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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天魔)
그 시각, 호북 천가장.
"우리 진짜 궤멸적이다...."
천마망교의 네 여인은 한데 모여 자신들이 만든 음식에 한탄하고 있었다.
"아니, 넷이서 연이 한 명을 감당 못하는게 말이나 돼?"
"셋 아니에요?"
"야...!"
이시아는 대놓고 면박을 준 당서희에게 화를 냈지만, 그 이상으로 화를 내지는 못했다. 그나마 가장 음식 비슷한 것을 만들어낸 사람이 오직 당서희였기 때문!
"서희는 요리 잘 하네요...."
"언니도 괜찮게 하는데요?"
"북해에서는 요리 자체를 할 수 있을만한 환경이 아니어서...."
"......이제부터 연습하면 되죠."
당서희는 유설라의 등을 토닥였다.
"그보다 검마가 이렇게까지 못할 거라고는...."
"자, 자르는 걸로 충분하지 않나!"
예상외의 복병이 있었다면, 검마 왕소현이었다. 그녀는 현모양처를 육성하는 검각의 주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요리에 있어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다들 평범하게 잘 하는데...."
심사위원으로 온 사공희는 눈앞에 깔린 요리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자면 단 하나의 요리를 제외하고 모두 충분히 먹을만한 음식이었다.
"안 돼요, 견희. 연이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상공보다는 잘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상공을 기준으로 잡으면 정말 잘 하는 건데요. 예전에 그러셨어요. 자기가 요리로는 중원 제일이 아닐 수 있어도, 한 성 안에서는 으뜸이라고."
"...그 성이 호북성이나 호남성 단위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무림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천하제일인은 아닐지라도 지역에서 으뜸이라.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의 가주급 수위를 자랑한다고 이해하는 편이 바를 것이다.
"상공은."
사공희는 서북쪽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무사하시겠죠...?"
"무사하지."
이시아는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상을 들어옮겼다.
"안 죽어. 절대로."
"...둘 중 하나는 죽을 수 있다고 한다면, 시아는-"
"남자에게 꼬여서 아비를 죽인 패륜아가 되거나, 아버지에게 정인이 살해당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거나."
분명한 이지선다였다. 어느쪽도 이시아에게 있어서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시아는 호북에 남기로 했다.
"근데 안 그럴 거야. 반드시 돌아올 거야."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안 죽어. 절대."
누구도 죽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니까 믿고 기다리는 것 뿐이야. 안 그래, 견희?"
"...그렇죠. 믿고 기다려야죠."
비천색마의 승리를.
* * *
산이 깎인다.
땅이 흔들린다.
"두렵느냐?"
전신이 떨린다. 눈앞의 존재가 보이는 신위(神威)에 손발이 바들바들 떨린다.
"내가 두렵느냐?"
주먹질 한 번에 절벽이 무너져내리고, 발걸음 한 번에 땅에 넓은 구덩이가 생긴다.
"천마의 전력을 보는 건 네가 처음이니라."
지형지물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모두 부서지고 망가지고 파괴되어가는 와중에, 그는 금빛 기류를 뿜어내며 두 팔을 좌우로 펼쳤다.
"현녀도, 나도. 서로 전력을 내지 못하는 불행한 조건이 있었지."
"...그래서 맹주가 최강이었던 거고."
"흐흐, 그래."
기존에 알려진 천하삼강-무림맹주, 천마, 현녀는 이 순서로 강하다.
왜냐?
무림맹주는 약점이 없는 반면, 천마와 현녀는 서로 약점이 하나씩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무공의 근본은 권각술(拳脚術). 그런데 몸을 격렬히 움직이면 말이야...이게 흔들리거든."
천마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가모(假毛)는 소용없었다. 천마신공의 내기가 상단전으로 흐르는데, 극양지기가 하늘로 솟구치니 어찌 모근이 남아날 수 있었겠나?"
"소림의 사람도 아니고 머리가 벗겨진 천하제일인이라고 한다면,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지."
"그래. 초대 천마께서는 그 굴욕을 견뎌내고 자연과 하나가 되셨다고 하지만...나는 그 분의 경지까지는 닿지 못했지. 허나!"
