈이 흩뿌려졌다. 그들의 피가 뿌려지는 곳은 움푹 파이고, 지형이 붕괴되고, 지축이 흔들렸다.
"...이런 싸움은 선계대전 이래 처음인데."
천산 전체가, 십만 마교의 본거지가 무너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전투였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수마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온다."
천마가, 천천히 하늘을 걷기 시작했다.
천마군림보.
직접 마주한 이 중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 극강의 무공.
그저, 걷는 것 만으로도 천지를 뒤흔든다.
그저, 하늘 위에서 짓밟는 것 만으로도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을 굴복시킨다. 수마는 감히 천마의 힘 앞에 날개를 접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저거 뭐야…?"
혈마는, 도망치지 않았다.
천마의 앞에서 당당히 왼쪽 팔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천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 피해?"
두 마인의 전투가 수컷의 자존심 싸움이라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천마군림보를...정면으로 받아친다고?"
하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닌가?
"안 돼...그건 현녀도 맹주도 불가능한 일-"
타-앗.
혈마도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허공답보로 하늘을 밟고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음!"
천마는 아래에서 날아오는 혈마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새애액----!
혈마는 천마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그의 왼쪽 팔에는 핏빛으로 물든 짐승의 팔이 번쩍이고 있었고, 혈마는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천마를 내려다봤다.
"아무리 높이 날아올라도…."
혈마의 짐승같은 손길이 하늘 높이 뻗어올랐다. 악귀의 손길과도 같고, 짐승의 손길과도 같은 혈영귀수(血影鬼手)에는 혈마의 전력이 담겨있었다.
"하늘에 더 가까운 자는, 나다."
"놈!"
"천하에 무적인 무공은 없으니."
그 손길은.
"천마군림보는, 이미 이 손으로 파훼했다."
마치 하늘을 찢어발기는 것처럼,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