쿵!
"이제는, 다르다!"
천마가 다시 진각을 밟았다. 나는 바닥을 빠르게 박차고 뛰어올랐다.
쩌저적.
대지가 갈라졌다. 고작 발을 한 번 앞으로 세게 굴렀을 뿐인데, 땅이 쩍 갈라지며 안에서 충격파가 솟구쳤다.
'진각이 아니야.'
얼핏보면 땅을 밟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땅을 앞으로 차고 밟은 것이다.
각풍(脚風)만으로 땅을 갈랐다. 대지는 그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잘렸고, 땅을 긁고 날아온 참격풍이 나를 덮쳤던 것이다.
그 속도는 가히 신속.
검제가 기회를 엿보고 찔러오는 역공도, 검선의 화려한 난검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속도에 이미 내 옷깃은 너덜너덜해졌다.
"흐흐, 흐흐흐."
천마는 몸을 떨고 있었다.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일으키며 적안이 된 그의 눈동자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자신의 무공을 자유로이 쓸 수 있다는 쾌감.
넘쳐나는 힘을 부작용 없이 쓸 수 있다는 만족감.
그리고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내게 자신의 전력을 쏟을 수 있다는...성취감!
"지금까지, 누구도 나를 전력으로 상대해본 적이 없다!"
정답이다.
"나는 지금, 극마(極魔)에 이르렀으니!"
이 상태의 천마라면 무림맹주가 싸우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지 않는 이상, 약 천 합을 겨루면 천마가 승리할 것이다.
"색마여, 본좌는 이미 하늘의 끝에 다다라있노라!"
사자후 만으로도 주변 일대가 초토화된다. 흙더미 사이를 뚫고 나온 잡초는 감히 일어설 생각도 못한 채 바닥에 넙죽 조아리고, 풀벌레는 천마의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죽었다.
"누가 하늘인가! 누가 천마인가!"
저것이 강자의 위엄이다.
무림맹이 마교를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맹주 이외에는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
"내가, 천마다!"
그게 천마다.
호통처럼 내지르는 사자후조차 주변 기류를 흔들었다. 앞을 향해 역으로 기파를 날려보내지 않으면 몰아치는 칼바람에 피부가 베일 정도.
"어떤가. 아직도 두렵나?"
"...아니."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가 두렵군. 나는, 내가 두렵소."
"호오?"
"까딱 잘못하여, 죽일까봐."
"크하하하하!"
내 말에 천마는 광소했다.
"오만방자하구나! 그래, 차라리 네가 이기면 네가 천마해라! 그래, 비천색마가 아니라 비색천마가 어떠냐?"
"싫소. 나의 정체성은 색마요. 그리고...약속했거든."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는 모든 공격을 피하고 흘려내는데 급급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반드시 하늘로 올려주기로."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천마는 주먹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자신의 힘이 아닌데?"
"내가 곧 시아의 주먹이고, 내가 곧 시아의 힘이 될 것이오."
"그래서 그냥 색마도 아니고 비천(飛天)인가. 재미있군. 하지만...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수는 없을텐데?"
나의 내기가 변모하는 것을 느꼈는지, 천마도 입꼬리를 비틀며 자세를 바꿨다.
"아니면. 드디어 오나?"
방금 전까지는 나를 향해 미친듯이 공격을 퍼붓고자 하는 공세였다면, 지금은 내 공격을 정면에서 맞받아치려는 반격의 자세였다.
"오래 기다리셨소."
파직, 파지직.
몸 근처에 금빛 기류가 터져나온다. 나의 몸에 깃든 천마신공의 힘이 혈맥을 흐르다가 과잉된 기운을 참지 못하고 벌써부터 열로 방출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내가 곧, 시아의 주먹이라고."
틀린 말은 안했다.
"보여주리다. 머리가 벗겨지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않고...천하를 거머쥘 자의 힘을."
내공의 근간은 소예신공이나.
내공을 강화하는 방법은 천마신공이며.
"누가 더 강한 천마인지, 똑똑히 느껴보시오."
미래천마(未來天魔). 강림.
"천하에서 이 천마보다 더 부수는 걸 잘하는 존재는 없소이다."
초격은, 가볍게 앞으로 돌진. 경쾌한 발놀림으로 천마군림보로 대지를 밟으며 앞으로 내달린다.
그 속도는 천마가 보인 속도...그 이상!
"!!"
어깨 너머로 넘긴 주먹을 앞으로 뻗는다. 천마가 두 팔을 교차하며 내 주먹을 막는다.
카가가각!
천마는 두 다리를 땅에 지탱하며 내 주먹을 받아냈다. 몸이 뒤로 밀리고 공격을 몸으로 받아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의 공격을 흘리지 않았다. 피하지 않았다.
"크으으...!"
자신 못지 않은 천마신권을 두 팔로 받아내며, 수 장이나 뒤로 물러나면서도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 이거지...!"
천마는 사납게 웃으며 두 팔을 앞으로 교차하듯 휘둘렀다. 나는 공중에서 뒤로 튕겨나가기 전에 낙법으로 몸을 빙글 돌렸고, 천마는 제자리에서 바로 뛰어올랐다.
"천마연각(天魔連脚)!"
"!!"
나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발길질에 고개를 급히 뒤로 젖혔다. 그러자, 마치 칼로 베어올리는 것처럼 천마의 발이 초승달을 그리며 올라갔다.
단순한 올려차기.
하지만 그게 잘 벼려진 칼날보다, 여느 화경 고수보다 더 날카롭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저 천마가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몸으로 검이 되고, 도끼가 되고, 파쇄추가 된다.
그리고 이 공격은 분명-
"연(連)...!"
이어진다. 공격은 올려차기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다. 무리하게 뒤로 고개를 젖힌 나를 향해, 천마의 몸은 공중에서 체공했다.
"초격이 안 맞으면, 후속타를 날리면 그만."
천마는 차올렸던 발을 하늘을 향해 쭉 뻗으며-
"이번에는 피할 수 없다!"
다시, 아래로 강하게 내려찍었다. 나는 급히 두 팔을 십자로 교차하며 천마의 공격을 막았다.
쿠----웅!!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바닥에 처박혔다. 고개를 뒤로 젖힌 순간부터 몸이 하늘을 향해 눕혀졌기에, 나는 천마의 내려찍기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큭...!"
공격 한 번에 내장이 진탕이 되는 듯한 충격이 들었다. 몸 안에서 끓는 것이 분명 혈기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되느냐?"
당연히, 안 된다. 나는 몸을 급히 옆으로 굴렸다.
쿵-----!!
내가 공격을 막느라 반탄력으로 잠시 붕 떠있었던 천마는 다시 내게 내려찍기를 감행했다. 자신의 몸을 일부러 빙글 돌리며, 회전력까지 가미하여 나를 찍었다!
"큭!"
하지만 공격은 애꿎은 땅을 때렸다. 그 충격파가 땅을 타고 흘러 내 몸에 전달되었다. 저걸 그대로 맞았다가는 갈비뼈가 부서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땅이 갈라지는데, 사람의 몸이라고 성하랴?
쩌적, 쩌저적!
천마의 세번째 공격이 닿은 땅은 마치 하늘에서 거대한 창이 떨어진 것마냥 움푹 파였다. 그리고 주변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 땅이 갈라졌다.
"...이게 사람의 힘인가?"
"하하, 엄살은. 강호에서 이 공격을 피한 존재는 너 뿐이다."
"왜 나밖에 없지?"
"다 죽었거든."
천마는 포권을 취하듯 주먹을 부딪혔다.
"일격. 필살의 각오로."
나를 향해 쇄도하는 주먹. 자세를 다시 디딜 틈은 없다.
그러므로 받아친다. 미래천마, 이시아의 주특기와도 같은 반격기로!
천마선풍각(天魔扇風脚).
바닥을 손으로 디디고, 몸을 바닥에서 뒤집으며, 동시에 다리를 휘둘러 위에서 내려오는 공격을 다리로 튕겨낸다!
"호오!"
천마는 감탄했다. 필살의 의지를 다진 일격은 나의 발악과도 같은 반격에 틀어막혔다. 내뻗는 손목을 정확히 발등이 요격하여 튕겨냈고, 나는 바닥을 짚고 튀어오르듯 뒤로 뛰었다.
"이격, 다시는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하지만 바로 천마의 공격이 이어진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한쪽 다리를 앞으로 뻗으며, 정확히 내가 붕 뜨는 '순간'을 노리고 다른 다리를 뒤로 뻗는다.
분명 저 자세에서 이어지는 공격은-
"승천(昇天)!"
천마는, 나를 향해 발등을 뻗으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땅을 박차고 한 발로 뛰어오르며, 뒤로 뻗은 다리를 위로 쳐올리며 그 끝에 모든 힘을 실었다.
당연히,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처는 한 가지.
순응.
하늘로 오르는 용의 기운에 올라타는 것!
"크으윽...!!"
순식간.
나는 하늘로 높이 떠올랐다. 천마의 발끝을 향해 주먹을 뻗어 내 몸을 뒤로 날리려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내 몸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커흐...."
두 팔이 얼얼하다. 하지만 팔보다 고통스러운 건 팔을 타고 흘러들어온, 전신의 혈맥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충격이다.
충격은 분명 팔이 받았는데 몸 전체가 흔들린다. 신체도, 골격도, 내공도 모든 것이 파괴된 것 마냥 고통스럽다.
같은 천마신공을 사용하고 있기에? 아니다.
그냥, 천마가 강해서.
어디로 공격을 막더라도, 그 공격의 여파가 전신에 퍼져나가게끔, 내부가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받아내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것 처럼!
"...누가 시아 부친 아니랄까봐."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공감한다.
"그렇다면 분명-"
아직, 삼격(三擊)이 남아있다. 나는 공중에서 자세를 잡고 다리 한쪽을 높이 치켜들었다.
"크하하하!"
아래에서, 허공을 디디며 뛰어올라오는 천마는-
"삼격! 죽을 때까지, 죽인다!"
하늘 높이 두 주먹을 맞잡은 천마는 어느새 내가 날아온 높이까지 뛰어올라, 나를 향해 철퇴를 내려찍듯 두 주먹을 내려찍었다.
저항할 틈은, 없다.
쿠-------웅!!
나는 다시 순식간에 바닥에 처박혔다. 시야가 흔들리고 하늘이 붉게 물든다.
"...퉤."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전신이 짜릿하게 울리고, 격통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더럽게 강하네."
호부 아래 견자는 없다고 하던가.
맞는 말이었다.
"마교제일인의 이름이 허명 같더냐."
천마는.
미래천마와 거의 비슷한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약점을 극복한 천마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이야.
"이보게."
천마는 처음으로 나를 향해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간보기는 이쯤하고, 슬슬 본모습을 보이는 건 어떤가?"
"......칫. 이래서 강자들이란."
나는 몸을 일으켰다. 천마는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손뼉을 쳤다.
"그래! 맞지 않는 옷을 입었으니, 어찌 그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천마는 눈치챘다. 내가 그를 상대로 전력을 시험하며 사용한 무공의 근간을.
속도를 추구하는 이시아의 무공을 내 몸으로 사용했으니, 당연히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하다. 남녀의 태생적인 근골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틈까지 나는 재현하지 못했다.
즉 미래천마는 지금의 천마보다 강하지만,
미래천마의 힘을 10할 재현하는게 불가능한 나는 천마보다 약하다.
맞지 않는 옷.
여인의 무공을 강제로 남자가 쓰는 셈이니, 당연히 맞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아, 참아야 하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는데.
'아무래도 나는 태생이 삼류 악당인 모양이오.'
왜 자꾸만 말을 하지 못해서 입이 근질거릴까.
"자지랑 보지는 딱 맞던데."
"...아니, 이 새끼가?"
사실인데 어쩔 수 있나. 나는 전신에 들끓는 혈기를 밖으로 방출했다.
[작품후기]
킹쩔수 없는 입방정